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화 최선을 다하는 게 능사가 아닐 수도 (3)
수혁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벌써 빈소 안으로 들어와서였다.
딱히 수혁이 빨리 움직여서는 아니었다.
그저 두경부외과 김보영 교수가 느릴 뿐이었다.
그야말로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고 해야 할까.
“교수님, 괜찮으세요? 그냥 저만 다녀올까요?”
오죽했으면 옆에 있던 레지던트가 이런 말을 했을 지경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김보영 교수의 얼굴은 정말이지 말이 아니었다.
“아니, 아냐. 그래도 인사해야지. 소담이랑 어머님 둘 다…….”
“음, 네. 그건…… 그렇긴 하죠.”
“가자. 이기자 교수님은 벌써 들어가셨지?”
“네. 아까 이현종 교수님이랑.”
“진짜 대단하신 분이다.”
같은 환자를 보다 보면, 그 환자가 쉬운 환자가 아니라면 서로 다른 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대감 같은 게 생기기 마련이었다.
병과 맞서 싸우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일종의 전우가 아니던가.
특히 그 병이 뮤코다당류증과 같이 압도적인 적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김보영은 이기자와 더불어 같이 술자리도 몇 번 가진 적도 있었다.
우연찮게 김보영은 싱글, 이기자는 사별한 탓에 돌싱인지라 저녁이 좀 널럴하기도 해서 사실 꽤 자주 만났더랬다.
‘애들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인데.’
‘나는 애를 사랑해서 소아과가 됐어’와 같이 노골적인 대사로 말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이기자 교수의 삶의 궤적을 보면 절로 느낄 수 있었다.
자기 애 관련한 일이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에서 아픈 아이들을 우선하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도리어 배우자 죽음의 징후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자책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길을 걷고 있지 않나.
“진짜 대단해.”
김보영은 연신 혀를 내두르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빈소 안으로 들어섰다.
아까 이기자 교수와 이현종 교수가 힘을 써 준 덕에 꽤 비싼 편인 태화 의료원 부속 장례식장을 빌리긴 했으나, 그래서 더 썰렁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아직 아이의 죽음이 주변에 알려진 지 얼마 안 된 탓도 있겠지만 아이 엄마가 워낙에 소담이에게만 집중한 지 오래되지 않았나.
아마 어지간한 인간관계가 아닌 이상에야 다 끊어졌을 터였다.
‘그래. 나라도 오길 잘했어.’
아이가 본격적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지난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누구보다 강한 모습을 보여 준 어머니이지만.
어찌 그 상황에서 상처가 남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제 어머니 마음은 다 닳고 스러져 가고 있을는지도 몰랐다.
어떤 방식의 위로가 되었건 간에 필요하긴 할 거란 얘기였다.
“어머니.”
“아이고, 교수님.”
의외로 아이 엄마는 울고 있지 않았다.
지난 세월 흘린 눈물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내심 이날이 올지 알고 있어서였을까.
도리어 밝은 얼굴이었다.
“덕분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랑 소담이…… 그때 교수님 아니었으면 이렇게 오래 함께 있지 못했을 거예요.”
“네네.”
할 말이 없어진 것은 김보영이었다.
정말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입이 잘 안 떨어질 뿐이었다.
‘내 덕이라고?’
그때 기관 절개술을 해 놓은 탓에 소담이가 고비를 넘기고, 그 수술에 의지해 몇 년 더 산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소담이는 정말 행복했을까?
어머니는 행복했을까?
‘부쩍 늙으셨잖아요.’
김보영보다 어린 보호자는, 처음 봤을 때만 해도 풋풋한 느낌이 있었던 어머니는 이제 김보영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제아무리 기관 절개를 해 놨다 해도, 그 절개한 창이 안정된 지 오래라 해도, 계속 석션을 하지 않으면 숨이 멈추게 되는 소담이 때문이었다.
덕분에 어머니는 지난 4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시간이라도 마음 편히 자 본 날이 없었다.
길어야 3, 40분이 흐르면 일어나 아이의 기도에서 가래를 제거해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수술을 한 건 김보영이었지만 숨을 지속해서 불어 넣은 건 어머니라 할 수 있었다.
“교수님, 울지 마세요. 저랑 소담이는 정말 감사해요. 감사하고 있어요.”
“그…… 네, 알겠습니다. 저도, 저도 감사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김보영은 도저히 더 소담이 사진이 놓인 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도망치듯 밖으로 나오자, 이기자와 이현종 그리고 수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안 했지? 여기서 먹는 건 좀 그렇고…… 밖으로 갈까? 한잔해야 할 거 같은 얼굴이라.”
그중 이기자가 다가와 말했다.
“거기 안 선생도 같이 가지? 얼굴 많이 봤잖아. 가서 일이 손에 잡히겠어?”
“아, 네.”
레지던트도 챙겼다.
김보영은 딱히 답을 하지 않았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 후문 쪽 길 건너에 위치한 먹자골목이었다.
먹자골목이라 봐야 학생들이나 레지던트들이나 회식 때 오는 곳이다 보니 솔직히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즐겨 먹을 만한 곳은 없었다.
그러나 미식가로 유명한 이현종도 오늘만은 맛이 아니라, 그저 이기자를 위로하러 온 참이기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
수혁은 기인 이현종조차 저러고 있는데 여기서 더 이상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애써 참았다.
[아……. 여기 다 별론데.]
바루다만이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수혁에게만 들리는 말들이었으니.
그리고 이제 수혁은 고작 이 정도 말에 표정이나 행동이 흔들리지 않는, 소위 말해 바루다 데리고 다니기에 고수가 된 마당이었다.
“그럼 여기서 먹을까? 그나마 깔끔해.”
이현종은 먹잘 것이 없는 와중에서도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리는가 싶더니, 중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이현종이 곧잘 가는, 그러니까 코스 요리를 주력으로 하는 그런 중식당은 아니었다.
탕수육, 마라샹궈, 깐풍기 등을 시켜서 백주랑 곁들여 먹기 위한 그런 곳이었다.
‘여기는 그나마 괜찮지.’
[아, 좋죠. 근데 백주 너무 먹지 마세요. 술도 약하면서 취하면…… 나는 수혁 수행 속도 느려지면 늘 불안하다고. 그렇게 고착화될까 봐.]
‘내가 뭐 하러 먹냐. 지금 여기 딱 마시고 싶은 사람 셋이나 있는데. 알아서 드시고 취하실 듯.’
[그러게요. 무슨 의사들이 이렇게 감상적이람.]
수혁이나 바루다가 뭐라고 떠들든 간에 이현종이 나서서 주문을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탕수육에 마라샹궈, 깐풍기에 양꼬치 그리고 연태 고량주를 시켰다.
메뉴판에 적힌 메뉴는 훨씬 많지만 여기서 시킬 만한 게 이것뿐이라는 건 손님도 주인도 잘 알아서 그런가, 굉장히 금방 나왔다.
일단 술이 제일 먼저 나왔는데, 김보영은 맨 속에 그 독한 고량주를 일단 한 잔 탁 털어 넣었다.
“어어. 이거면 취하잖아.”
술이 세서가 아니라 그냥 취하고 싶어서일 터였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고 해서 어찌 매일 무감할까.
가끔은 이렇게 둑이 무너지는 날도 있기 마련이었다.
“네, 좀 취하려고요. 자꾸…… 그 날이 생각나서.”
“그 날? 아, 수술해 준?”
“네. 교수님이 그때 했던 말도 생각나요. 잘 생각해서……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못하겠다고 하면 설득하겠다고…….”
“그랬지. 근데 결국, 했지. 나도 그러길 바랐던 거 같아. 김 교수가 하겠다고 할 때 내심 기뻤어.”
“저도…… 아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어요. 6살 애가 왜 벌써 가야 되나……. 그런 생각만 들었어요.”
“그래, 6살은 어리지.”
“그런데 10살이라고 다른 거 같지는 않네요.”
김보영은 또 한 잔 술을 따르며 말했다.
이기자 교수도 슬며시 잔을 내밀었다.
레지던트도 그랬는데, 이현종과 수혁은 아무래도 낄 자리가 아닌 거 같아 뒤로 빠져 있었다.
그렇다고 안주 격으로 시킨 요리를 축내기도 뭐해서 뻘쭘한 얼굴 그대로 있었다.
아니, 뻘쭘한 얼굴로 있는 건 수혁뿐이었다.
이현종은 그저 잔잔한 얼굴로 대화를 듣고 있었다.
심장을 다루는 의사에게 어찌 이런 경험이 없었겠는가.
오래된 기억을, 이제야 경험이란 말로 치환할 수 있게 된 상처를 더듬고 있었다.
“다르지…… 않지는 않아. 김 교수, 아이는 4년 더 살았어.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거야.”
“그동안 어머니…… 20년은 더 늙었어요. 기억나요? 처음 봤을 땐 안 그랬잖아요.”
“그랬지.”
“이혼도 하셨다면서요. 그때 제가…… 제가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하지 말았어야 했어.”
이기자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김보영을 보면서, 김보영보다 더 나이가 많은, 그래서 더 이런 경험이 많고, 이제는 더 이상 뮤코다당류증에 대해 기관 절개술을 하지 않게 된 이비인후과 교수를 떠올렸다.
‘김 교수도 그렇게 되겠구나.’
이 자리에서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말을 하더니, 그 후로는 절대 협진을 받아 주지 않았다.
의사에게나 환자에게나 보호자에게나 못 할 짓 같다고 하면서.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거 같은데…….”
해서 이기자 교수가 또 하나의 아군을 잃었구나 하고 있으려는데, 김보영이 말을 이었다.
감정이 격해서 그런지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붉어진 상태였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보호자 분은 감사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잘못한 거 같은데…….”
“뭐라고 하셨어?”
“그래도 저 덕분에 4년간…… 더 추억 쌓았다고. 소담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거 같다고…….”
“그것도 사실이긴 하지.”
“하아.”
김보영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이혼이라…… 거기까지는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4년간 많이 힘들긴 했을 겁니다. 지금 와서 분석해 보니 아이 엄마의 피부 상태나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30대가 아니라 거의 40대 후반에 가깝습니다.]
‘고생…… 하셨겠구나. 그럼 혜준이라는 애도…… 거기 부모님도 그렇게 될까? 사이좋아 보이던데 이혼도 하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아이의 투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혼율이 증가한다는 보고는 있습니다.]
‘어렵네. 어려워……. 어찌해야…… 아, 이래서 날 데리고 왔나?’
수혁은 계속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뭔가 깨달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이현종은 그런 수혁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의학이라는 것이 통계의 집합이지만 결국,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일 아닌가.
가치 판단이 빠질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이걸 간과하고 있으면 실력 좋은 의사는 될 수 있어도 훌륭한 의사가 되기는 어려웠다.
사실 보통의 의사는 자연스레 이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었다.
실패는 필수 부가결하니까.
‘넌 오히려 너무 뛰어나서 경험이 없지. 그래서 데려왔다. 마음이 좀 혼란스러워도…… 듣고 있으면 도움이 될 거야.’
이현종은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사이 김보영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중간에 술을 한 잔 더 마셔서 그런지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다.
“그래서 말인데, 교수님.”
“응?”
“이거 앞으로 몇 년 안에…… 의학 발전되면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겠어요?”
“모르지. 연구는 진행 중이지만, 알잖아? 선천질환은 어려워.”
“그래도 바늘구멍 같은 기회는 있겠죠?”
“있지.”
“그럼…… 혜준이도 할게요. 또 이런 모습을 보게 되면 제가 어떤 마음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