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80화 (580/1,303)

580화 패널 토의, 찢었다 (2)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이수혁.

이 이름을 다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겠지만 하나씩 들어 본 이는 꽤 있었다.

“교수야?”

“저렇게 어린데?”

“아, 나 들어 봤어. 이번에 국립 병원에서…….”

그래서 그런가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그리고 패널 중 하나인 마운트 엘리자베스 병원의 리 교수는 조금 얼었다.

‘아씨, 이 사람이 원장님이 말했던 그 천재 도련님이구나.’

원장만 말했어도 긴장했을 터였다.

리웨이 원장은 사실 사이즈가 싱가포르가 품을 만한 사이즈를 좀 넘어섰다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거기에 더해 원래 원장한테 반기를 들었던 이비인후과 과장에 소화기내과 후배 녀석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두둔을 하고 나서지 않았나.

‘이거 입 잘못 놀렸다가 완전히 털릴 각인데.’

얘기를 들어 보니 보통 천재가 아니었다.

그냥 병원에서 진단한 케이스만 해도 대단한데, 리웨이 원장이 정리해서 보여 준 케이스집을 보니까 이건 무슨 미친 수준이었다.

그중에는 하필 기회감염 케이스도 적잖이 있었다.

정말로 늦었으면 죽을 환자를 살릴 케이스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나눈 얘기가 같잖게 들렸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한심하게 들렸을 거란 얘기였다.

‘아, 근데 우리 좌장 형님…….’

마음 같아서 다들 닥치자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보니 일단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인 좌장이 눈이 돌아갔다.

전후 관계를 모르고 들으면 그럴 만도 하기는 했다.

어디 새파랗게 어린놈이 눈을 부릅뜨고 바락바락 대든단 말인가.

아무리 유교 종주국인 중국이 오히려 대한민국보다 유교 사상이 희미해진 지 오래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유유서라는 덕목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뭐 짚어? 짚어? 지팡이나 짚지!”

그렇다 보니 이제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하고 있었다.

‘와, 이거 저분 뒷배가 장난 아니던데. 이러다 병원 사라지는 거 아녀?’

배경에 대해 오해까지 하고 있던 리는 이제 얼굴을 슬며시 가렸다.

나는 이 발언과 관계없음을 필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까?

물론 수혁은 딱히 그런 발언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신체적인 문제가 중요한 인간이 아니지 않나.

게다가 지금은 의학 토론에 집중해 버린 마당이었다.

“네, 짚을게요.”

해서 수혁은 조금은 신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단…… 곰팡이가 가장 흔한 기회감염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뭐?”

“기회감염의 정의가 문제일 텐데……. 면역이 떨어진 환자에게 문제가 되는 감염이라고 한다면 결국, 일반적인 원내 감염이 가장 커다란 문제입니다. 실제로 통계를 내보면 그냥 흔한 균이 제일 흔하게 나올 겁니다. 그리고 그 흔한 균이 환자를 죽이고 있죠.”

“그.”

말이 이어질수록 수혁은 더 신이 난 얼굴이 되었고 좌장의 얼굴은 빨개져만 갔다.

“후욱후욱.”

동시에 숨도 거칠어졌다.

덕분에 아까 수혁에게 비닐 봉투 뒤집어씌워 주려고 했던 교수도 이제는 좌장을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뒤집어씌워 줬다간 내가 뒤지겠지.’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 좌장을 맡은 이의 얼굴은 정말이지 볼만했다.

듣고 있는 말도 문제가 있었지만 어째 아까보다 사람이 북적거려진 기분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뭐야, 뭐냐고.’

착각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그랬다.

<이수혁 교주님 시작하심.>

왕팡이 단체 라인방에 이 말을 남긴 까닭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체 이수혁이란 인간이 얼마나 똑똑하길래 나름 우리 중에서 제일 공부 잘해서 국립 병원 남은 녀석이 이러나 싶었던 레지던트들부터 우르르 몰려들었다.

심지어 이제는 학회 시작한 지 그래도 거의 30분은 지난 마당이다 보니 준비 위원이 아닌 이들도 다 와 있었다.

그중에는 국립 병원의 닥터 양을 필두로 한 신도들도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란이야.”

생각지도 않았던 곳이 핫 플레이스가 되자 학회 운영진이라 할 수 있는 학술 이사를 비롯한 각 임원진들도 몰렸다.

“이수혁? 아니, 저 양반…… 이현종 교수 아들 아냐?”

이쪽은 나름 이수혁에 대한 정보가 좀 있던 참이라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다.

그 말은 곧 조용하던, 그리고 학회장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방이라 한적까지 했던 패널 토의룸이 무슨 시장바닥처럼 되어 버렸단 얘기가 되었다.

“이, 이게.”

좌장은 이런 분위기를 예상치도 못했고 익숙지도 않았다.

학회장이란 대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이지 않나.

하지만 수혁은 이런 경우를 많이 목도한 바 있었다.

이현종 덕분이었다.

참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아버지라 할 수 있었다.

“흔한 균으로 인한 감염도 모니터링이 잘 안 됩니까?”

해서 수혁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좌장은 화가 나기도 했고 또 당황도 한 참이다 보니 어버버거리고만 있었다.

마운트 엘리자베스 리 교수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에 대답할 사람은 나머지 둘이었다.

그중 용감히 나선 이는 창이 병원의 장이었다.

“모니터링 시스템이 나와 있기는 하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면역이 떨어진 환자들에게서의 경과는 많이 다릅니다. 예측이 어렵다는 거죠.”

“정확히 어떻게 다릅니까?”

“이, 일단 빠르고……. 또 발열 등의 증상이 없을 수도 있고요.”

“알고 계시네요. 근데 왜 모니터링이 안 됩니까?”

“아니…… 그.”

별로 소용은 없었다.

애초에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기회감염에 대한 모든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송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해당 지식을 알고 있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애초에 면역이 떨어지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의사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렇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습니다. 인력이 달리니까요.”

이번에 나선 것은 리틀 페이지의 왕이었다.

예상했던 답이기도 하고 기대했던 답이었다.

수혁은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인력이 달리죠. 하지만 지금은 21세기입니다. 보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와 있지 않나요? 가령 모니터링 기기라든지 하는 것들요.”

“한계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까부터 계속 이상적인 말씀만 하시는데……. 태화 의료원이라고 하셨죠? 그곳은 대체 어떻게 하고 있길래 이럽니까?”

“저희는 거들다라는 프로그램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엔 패혈증으로 진행하는지 여부만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면역 결핍 환자들의 빠른 진행에도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데이터가 쌓였습니다.”

“거들다……?”

“네. 그것만으로 일반적인 원내 감염이나 지역 감염 균주에 대한 대응은 가능합니다.”

“어…….”

“기회가 되면 데이터를 보여 드리도록 하죠. 제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입니다. 답문으로 드리죠. 답이 되었을까요?”

“아니, 그.”

해 달라는 답은 들은 셈이었다.

제대로 된 답은 아니었지만, 수혁이 의도적으로 두 번째 질문을 빨리 던지기도 했거니와 학회장 분위기가 묘하게 달구어져 있어서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흔하지 않은 균주에 의한 감염에 대한 질문입니다. 말씀들을 들어 보니……. 곰팡이 감염이 주를 이룬다고 했죠? 어떤 곰팡이인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들을 수 있을까요?”

“아스페질루스하고 캔디다 그리고…….”

“뮤코마이코시스겠죠?”

“네, 맞습니다.”

“캔디다는 주로 구강에서 발생하니 모니터링이 어렵다는 건 핑계처럼 들립니다만, 제 말이 틀릴까요?”

우리가 흔히 아구창이라고 불렀던 병이 바로 ‘캔디다’라는 곰팡이 감염증이었다.

입안이 하얀 곰팡이로 뒤덮이게 되는데 특징은 어마어마한 통증이었다.

당연히 의식이 있는 환자는 아주 적극적으로 증상을 호소하기 마련이었다.

이것도 모르겠다고 하면 그건 게으른 것이라고 단정 지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터였다.

“그…… 그래요. 캔디다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는 비강 내에서 자랍니다. 구강 내에서 관찰이 될 때는 이미 때가 늦었죠.’

“맞는 말씀입니다. 근데…… 우리가 비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그럼 어떻게 들여다본단 말입니까?”

“내시경으로 보면 되죠?”

“내시경을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뭐 내시경으로 수술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만 보겠다는 거 아닙니까? 실제로 혈액암 환자에게 발열이 있을 때 원칙이 뭡니까. 발열 포커스를 보는 것이죠? 그중 호발 하는 포인트가 어디죠?”

“부비동…….”

왕은 부비동이라고 말하면서 아차 싶었다.

사실 코안에 곰팡이가 자라는지 아닌지 정도는 내시경 사진만 보면 내과건 뭐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기는 해서였다.

“저희 암 병동에서는 휴대용 내시경을 비치해 두고 있습니다. 이비인후과는 아무래도 수술 과다 보니 우리가 협진을 요청했을 때 즉각적인 대응이 안 될 때가 많아 때를 놓칠 때가 많거든요. 교육은 전체 전공의 및 스태프를 대상으로 이비인후과 비과 교수님 주관하에 30분간 이루어졌고, 이후 진균성 부비동염 조기 진단율이 4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 다른 질환하고 감별은…….”

“일단 보고 노티를 하게 되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이비인후과에서도 당연히 신경을 쓰게 되지 않겠습니까? 감별까지 굳이 우리가 해낼 필요는 없죠. 그런 수련을 받지 않았는데요.”

“아……”

“그래서 제가 제의 드립니다. 거들다의 도입은 돈이 좀 들 수 있는 일인 데다가 시스템 도입이라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내시경…… 이거 굳이 독일제 비싼 것도 필요 없습니다. 중국산 쓰기면 됩니다. 몇만 원에 담당하고 있는 환자를 살릴 수 있어요.”

“음.”

이제 좌장도 왕도 장도 말이 없어졌다.

일찌감치 참전을 포기하고 뒤로 빠져 있던 리만이 안도의 한숨을 쉴 뿐이었다.

속으로는 거들다인지 나발인지에 대해서 리웨이랑 얘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였다.

‘아무리 봐도 태화랑 뭔가 해 보려는 거 같은데……. 도입하자는 말을 하면 딜이 될 수도 있지.’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는 말인데 그와는 별개로 학회장 뒤편은 거의 무슨 축제판 같았다.

특히 왕팡과 양이 그랬다.

“거봐, 미쳤지?”

“와……. 진짜 왜 저런 생각을 못 했지?”

“내일 강의 있으시다고.”

“어허, 줄 서서 들어.”

원래 레지던트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의사들이니만큼 열정이 더 강하지 않나.

지금 수혁이 한 말들은 무슨 대단한 천재여야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그저 성의 있는 의사가 할 수 있는 말들이어서 더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음, 그럼……. 다른 강의는 뭐가 있나.”

소란스러워진 가운데, 정작 소란을 일으킨 주인공인 수혁은 평온한 얼굴로 학회장을 빠져나와 팸플릿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음에 어떤 강의장으로 갈까 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는데 방금 한 짓이 있다 보니 다들 수혁이 어디로 갈지를 궁금해했다.

‘나 발표할 곳에는 오지 마라…….’

일부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얼굴엔 여전히 미소를 띤 채였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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