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93화 (593/1,303)

593화 최선을 다하는 게 능사가 아닐 수도 (2)

“어머님…….”

이기자 교수는 어머님이라는 말을 마치 씹어뱉듯 말하고 있었다.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고 있을 터였다.

이유야 뻔했다.

[간신히 참고 있군요. 정말 오랫동안 본 환자, 보호자인 모양입니다.]

‘자주 봤을 거야. 후를러 타입은…… 그렇지.’

의사 환자 관계에서 환자만 의사에게 영향을 받을 리가 없지 않나.

의사도 환자에게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감수성이 너무 예민한 사람은 오히려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는 말도 있었다.

자꾸 환자에게 영향을 받게 되면, 의학적으로 중요한 의사 결정도 그르치게 되기 때문이었다.

“교수님……. 이제 안 되는 거예요? 우리, 우리 소담이…….”

“어머니, 소담이…….”

이기자 교수는 보호자를 처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환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지던트가 구슬땀을 흘려 가며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보람은 없었다.

딱 누를 때만 박동이 확인되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레지던트도 많이 지쳐서 그런가 유의미한 박동 사인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흉부 압박의 의미가 없다고 여기고 있어서였다.

“그만 보내 줍시다. 오래…… 오래 버티셨어요. 어머님도, 소담이도.”

“아……. 아…….”

“인사…… 하세요. 인사하고 나면, 그러고 나면 선고…… 하겠습니다.”

보통 심장 박동이 멈추면, 그때 바로 사망 선고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원칙에도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이미 죽은 아이에게 인사를 시킬 수는 없지 않나.

의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의술은 인술이라는 말이 있는 거라고, 이기자 교수나 이현종 교수처럼 이런 식의 이별을 많이 겪은 교수들은 생각했다.

“소담아……. 엄마가…… 엄마가 미안해. 소담이 아프게 낳아서…… 그래서 미안해.”

덕분에 잠시라도 시간을 얻은 보호자는 환자에게 엎어져 인사를 건넸다.

흉부 압박을 진심으로 했기에 가슴뼈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가슴이 아파 왔으나, 누굴 비난할 생각 따윈 들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최선을 다해 왔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부모라서 그런가, 자책만 들었다.

“저기, 저기 위에서는 제발 행복해. 근데 소담아, 엄마는…… 엄마는 소담이가 아파서 너무 슬펐지만, 그래도 행복했어. 소담아, 사랑해…….”

이기자 교수는 그런 보호자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든든한 손으로 두드려 주었다.

고개를 돌린 보호자가 마주한 이기자 교수의 눈시울 또한 붉어져 있었다.

이렇게 아픈 아이들을 고치겠노란 맹세로 소아과를, 그중에서도 소아 중환자실을 도맡아 보게 된 것인데 자꾸 이런 일을 겪게 되니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인해 이기자 교수는 전보다 더없이 단단해져 있었다.

또 현명해져 있었다.

이럴 때 보호자에게 해 줄 말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해하시지 말아요. 어머니. 어머님은 소담이에게 최고의 엄마였어요. 그러니까 고개를 들어요. 소담이 얼굴을 봐 줘요.”

사실 이기자 교수는 이날이 머지않은 미래에 올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유전병 치료는 결국, 그 끝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니까.

때문에 이기자 교수는 벌써 몇 번이나 이 대사를 연습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자꾸 눈물이 나서 대사가 씹혔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네, 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보호자 분과 잘 견뎌 준 소담이에게 감사합니다. 인사…… 할게요.”

“소담아……. 잘 가. 나중에…… 나중에 엄마도 갈게. 기다려 줘.”

그렇다고 해서 차오르는 눈물을 완전히 회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제아무리 병원에 있으면서 수많은 죽음을 보아 온 의사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죽음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었으니까

“음.”

“으음.”

사실 이 환자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던 이현종이나 수혁도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었다.

아무 관계도 아닌 주제에 잠깐 심폐소생술에 참가했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는 건 다소 무책임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소담, 4시 5분…… 사망하셨습니다.”

그사이 이기자 교수는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사망 선고를 했다.

반면 김보영 교수는, 더 젊기도 한데다가 기관 절개술을 한 탓에 훨씬 자주 아이를 봐야 했던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밖으로 나갔다.

보호자에게는 미리 죄송하다는 말을 한 후였다.

“수혁아, 검정 양복 있지?”

감정은 격했지만, 아이가 있던 자리가 정리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적어도 이만한 규모의 병원에서만큼은 슬픔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였다.

지금도 소아 중환자실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아이가 있지 않나.

빨리 들어오지 않으면, 그 아이도 죽을 수 있었다.

또 다른 비극을 얹어야 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그런 걸 원하진 않았다.

해서 밖으로 나온 이현종은 수혁에게 물었다.

“네, 있죠. 양복은 늘 준비해 두고 있어요.”

수혁은 그런 이현종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교수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수의 바이털과 교수들은 연구실에 새카만 양복 한 벌 정도는 두고 있는 편이었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을 주로 고치는 의사라는 말은 곧 죽음을 많이 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서였다.

제아무리 뛰어난 의사라 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있는 법 아닌가.

그리고 모든 죽음은 남겨진 이에게 위로를 요구했다.

다른 이들의 위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고인이 의지했을 게 분명한 의료진의 위로는 특별한 터였다.

“같이 가자. 우리야 별로 오래 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건 대단한 인연이야.”

“네, 그럴게요. 근데 저…… 저 환자는 어쩌죠?”

“그 환자? 어차피 김보영 교수가 결정 내리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 해.”

“아, 김 교수님도 가시겠구나.”

“그럴 거야. 실력은 좋은데…… 두경부 같은 과를 할 수 있을 만큼 모질지 못해서 걱정이야.”

“아까 보니까 우시는 거 같던데.”

“그렇겠지. 후를러에서 기관절개 했으면 못 해도 한 달에 두어 번은 봤을걸. 입원도 여러 차례 했을 거고.”

무언가 떼어 내는 수술은 그걸로 거의 끝인 경우가 많았다.

맹장 같은 게 그러하지 않나.

하지만 우리 몸의 어떤 부위를 변형시키는 수술은 그 후로도 계속 집도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숨 쉬는 기능을 위한 수술인 기관 절개술을 시행한 경우엔 그 절개한 부분을 닫을 때까지는 그래야만 했다.

끝까지 책임진다는 개념인데, 그 상대가 죽음이 결정된 어린아이였으니 속이 말이 아니었을 터였다.

“거참……. 근데 저 아이를 또…… 해 달라고 하기가…….”

“얘기해 봐야지. 뭐가 옳은 일인지.”

“네?”

수혁은 김보영의 정신 건강을 걱정하다가, 이현종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적어도 수혁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고민은 하고 있지 않아서였다.

환자를 조금이나마 더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게 옳은 치료 아니겠나.

그저 이런 생각뿐이었다.

‘자식. 아직 어리지.’

이현종은 그런 수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딴청을 피웠다.

아마 장례식장에 가면 무언가 스스로 느끼는 게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일단 옷 갈아입고 로비에서 보자.”

“아, 네.”

“한…… 15분 후? 그럼 되겠지?”

“네. 그럴게요.”

이현종의 됨됨이는 그 누구보다 수혁이 잘 알았다.

‘말을 하려다 마시네.’

[그러게요.]

‘다시 물어봐야 절대 얘기 안 할 텐데.’

[그럴 겁니다. 정말 똥고집 그 자체니까.]

이현종처럼 제멋대로인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러면서 동시에 고집도 있는 인간이었다.

벌써 몇 번이나 이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바 있는 수혁은 깔끔하게 단념하고 연구실로 향했다.

그리곤 옷장 안에 놓인 검정 양복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옛날엔 이거 입는 것도 한세월이었는데, 김선웅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나서는 그나마 훨씬 수월해진 상황이었다.

덕분에 그리 늦지 않게 로비에 당도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요. 이 교수님.”

이현종과 이기자는 아직 오지 않았고, 김보영 교수만 레지던트 하나와 함께 와 있었다.

레지던트는 왜 왔나 해서 자세히 보니 표정이 굉장히 어두웠다.

아니, 숫제 울다가 온 듯했다.

“야, 이제 그만 진정해.”

“네네. 근데 저…… 아휴.”

“나도 알아. 너 인턴이었지?

“네. 그러고 벌써…… 4년 반이네요.”

“그래, 4년 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런 시간이다.”

“휴.”

아무래도 인턴 때 보조로 들어갔던 레지던트인 모양이었다.

하긴 기관 절개술은 그리 복잡한 수술은 아니다 보니, 게다가 기관 절개술을 받는 환자들 상태가 별로인 경우가 많다 보니 수술실보다는 중환자실에서 바로 시행하기도 하지 않나.

그러다 보면 인턴이 보조의로 들어가기도 했다.

마침 이비인후과를 지망하는 인턴이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오시네.”

고개를 돌려 보니 이현종과 이기자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어오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이현종이 이기자 팔짱이라도 낀다든지 하는 주접을 떨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이현종이 이기자 앞에서는 분위기 파악을 하는 편이었기에 지금은 엄숙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행이네.’

[그러게요. 이현종도 많이 늘었습니다.]

내심 걱정하고 있던 수혁은 둘과 합류하자마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병원 로비에서 걸어 나가면 바로 보이는 공원 비슷한 곳이 있는데 그것만 돌면 장례식장이 있었다.

누군가를 살려 내야 하는 병원과 누군가 죽으면 가는 곳인 장례식장이 이토록 붙어 있다는 건 퍽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름도 같았다.

태화 의료원과 태화 의료원 부속 장례식장.

‘따지고 보면 병원만큼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도 없긴 하니까.’

[여기 올 때마다 그 소리 하는 거 자각하고 있습니까?]

‘말하면서 느꼈어.’

[다행입니다. 인지 기능이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바루다가 수혁의 감상에 초를 치고 있었으나, 수혁은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이현종을 걱정할 주제가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과 함께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빈소가…… 아, 여기네. 4번.”

“아이고, 혼자 키우신 거야?”

“이혼하셨어. 재작년인가…….”

“아.”

그사이 앞서가던 이현종과 이기자가 환자 빈소를 찾았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면서였다.

“원래는 금슬 정말 좋았는데…… 둘째한테 어머님이 좀…… 소홀했던 게 원인이 됐지.”

“아이가 아프면 아무래도 아픈 애한테…….”

“응,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 하여간 정말 최선을…… 최선을 다하셨어.”

“그렇군. 아이고.”

그 대화를 들으면서 김보영 교수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리곤 옆에 서 있던 레지던트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하지 말걸. 하지 말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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