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화 도련님이 천재야? (2)
공장에서의 출혈이라.
이건 이거 자체가 꽤 드문 일이었다.
위랑 십이지장은 위산이 나오거나 그 위산에 바로 닿는 부위지 않나.
그러니 안이 헐어서 피가 나는 것도 자연스럽지만, 공장은 십이지장보다 더 뒤에 있는 조직이었다.
“뭐야…….”
“더 진입할 수 있어?”
“어려워요. 이건…….”
그렇다 보니 소화기내과 교수는 물론이거니와 나름 복부 영상의학회의 고수인 리웨이도 흐음 흐음 하면서 모니터에 붙었다.
솔직히 내과 쪽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게 정상인 이비인후과 과장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괜히 따라붙었다.
어유, 어유 소리를 내면서였다.
옆에 있던 레지던트도 비슷한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거의 성대모사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둘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소리였다.
“잠깐만요.”
하여간 같이 내시경실에 있던 이들은 전부 모니터에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중에서 제일 제정신을 차린 건 다름 아닌 수혁이었다.
“네?”
“출혈이 있긴 하지만…… 저건 우징(Oozing)이잖아요. 지금 이 환자의 빈혈은 만성적이기도 하지만 갑자기 심해지기도 했습니다. 그 말은…….”
“아, 이게 주요 포커스가 아니라는 거군요. 아니, 그러면…… 상부 위장관이 아니라는 소린데?”
“네, 하부 위장관……. 그러니까 대장을 봐야 합니다.”
보통 이런 식의 대량 출혈을 일으키는 기관은 위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십이지장.
하여간 상부 위장관으로 요약되는 곳에서 난다는 얘기였다.
하부 위장관은 대장암과 같은 병변이 아니고서야 피를 그렇게 많이 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장암…… 인가?”
“나이가 젊은데.”
“혹시 피똥 같은 거 싼다고 한 적은 없어요?”
“아뇨, 그런 건…… 그런 말은 없었는데.”
“물어본 적은 있고요?”
“없죠.”
“음.”
대장암이라고 생각하면 나름 지금 이 환자의 상태가 설명되는 듯했다.
우리가 보통 암이라고 하면 일단 그 암이 생긴 곳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은 얘기였다.
암은 우리 몸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녀석이었다.
일단 면역이 약화 되었다.
그 말은 곧 별것 아닌 염증이 심해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게 하필 외이도염으로 왔다는 건 좀 이상하긴 했지만, 하여간 그랬다.
“일단 대장내시경 해 보겠습니다. 아, 근데 이거…… 아휴.”
소화기내과 교수는 관장이 되어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물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여기서라도 관장을 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출혈 상황에서 관장을 빡세게 하는 것이 옳은가?
위험할 수 있었다.
해서 소화기내과 교수는 대강 직장만 비우는 식으로 진행을 하고는 이내 내시경을 항문을 통해 집어넣었다.
“으음…….”
“음.”
사방이 핏덩이였다.
검붉은 피들.
나온 지 오래된 피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경험 많은 의사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암 같은 게 있다면 구조물이 약해졌을 거 아닌가.
검진하다가도 간혹 뚫어 먹는 게 대장인데 이런 상황은 더 위험한 것이 당연했다.
‘그럼 이 환자는 죽는다…….’
아까 심폐소생술을 진행하지 않았나.
개복 수술 같은 걸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과장님이…… 이 환자 너무 젊어서 문제 될 소지가 크다고 했지.’
당연한 얘기였다.
28살의 앞길 창창한 젊은이가 귀 아파서 왔다가 죽는다?
아무리 의학적으로 항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보호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의사인 자신조차 그게 잘 안되는 상황이었다.
‘무리는 안 하는 게 좋겠는데…… 문제는…….’
주로 S상 결장 부근이 제일 위험하지 않나.
여기서 꺾일 때 자칫 잘못하면 푹 하고 벽을 뚫고 나가는 수가 있었다.
해서 제발 출혈이 있다면, 아니 암 덩이가 있다면 이 근처에서 보이길 바라며 들어왔는데 보이는 것은 온통 핏덩이뿐이었다.
나름 내시경을 수천 건 해 온 사람이 보기에도 그러하니 다른 이들은 어떻겠나.
심지어 바루다를 이용한 분석이 가능한 수혁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피만 보여. 병변 자체는 없어.’
[네, 지금 봐서는 그렇습니다. 피의 양으로 보면 이 근처 어디에서 나는 거였을 텐데…….]
‘안 될 거 같지 않아? 지금 저렇게 캄캄한데…….’
[네, 경험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게다가 대장암이라면 CT 등의 영상의학적 검사만으로도 진단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내시경으로는 일단 지금 출혈이 없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 그게 좋겠어.’
수혁은 소화기 교수를 말리기로 결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
“아, 네.”
교수는 그런 수혁을 돌아보며 내심 긴장했다.
이 도련님이 여기까지 따라온 건 분명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하기 위해서일 텐데, 아직 충분히 보여 주진 못한 상황 아닌가.
물론 아까 던지는 질문이나 추론만 봐도 나름 실력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겠단 생각은 들었다.
‘제발, 제발.’
하지만 본인 욕심은 다를 테니 더 전진하라고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만하죠. 위험할 거 같습니다. 교수님이 하실 수 있다면 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시야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장암과 같은 종괴성 병변은 영상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니 무리하는 것보다는…….”
“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행히 수혁은 철없는 도련님 스타일은 아닌 듯했다.
오히려 꽤나 사려 깊은 사람 아닌가.
‘하긴 무턱대고 돌진하는 놈들이 어떻게 돈을 벌겠냐.’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나.
보험사로 시작해 지금은 금융업으로 돈을 벌고 있는 기업이 바로 파크웨이 헬스인데 투자는 결코 경솔한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래요, 그럼 일단 빼고…… CT 잡아 보죠. 신장 기능 어떻지?”
“소변은 잘 나옵니다.”
“크레아틴 수치는?”
“살짝 오르긴 했었는데……. 그건 아마 탈수 때문일 겁니다.”
“그렇군요.”
수혁은 아까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던 환자의 모습과 검사 결과를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소화기내과 교수의 말은 꽤 그럴싸했다.
굳이 따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럼 찍죠. 조영제 넣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수는 그런 수혁의 말에 절대 충성했다.
수혁도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약간 느낌이 레지던트들 같지 않나.
그것도 외국인이 아니라, 태화 애들 같았다.
‘뭐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지금까지의 경험을 미루어 보면…….]
‘보면?’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자신의 지난날을 떠올렸다.
바루다를 만나기 전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으나 그 후로는 어땠나.
운이 정말 좋았다.
상대가 자신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면 보통은 안 좋은 쪽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런데 어찌 된 게 수혁은 맨날 원장 아들이니 뭐니 하는 오해만 샀다.
그래서 혹시 바루다가 보기에 이놈들도 그런가 싶었다.
[안대훈의 마수가 이미 이 병원에서 뻗친 거 아닐까요?]
‘아.’
하지만 안대훈 이름을 듣고 나니 이쪽이 훨씬 그럴싸해 보였다.
국립 병원의 사례가 없었다면 말도 안 된다 여겼을 텐데, 지금도 두 신도가 따라붙은 상황이지 않나.
‘하아.’
해서 수혁은 다소 한심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며 소화기내과 교수와 이비인후과 과장을 돌아보았다.
누가 봐도 좀 언짢아 보였기 때문에, 수혁을 갑 중의 갑으로 여기고 있는 둘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이 어째 신도들과 닮아 있어서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둘이 듣기에는 땅이 꺼지는 듯했다.
‘갑자기 왜 이러셔. 우리가 뭔 잘못이라도…….’
‘뭐가 잘 안 돼서 그런가……. 근데 그건 케이스가…….’
해서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CT라도 후딱 찍자는 생각에 전화도 걸고 뛰기도 하고 하여간 수혁 앞에서 우리가 정말 바쁘게 뛰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교수 하나만 뛰어도 결과가 좀 빨라지기 마련인데 지금은 둘 아닌가.
게다가 어쩐지 어조가 너네 이거 당장 안 하면 죽이겠다 뭐 이런 느낌이었기도 해서 결과물은 정말로 빨리 대령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얻은 결과물이라는 게 늘 만족스러운 것은 또 아니었다.
“음…….”
영상 판독엔 리웨이가 제일 먼저 나섰다.
복부 영상의학과 교수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 병원 안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아마 싱가포르 전체를 뒤져도 리웨이만큼 판독을 잘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하나 그 리웨이의 눈에도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종괴는 없어요. 암은 아닙니다.”
혹 잘못 봤나 싶어서 여러 번 스크롤을 굴렸으나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비단 리웨이가 보기에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수혁이나 바루다가 봐도 그랬다.
‘암은 아냐.’
[네, 암은 아니네요.]
다른 무엇인가일 수도 있겠지만 암은 결코 아니었다.
“다른 이상이 있다면……. 음……. 여기, Ileocecal valve 근처에 보면 협착이 된 부분이 있어요. 장간막 주변으로 염증도 좀 있어 보이고……. 그런데 명확하진 않아요. 오히려 이건 내시경 봐야 더 잘 보일 거 같은데, 그건 어렵겠죠.”
환자는 안 그래도 CT를 찍다가 바이털이 흔들려서 최대한 서둘러서 중환자실로 돌아간 마당이었다.
사실 심각한 질환 경과를 밟고 있는데 치료는 하나도 안 하고 검사만 주구장창 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상태가 일시적으로라도 나빠지는 건 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제 한동안 오늘과 같은 검사는 어려울 거라고 봐야 했다.
“하아……. 염증성 장 질환일까요?”
“아니, 그렇게 보기엔…… 결핵의 폐 외 병변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이 환자 폐는 어땠지?”
“아, 잠시만요.”
그 말은 곧 지금 있는 결과만으로 어떻게든 유추를 해야 한다는 건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수혁과 바루다는 조금 달랐다.
둘은 리웨이를 비롯한 나머지가 서로 토론하고 있는 사이 둘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폐에 일부 흉터처럼 보이는 소견이 있기는 했어. 하지만 지금 당장 활동성이 있어 보이는 병변은 아니었어.’
[그렇습니다. 물론 결핵이 폐는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 다른 장기에서만 발현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이 환자가 이전에 결핵이 있었는지조차 불명확합니다. 그러한 형태의 흉터는 다른 질환에서도 얼마든지 발생 가능합니다.]
‘그래, 게다가 저 환자의 영상 소견……. 범위가 작긴 한데…… 일단 ICV 쪽은 확실히 먹었어. 공장 쪽……. 거기 영상을 보고 싶은데.’
[스크롤을 굴려 보시죠. 마침 손을 뗐습니다.]
수혁은 입을 꾹 다문 채, 리웨이가 쥐고 있던 마우스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곤 아까 출혈을 보이고 있던 지점에서 멈췄다.
아무래도 공장은 막이 얇다 보니 아주 명확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억지로 맞춰 보면 ICV, 즉 Ileocecal valve 측의 병변과 비슷해 보였다.
같은 질환이 중간에 있는 다른 장기를 건너뛰고 침범했다는 얘기였다.
‘여기에 귀의 병변이라…….’
[음.]
아까보다는 뭔가 실마리가 잡히는 느낌이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눈앞이 뿌연 기분 또한 들었다.
이럴 땐 뭘 더 할 수 있을까.
수혁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