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95화 (595/1,303)

595화 그럼에도 우리는 기적을 바란다 (1)

김보영은 몇 번인가 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 보겠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엔 다소 끔찍한 면이 있었다.

수혁은 온 세상의 슬픔을 다 모아서 한데 뿌리면 저런 느낌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어떤 심정일지 너무 들여다보여서 더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난 이런 건 아예 생각도 못 했네.’

[의학적인 부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의사는 환자의 치료만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닌 거 같은데. 넌 이런 거 보면서 아무 느낌이 없냐?’

[뭔가 속이 간질거리는 느낌은 있습니디만…….]

완전히 공감하면서 동시에 무언가 껍데기를 깬 느낌까지 들고 있는 수혁과는 달리, 바루다는 영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마냥 한심하다 여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인공지능 주제에 속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있다는 말이라도 하는 게 대견한 일 아니겠나.

‘내가 꽤 오랫동안 네가 인공지능이라는 걸 잊고 있었나 보다.’

해서 수혁은 바루다에게 뭐라고 하는 대신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속으로 혜준이에게, 또 그 가족들에게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 주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되는 방안일지 고민하면서였다.

아니, 비단 혜준이만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 마주쳐야 할 수많은 환자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의학적으로 한계가 명확한 사람들에게 나는 의사로서 과연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까.

수혁은 의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의학적인 고민이 아닌 사람 자체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니…… 아닌데. 내가 기관 절개술을 받지 말라고 설득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죽음을 강요할 수도 있는 고민이었다.

의사라고 해서 신은 아닐진대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떠올린 것만으로도 죄스럽단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이 자리에 있는 선배 의사들은 이미 거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존경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바이털을 그러니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정한 선이 있다는 얘기 아니겠나.

오히려 수혁이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더 겸손해야겠다. 내가 요새 의학 지식 좀 늘었다고 너무 까불었어.’

수혁이 여러 고민을 거쳐 자아 성찰에 이르렀을 때쯤, 이기자 교수가 입을 열었다.

김보영 교수와 대작을 정직하게 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기자 교수의 얼굴도 불콰해진 지 오래였다.

예전엔 술이 정말 셌다고 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살짝 벅차 보이는 감도 있었다.

“김보영 선생. 괜찮겠어?”

“괜찮아야죠. 그래야 환자를 살리죠.”

“이번에 봐서 알겠지만, 후를러는…….”

“저보다 교수님이 훨씬 잘 알지 않으신가요? 지금 외래에 데리고 있는 후를러 증후군만 스무 명 넘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이기자 교수는 김보영 교수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기자 교수가 그토록 드문 환자를 많이 끌고 갈 수 있는 건, 비단 태화 의료원이 제일 유명해서인 것도 아니고, 이기자 교수가 제일 유명해서인 것도 아니기에 그랬다.

‘현재 우리나라 소아과 교수 중에 이걸 제일 잘 견디는 게 나여서겠지.’

소아과와 정신과는 다른 과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대상이 되는 환자들 때문이었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평생 지속하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소아과 의사들은 아이가 잘못될 때 상처를 받았다.

정신과 의사도 마찬가진데, 특히 꾸준히 다니던 환자 보호자가 찾아와 안 좋은 소식을 전할 때면 무너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애정이 있는 대상이 잘못되는 것을 필연적으로 봐야 하는 직업이 바로 이 두 과의 교수들이었다.

“나는 아주 잘 알지.”

“근데도 어떻게 그렇게 계속 보세요? 차가우신 분도 아니잖아요.”

“난 기억력이 나쁘거든. 얼마나 아팠는지 금방 잊거든.”

“그래도…….”

“그리고 난 내 가족을 잃은 적이 있잖아. 현종이 있는 자리에서 해도 될 말인지는 모르겠다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병으로 잃은 적이 있잖아. 더는 그런 사람이 없길 바라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아. 그렇지만 위로가 되어 줄 수는 있지. 게다가…….”

“게다가요?”

김보영은 이제 아예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애초에 주량을 아득히 넘어서게 마셔서이기도 했거니와 감정이 주체가 잘 안 돼서이기도 했다.

잘 보면 눈시울도 붉어져 있었다.

“현대 의학은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있잖아. 또 모르지. 우리가 간신히 숨 붙여 놓은 아이를 기적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올는지도.”

“아까는…… 아까는 어렵다고 했잖아요?”

“어렵다고 했지, 불가능하다고는 안 했어. 이런 생각이라도 하고 있어야지. 나는 의사잖아. 사람을 고쳐야 된다고. 병한테 마음부터 지고 들어가면 안 되지.”

“마음부터 지고 들어가면 안 된다……. 제가 간혹 환자들한테 하는 말이네요.”

두경부암.

얼굴에 생기는 암.

생각해 보면 얼굴만큼 많은 기능을 하는 조직도 없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숨을 쉬고 또 냄새를 맡고, 입으로는 맛을 보고.

거기에 더해 얼굴은 우리가 누구인지 말없이 말해 주는 식별 기관이기도 하지 않나.

이곳에 암이 생겼다는 말은 곧 이 모든 기능이 위협받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다른 과에서보다 마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환자가 너무 많았다.

‘나는…… 나는 심지어.’

김보영 교수는 레지던트 시절 병원 계단에 목을 매달아 버린 환자도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트라우마도 생겼지만, 그래서 더 두경부암 환자들을 잘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마음부터 지고 들어가지 말고 같이 싸우자는 말을 했다.

한데 지금 자신이 지고 들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참이었다.

“응, 이건 내 생각일 뿐이야. 아직까지는 희망이 없다고 하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니까.”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지 어떨지는 모른다, 이 말이군요.”

“그래.”

“네, 역시 저는 한 번 더 기적에 희망을 걸어 봐야겠네요.”

“괜찮다면 그렇게 해 줘. 나야 고맙지.”

“지금은 꼴이 이래 놔서 안 될 거 같고. 내일 하죠. 그러려면 슬슬 일어나야겠네요.”

“그래, 그래. 집으로 가? 아니면.”

“오랜만에 집으로 가죠, 뭐.”

김보영은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반해 수혁은 뭉그적거렸다.

다리가 불편해서는 아니었다.

[왜 그러십니까? 근력은 충분합니다. 술도 취하지 않았고.]

‘아니, 그냥 좀 심란해졌어. 뭐가 옳은 건지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너한테 이런 말 해 봐야 별로 소용은 없을 거 같은데.’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면 수혁은 방금 이기자, 김보영 교수와는 달리 이런 경우 치료를 하지 않아야 하지 않나 하는 결론을 내려서였다.

바루다는 그런 수혁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수혁.]

‘응?’

[수혁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세계 최고의 내과 의사가 되는 것이지.’

[세계 최고의 내과 의사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그리곤 갑자기 속사포처럼 질문을 내던졌다.

아무래도 수혁의 이 고민을 하루빨리 끝내고픈 모양이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수혁은 환자를 봐야 합니다. 더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숙주인 수혁이 흔들리면 어쩔 수 없이 바루다도 흔들리게 되니까.

바루다가 습관처럼 수혁의 머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만, 사실 이만하면 아주 훌륭한 두뇌 아닌가.

하지만 정신적으로 흔들리게 되면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수혁은 바루다의 질문에 뻔히 담긴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환자라도 진단할 수 있고, 최적의 치료 방법을…… 제공하는 거지. 근데 이제 최적의 치료가 뭔지 모르겠네.’

[수혁,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호스피스 병동을 부정하는 거야?’

[덜 고통스럽게 죽기를 바라는 것일 뿐, 죽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의학이 해당 질병을 완전히 정복하게 되면 그때도 그 환자들이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수혁이나 이기자 또는 김보영, 이현종과 같은 바이털과 의사들도 한때는 모두 환자를 조금이라도 더 살리는 데만 매진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만 주는 거 같다는 의견도 나오기 시작했고 주류 의학에서 그 의견을 일부 받아들임으로써 등장한 것이 바로 호스피스 병동이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학이 아니라, 덜 고통스럽게, 좀 더 인간답게 죽을 수 있게 해 주는 의학.

충분히 의미 있는 의학이었으나, 방금 바루다의 말을 도저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완전히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아무도 호스피스 병동을 택하진 않을 터였다.

‘아니.’

[수혁은 그 희망을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환자를 끊임없이, 최대한 오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근데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그건 어쩌지?’

[그럴 땐 수혁도 협진을 내십시오. 세계 최고의 의사라고 해서 반드시 혼자 진료해야 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아, 협진. 아…….’

수혁은 터덜터덜 병원 후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내 바루다와 얘기도 하고 고민도 이어 나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현종은 그런 수혁 옆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얘는 똑똑한 놈이고, 또 강한 놈이니까…… 현명한 답을 내겠지.’

수혁의 고민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스승이라고 해도 가르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정답이 없는 분야가 바로 그러했는데, 이현종은 바로 이것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마 당장 신현태나 조태진만 불러다 앉혀 놓고 물어봐도 이현종과는 그은 선이 다를 터였다.

‘그걸 생각을 못 하고 있었네.’

[물론 수혁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것이 좀 서툴기는 합니다.]

‘그건 너 때문이잖아.’

[저한테 협진을 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만, 저는 늘 같은 방향의 조언을 할 겁니다.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도 수혁에게는 도움이 될 겁니다.]

‘음……. 그래도 이건 꽤 좋은 조언인데.’

[그럼 이 바루다의 우수성을 칭찬하십쇼.]

‘하.’

이현종은 수혁이 잘 가다 말고 한숨을 쉬는 것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진지하기 이를 데 없구만. 내 아들이야……. 내 아들.’

그리곤 얼토당토않은 오해를 덧붙여 나갔다.

이기자는 그런 둘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나는 세상 심각한 얼굴을 하다가 뭔가 화라도 난 듯 한숨을 쉬어 댔고, 다른 하나는 그런 수혁을 보면서 세상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우웅.

적막을 깬 것은 핸드폰 소음이었다.

“어.”

수혁의 핸드폰이었는데, 응급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술 아예 안 먹길 잘했네.’

환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고민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무슨 명상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홀가분해진 수혁은, 천생 의사의 얼굴을 한 채 전화를 받았다.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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