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6화 그럼에도 우리는 기적을 바란다 (2)
“교주님, 저 안대훈입니다.”
“어……. 옆에 사람이 없니?”
전화를 건 이는 안대훈이었다.
머릿속이 확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수혁은 조금 더럽혀졌다는 생각과 함께 환자와는 별 관계 없는 질문을 던졌다.
“수혁아, 나 오늘은 기자랑 가야 할 거 같다.”
“아, 네. 내일 봬요.”
“어, 그래.”
그사이에 이현종은 김보영 교수를 위로하기 위해 애쓴, 그러는 과정에서 옛 기억에 의해 속이 상했을 이기자와 함께 있기 위해 어깨를 툭 치고는 달려 나갔다.
딱히 힘이 되어 주기 위해 간다는 느낌보다는 좋아서 달려 나가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내내 방에 혼자 있던 강아지가 주인 오니까 꼬리 치는 느낌이랄까?
[실례…… 아닐까요? 이현종이 그래도 곧 정년입니다.]
‘근데 엉덩이를 너무 흔들면서 달리지 않냐?’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체통이라곤 없는 사람이군요.]
‘밖에 나가면 또 안 그렇던데.’
[그만큼 이기자 교수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나도 저런 사람이 생기려나.’
[일단 환자부터 보시죠.]
‘그래.’
수혁은 그런 이현종을 처음에는 좀 딱하다는 눈으로, 그러다 조금 후에는 부럽다는 눈으로 보다가 이내 안대훈과의 통화에 집중했다.
“네, 교주님. 사람들은 물렀습니다. 지금은 신도들뿐입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인마. 왜 교주라고 불러, 자꾸.”
“후후.”
“처웃지 말고. 어떤 환잔데.”
“네, 교주님.”
안대훈은 교주라는 말을 실은 좋아하시면서 이런다는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안대훈의 말도 안 되는 생각과는 별개로 수혁은 곧 케이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놈이 미친놈 같은 소리를 자주 해 대긴 하지만, 그래서 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케이스 하나는 기가 막히게 감별하지 않던가.
애초에 머릿속에 수혁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살아서이기도 하겠으나 안대훈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해서 더더욱 그럴 터였다.
“13세 남아, 갑작스러운 얼굴 부종으로 내원하였습니다. 숨 쉬는 것은 아직 괜찮지만…… 언제 응급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이비인후과에도 알려는 놨습니다.”
“그 정도로 부종이 심해? 여차하면 기관 삽관하면 되잖아?”
“그게…… 방금 내려와서 파이버옵틱으로 후두 쪽 봤는데, 후두개 쪽이 많이 부었습니다. 다행히 그게 뒤로 넘어가서 기도를 가리고 있진 않은데요. 그냥 넣는 건 어려워 보입니다.”
“약은, 약은 썼어? 들어 보니까 아나필락시스 같은데?”
“네, 쓰고 있습니다. 근데…… 음.”
“왜?”
“일반적인 알러지 반응이라면 지금쯤 쓴 약에 반응이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딱히 아이가 뭘 먹거나 한 게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래?”
알레르기 반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처치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문진이었다.
13세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아이가 어떤 음식이나 약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
환자 본인이야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없다고 쳐도, 보호자는 알고 있는 게 보통이었다.
“보호자는 없어?”
“아빠랑 같이 왔는데, 특별히 앓고 있는 알레르기는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음, 나 일단 가고 있어.”
“얼마나 걸리실까요?”
“병원 안이야. 금방 가. 지금 응급실 보인다.”
“아, 네. 여기는 처치실 3번 방입니다.”
“오케이, 알았…… 너 주변에 사람 없다지 않았어?”
“신도들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
이놈의 사이비 종교가 대체 어디까지 퍼지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교주 본인이 부종하는 종교 아닌가.
근데 이렇게 전도가 자꾸 된다고?
심지어 해외 지부까지 생기지 않았나.
이거 나중에 혹시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건 아닌지 덜컥 걱정까지 들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게 다행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수혁은 곧 환자 생각을 하느라 교주니 뭐니 했던 것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알레르기를 모른다고 해서 알레르기를 배제할 수는 없지.’
[네. 안면부 부종의 가장 흔한 원인은 역시 알레르기입니다.]
‘아주 심하게 온 모양인데……. 그럼 약물이려나?’
[보다 자세히 문진해 봐야 합니다. 마침 도착했군요. 저곳입니다.]
바루다와 얘기 나누느라 집중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응급실 안이었다.
이제 수혁도 레지던트 나부랭이가 아니고, 부센터장이지 않나.
당연히 들어오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인사를 건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한 것들조차 잊을 정도로 집중을 한 상태였는데, 예전 같았으면 역시 좀 이상하단 평을 들었을 만한 일이었다.
“역시 환자 때문에 온 거지?”
“저 교수님은 환자 안 좋으면 진짜 눈에 뵈는 게 없는 거 같더라.”
“달리 천재겠어? 집중력도 남다른 거겠지.”
“멋있다…….”
“근데 사이비래.”
“사이비?”
“어, 교주라고. 자기는 의학이랑 결혼한 몸이라고 하던데. 안…….”
“아, 안대훈. 맞아 나도 들었다. 그 사람도 그래서 의학이랑 결혼했다며. 수제자라던데.”
지금은 진짜 이상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이현종이 수혁은 의학이랑 결혼했다는 말을 한 데 이어 안대훈이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처럼 그 말씀을 이어 나가겠다 선언한 까닭이었다.
이처럼 수혁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비 교주가 되어 가고 있었다.
드륵.
사이비 교주 아니, 수혁은 곧 처치실 내부로 들어섰다.
그리곤 안대훈의 인사에 대강 화답하고는 환자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퉁퉁 부었네.’
[전형적인 아나필락시스 소견이군요.]
‘그래? 그런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습니까?]
‘전형적이라기엔…… 안면부 부종이 너무 심해.’
[심한 알레르기를 아나필락시스라고 합니다, 수혁.]
‘나도 알아. 아는데, 그래도 정도를 지나쳐. 방금 병원에 온 거라면 몰라도…….’
[아, 약이 들어갔군요. 스테로이드와 에피네프린. 그런데도 이렇다는 건…… 확실히 이상하긴 합니다. 안대훈의 판단대로 일반적인 알레르기 반응이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수혁의 시진은 다른 이들과는 좀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이미 획득한 데이터와 비교를 해 볼 수 있어서였다.
물론 용량의 문제로 저해상도의 데이터가 대부분이었으나 그럼에도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름이……?”
“김희성입니다.”
“아, 그래. 희성이. 희성아, 내 말 들리니?”
수혁이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반응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 옆에 있던 보호자였다.
“저기, 지금 좀 애가 의식이…… 흐린 건 아닐까요? 아까부터 말해도 잘 대답을 안 해서.”
“그래요? 이상한데.”
아이가 아픈 것만큼 부모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은 드물 터였다.
수혁은 보호자의 걱정 어린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아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 마주침이나 깜빡임 등은 완연한 정상이었다.
“희성아?”
“아, 네.”
한데 부르는 말에 대한 반응이 좀 느렸다.
만약 뇌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가능한 질환 몇 개를 떠올릴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과 바루다는 지금 이 환자의 안면부 부종이 비정상이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희성아. 지금 내 입술 읽었지?”
“어……. 무슨 말인지 잘.”
“소리가 안 들려?”
“아, 네. 잘.”
덕분에 수혁은 지금 환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당연히 추론만으로 막 넘겨짚지는 않았다.
확인이 당장 불가하고, 시간이 급하다면야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이비인후과 선생님 있나?”
“아, 네. 여깄습니다.”
해서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를 불렀다.
기도가 위험해질 수 있는 만큼, 레지던트는 처치실 안에 대기 중이었다.
기관 절개술에 필요한 물품을 늘어놓고서였다.
‘지금 째라는 건가?’
물론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3년 차쯤 되면 기관 절개술에 있어서는 도가 트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소아에 대한 기관 절개술은, 그게 13세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후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어른하고는 달라서였다.
때문에 레지던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장갑을 고쳐 끼웠다.
수혁이 찾은 게 그 때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이 귀 좀 볼 수 있을까요? 파이버옵틱으로.”
“아……. 네. 알겠습니다.”
왜 보라는 건지 이해는 안 갔지만.
하여간 목 째라는 것보다는 훨씬 할 만한 요구였다.
그리고 딱 귀 안에 파이버옵틱 끝을 넣자마자 왜 넣어 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 귀가 막혔…… 막혔습니다.”
“그래요? 귀지로? 아니면 그냥 귓구멍이?”
“귓구멍이요. 외상…… 외상은 없는데?”
“부종 때문에 막혔을 거예요.”
“네? 부종으로 이만큼이나?”
“알레르기는 아니란 얘기가 되지. 아버님?”
아나필락시스로 인한 안면 부종은 굉장히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약을 쓴 상태에서조차 귓구멍까지 막을 정도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진단의 저울은 이제 알레르기 외의 다른 질환 쪽으로 확 기울고 있었다.
“네, 교수님.”
“아이, 이랬던 게 이번이 처음인가요?”
“어……. 네. 처음입니다. 한 번도…… 한 번도 이런 적은.”
“그럼 오늘 혹시 특별한 일이 있었을까요?”
수혁은 보호자, 그러니까 아이의 아빠가 들고 있는 백화점 쇼핑백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아이 아빠도 자신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내려다보고는 답했다.
“아, 네. 희성이 치과 가는 날이어 가지고요. 선물도 사 주고 그랬습니다.”
“치과?”
“네. 얼마 전에 검진했는데 치료받아야 할 거 같다고 해서요.”
“흐음. 치료가 뭐 심각했나요?”
“아뇨. 30분 정도 걸렸나……?”
“치과에서 30분이면 긴 건 아니죠. 그럼 약은 혹시 받은 게 있나요?”
“네, 받기는 했는데 먹지는 않았습니다. 저녁 전에 이렇게 돼 가지고…….”
보호자는 병원에서 받았다는 약을 건네주었다.
항생제가 섞여 있었는데, 별거 아니었다는 말과는 달리 그래도 꽤 어딘가를 긁어낸 모양이었다.
어지간한 상처가 아니고서야 정말 잘 아무는 곳이 구강 아닌가.
워낙에 혈액순환이 뛰어난 곳이라서 그랬다.
‘신체적인 손상이 유발했나?’
[그렇다면 정말 알레르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치과 치료 도중 뭐가 들어갔을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네. 음.’
[확인은 해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환자는 입원시키죠. 이 상태로 응급실에 깔아 두는 건 위험해 보입니다.]
‘그래, 그래야겠어.’
수혁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우선 보통 알레르기 반응이 아니거나 아예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입원해서 보는 것이 안전하겠습니다.”
“아, 네네. 저도…… 저도 그게 좋겠습니다. 애가 갑자기 이러니까…… 아유, 이거야 원.”
“그럼 바로 저희 센터로 입원하죠. 여기서 하지 못한 검사가 있다면 거기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