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88화 (588/1,303)

588화 귀국하자마자 (4)

“머리숱……?”

“저 새끼 끌어내.”

수혁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고, 이현종은 화를 냈다.

자식이 자기 머리숱 없다고 그런 말을 해?

환자를 대상으로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이현종은 자신이 워낙에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어 어지간한 장난은 넘어가 주는 편이었다.

그래도 때와 장소를 나름대로 구분하는 편이라 믿는 사람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금기로 여기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환자에 대한 희화화였다.

절대 없을 거 같은 일이지만 의외로 심심치 않게 있는 일이었다.

“아니, 아니, 저 진지합니다.”

“어허 이놈이. 장난에 진지해?”

“아뇨, 정말이에요. 진짜 좀 적다니까요?”

“으음?”

해서 이제 진짜 화를 낼까 말까 하는데 의도한 것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안대훈의 머리에서 반사된 빛이 이현종의 눈을 가렸다.

이현종 나이쯤 되면 주변에 머리 없는 사람이 아주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안대훈처럼 광내고 다니는 사람은 없어서였다.

잠시 당황하고 있으려니 안대훈이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아이 이제 겨우 12살입니다. 태생적으로 머리숱이 적은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거랑은 좀 다릅니다.”

“네,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모를 거 같아요?”

간신히 정신을 차린 후 되묻자 다시금 아찔한 질문이 돌아왔다.

‘그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건 반칙 아니냐?’

안대훈은 옆머리까지 싹 밀고 있는 데다가, 머리는 광을 내고 있었고, 화가 날 듯 말 듯 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이현종이 아득히 윗사람이라고 해도 안대훈이 머리 얘기할 때는 끼어들면 안 될 거 같았다.

[확실히 전문가겠죠.]

‘응, 나는 이쪽으로는 영…….’

[들어 봄 직합니다. 증상에 만약 탈모가 추가되면…….]

‘확 좁혀질 수 있어.’

바루다나 수혁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확실히 아까 환자를 볼 때 머리카락을 볼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하지 않았나.

숱이라니.

환자를 검진할 때 머리부터 봐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거기서 머리숱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수혁은 머리숱 걱정이 아예 없는 사람이다 보니 미처 이쪽으로는 잼병이어서 그랬다.

숙주가 그러니 딸려 사는 입장인 바루다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를 리가 없겠죠?”

“어…… 어.”

“그럼 잘 들어 보세요.”

“어, 그래. 안 선생.”

회의실 분위기는 급반전되었다.

방금 전까지는 두 천재의 대화를 숨 막히는 심정으로 듣고만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삼파전이었다.

‘역시 주교…….’

‘역시 형님.’

‘그래, 이거지.’

누구 하나 토를 달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안대훈은 수혁교 내 배분을 보나, 실력으로 보나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방금 안대훈이 꺼낸 머리숱 문제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망치로 머리통을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저 나잇대 어린이한테 탈모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원형 탈모…… 즉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응, 그래.”

“이는 남성형 탈모랑은 완전히 다른 형태인 데다가 나이로도 감별이 됩니다. 근데 저 아이는 그것도 아니에요. 그냥 머리가 전반적으로 없어요.”

“타고난…… 타고난 숱 문제는 아닐까?”

“아뇨. 그렇다면 옆 머리도 적어야 합니다.”

“아.”

망치로 계속 두들겨 맞는 거 같았다.

이현종은 물론이거니와 수혁도 그랬다.

대체 언제 이 둘이 탈모에 대해 이만큼 숙려해 본 적이 있었겠나.

오늘 비로소 새롭게 눈을 뜨는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는 옆머리와 뒷머리는 어느 정도 남아 있어요. 근데 나머지 부위는 전반적으로 적어져 있어요. 가늘어져 있기도 하고, 약간 곱슬입니다. 근데 또 옆머리는 직모예요. 변해 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허……. 그럼?”

“자가면역성 질환에 의한 탈모인 경우 이런 형태를 띨 수 있어요.”

“환자 다시 한번 봐야겠는데?”

“네, 가서…… 보면서 설명드리진 않을 겁니다. 이유는 아시겠죠.”

안대훈은 마지막 말을 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모르겠다고 할 수도 없을 거 같았다.

고개를 슬쩍 돌려 보니 이현종도 어쩐지 숙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해서 셋은 조용히 환자를 보고 돌아왔다.

그리곤 부자가 함께 안대훈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맞네.”

“네 말이 맞더라. 저건 탈모 같아.”

“그러니까……. 아유, 내 눈깔이 개눈깔이네. 탈모를 왜 몰랐지?”

“누워 있어서 그렇다는 핑계도 핑계일 뿐이죠. 와, 오늘 내가 진짜 대훈이한테 배웠다.”

안대훈을 추켜세워 주면서였다.

평소의 안대훈이었다면 아마 천상에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야 정상일 터였다.

교주 이수혁이 어깨를 두드리면서 귓가에 칭찬을 해 대고 있지 않나.

아마 사탄의 말을 한다고 해도 연신 웃음이 나왔을 텐데.

오늘은 그냥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제가 탈모는 전문입니다.”

이를 꽉 깨문 채 이 말을 하면서였다.

“그래, 그래. 네가 전문이다!”

“탈모 전문가 안대훈!”

“야, 니들 뭐 해. 안 선생 헹가래 한번 해!”

“안대훈 탈! 모!”

“으랏차!”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환자 문제 목록에 탈모가 추가된 덕이었다.

애걔, 겨우 탈모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어마어마한 진일보였다.

괴질에 있어 증상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가.

“탈모…….”

“오히려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해졌을까?”

“그럼 보통 살이 찌지. 하지만…….”

“성장기라는 걸 감안하면, 갑상선 호르몬의 부족이 성장 호르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안 그래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호르몬 균형이 깨졌다고 하면…….”

“극히 드물지만, 탈모가 일어날 수 있지.”

아까 다 끝난 줄 알았던 토론의 불씨가 다시금 살아났을 지경이었다.

아니, 아까보다도 훨씬 열기가 뜨거웠다.

기껏해야 흡수장애를 동반한 만성 설사 하나만 알고 있을 때랑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영양부족에 의한 탈모일 수도 있어요. 특히 성장기에는 워낙 에너지를 많이 쓰는 때라…….”

“그렇긴 하지. 하지만 아까 보니까 숱이 보통 적은 게 아니던데……. 어때, 안 선생. 많이 빠진 거 같나?”

“네? 아, 네. 원래는 그렇게까지 적었을 거 같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 음……. 영양부족이라고 하기엔 심하다 이거지.”

진도가 쭉쭉 나갔다.

정리하면 이랬다.

호르몬 이상일 수 있지만, 극히 드물다.

영양부족보다는 역시 자가면역 질환 쪽 같다.

“자가면역이라면…… 궤양성 대장염은 가능성이 없겠네요.”

“크론은 가능하지?”

“네. 문헌상 보고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드물지. 크론으로 머리가 빠지는 건.”

“네.”

“베체트는?”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크론하고 비슷한 확률이에요. 게다가 피부 병변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하.”

이현종은 수혁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은 했다.

하지만 크론이나 베체트병의 피부 병변은 꽤 특징적이었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듯 봤다면 또 모를까, 안대훈을 따라 머리를 면밀하게 살핀 게 지금 아닌가.

둘 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우선은…… 검사를 진행하도록 하죠. 결과 보다 보면 또 달라질 겁니다.”

“음, 그래. 그게 좋겠다.”

아쉽게도 지금부터는 더 얘기를 한다 해도 뭐가 나올 거 같지 않았다.

괜찮았다.

환자의 바이털이 괜찮다면 시간은 이쪽 편이었으니.

벌써 질환이 진행된 지 6개월이나 지나지 않았나.

설마하니 당장 뭐가 어떻게 되진 않을 터였다.

‘뭐……. 아빠가 있으니…….’

‘뭐……. 수혁이도 왔으니…….’

동시에 서로를 믿기도 했다.

하여간 지금껏 보아 온 그 어떤 의사보다 천재지 않나.

게다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믿음직스러운 안대훈도 있었다.

머리숱이라는 결정적인 힌트를 준 게 마지막 활약일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장강명 교수님 오늘 검진 일찍 끝나셨다고…… 지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관장이 되어 있어?”

“아까 교수님이 전원 오기 전에 여기서 대장 내시경 할 테니 금식 및 관장 요청하셨습니다. 기록 보니까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아, 그래? 내가 그랬어? 하긴 내가 환자 꼼꼼히 보기는 해?”

둘이 안대훈을 신뢰 반 미심쩍음 반을 섞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이, 원래 통합진료센터를 도는 레지던트가 전화를 받았다.

구두로 싹 처방이 나가지 않았나.

그걸 확인해서 내는 것이 레지던트의 일이었고, 또 최대한 빨리 시행할 수 있도록 푸시 하는 것도 레지던트의 일이었다.

원래 같으면 되게 짜증 나는 일이겠지만 통합진료센터는 현시점 말이 안 될 정도의 권력을 지닌 기관이었다.

이쪽 이름을 대고 전화를 걸면 그 상대가 누구건 간에 최대한 협조적으로 나왔다.

이현종은 수혁에게 나 잘했지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턱짓을 했다.

“그럼 가자고.”

“직접 가서 보신다고 전할까요?”

“응? 그냥 가면 되지. 뭘 그런 걸 전해. 의전 하는 곳이냐, 우리 병원이?”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환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송…….”

“아니, 그냥 우리가 끌어. 사람이 몇인데. 게다가 애 어리잖아.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침 우리도 다 소견 궁금하니까, 가자고.”

“네, 교수님.”

이현종은 사실 외부 병원이 하는 일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다.

큰 병원 사람 특유의 비뚤어진 자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현종은 태화 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교수들이 있을 지경이니까.

워낙 천재로 살아와서 그런데, 심지어 최근 수혁과 더불어 통합진료센터를 운영하면서부터는 더 심해지고만 있었다.

생각보다 수혁이나 자신과 다른 이들의 차이가 심하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장강명이면…… 설령 좀 준비가 미흡했더라도 잘 보겠지.’

그런 이현종이 인정하는 이 중 하나가 장강명이었다.

머리까지는 아니었는데, 술기는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거 하나로 센터장까지 하게 된 양반 아닌가.

무엇보다 얼마 전에 직접 몸뚱이를 맡겼던 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센터장님.”

“너무 깍듯하게 그러지 마. 너도 센터장이야.”

“에유……. 그래도 저랑 10년 차이 나시는데요.”

“네가 자꾸 그러니까 다른 애들도 나 너무 어려워하잖아.”

“그거 좋아하시지 않아요?”

“미리 어려워하는 것보다는 내가 어려워하게 만드는 게 좋아. 재밌어.”

“아.”

이현종은 장강명을 보자마자 또 한 번 감탄하게 만든 후, 옆에 조용히 섰다.

그사이 장강명은 베테랑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이의 자세를 잡았다.

이런 경험이 꽤 많은지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연신 말을 걸었다.

“그냥…… 카메라로 안에 어떻게 생겼나 보는 거야. 잘 거라, 하나도 안 아파. 그러니까 울지 않아도 돼.”

“네…….”

소용이 있기는 했지만, 아예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면 내시경이라는 점이었다.

이미 라인도 잡은 상태였기에 약이 들어가자 아이는 곧 잠에 빠졌다.

장강명은 자기 아이보다 어린 애라 그런지 딱하단 얼굴로 아이의 이마를 짚고는 곧장 내시경을 시행했다.

우선 대장부터였다.

“음.”

“음.”

“음.”

장강명처럼 수혁과 이현종도 허탈한 소리를 내었다.

내시경을 할 줄 모르는 거지, 볼 줄도 모르는 건 아니어서였다.

“일단 지금까지는 거의 정상…… 이네요.”

“더, 더 들어가 봐.”

“네.”

히스토리상 뭔가 이상하겠다 하고 들어갔는데 그렇게 이상하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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