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90화 (590/1,303)

590화 이거……? (2)

인종은 생각보다 의학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인자였다.

또 같은 동양인이라고 해도 대한민국이나 일본같이 다른 민족과 잘 뒤섞이지 않은 경우는 그 특성이 꽤 뚜렷한 편이었다.

특히 일본은 섬나라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일본에서만 호발 하는 몇몇 질환들이 있을 지경이었다.

‘일본 이름으로 된 병들이 꽤 있지?’

[네, 그렇습니다. 흐음…….]

일본뇌염부터 떠올릴 텐데, 사실 이건 별로 일본하고는 상관없는 질환이었다.

그냥 미운 나라 이름 붙여서 부르는 병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그중에서 설사를 넣어서 분석하면?’

[두드러지는 질환은 없습니다.]

‘그럼…….’

수혁은 안대훈 측을 돌아보았다.

안대훈은 일본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환자를 병실 쪽으로 안내해 가고 있었다.

‘탈모를 더해 봐.’

[음. 뜹니다.]

안대훈이 아까 언급했던 머리숱 문제, 즉 탈모를 더하자 병명 하나가 떴다.

‘사토요시 증후군…….’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이 질환에서 주된 증상 중 설사가 있는 것은 맞지만, 더 중요한 증상이 있습니다.]

‘경련이나 근육통이지?’

[네.]

‘음.’

이 질환명을 생각지 못했던 것 중 한 가지 요인이 가족 구성원이었던 것은 맞았다.

일본에서도 드물긴 하지만, 즉 희귀 질환이기는 하지만 주요 감별 질환으로 뽑혀 있는 것에 반해 대한민국에서는 극도로 희귀한 질환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증상이었다.

환자는 단 한 번도 경련이나 근육통을 보고 하지 않았다.

“수혁아 면 부는데.”

“에헤이. 교수님. 오셨잖아요.”

“넌 새꺄, 그 소리 하지 말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싱가포르에서도 그랬다고. 장난 아니었다니까요.”

“아냐, 아니라고.”

“하여간 건들지 마세요. 천천히…… 안으로만 끌어다 놔요. 제가 할게요. 기운도 없는 양반이 무슨.”

“에이.”

최근 들어 수혁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극히 드문 일이 되어 있었다.

이제 수혁도 바루다도 꽤 토의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이럴 때마다 자꾸 이상한 소문이 양산될 만큼이나 이상한 모습을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 케이스는 좀 달랐다.

아예 모르겠지 않나.

게다가 싱가포르에서 방금 돌아온 마당이라 힘들기도 했다.

진짜 수혁쯤 되는 미친 사람이니까 이 시간까지 병원에 있는 거지, 일반인이었으면 벌써 집에 가서 발 닦고 자고 있을 터였다.

질질.

하여간 수혁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다른 이에게까지 들키기는 싫은 이현종, 신현태와 그저 그분이 오셨다고 믿는 조태진이 수혁을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다 회의실 안으로 옮겼다.

그사이에도 수혁은 일단 고민을 거듭했다.

‘내가 볼 때는…… 그 당시에는 적어도 경련은 없었어.’

[네, 그리고 경련은 꽤 특이적인 증상입니다. 그게 있었다고 하면 환자나 보호자가 진술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무척 적습니다.]

‘그렇지. 사실.’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래야지. 다른 질환 가능성이 없잖아, 지금?’

[네.]

결론은 ‘일단 환자를 다시 보자’였다.

해서 수혁은 남들이 애써 옮겨 둔 보람도 없게시리 곧장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분명히 계속 밖에 있었는데 왜 안에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나, 환자의 증상을 다시금 확인한다 이것뿐이었다.

“교주님?”

마침 환자 보호자를 안내하고 돌아오던 안대훈과 마주쳤다.

대훈은 반쯤 풀린 수혁의 눈을 보면서 이상함은커녕 신성함을 느꼈다.

‘아.’

이때야말로 이수혁의 천재성이 가장 진하게 발휘되는 순간 아니던가.

이단인 조태진은 무슨 신이 오신 거다 어쩐다 하는데, 주교인 안대훈이 보건대 수혁은 그 자체가 신이라면 모를까 다른 이의 도움을 받는 건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교주님, 이쪽입니다.”

신앙심이 돌연 더 깊어진 안대훈은 후후 웃으며 전심전력으로 수혁을 병실로 안내했다.

부리나케 뒤따라 나온 교수들도 일단은 수혁을 따랐다.

“환자 보러 가는구나.”

“갑자기 또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아, 막국수 시키지 말걸. 불면 저거 맛없는데…….”

“오셔서 그래요. 이게 얘가 어쩔 수 없는 거라니까.”

“지랄 말라고.”

“어, 욕을 하시네. 저도 상처받습니다, 원장님들.”

“너는 좀 받아도 돼. 아니, 받아야 돼.”

그 순간조차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조태진을 구박하면서였다.

그러면서도 혹 수혁이 안에 들어가서도 이상하게 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수혁도 바루다도 이제는 완숙한 동반자가 된 지 오래였으니까.

“안녕하세요, 환자분. 보호자 분. 검사 많이 안 힘드셨어요?”

정말 친절하기 짝이 없는 인사로 포문을 열었다.

일본인 아빠야 말을 거의 못 알아듣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으나, 엄마는 좀 감동을 받았는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네네. 덕분에…… 기운이 좀 없기는 한데 애가 못 먹어서요.”

“네, 그럴 만도 하죠.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와……. 이 시간에도요?”

아이 엄마는 병실에 걸린 시계를 돌아보았다.

벌써 8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밥때도 지난 상황이라는 얘기였다.

분명 아까 수혁보다 더 낮아 보이는 의사들도 우르르 가던데, 아직도 여기서 진료를 하고 있다니.

그것도 다른 환자도 아닌 자기 아이를.

“감사합니다.”

“아뇨, 뭐. 입원하셨는데요.”

또다시 감사 인사가 나왔다.

감사 인사받으러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었던지라 수혁은 대강 보호자와의 대화를 끝마치고는 아이를 돌아보았다.

아이답지 않게 눈이 퀭하긴 했으나 동시에 아이다운 천진함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아직 어려도 너무 어리다는 얘기였다.

“석형아.”

“네.”

“너 혹시 몸 여기저기 아픈 적은 없어?”

“네? 음…….”

수혁이 비록 공감 능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아이가 아플 때만큼은 마음이 아파지는 게 정상 아닌가.

지금 이 순간은 케이스에 대한 호기심만큼이나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도 느낄 정도였기에 아이는 힘든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1분이 채 지나기 전에 입을 열었다.

“제가 피티를 받았어 가지고……. 그래서 아픈 적은 있어요.”

“아, 피티 받았다고 했지.”

피티라.

수혁도 한 번쯤 피티 비슷한 것을 받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다리 수술하고 재활 운동할 때였는데, 제대로 걸으려면 근육의 도움도 필요하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무슨 잘못 했나 했다.’

[저도요. 그 통증은 잊고 싶어서 해상도를 대폭 낮추어 놨습니다.]

‘그러다 기억력 감퇴로 또 받으면 어쩌려고?’

[걱정 마십쇼. 최선을 다해 지랄을 하겠습니다.]

‘든든하다.’

근육을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긴 했다.

일단 찢어야 커지는 법이지 않나.

한번 결정된 근섬유는 늘지 않기에, 그 굵기 자체를 늘려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적응력이 워낙에 뛰어나기에 그런 근육통조차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미친 듯이 부하를 늘려 갔다면 근육통이 유지되었겠지만, 글쎄.

아이의 몸은 그렇게 운동했다기엔 좀 무리가 있었다.

“6개월 피티 받았다고 했는데 그동안 내내 그랬어?”

“어…… 네. 아니, 나중에는 제가 좀 힘든 상태에서 받아서 그런가? 더 아팠어요.”

“그래, 어떻게 운동했는데. 선생님이 되게 엄하셔?”

“처음엔…… 그랬는데 제가 너무 힘들어해서 나중엔 사실 좀 살살 해 줬어요.”

둘의 대화를 아이 엄마는 실시간으로 아빠에게 전하고 있었다.

딱 봐도 체격이 좋은 아빠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무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그건 또 안대훈이 전달해 주었다.

‘운동하면 당연히 근육통이 있어야 된다고 하네요. 헬창이신 듯.’

‘응, 그래 보여.’

딱 봐도 보조대 차고 스쿼트 140은 칠 거 같지 않나.

하여간 그런 말을 아이가 계속 들었다면 좀 헷갈릴 것도 같았다.

“석형아. 근육통은 동일한 운동 부하를 줬을 때 줄어야 정상이야. 근데 넌 운동량이 줄었다며. 근데도 더 아파졌다고 하면…….”

“이상한 건가요?”

“어, 혹시 지금은 괜찮아? 너 운동한 지 얼마나 됐어?”

근육통 얘기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지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루다의 분석 능력을 이용해서 시진이나 타진, 촉진, 청진 등의 능력이 대폭 올라간 수혁이었지만 아직까지 환자의 행동 양식 분석은 좀 어려워서 더 그랬다.

무슨 셜록 홈스도 아니고 행동 양식까지 다 파악이 가능하겠나.

[제가 보다 정진하겠습니다. 셜록 홈스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한낱 인간 따위에게 질 수는 없죠.]

‘그래, 더 정진해라.’

바루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동시에 아이가 지금까지 팔과 다리 등지를 더듬거렸던 횟수를 출력해 주었다.

회진 도는 것치고는 꽤 오래 머무르는 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오래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횟수는 꽤 많았다.

무려 열다섯 번이 넘었다.

‘진통제도 들어가고 있지 않아?’

[미약한 복통이 있어서요. 약간 진통제를 쓰고 있습니다.]

‘병원 입장에서 약한 거지…… 상비약으로 쓰는 약에 비하면 약가가 떨어지지 않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근육통이 꽤 심하다는 얘긴데?’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건 비정상적으로 많다고 볼 수 있었다.

해서 지금도 아프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말했다.

“네, 아파요.”

“마지막으로 피티 언제 받았는데?”

“일주일? 근데 근육통이 그 정도 갈 수 있다고 하던데요?”

“누가?”

“아빠가요.”

“아.”

수혁은 어휴 하는 생각과 함께 아빠를 돌아보았다.

말을 못 알아듣는 아빠는 거대한 승모를 이용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세상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가면서였다.

‘저렇게 키우려면 일주일 아프긴 하겠다.’

[증상이 왜곡된 상식에 의해 마스킹 되어 있었군요.]

‘응. 아무래도…… 나는 그게 맞을 거 같다.’

[저도요. 일단 검사는 해 봐야 합니다.]

수혁은 다시 환자를, 그리고 보호자를 돌아보았다.

그 중간에 이현종과 눈이 마주쳤는데, 이현종 또한 뭔가 감을 잡은 얼굴이었다.

설사, 탈모, 일본계 혈통 그리고 근육통.

각각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증상이나 단서들을 하나로 모아 보면 드물지만 아주 특이적인 질환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는 사토요시 증후군일 가능성이 큽니다.”

“네? 사토요시……?”

“네. 설사와 탈모 그리고 근육통 등을 잘 일으키는 병입니다. 처음 들어 보셨을 거세요. 희귀 질환이라…….”

“네, 처음…… 처음 듣습니다.”

처음 듣는 질환명을 들은 보호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한결같았다.

불안에 떨 수밖에 없지 않겠나.

“치료 방법이 있는 질환이에요. 그 전에 일단 이게 맞는지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 투망식의 검사가 아니라 딱 사토요시를 진단하기 위한 검사다 보니 소요 시간은 압도적으로 적을 겁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