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89화 (589/1,303)

589화 이거……? (1)

“이상하네……. 염증이 그렇게까지 막 두드러지지 않아.”

장강명은 그 어렵다는 S상 결장 통과를 숨 쉬듯 하면서 중얼거렸다.

워낙 속도가 빨랐으나, 이현종, 이수혁도 술기 자체가 아니라 판독하는 건 장강명 못지않게 잘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실시간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그러네. 음……. 이상하네.”

“정말요. 염증은…… 아, 저기.”

“저기? 아……. 흐음……. 점액 주름이 확실히 평탄화되어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평행 결장으로 진입하자 비로소 이상 소견이 보였다.

주름들이 평평해져 있었다.

이게 뭔 문제인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장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간단했다.

장은 소화기관으로써 밖에서 들어온 영양분을 최대한 흡수하는 역할을 하지 않나.

그러자면 당연히 닿는 부위가 많아야 유리했다.

그래서 애초에 장이 워낙에 길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론 모자라다 여겼는지 주름도 엄청 많았다.

그래야 흡수가 쭉쭉 될 테니까.

“이러면 흡수 장애가 일어날 만도 하지.”

“네. 구간이 꽤 긴데요?”

“근데…… 이건 과한 설사가 있으면 그것으로도 유발될 수 있는 소견이기는 해.”

“점막 탈락 때문에요?”

“응. 염증 반응이 있거나 하면…… 흉터가 생기는데 흉터는 반흔으로 남게 되니까.”

처음 이 구간을 봤을 때 수혁은 무조건 원인이 이거겠구나 싶었더랬다.

하지만 장강명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결과로도 나타날 수 있는 소견인지라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런 제기랄……. 되게 비특이적인데?’

[그러게요. 군데군데 염증 반응을 보이는 곳도 있고……. 궤양이 있는 곳도 있지만, 그것도 다 설사의 결과로도 생길 수 있는 정도의 병변입니다. 염증성 장 질환하고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요.]

‘응 그렇지. 사실…… 염증성 장 질환으로 이만큼 흡수 장애가 일어났으면 모르기도 어려워. 혈변이나 통증이 반드시 동반되었을 테니까.’

[동의합니다. 흠…….]

‘머리숱…… 이게 결정적인 단서일까?’

[모르겠습니다. 저것도 흡수 장애가 있다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소견이라서요. 다만 안대훈의 말에 따르면 자가 면역 질환으로 인한 탈모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랬지. 문헌을 뒤져보니까 틀린 말도 아니었어.’

[네. 탈모의 권위자였습니다.]

아무리 봐도 대장 내시경은 비특이적인 소견이었다.

심지어 그 후로 이어진 위내시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막 위축 정도만이 확인되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단서이기는 했다.

위아래가 다 이렇게 되는 건 꽤 드문 소견이었으니까.

게다가 환자는 중년이 아닌 소아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아이였다.

“위산 분비도 어느 정도 떨어졌을 거 같네요. 이러니까 소화가 안 되지.”

장강명은 위 점막 위축을 면밀히 살피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질환명은 없지만 하여간 소견이 일반적이지는 않아서였다.

전반적으로 다 망가져 있을 줄이야?

그러면서도 염증성 장 질환하고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보니 혼란스러웠다.

“근데 이거…… 대체 뭐지?”

“모르겠어. 일단 위, 대장 내시경 소견……. 정리해서 의견 남겨 줘.”

“네, 교수님. 근데 아우, 지금 말씀드린 거 외에 뭐가 더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하여간 남겨 줘. 이게 또 다른 소견이랑 같이 보면 뭐가 떠오를지 모르니까.”

“네, 교수님. 살펴 가십쇼.”

“내시경 설명은 내가 해? 아니면 네가 해?”

“제가 해야죠. 그래도 제가 했는데.”

“그래, 부탁할게. 보호자 분이 좀 많이 언스테이블 하거든? 당연한 일이야. 애가 이렇게 됐으니……. 잘 좀 설명드려.”

“네.”

장강명은 이현종과 수혁의 뒷모습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어째 수혁에게도 머리를 숙인 느낌이 들어 좀 그렇긴 했지만, 장강명은 됨됨이와는 별개로 원래 강자에게 잘하는 사람이지 않나.

오히려 그룹 전체로 보면 수혁이 더 실세란 생각이 들자 다시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보호자 분, 밖에 계신가?”

“네.”

“그래……. 아이, 회복실로 보내고. 애니까 잘 봐줘.”

“네, 센터장님.”

해서 장강명은 센터장까지 해 먹는 교수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아, 교수님.”

여느 아이 보호자처럼 아이 엄마는 장강명이 대기실로 나오자마자 조르르 달려왔다.

수술이 아니라 사실 내시경을 받은 것뿐임에도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동네 병원 있다가 여기 온 것도 아니고, 지역 거점 병원에 있다가 거기서 원인을 몰라서 올라온 마당 아닌가.

“네, 어머님. 장강명입니다. 우선 검사는 잘 끝났습니다.”

큰 병원에 있다 보면 이런 경우를 숨 쉬는 보기 마련이었다.

장강명은 일부러 일단 안심부터 시켰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네네. 검사 결과는…… 제가 좀 더 봐야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일단 아이 위나 대장 모두에서 음식물을 잘 흡수하지 못하는 소견을 보여요.”

“네?”

“우리가 흔히 저렇게 심한 만성 설사에서는 염증성 장 질환을 걱정하는데…… 그건 아닙니다만 어떤 원인에서인지 몰라도 먹는 걸 잘 흡수하지 못하고 있어요. 혹시 몰라서 해당 병변에서 조직검사도 조심스럽게 했으니 일단은 기다려 봐야 합니다.”

“아……. 조직검사…….”

“암 같은 걸 의심하는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어찌 되었건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 오셨고, 그중에서도 최고의 팀이 주치의를 맡은 상황이니까 믿고 기다려 주세요.”

“네네. 감사합니다.”

장강명은 보호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다시 안으로 돌아왔다.

이현종, 이수혁 콤비라면 정말로 대한민국 최고라는 평이 과하지 않다 생각하면서였다.

“아, 수혁아 너 밥은 먹었어?”

“네? 아뇨. 기내식 먹은 게 다예요.”

“그래? 그럼 그 대머리…….”

“안 선생이요?”

“어, 탈모 권위자. 걔도 불러서 뭐 시켜 먹을래? 아닌가? 집에 가서 쉴래?”

“아뇨, 아뇨. 어차피 저 이거 궁금해서 지금 이 상태로는 잠도 안 와요.”

“그래, 그럼 후루룩 먹을 수 있는 거. 막국수나 시켜 먹을까.”

“좋죠.”

최고의 콤비는 그 길로 센터에 돌아가 막국수를 시키고 있었다.

다른 레지던트들을 딱히 남아 봐야 할 일도 없을 테니 죄 집으로 돌려보낸 후였다.

당직의 몇이 남기는 했는데, 걔들까지 굳이 부르진 않았다.

이현종은 부르는 게 좋은가 했으나 상대적으로 레지던트였던 시절이 가까운 수혁이 말렸다.

“아빠, 애들은 파인 다이닝급 가는 거 아니면 우리랑 먹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가? 왜? 막국수도 맛있는데.”

“교수랑 먹는 게 뭐 좋아요. 그냥 병원 밥 우물거리고 말지.”

“그런가. 나는 인기 많은데?”

“아니, 아닙니다. 아니에요.”

“알았어. 알았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으면 이현종도 고집을 부렸을 터였다.

원래도 이상했는데 이기자랑 사귀면서부터는 이상한 자기애까지 생겨서였다.

하지만 수혁에 대한 애정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사람이기도 해서 안대훈만 불렀다.

이현종은 지금 막 회의실에 들어온 안대훈을,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안대훈의 머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야, 앉아 봐. 아까 내가 내시경 검사 하는 거 찍은 영상이거든? 일단 이거 봐 봐.”

“아, 네. 근데 제가 이걸…….”

“어, 너 아까 홈런 쳤잖아. 이것도 봐 봐.”

“네네. 감사합니다.”

안대훈은 사실 지금 통합진료센터 파트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냥 잡혀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건데, 일반적인 레지던트가 아니라 주교다 보니 그저 신이 난 얼굴이었다.

수혁과 어떤 핑계가 되었건 간에 같이 시간을 보내면 좋은데 심지어 약간 의지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

이만한 영광을 주신 것에 대해 나는 대체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해서 최대한 집중해서 영상을 보았다.

‘음.’

이게 만화였다면 이만한 근성이 무언가 결실을 보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냉혹한 법이었다.

기껏해야 대훈의 머리통을 식은땀으로 더욱 반짝이게 했을 뿐, 그 이상의 성과는 없었다.

“흡수 장애가 있어 보이는데……. 그 외에 질환명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래? 너도 그렇군. 그래도 너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

물론 그것만으로도 이현종에게는 꽤 인상적이었다.

수혁 이후로는 마음에 차는 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훅 치고 들어오는 놈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안대훈은 수혁의 심복이지 않나.

신현태에게 듣자니 수혁 관련한 동호회 회장이라고도 했고.

‘마음에 들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이 또 열렸다.

이제 더 올 사람이 없는데 그랬다.

신현태와 조태진이었다.

“우리 것도 시켰어요.”

뭔가 이상한 말을 하면서였다.

“뭔 소리야. 뭘 시켜.”

“막국수 먹는 거 아냐?”

“아니, 그걸 어떻게 알어?”

“막국수 집 사장님이 나랑 인친이거든. 혹시 이 센터에서 음식 시키면 나한테도 알려 달라고 했지.”

“민간인 사찰하냐? 원장이?”

“아니, 뭐 왔는데 나도 밥 같이 먹어야지.”

신현태는 뻔뻔하게 웃으면서 들어오더니, 뭔가 생각난 듯한 얼굴로 문가를 가리켰다.

“아, 오다 보니까 환자 보호자 온 모양이던데?”

“보호자? 당연히 있지, 인마.”

“처음 오는 보호자 같던데. 앞에서 지금 스테이션 간호사 엄청 당황했어.”

“왜?”

“일본어를 하고 있더라고.”

“일본어……?”

그런 보호자도 없을뿐더러 그럴 만한 환자도 없지 않았나.

이현종과 수혁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잘못 온 사람이라면 내보내야 하기에 그랬다.

한 가지 난감한 점이 있다면 둘 다 일본어는 그닥이라는 점이었다.

“제가 잘 합니다.”

그때 안대훈이 결연한 얼굴로 일어섰다.

증거랍시고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면서였다.

화면엔 눈이 얼굴 반만 한 캐릭터들이 동동 떠 있었다.

“뭐야, 이게.”

“저 이거 자막 없이 봅니다.”

“오.”

이현종은 그렇다면 믿을 수 있겠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대훈을 앞세워 병동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스미마셍, 조또마떼 구다사이.”

병동 간호사는 통역팀을 불렀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그야말로 쩔쩔매고 있었다.

일본인 남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그러니까 여기 환자. 아빠.”

그러던 차에 네이티브가 끼어든 셈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대훈이라고 합니다.”

“아!”

그러자 일본인 남성을 마침내 살았다는 얼굴로 대훈을 바라보았다.

비로소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생각에 말문이 터졌는지 엄청 말이 빨랐다.

과연 이것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대훈은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아……. 오늘 입원하신 분 아버지래요. 그 아이.”

“아.”

“부산이랑 일본 왔다 갔다 하면서 중개 무역하신대요. 일이 바빠서 일본에 있다가 오늘 부랴부랴 왔다고……. 병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어, 그래. 그래라. 수혁아. 우리는…… 수혁아?”

덕분에 환자 아버지라는 걸 확인한 이현종은 마침 도착한 막국수를 보고는 수혁의 어깨를 쳤다.

하지만 수혁은 반응하지 않았다.

[단서가 하나 더 추가됐습니다.]

‘일본인…….’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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