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77화 (577/1,303)

577화 학회 가자 (1)

마운트 엘리자베스 병원이 태화 의료원과의 업무 협약을 추진하고 마는 건 일단 리웨이 원장의 소관이었다.

다시 말하면 딱히 수혁은 별 상관할 일이 아니란 얘기였다.

되면 좋기야 하겠지만, 이번 출장의 목적은 그게 아니라 국립 병원과의 협약을 제대로 맺는 거 아닌가.

“오, 수혁이다!”

하지만 되면 좋기는 한 일이라 수혁은 일단 신현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통 국제 전화가 수신자 부담으로 걸려 오면 짜증부터 내거나 보이스피싱을 의심해야 했으나 상대가 수혁이다 보니 그저 들뜨기만 했다.

“이놈이 아빠한테는 전화 한 통 없더니…….”

옆에 있던 이현종은 심술이 났다.

“아, 왜 그래. 간만에 평일 골프 나와서.”

“골프랑 전화랑 무슨 상관인데.”

“상관은 없지.”

“놀리냐?”

“어, 놀려.”

“하.”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을 좀 더 심술 나게 만든 후 전화를 받았다.

“어, 수혁아. 삼촌이야.”

굳이 원장이 아니라 삼촌이라는 말을 해 대면서였다.

그 바람에 옆에 있던 김다현 태화 바이오 사장과 남지연 태화 생명 사장은 조금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신현태와 이현종이 평일 이 시간에 밖에 나올 수 있겠나.

원장이라고 해 봐야 경영자라기보다는 경영에 기웃거리는 의사 정도 되는 포지션이지 않나.

기본적으로 의사는 뭐가 되었건 환자를 봐야만 했다.

하지만 아주 윗사람들의 요청이 있으면 얘기가 달라졌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아주 윗사람들이었다.

“이수혁 교수 얘기하는 거지?”

“그럴걸요.”

“이거야말로 진정한 가족 같은 기업이네.”

“네,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조금 그렇네요.”

김다현과 남지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대화는 진행되었다.

“정말? 마운트 엘리자베스도 하고 싶어 한다고?”

“네, 아세요?”

“아니, 몰라.”

“아……. 목소리가 너무 밝아서 아는 병원인 줄 알았어요.”

“밝은 건 그냥 너한테 전화 와서 그런 거야.”

“아, 네.”

사실 싱가포르에 있는 수혁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원장씩이나 돼서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오늘 기록을 보면 지금쯤이면 김다현, 남지연과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옆에 있는 거 같아. 소리 들리지? 골프장이야.’

[그렇군요. 사장들이 뭐라고 생각할지…….]

‘조카 사랑하는 삼촌으로 생각해 주진 않겠지?’

[당연한 얘기입니다. 저들에게 신현태는 원장이니까요.]

물론 이러한 것을 내색하기는 좀 어려웠다.

뭐가 되었건 자기를 이뻐해 주는 사람 아닌가.

사실 알고 보면 고아 출신에 개뿔도 없는 인간인데 금수저인 신현태가 질투하는 대신 사랑해 주는 거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거기 원장님 가족분을 우연히 치료하게 되어서요.”

“그래? 좋은데? 마침 지금 사장님들하고 같이 있으니까, 얘기 바로 하지 뭐. 스피커로 돌린다?”

“네네.”

사장들이 있는 걸 자각하고 있는 데도 삼촌 운운했구나.

이현종은 옆에서 아빠는 여기 있는데 왜 전화를 그쪽에다 하냐고 툴툴댔고.

수혁은 과분한 사랑을 받는 상황에 관해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황당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하여간 곧 통화는 스피커 폰으로 돌려졌다.

“이수혁 부센터장님,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자연히 지금 저 자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김다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가족 같은 분위기가 X같이 느껴졌는지는 몰라도 수혁의 완전한 공식 직함을 불러 댔다.

“네, 김다현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해서 수혁도 장단을 맞춰 주었다.

여기서 누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싶기도 했는데, 그건 혼자만의 궁금증으로 남겨 두어야 하지 않겠나.

[교수 잘리면 미슐랭 스타 달린 음식점은 못 가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그럼 절대 안 됩니다.]

바루다의 의견도 같았다.

이유가 의료 목적 인공지능치고는 좀 이상하긴 했지만.

하여간 대화는 그렇게 진행되었다.

“마운트 엘리자베스면 저희 측에서 제안서 넣었던 병원 같은데.”

“맞습니다, 사장님.”

“거기를 그냥 그렇게 땄다고요?”

내용이 워낙에 좋은 내용이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단순히 좋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원래 병원에서 교수들은 그저 진료나 똑바로 하면 될 일이었다.

애초에 경영에 잘 참여시켜 주지도 않았다.

왜냐면 경영을 잘 하는 의사는 거의 없어서 그랬다.

기실 신현태도 직함이 원장이고 경영진이라 불릴 뿐, 사실상의 경영은 태화 생명이 내리는 지침대로 하지 않나.

원장의 가장 큰 역할이자 권한은 인사권이라 할 수 있었다.

근데 부센터장이라는 사람이 영업을, 그것도 해외 영업을 따 오다니.

“네,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사장님.”

“거참. 이거…….”

놀랠 노 자라 할 수 있었다.

이게 수혁이다 보니 더 그랬다.

‘교수로서의 롤도…… 차고 넘치게 잘해 주고 있잖아?’

이게 비단 경영진이 요구하는 롤만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잘해야 하는 진료, 그러니까 돈 버는 행위만 잘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거기에 더해 레지던트들 교육도 제일 잘하는 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교육 만족도 점수가 그렇게 높게 나올 수가 있겠는가?

물론 김다현의 정보력으로도 파악하지 못한 이상한 점조직 때문에 더 높게 나온 거긴 한데, 위에서 판단하기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도…… 연구로도 돈을 벌고 있지.’

심지어 논문은 또 얼마나 많이 내는가.

수혁에게 나가는 논문기금만 해도 연에 수천이 될 지경이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따로 계약을 해야겠는데요?”

“네? 계약이요? 아, 병원이요? 저는 그런 사항은 잘 몰라서요.”

“아니, 병원하고 계약이야 당연히 저희 측에서 알아서 할 일인데……. 교수님이 이번 일을 전적으로 하신 거지 않습니까?”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싱가포르 국립 병원과 연계를 하게 된 것 또한 수혁 덕이지 않나.

그때는 그냥 월급 주니까 이 정도는 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또 하나의 병원을 물어 왔는데 또 그렇게 넘어가는 건 상도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대기업 특유의 갑질 문화 대신 스타트업 느낌의 경영을 꿈꾸고 있는 김다현으로서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따로 상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해 주신 일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부족하겠지만 성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제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네, 연봉 100%면 될까요?”

“네? 너무 큰데?”

“아뇨, 교수 연봉……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병원 경영에서 의사 연봉이 제일 부담이 되는 지출인 것은 맞았다.

레지던트들이야 사원들 수준이지만, 일단 교수가 되고 나면 부장급 연봉을 받지 않나.

수혁만 해도 조교수라 연봉이 아직 1억이 안 돼야 하지만, 부센터장 보직 연봉이 더해져서 거의 1.3억은 받고 있었다.

‘그렇긴 한데…… 능력에 비하면 여전히 싸지.’

원장인 신현태가 2억이고, 이현종이 1.7억 정도지 않나.

이 정도도 대단한 연봉이기는 하지만 옆에 선 남지연에 비하면 푼돈이라 할 수 있었다.

이미 이사일 적부터 저들보다는 더 많이 받았고, 지금은 신현태의 두 배 정도 되니까.

“아무튼,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사실 출장이라고 해도……. 김승규 교수님과 저희 바이오, 생명 직원들이 실무를 맡는 거지, 교수님들은 반쯤 휴가라고 생각하라고 승인 내린 건데……. 너무 일만 하다 오시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아닙니다, 진료 보는 거 저는 워낙 좋아해서요.”

“그럼 다행이고요. 아무튼, 돌아오시면 식사하시죠. 어려우면 차라도 한잔하시고요.”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김다현의 생각과는 별개로 수혁은 대단히 신이 나 있었다.

연봉 100%를 이거 하나 했다고 보너스로 받아?

어차피 진료 보는 거 외에 취미 생활이라고 해 봐야 먹는 거밖에 더 있던가.

물론 요즘 미식가 이현종의 영향으로 인해 일 인분에 20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파인 다이닝의 맛을 알아 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거 자주 먹어 봐야 일 주에 한 번이고 보통은 한 달에 한 번이나 갈까 말까 한 것이 수혁이었다.

돈 쓸 데가 없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된 거 광둥식 코스 한 번 더 가죠. 이번에는 조태진한테 우리가 사는 걸로?]

‘그럴까? 평교수시라…… 부교수라고 해도 나보다 연봉도 적은데.’

[그런 말은 하지 말고요.]

‘당연히 안 하지, 내가 미쳤냐?’

[음.]

바루다는 수혁이 확실히 소셜 스킬이 좀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었기에 길게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렇게 바루다가 자기 숙주의 사회성을 염려하고 있을 때, 묵묵히 뒤를 따르고 있던 양과 왕팡 그리고 비서는 각각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니, 양과 왕팡은 거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대훈 선생님한테 연락드려야죠?’

‘어, 너 잘 찍었지?’

‘찍었죠. 다 찢는 거.’

‘좋아……. 아직도 믿음이 부족한 우리 애들한테도 좀 보여 주자고.’

‘크론이 외이도염으로 먼저 나타나는 케이스라니……. 이걸 대체 어떻게 하루 만에 진단하느냐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교주님이지.’

‘와, 진짜 미쳤다. 저 결정했어요.’

‘뭘?’

‘전문의 따고 펠로우……. 태화로 갑니다.’

‘아, 나도야. 내가 먼저 간다.’

가뜩이나 수혁에게 빠져 있던 몸들 아닌가.

눈앞에서 또 다른 이적을 체험했으니 더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괜히 의원님이 잘 챙기라고 한 건 아니구나.’

반면 비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니 수며들고 있었다.

평상시 수혁은 그렇게까지 똑똑해 보이는 건 아니어서 더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진단 전에 보여 준 모습은 좀 이상하기까지 했지 않나.

하나 그 이후에 진단 내릴 땐 그야말로 제갈량 그 자체였다.

갭에서 오는 매력은 어마어마했다.

‘대단해……. 사인이라도 받아 둘까.’

철저한 훈련을 받은 비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수혁한테 밥을 얻어먹게 된 평교수 조태진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골수까지 수혁에게 절여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빠져들게 되었다.

수혁은 그렇게 주변 모두를 수며들게 하다가 이내 호텔 방에 홀로 들어왔다.

‘으아……. 출장 일정은 이걸로 끝이지?’

출장 명목으로 왔던 태화 측 사람들은, 그러니까 교수에 직원들까지 포함한 모두는 오늘 비행기로 다 돌아간 마당이었다.

사실 수혁은 딱히 그들을 배웅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조태진과 김진실은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고 또 친한 사람들이기도 해서 방금 창이 공항에 다녀왔다.

[알면서 왜 묻습니까?]

‘확인하는 거잖아. 확인.’

[네, 맞습니다.]

‘내일은 학회 없고?’

[네, 일정상에는 떠 있지만……. 국제 학회이니만큼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시간이지 참석자들은 안 가 봐도 됩니다.]

‘완전 자유네?’

[네, 그렇습니다.]

‘와.’

[왜 그러시죠?]

‘나 해외에 혼자 있게 된 거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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