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91화 (591/1,303)

591화 이거……? (3)

수혁은 진단과 동시에 치료도 시작했다.

다행히 사토요시 증후군이 드물긴 하지만 치료법이 없는 질환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음……. 일단 스테로이드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스테로이드요? 그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맞는…… 부작용이 심하지 않나요?”

해서 바로 치료에 관한 설명을 했더니 아버지 쪽에서 질문이 튀어나왔다.

보호자로서 환자 치료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지 않나.

게다가 수혁은 질문에 답변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편이었다.

특히 의학적인 질문이라면 그 수준에 관계없이 좋아했다.

물론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좋아하지만, 보호자에게 그러한 것을 기대하는 건 일종의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아……. 그건 성호르몬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스테로이드라고 다 같이 부르는데…… 그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고 제가 쓰려는 건 부신피질호르몬이에요. 종류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건 부작용이 없나요?”

안대훈이 계속 자리에 남아 통역을 해 주고 있었기에 대화는 아주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원래 의학 용어라는 것이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병원 통역은 좀 더 공부가 필요한 법인데, 안대훈은 그게 자동으로 되다 보니 어지간한 통역사보다도 나았다.

“부작용은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만 쓰면 좀 덜하긴 하지만요.”

수혁은 대훈과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인 식용 증진, 속 쓰림 그리고 면역 억제 등에 관해서 얘기해 주면서였다.

이러한 부작용을 들으면 당연히 우려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보니, 자연히 보호자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수혁은 점점 이상한 사람이 되고 있을지언정 굳이 보호자 괴롭히는 취미는 없는 사람이라 바로 말을 이어 주었다.

“그렇기는 한데 어차피 아이에게 감염성 질환의 징후는 보이지 않거든요.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다른 부작용은 저희가 다른 약을 같이 쓰면서 조절해 줄 것이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 외에 탄수화물을 조금 제한할 겁니다. 이 질환에서 고탄수화물이 소화기 증상을 악화시킨다는 보고가 있어서요.”

“그, 그렇군요. 근데…….”

“네, 어머님.”

수혁의 말에 다소 안심한 얼굴이 된 어머니가 환자 쪽을 살짝 바라보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지금 환자가 보이는 위치도 아닌데, 그 짧은 순간에 뭘 떠올렸는지는 몰라도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다.

“머리는…… 다시 날까요?”

“네? 아, 그거요.”

수혁은 그 질문에 직접 답해 주는 대신, 탈모 전문가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원래 머리가 없으면 뭘 해도 전문가처럼 보이지 않나.

물론 머리 없는 탈모 전문가라는 게 모순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거기다 대고 대훈이 한 반론을 듣고 난 후로는 정말 그럴싸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교주님, 키 크는 방법을 실제 키 큰 사람이 많이 알 거 같아요? 아닙니다. 키 큰 놈은 고민해 본 적이 없어요. 키 작은 사람이 더 많이 압니다. 마찬가지로 머리 안 빠지는 방법도 풍성한 놈들은 몰라요. 저는…… 저는…….’

아마 말을 끝까지 마쳤다면 더 멋졌을 텐데.

안대훈은 그날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눈물을 펑펑 쏟아 버렸다.

다행히 오늘은 울 생각 따위 전혀 없어 보였다.

‘교주님 앞에서 추태는 그날로 족하다…….’

결연한 각오를 다지고 온 몸이었기에 그랬다.

“네, 다시 납니다. 너무 오래 지체했으면 다시 안 날 수도 있는데…… 아이는 괜찮아요. 남성형 탈모랑도 전혀 관계없는 거니까…… 그건 추후에 따로 관리하시면 됩니다.”

덕분에 안대훈은 참으로 전문가스러운 포스를 좔좔 흘려 가며 말을 할 수 있었다.

중간에 아버지 머리를 보다가 잠깐 삐끗할 뻔했는데, 하여간 끝까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군요. 저는 그럼…….”

안대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상태의 아버지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옆에서 아내가 주책이라는 식으로 팔꿈치로 옆구리를 푹하고 찔렀으나 굴하지 않았다.

기왕 용기 낸 김에 끝까지 묻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아버님.”

안대훈은 그런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대한민국에서도 허락 없이 남의 몸에 손대는 건 무례지 않은가.

이러한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일본인이라면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국가를 초월하는 공감대가 있어서 그런가, 아버지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있었다.

“이게 돌아오면 저도 돌아갔겠죠?”

“나루호도.”

그리곤 대훈의 다소 비관적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훈은 아버지의 어깨를 몇 번인가 더 두드려 주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궁금증은 없으신가요?”

“아, 있습니다. 그…… 아까 말한 약이나 탄수화물 제한만 하면 좋아질까요?”

이번엔 공이 다시 수혁에게로 넘어왔다.

대훈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긴 하지만 사토요시는 익숙할 수가 없지 않겠나.

여기가 일본이었다면야 얘기가 조금 다를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사토요시 증후군은 그냥 드문 게 아니라 극히 드문 질환이었다.

“음…….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 모든 병이 그렇죠. 경과가 다 같지만은 않습니다.”

“아, 그럼…….”

“일단 지금 지침대로 치료를 해 보고 잘 안 들으면 그때 가서 쓸 수 있는 약들이 있습니다. 메토트렉세이트라든지 하는……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죠. 아무튼, 이번이 마지막 기회도 아니고 이것만으로 치료가 될 가능성도 굉장히 큽니다.”

“그……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정말 여기 오기를 잘한 거 같아요.”

“하하. 그럼 소문 좀 내주세요. 남편분께도 일본 오가면서 말씀 좀 해 달라고 해 주시고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근데…… 지금도 환자 많으시던데 여기서 더 많으면 너무 힘들어지시는 거 아니에요?”

“아뇨. 저는 환자 보는 거 좋아합니다.”

수혁의 말에 보호자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통합진료센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환자가 온갖 군데서 다 오는 모양이었다.

돌아다니는 환자들이 정말 정말 많았다.

한데 여기서 환자를 더 보겠다니.

‘정말…… 천생 의사이시구나.’

수혁의 어려운 케이스에 대한 집착을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머릿속으로 슈바이처나 장기려 박사와 같은 일종의 성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는 또 다른 환자가 있어서요.”

“아,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수혁은 이상한 오해를 남기고 환자가 있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센터 스테이션 쪽으로 향했다.

원래 같았으면 여기까지 따라 들어와 주접을 떨었을 이현종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 음……. 근데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요새 환자가 늘어서 더 바빠진 이현종은 전화를 받고 있었다.

말투가 꽤 친근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분명 친한 사람일 터였다.

“아……. 우리 수혁이 좀 보라고? 그래, 그건 좋네. 알았어, 갈게. 기다려용.”

심지어 말끝에 이상한 어투까지 덧붙이고 있었는데, 이현종이 체통을 잃고 저렇게 나오게 만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다.

“이기자 교수님이세요? 소아과 환자?”

“응, 환자는 환잔데…….”

“왜요?”

이현종은 겉과 속이 너무 같아서 문제가 되는 인간이지 않나.

이기자 교수와 통화를 한 후에 이렇게 서글픈 표정을 짓는 사람은 아니란 얘기였다.

수혁은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 바로 물었고, 이현종은 즉시 답했다.

둘 다 답답한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더 그랬다.

“MPS 환자야.”

“Mucopolysaccharidoses(점액 다당류)요?”

“어.”

“타입은……?”

답을 들은 수혁은 왜 이현종 표정이 이런 줄 바로 알아차렸다.

점액 다당류란 질환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글리코사미노글리칸이라는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 뮤코 다당이 축적되는 질환인데, 선천성 질환이었다.

다시 말하면 치료랄 게 없고 고작해야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다였다.

“후를러.”

“아이고.”

다른 선천성 질환이 그러한 것처럼 점액 다당류도 애초에 확인된 질환의 중증도가 예후에 있어 가장 중요했다.

몇 가지 타입으로 나누어서 치료를 진행했는데, 그중에서 타입 1로 분류되는 후를러는 예후가 가장 좋지 못했다.

아무 치료도 하지 않으면 영아기에 사망했고, 치료를 한다 해도 10살을 넘기기 어려웠다.

“우리가 가도 별로 해 줄 수 있는 건 없을 거야. 그래도…… 보호자가 원한대. 같이 가 줄 수 있지?”

“네, 물론이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새엄마 요청인데요.”

“그래, 그래야 우리 수혁이지.”

“바로 가실 거예요?”

“어, 너 설명하는 동안 대강 처방 정리해 놨어.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할 거야.”

“네.”

이현종이라면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재이지 않나.

수혁이나 바루다나 그렇겠지 뭐 하고는 이현종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소아과 병동으로 향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일반 병동이 아니라, 소아과 중환자실이었다.

“PICU…….”

어른들이 입원해 있는 중환자실도 분위기가 침울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한창 밖에서 뛰어놀거나, 부모 품에 안겨 있어야 할 아이들이 인공호흡기 따위에 목숨을 의지한 채 누워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비극이었다.

“수혁아, 들어가자.”

“네.”

이현종도 수혁처럼 잠깐 멍한 얼굴로 PICU 간판을 올려다보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장소가 장소다 보니 둘 다 손도 더 열심히 닦고 마스크에 모자까지 싹 갖추고였다.

“어떡해요……. 어떡해…….”

안으로 딱 들어서자마자 흐느끼는 듯한 보호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기자 교수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남녀가 서 있었다.

슈욱.

슉.

둘 사이에는 인공호흡기로 숨을 의지하고 있는 아이가 누워 있었다.

어디가 목인지 모르겠을 정도로 짧고 두꺼운 목과 동그랗고 커다란 눈 그리고 낮은 코 등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점액 다당류, 그중에서도 후를러 증후군에 합당한 소견이었다.

아마 지금 삽관을 해 둔 것도, 저걸 안 하면 환자가 숨을 쉬지 못할 거라 그랬을 터였다.

“보호자분, 일단…… 통합진료센터에서 오셨습니다.”

“아!”

그 말은 곧 삽관을 제거하면 아이는 바로 죽게 될 거란 얘기였다.

지금 이 고비를 넘기면 좋아질 수 있는 그런 병도 아니었다.

그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오늘 덮쳐 올 죽음을 조금 뒤로 미룰 수 있을 뿐이었다.

‘희망이 없는 병…….’

수혁은 이런 환자를 볼 때마다, 어린 시절 그를 맡아서 키워 준 보육원장님이 읽어 주었던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일상적으로 성경을 읽었는데, 당시에는 그저 지겹기만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의사가 되고 나서 몇 번이나 곱씹었던 구절이 하나 있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선천성 질환에 있어 이 구절은 여전히 진리로 통했다.

극도로 발달한 현대 의학조차 이러한 병 앞에서는 무력했다.

“교수님, 저희 애 좀 살려 주세요!”

수혁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보호자는 수혁과 이현종에게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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