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화 최선을 다하는 게 능사가 아닐 수도 (1)
“우리…… 우리 혜준이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수혁은 머릿속으로 내내 냉정한 판단을 내리다가 문득 자기 앞에 선 보호자 둘을 바라보았다.
아마 수혁이 바루다였으면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사람이었다.
인간미가 조금 부족하기는 해도 어찌 되었건 피와 살로 이루어진 동물이었다.
“일단…… 제가 좀 보겠습니다.”
“네, 네.”
수혁은 그렇게 보호자의 손을 그리고 어깨를 한 번씩 잡아 준 후 환자에게로 향했다.
후를러 증후군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 나이는 만 2세. 그에 비해 키가 작군요.]
‘각막 색도…… 혼탁해.’
[관절 이상도 관찰됩니다.]
‘머리도 큰데…… 이건 뇌수종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정상적인 크기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호흡이 어렵습니다. 편도가 누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기도 자체가 너무 좁아져 있어요. 상기도 호흡은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면밀히 살피면 살필수록 희망은 옅어져 갔다.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유전자 레벨에서 망가진 상황이지 않나.
아직까지 현대 의학에서 유전 질환에 대한 치료는 어려웠다.
아니, 이 정도 질환은 치료가 불가능했다.
“아이고……. 혜준아…….”
“여보…….”
하지만 저 얼굴들을 보면서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나.
더군다나 수혁은 정말 어려운 케이스들조차 거의 놓치지 않고 치료해 온 사람이었다.
다른 모든 경험은 같은 나잇대 의사 중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실패한 경험은 압도적으로 적었다.
그렇다 보니 애초부터 안 된다는 말을 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수혁아.’
이현종은 이기자의 침울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수혁을 돌아보았다.
하도 진짜 자식들보다 더 싸고돌았더니 이젠 얼굴만 봐도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너는 정말 포기를 모르는구나.’
장점이었다.
의사로서도 그렇고 인간으로서도 그렇지 않나.
포기를 모르는 사람은 보통 그 사람이 지치지 않는 이상 성과를 거두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결과적으로 실패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최선을 다해 보면 분명 배우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
‘근데 이 환자는…….’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까 수혁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를 살폈다.
정말이지 교과서에 딱 나오는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였다.
‘이 아이는 네 노력을 배신할 거다.’
수혁은 이현종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연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외형을 봐도 뭔가 이상이 느껴지지만, 실제 후를러 타입에서의 문제는 그 정도가 아니지 않나.
‘심질환, 각막 혼탁, 망막변성 그리고 이로 인한 시력저하에 관절 변형, 척추후만…… 뼈도 이상하니 키도 작고. 지능 저하에 청력 소실, 뇌수종…….’
[그중에서 교정이 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최대한 빨리 변성이 오기 전에 확인을 해서 대응하는 것뿐입니다.]
‘지금은 일단 호흡…… 이거 계속 이렇게 둘 수는 없어.’
[기관절개를 고려합니까?]
‘어, 네 판단은 어때?’
[환자의 호흡 유지를 위해서 그 이상의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 그렇지. 뭐든지 하나씩…… 차근차근해 보면 되는 거야.’
수혁도 어지간한 천재가 아니고, 바루다까지 탑재한 마당이었기에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무언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수혁은 딱히 그렇게 내린 결론을 숨기는 편도 아니라 바로 입을 열었다.
“교수님, 잠시.”
“아, 그래.”
“응.”
다만 보호자에게 바로 지르진 않았다.
정식 의뢰가 아니라, 그냥 보호자가 원하니 한번 와서 보는 시늉만 해 달라는 요청에 의해 온 참 아닌가.
그 말은 곧 이 환자의 지정의는 이기자 교수란 뜻이었다.
이기자 교수가 아예 잘못하고 있다면야 수혁 성격상 보호자에게 바로 지르겠으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렇게 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아이……. 호흡 때문에요. 기관 절개술을 하는 게 좋겠는데요.”
“이비인후과에 의뢰를 하자, 이 말이지?”
“네.”
“으음.”
“왜 그러세요?”
“아니, 아니. 음.”
나름 사려 깊은 판단이었다.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술이었다.
일단 이렇게 시간을 벌어 놓고, 환자의 기도를 누르고 있는 편도를 제거해야 할 수도 있고 뭐 방법이야 차차 생기지 않겠나.
심지어 편도 제거술도 이비인후과에서 해야 하는 수술인지라 우선 이비인후과를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왜 저러시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망설임이 느껴집니다.]
‘내 판단이 틀렸나?’
[아뇨. 현 상황에서는 이 방법 말고는 뭐가 없습니다.]
‘으흠.’
그러나 이기자 교수는 눈에 띄게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전화기를 들기는 들었다.
그리곤 이비인후과 교수에게 다이렉트로 전화를 걸었다.
보통 협진을 내지 이렇게 바로 연락하는 경우는 드문데, 소아 중환자실과 이비인후과는 생각보다 꽤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김보영 교수님 핸드폰입니다.”
“아……. 수술 중인가요?”
“네. 근데 지금 거의 다…… 아, 교수님. 이기자 교수님이십니다. 바꿔 드리겠습니다.”
두경부 김보영 교수.
레지던트 때부터 손 좋다고 유명하더니만 결국 두경부외과로 투신했더랬다.
기껏 이비인후과라는 마이너 과를 선택해 놓고 사서 고생길에 접어들었다는 평도 듣고 있지만, 하여간 실력 좋은 젊은 교수였다.
“네, 교수님. 어쩐 일이세요?”
“아……. 뮤코다당증 환자가 하나 있어요. 후를러 타입인데.”
“편도 아니면 기관 절개술이겠네요.”
“음. 지금은 호흡이 당장 급해서 기관 절개술을 의뢰드리려고 하는데.”
“으음…….”
“역시 좀 그런가?”
“아뇨, 아뇨. 일단…… 일단 가겠습니다. 거기 소담…… 소담이도 있죠?”
“있죠. 아직은.”
“겸사겸사…… 가겠습니다.”
그리고 꽤 열심이기도 했다.
애초에 두경부외과를 한다는 거 자체가 보통 소명의식으로는 못 하는 일이지 않나.
설암이니, 후두암이니 하는 것들을 다 제쳐 두고서라도, 소아의 기도를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단 몇 분 안에 생명이 왔다 갔다 하거나 앞으로 남은 평생이 좌지우지되지 않나.
김보영 교수는 덕분에 병원 앞에 위치한 오피스텔에서 평일의 절반가량을 보내고 있었다.
그나마도 믿고 당직을 맡길 수 있는 펠로우가 들어온 이후에 절반이나마 집에 가는 것이지, 그 전에는 오피스텔은커녕 그냥 당직실에 있었다.
드르륵.
잠시 기다리자, 김보영 교수가 빳빳한 수술복 위에 가운만 걸친 채로 안으로 들어섰다.
씻지도 않고 그냥 왔는지 머리가 꽤 눌려 있었다.
옆에 같이 온 레지던트는 수술복도 구겨져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불쌍해 보였다.
실제로도 이번 달은 불쌍하기도 할 터였다.
두경부외과가 만만한 곳은 아닐 테니.
“어, 김 교수. 누구부터 보려고요?”
“소담이는 당장 어떻게 될 건 아니죠?”
“장담할 수는 없어요.”
“음.”
김보영은 이기자 교수의 말에 침음을 흘렸다.
전후 관계를 모르는 이현종이나 수혁이 들을 땐 다소 맥락이 없어 보였으나, 대강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이랬다.
[둘이 같이 본 환자가 있는데 안 좋나 봅니다.]
‘그냥 같이 본 게 아니라 오래 본 거 같은데.’
[어째 분위기가 그렇죠?]
‘응. 보통 오래 본 사이가 아닌 거 같아.’
환자에게 의사는 한 명이지만 의사에게 환자는 여럿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 속에 오래 남는 환자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결과가 팍팍 좋아진 환자들보다는 그렇지 못했던 환자들이 더 그랬다.
“일단 지금 애부터 볼게요.”
“어. 혜준이라고 이제 만 두 살 좀 넘었어. 여기.”
“아…….”
“왜 그래요?”
“당연한 말인데, 소담이랑 너무 닮았네요.”
“아, 그렇지. 똑…… 닮았지.”
뮤코다당증, 그중에서로 후를러 타입인 아이들은 모두 생김새가 비슷했다.
이건 인종이나 하물며 민족이 달라도 그런 사실이다 보니, 같은 한국인이라면 헷갈릴 정도로 비슷했다.
김보영 교수는 이전 소담이라는 환자를 보던 때가 떠오르는지, 침울한 얼굴이 되어 환자의 목을 들여다보았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그랬지만 휴대용 내시경으로 보니 기도 좁은 것이 더 적나라했다.
“아, 이현종 원장님. 이수혁 교수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김보영입니다.”
“네, 교수님.”
“이거 보시겠어요? 제가 잡고 있을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김보영은 그렇게 먼저 안을 확인한 후, 이현종과 수혁에게도 내시경 끝을 넘겨주었다.
눈을 가져다 대니 남들과는 달리 그냥 꽉 막혀 있는 기도가 눈에 들어왔다.
“우선 임시가 됐건…… 아니면 반영구적인 목적이 되었건 간에 기관 절개술은 하는 게 좋겠습니다.”
김보영은 둘에게 현 상태를 똑똑히 보여 주면서 수술 계획을 말했다.
“그다음 가능하면 편도 절제술도 해 보겠지만…… 워낙 커서 수술 자체가 위험할 수 있어요. 게다가 후를러의 경우엔 비단 편도만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도 기도가 막히기도 해서…… 의미가 없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기관 절개술을 하면…….”
“살 수는 있죠. 살 수는 있는데…… 어?”
김보영은 뭔가 더 말을 하려다 말고 소아 중환자실 안쪽을 돌아보았다.
다다다.
알람이 울었다.
벌써 이기자 교수와 몇몇 간호사들은 달리고 있었다.
‘우리도 가야지.’
[네. 넘어지지는 마시고요.]
뭔가 이변이 생긴 모양이었다.
수혁도 후다닥 달렸다.
이현종도 옆에서 수혁을 부축한 채 걸음을 빨리했다.
“환자 안 좋나 보다. 여기 소아 중환자실인데.”
“아.”
죽어 가는 환자가 소아라는 걸 상기시키면서였다.
“보호자 분, 여기 계시지! 빨리 불러!”
“네, 네!”
“너는 뭐 하고 있어! 뒤에 있다가 바로 교대해야지!”
“네!”
가 보니 이기자 교수가 이미 작은 아이가 누운 침대에 올라 흉부 압박을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는 키가 아주 작았다.
하지만 이름표에 적힌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나이는 어리진 않았다.
열 살.
김소담.
방금 전까지 김보영 교수와 이기자 교수가 얘기하던 그 아이인 듯했다.
“아, 소담아!”
곧 소아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보호자가 달려왔다.
거친 머릿결을 가진, 옷도 아무렇게나 입은, 열 살 아이의 엄마라기엔 지나치게 늙어 버린 여인이었다.
“소담아……. 소담아!”
“하나, 둘, 셋!”
이기자 교수는 그런 보호자와 인사 나눌 새도 없이 가슴을 눌렀다.
그러다 교대를 위해 기다리고 있던 레지던트가 뛰어오르자마자, 밑으로 굴러떨어지듯 내려왔다.
5분 정도 흘렀을 뿐인데 땀이 비 오듯 했다.
“김 교수. 도와줘요.”
“아, 네. 당연…… 당연하죠.”
“팀 올 때까지만.”
“네.”
김보영도 수혁도, 이현종도 도왔다.
흉부 압박이라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 않나.
무엇보다 술자가 지치면 안 되었다.
힘이 전달이 안 될 테니.
“29, 30. 리듬?”
“없어.”
“하나, 둘, 셋.”
이기자 교수는 다시금 흉부 압박을 하기 시작한 레지던트를 보다가, 이내 시계를 돌아보았다.
벌써 30분이 훌쩍 넘어간 상황이었다.
이제는, 이제는 말해야 할 시간이었다.
“어머니.”
“안 돼, 안 됩니다! 우리…… 우리 소담이 살려 주세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