소설리스트

A.I 닥터-571화 (571/1,303)

571화 기왕 이렇게 된 거 (2)

환자가 안 좋다라.

이비인후과, 그것도 귀에서?

서비스 파트인 영상의학과 입장에서 임상과를 무시하는 건 좀 그렇긴 하지만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이 ‘말이 되나?’인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다른 과 과장들 다 있는 자리에서 진짜 말이 되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리웨이 원장은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안 좋은데요?”

나는 못 믿겠다는 투이긴 했으나 하여간 말이 되냐는 말보다는 훨씬 나은 워딩이었다.

대리로 들어와 있던 교수, 그러니까 과장과 같은 귀 파트 교수이면서 동시에 아직 부교인 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자신도 전화로 듣기만 해서 정확히는 몰라서이기도 했거니와 뭔 일인지 잘 모르겠단 생각도 들어서이기도 했다.

‘과장님이 구라 치는 건가, 설마?’

솔직히 말하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비인후과 내에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는 과는 두경부외과 아닌가.

귀 쪽은 삶의 질을 개선해 주는 과이지, 죽을 사람 살려 주는 것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하지만 아까 전화상으로 들은 목소리는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과장이 그 정도로 연기력이 뛰어날 거 같지는 않았다.

아니, 이런 것을 다 차치해 두고서라도 창은 과장에게 이런 생각을 품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외이도염으로 과장님 외래에서 치료 중이던 환자인데……. 갑자기 확 진행하면서 어제 새벽에 어지럼증 및 난청 동반하는 증상으로 응급실로 왔습니다.”

“그리고요?”

어지럼증과 난청은 이비인후과적으로 볼 때 꽤 심각한 증상이었다.

특히 그게 염증이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왔다면 내이염을 의심해야 하기에 더더욱 그랬다.

자칫하면 환자가 영구적인 난청을 앓게 될 수도 있게 된다는 뜻이지 않나.

심지어 어지럼증까지 동반이 되었다면 환자의 삶의 질이 나락으로까지 떨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과에서 듣기에는 시큰둥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리웨이만 해도 맨날 관여하는 환자가 간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이나 간암, 췌장암과 같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이지 않나.

바이털과 의사들처럼 죽음에 익숙하지는 않아도, 죽을 게 아니라면 그렇게 위급한 건 아니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아니, 그. 아무튼, 영구 장해가 남을 수 있어서 CT 찍었더니 외이도에서 발전한 염증이…… 고막 뚫고 안으로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응급 수술 결정했고, 금식이 안 되어 있어서 오늘 5시엔가 들어간 거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그런데요?”

“근데 수술 중에 환자…… 혈압이 크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70이라던가…… 검사 결과 보니까, 애초에 헤모글로빈 수치가 8이었더라고요.”

“8? 근데 들어갔어요? 수혈도 없이?”

“아니, 수혈은 했죠. 저희도 내과 협진 보고 들어간 겁니다. 근데 이게…….”

“음, 알겠습니다. 가 보세요. 내과 콘택도 한 거죠?”

“네, 당연하죠.”

하지만 듣다 보니 확실히 좀 위험해 보이긴 했다.

딴 것보다 혈압이 70이라는 게 이상하지 않나.

흔히 마취하면 혈압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기는데,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현대 의학의 발전에 있어서 마취 기술의 발전이 크나큰 기여를 해 온 만큼, 지금도 계속해서 진보해 나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약이 워낙 좋아지다 보니 예전만큼 약 때문에 혈압이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회의 중 이탈할 만큼 중증 케이스니까 저에게 경과 보고도 해 주시기 바라요.”

리웨이는 황급히 떠나는 이비인후과 교수의 뒤통수에 대고 말을 이었다.

창 교수는 과장이 불렀는데 본의 아니게 꾸물거린 참이라 마음이 급했다.

해서 창은 알았다고 외치면서 달려 나갔다.

리웨이는 그런 창을 보며 생각했다.

‘진짜 어려운 케이스면…… 저걸 이수혁 교수한테 맡겨 볼까? 근데 이비인후과 케이스인데…… 알 수 있으려나?’

잠시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원장인 자신이 결심한 이상 일은 진행될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철의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샤오잔을 자른 것 아닌가.

평생 자기 동생 하나만 사랑해 왔고, 일찍 죽어 버린 동생 때문에 인생이 망가져 버린 사람이었음에도 그랬다.

마음이 왜 아프지 않았을까.

하지만 더 큰 꿈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여겼다.

‘그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여간…… 금전적으로는 내가 책임진다.’

공정성을 잃어버린 권력자가 대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오히려 모든 사람이 자기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혹독한 잣대를 들이댈 때 힘이 생기는 법이었다.

마음은 아팠지만, 지금도 보면 어떤가.

“이비인후과, 신경외과 제외한 과장님들. 현재 과에 입원 중인 환자 중 해결 안 되고 있는 환자들 목록 정리해서 보내도록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네.”

샤오잔 얘기를 꺼내고 난 후 이 말을 꺼내자 다들 설설 기고 있지 않나.

리웨이의 말에 힘이 빡 실려 버렸다는 얘기였다.

만족한 리웨이는 이제부터는 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밤을 새운 마당이었으나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자,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보내 주시면 제가 정리해서 따로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원장님.”

해서 리웨이는 다시 한번 케이스 보내라는 말을 강조한 후, 판독실로 향했다.

아무리 아침 일찍 연 회의라 해도 시간이 조금은 지체된 참이다 보니 발걸음을 서둘러야만 했다.

물론 이곳도 2차 병원급의 규모이기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3차 병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이다 보니 리웨이만 급한 게 아니었다.

특히나 이비인후과 쪽이 오늘은 제일 심했다.

“야야! 진짜 의사 언제 와!”

이미 수술은 중단된 지 오래였다.

제아무리 내이염이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청각이나 평형기능이 목숨보다 중한 것은 아니지 않나.

“혈압은 아직도 낮아요?”

애먼 일에 휘말려든 마취과 의사도 다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네! 일단 피 쥐어짜고…… 승압제 쓰고 있습니다. 근데 이거 아무래도 출혈이 있는 거 같은데…….”

“아니, 여기는 출혈이 없다니까? 그리고 있다고 해도 자 봐 봐. 여기서 피가 나면 얼마나 나겠냐고.”

“그건, 그건 저희도 인지하고 있어요…….”

마취과 의사는 이비인후과 과장이 있는 성질 없는 성질을 내면서 보여 준 수술 부위를 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아닌 게 아니라 저기선 피가 나오고 있지도 않거니와 난다고 해도 별것 아니긴 했다.

애초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해야 하는 부위 아닌가.

물론 귀도 안쪽에 종양이 있는 경우라면 접근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혈관을 건드리면서 들어가야 하겠으나, 이건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일반적인 중이염에 쓰는 접근법을 쓰고 있었다.

피가 있는 힘껏 나본다고 해도 대강 10mL 내외로 끝날 터였다.

“근데 출혈 같은 답답한 소리만 하고 있어?”

“어, 어…….”

“또 왜! 그런 소리 내지 말라고! 불안하니까!”

이비인후과 과장은 이제 거의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의사씩이나 돼서, 그것도 대학 병원 교수씩이나 돼서 아직 환자 완전히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시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마이너과 의사들은 전문의가 되고 또 그 과 의사로 오래 살아가면 살아가게 될수록 바이털과는 담을 쌓기 마련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과장은 심폐소생술도 자신 없었다.

“혈압이 더…… 더 떨어져요!”

“아니, 이런 시발 대체 왜! 이 새끼는 왜 안 와. 아니, 진짜 의사들 어딨어!”

“우선 방송합니다!”

“방송? 뭔 방…… 아.”

그런 와중에 자꾸 혈압이 떨어진다고 하니까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원래 그 자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데 계속 모르겠는 말이 나오면 화가 나기 마련이니까.

-수술실 4번 방 코드 블루, 수술실 4번 방 코드 블루.

하지만 코드 블루 방송이 나가자 화가 난다기보다는 허탈해지고야 말았다.

세상에 왜 내 환자에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이 환자는 그냥 귀에서 진물 나고 아픈 거로 외래 다니다 오늘 안 들린다고 해서 수술실에 들어온 건데.

드르륵.

하여간 방송이 나간 이상 코드 블루 상황에 대응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이들은 모조리 뛰어들게 되어 있었다.

특히 아까 환자 안 좋다고 연락을 받고 슬금슬금 걸어가고 있던 내과 의사의 발걸음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두두두.

두두두.

그렇지 않아도 지어진 지 오래된 병원 수술실이다 보니 그리 넓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비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귀 상처는 여전히 열려 있다 보니 이비인후과 과장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저러다 더 염증이…… 아니, 아냐.’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뭐가 되었건 내과 의사가 오지 않았나.

진짜 의사가 온 이상 뭐가 달라져도 달라지기는 할 터였다.

“하나, 둘, 셋, 넷!”

일단 흉부 압박이 시작되었다.

“에피!”

약도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이비인후과 의사들은 뒤로 물러나 벽에 붙었다.

“교수님, 저도 도울까요?”

같이 들어와 있던 레지던트, 그러니까 아직 혈기가 왕성한 젊은 친구가 앞으로 나서려 하며 입을 열었다.

과장이 보기엔 부질없는 짓이었다.

“오히려 방해돼. 뒤에 있어.”

“저도…….”

“넌 이비인후과 의사야. 지금은 뒤에 있어. 일단 기다리자고.”

“그…… 네.”

너무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인데 어쩌겠는가.

정말로 방해만 될 공산이 더 컸다.

그리고 지금 뭐 도움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지 않나.

“리듬 돌아온다.”

“휴……. 이거 기저에 일단 빈혈이 문제 같은데. 검사는 어때?”

“4요.”

“4? 교수님, 여기 뭐 동맥 터졌어요?”

“아, 아닙니다. 수술 부위는 출혈 부위가 아니에요.”

“그래요? 그럼 뭐지……?”

나서야 할 때는 지금처럼 물어볼 때였다.

과장은 나름 환자 파악이 아주 잘 되어 있어서 물어보지 않은 사항에 관해서도 설명이 가능했다.

“기저질환은 없다고 진술했어요. 주소는 귀통증이었어요.”

“귀통증……. 근데 지금 이 상황은 귀랑은 딱히…… 귀 상황은 어떻죠?”

“사실 심각합니다. 내이염이 진행해서……. 더 놔두면 머리로 들어갈 거예요.”

“아, 이런.”

외이도염도 위로 진행하면 바로 머리로 들어가지 않던가.

이 환자의 경우엔 내이까지도 들어갔으니 머리로도 금방일 터였다.

내과는 침음을 흘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일단 소속은 이비인후과로 두고 중환자실로 가죠. 저희가 같이 보겠습니다.”

“네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그리고…….”

“네?”

“아니, 아닙니다.”

내과 교수는 아침에 과장에게 전달받았던 바를 기억했다.

‘이거 리웨이 원장님한테 보내면 되겠는데. 대충 말 듣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했으니까……. 실제로 지금은 뭔지 모르겠기도 하고.’

해서 중환자실로 가면 바로 환자를 노티 하기로 결심했다.

공교롭게 샤오잔이 있던 이비인후과 환자라는 게 마음에 좀 걸렸지만, 그거까지는 자기가 알 바 아니라 여겼다.

‘그러니까 왜 위에서 모셔 온 원장한테 반기를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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