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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575화 (575/1,303)

575화 도련님이 천재야? (3)

눈을 감은 건 수혁이지만, 바루다도 당연히 생각에 잠겼다.

그 또한 모르겠는 건 마찬가지여서 그랬다.

하지만 뭔가 실마리가 보인다는 느낌은 있었다.

‘귀 병변 사진 좀 띄워 봐.’

[날짜 순서대로 열거합니다.]

해서 둘은 또다시 둘만의 진료에 빠져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조금 이상해 보이는 장면이었다.

물론 예전처럼 티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상한 데 보거나 하지는 않는단 얘기였다.

“음……?”

“갑자기 눈을 감으셨네?”

하지만 얘기를 하다가 말고 눈을 감는 거 자체가 이상한 일 아니던가.

리웨이나 이비인후과 과장 그리고 소화기내과 과장은 그런 수혁을 보면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눈을 뜨겠지 싶어서였다.

하지만 수혁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나선 것은 수혁의 비서로 생각되고 있던 닥터 양과 왕팡이었다.

“가끔 이러십니다.”

“이러다 현답을 내시지요.”

“믿…….”

“그거까지는 안 돼.”

“아, 네.”

둘은 나머지 셋의 궁금증을 해소해줌과 동시에 뭔가 알 수 없는 얘기로 끝을 맺었다.

믿 다음에 대체 무슨 말이 나오려 했을까?

리웨이는 그게 궁금했다.

아니, 수혁이 대체 왜 이러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우수한 의사라는 것도 알고 또 태화의 VIP라는 것도 알지만 실제 수혁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몰라서였다.

‘이게 처음 병원에 왔을 때 병변이구나.’

[네, 그렇습니다. 처음 병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병원에서 찍은 최초의 병변 사진은 이것이 맞습니다.]

‘확대해 볼래?’

[애초에 사진 해상도가 있어서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사이 수혁은 바루다와의 대화에 푹 빠져 있었다.

이런 말을 누군가 듣게 된다면 너무 슬퍼질 텐데, 수혁은 의학에 관해 대등한 지식 또는 더 우월한 지식을 갖춘 사람과 대화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즐거웠다.

원래 그러한 소인을 갖추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바루다와 살면서 개안해 버린 까닭이었다.

“약간 웃으시네.”

“기분 좋으신가…….”

그렇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도 지었다.

태화였다면 수혁이 이러는 게 거의 일상이라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거나, 또는 이현종, 조태진, 신현태, 안대훈 등이 자연스레 얼굴을 가려 주었을 텐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아직 수혁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새 신도를 자처하고 있는 양과 왕팡도 그랬다.

‘왔을 때는…… 궤양이었어.’

[네, 그렇습니다. 궤양 형태입니다.]

‘일반적인 외이도염하고는 너무 다르잖아?’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성 외이도염도 아닙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미소를 지은 채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확실히 방금 바루다가 말한 대로 일반적인 외이도염도 아닌 데다가, 악성 외이도염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뭘까?

‘이거 감염으로 보이냐?’

[발적도 있고, 농도 있습니다. 감염으로 보기에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근데 첫날 나간 컬쳐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어. 아니, 자라긴 자랐지.’

[표피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epidermidis)이 자랐습니다. 담당 의사는 오염균으로 판단하고 다시 컬쳐를 시행했습니다.]

‘너 저 정도 나이의 교수가 실수하는 거 봤어? 컬쳐 정도 수준에서.’

[아뇨.]

‘차팅에는 분명히 교수가 드레싱 하면서 ‘직접’ 컬쳐 했다고 되어 있어. 아주 자세히 써져 있지는 않은데……. 분명히 궤양에서 했겠지. 다른 곳은 할 만한 곳이 없잖아.’

[네.]

수혁이 봐도 귓구멍 내부에 자리한 궤양 크기는 작지 않았다.

바루다의 도움이 없다고 해도, 시야만 확보할 수 있다면 저기 손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물론 다른 데도 다 손을 대고 닿기야 하겠지만, 글쎄 이비인후과 과장에게 그게 어려울까?

[얘기를 듣고 보니 그렇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겠군요.]

‘응.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애초에 표피포도상구균이 거기에 그냥 있었을 수 있지.’

[흐음……. 의미 있는 병원균이 없었다라. 자가면역질환을 의심합니까?]

‘여기만 보고 그런 말을 한다면 미친놈이겠지. 하지만 CT를 생각해 봐. 아까 시행한 내시경도 그렇고.’

[CT와 내시경을 보면 오히려 결핵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럼 귀는 설명이 되지 않아. 이 병변은 어떻게든 전신 상태와 연관이 있었다고 봐야 해.’

[타당한 지적입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케이. 나 눈 떠? 슬슬 이상하게 생각할 시간인데.’

사실 이미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뒤로 빠져서 눈 감고 서 있는 인간이 어떻게 정상적으로 보이겠나.

하지만 수혁은 이미 정상인들의 삶과는 유리된 지 오래였기에 그러한 간단한 삶의 이치조차 깨닫지 못하게 된 지 오래였다.

[지금쯤이면 충분하겠죠.]

바루다야 애초에 인간이 아니었는 데다가, 사실 수혁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건 말건 어려운 환자만 볼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나 하고 판단했다.

왜냐면 인간들은 왜인지 몰라도 천재란 족속들은 괴이한 짓을 해도 이해심이 풍부해지기 때문이었다.

어떨 땐 괴이한 짓 자체가 해당 객체의 천재성을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기도 했다.

인공지능 바루다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현상이지 않나.

“어우. 어지러.”

하여간 수혁은 어색한 연기와 함께 눈을 떴다.

그래도 양과 왕팡은 꺄륵거렸다.

교주니까.

게다가 전에도 이러다가 답을 주시지 않았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좀 어떠세요?”

“어, 어지러워. 괜찮아. 나 원래 가끔 이래.”

“네, 저도 봤습니다!”

“아, 응. 그래.”

“그래서 어떤 것 같나요? 이 환자 뭘까요?”

수혁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양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실제로 좀 어지럽기도 했다.

왜냐면 바루다가 머리를 굴리고 있어서였다.

게다가 눈을 감았다 뜨기는 했으나, 실제로 지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지 않나.

시계를 들여다본 건 아니었으나 느낌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수혁이 뭐 바루다랑 하루 이틀 이랬던 것은 아니니까.

‘뭐래, 이 새끼가.’

[교주라고 부르는 사람 아닙니까? 당연히 믿음이 있겠죠.]

‘너는 머리 굴리는 와중에 끼어들지 말고.’

[대강 답이 나와서요.]

‘아, 그래? 그러고 보니……. 괜찮네. 어디, 뭐가 가능성이 있는지 열어 봐.’

[네.]

수혁도 장에 저런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염증성 질환이라면 벌써 몇 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일단 염증성 장 질환의 쌍두마차인 크론과 궤양성 대장염이 있었다.

그 외에 젊은 남자니 베체트도 있을 것이고.

사실 결핵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흔히 결핵이라고 하면 폐결핵만 떠올리지만, 실상은 모든 곳에 다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아주 고약한 놈이니까.

심지어 컬쳐로는 잘 안 자라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독한 놈인 주제에 성장은 느려서, 상재 균에도 밀리는 경우가 있어서였다.

[크론이 가장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근거는?’

[우선 소장에도 병변이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여기서 궤양성 대장염은 탈락이죠.]

‘하긴……. 게다가 이놈의 염증은 소장을 따라서 쭉 있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

[병변이 건너뛰어 있죠. 크론의 특징입니다. 베체트도 가능하지만…….]

‘베쳇이라기엔 목 안도 깨끗하고, 베쳇 피부 병변은 거의 없지.’

[네, 이런 식으로 나타나지도 않고요.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면…….]

‘크론의 피부 병변이 귀에만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는 한가? 게다가 이 환자 크론으로 진단된 적도 없다는 건……. 비교적 초기에 이렇게 되었다는 건데.’

[네, 저도 그것이 고민입니다.]

‘그럼 지금 할 건 하나네.’

수혁은 또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말은 곧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단 얘기였다.

당연히 수혁이 갑자기 눈을 뜨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하자, 다들 놀라서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뭐 하시는 분일까.’

리홍이의 명에 의해 수혁을 호위하고 있던 비서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대체 이 인간은 뭐 하는 사람인가 싶다고 해야 할까?

일단 남의 병원 와서 치료를 해 주겠다고 하는 것부터가 좀 이상한 일이었다.

근데 와서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를 반복하다가 이제는 말도 없이 갑자기 컴퓨터에 앉아?

“저기…….”

“쉿. 방해하지 마십쇼.”

“으음.”

궁금하기로 치면 이비인후과 과장이 제일 심하다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진짜 자기 환자를 보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것도 모르는 환자를.

이게 다른 과면 또 모르겠는데 이비인후과에서는 실로 드문 일이었다.

아무래도 내시경이다 뭐다 해서 다 보고 진단을 내리는 과 아닌가.

이비인후과에서 어려운 질환이라는 건 대개 치료가 어려운 것을 의미하지, 진단이 어려운 경우는 많이 없었다.

해서 나서려 했으나 양이 근엄한 얼굴로 막았다.

‘비서다 이거지.’

상대 신분을 어마어마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양이 실제로는 레지던트고 수혁도 일개 교수에 불과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면야 당연히 반응이 달랐겠지만.

리웨이가 의전 해 왔고, 또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인간이 말도 없이 뒤따르고 있는 것을 본 이상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이.”

“쉿.”

“후.”

사실 양도 평소라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또한 레지던트이지 않나.

아무리 자유로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레지던트라 해도 교수에게 ‘쉿’은 못했다.

‘교주님.…… 답을 주시는 거 맞죠?’

하지만 이 순간 수혁을 방해하게 둘 수는 없었다.

경험도 있거니와 안대훈에게 들은 것도 있지 않나.

경전이라고 불리는 케이스 자료를 보아하니, 수혁은 정말 신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수혁이 보이는 소위 이 이상한 행동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었다.

이제 곧 답이 나올 터였다.

아니, 나와야 했다.

그래야 감히 과장에게 무례를 떤 보람이 있을 테니.

“음, 이제 알겠다.”

바로 그때 수혁이 양의 기도에 응답하듯 몸을 일으켰다.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서였다.

당연히 그를 보고 있는 이들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보여 준 모습이라고는 이상한 행동뿐이었는데, 갑자기 알겠다고?

알긴 뭘 알아?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이상한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수혁은 높은 사람이니까.

덕분에 수혁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입을 열 수 있었다.

“이 환자는 크론이에요. 외이도염은…… 크론의 피부 병변이었고요. 2차 감염이 일어난 게 좀 심해져서 내이염으로까지 진행해 버린 거죠.”

“아……?”

“그게 무슨…….”

“크론이라고?”

수혁이야 바루다와 지금까지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해 왔지만 나머지는 그런 게 아니지 않나.

그렇다 보니 황당하기만 했다.

수혁도 초보자가 아니다 보니 이제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심지어 재미도 있었다.

‘잘난 척 좀 해 보실까?’

피도 안 섞인 이현종과 똑같은 면이 있어서였다.

“자, 지금부터 주목합니다. 제가 설명해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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