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화 그럼에도 우리는 기적을 바란다 (3)
수혁과 바루다는 환자를 센터로 옮기는 동안 내내 환자에 대해 생각했다.
그 바람에 걸음이 조금 서툴러졌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병원 복도라는 곳은 바닥에 거치적거리는 게 없게끔 설계되어 있지 않나.
의사도 환자도 보호자도 죄다 정신없이 이동할 때가 많은 곳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옆에 주교 안대훈도 있는 마당이었다.
‘교주님을 부축하고 있다…….’
녀석은 머리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수혁이 넘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 녀석 덕분이라고 하면 수혁이 좀 찜찜한 기분이 들겠지만 하여간 덕분에 수혁은 별 어려움 없이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특별한 사건은 치과 치료. 즉 외상이라고 볼 수 있지.’
[네, 그것으로 유발된 안면 부종…… 선뜻 짚이는 건 없군요.]
환자의 문제 목록은 우선 안면 부종이었다.
얼굴 형태가 원래 어땠는지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망가진 상황이긴 했어도, 사실 이거 하나만 놓고 볼 때는 그리 심각한 건 아니었다.
별의별 케이스가 하루에도 몇 개씩 발생하는 곳이 바로 대학 병원 아닌가.
아마 처음 트리아지, 그러니까 환자 분류를 맡았던 응급실 간호사도 이 환자를 처음 봤을 땐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터였다.
아 또 아나필락시스구나.
에피네프린이랑 스테로이드 주거나 여차하면 기관삽관까지 하겠구나.
‘그러게. 뭔가 더 캐 봐야겠는데.’
[네, 저도 그렇게 판단합니다. 아, 부종의 정도도 심각합니다. 이 정도의 부종은 결코 흔하지 않죠.]
‘어, 어어. 그렇지. 확실히…… 귓구멍이 좁아질 정도의 부종은…… 정말 드물지.’
[사례를 찾아봐야겠습니다.]
하지만 부종의 양상과 정도가 좀 이상했다.
일단 이만큼이나 부어오른 경우라면 당연히 기도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 아니던가.
하나 환자의 숨 자체는 괜찮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귓구멍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증상을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하여간 선행해서 발생한 사건은 치과 치료 하나뿐이었다.
어쩌면 보호자나 환자가 더 안정을 취하고 다시 물었을 땐 다른 답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지금은 그랬다.
드르륵.
그사이 환자는 병실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일반 병실과는 달리 스테이션 쪽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창이 뚫린 병실이었다.
1인 중환자실이 보편화 되어 있기도 하고, 또 중환자실 병실료가 너무 비싸서 준중환자실이 보편화 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흔한 형태의 병실이었으나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병실이었다.
“어…… 여기는…….”
“네, 프라이버시라고는 없죠.”
아버지의 물음에 수혁이 답했다.
언젠가 이현종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서였다.
‘미국 애들이 우리보다 임상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보다 후지지. 하지만 비싼 보험으로…… 마구 때려 박는 병원의 치료 성적은 진짜 좋아. 차이점으로 뭐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하나만 꼽자면 시스템이야.’
이현종은 이제 65세가 가까워져 오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향상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아직도 본인 실력의 정점이 오지 않았다 믿고 있다고나 할까?
시술에 있어서야 당연히 꺾여서 내려가고 있다고 단언했으나 머리 쓰는 일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현종은 여전히 의학적인 판단에 있어서만큼은 날카로웠으니까.
그래서 그럴까? 자신의 부족한 점이 있는지 늘 확인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 여부를 항상 찾아다녔다.
이 병실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되는 건가요?”
“물론 누군가 아프다는 게 중요한 개인 정보긴 해요. 하지만 병원에서 하는 일 중에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치료죠.”
“네, 맞습니다.”
“이렇게 창만 뚫어도, 밖에서 바로 환자 상태를 스테이션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지금이야 호흡이 괜찮지만…… 안면 부종이 이런 경우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모니터도 하고 있지만 알람이란 게…… 거기에만 의존하기엔 불안한 감이 있죠.”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최근 리모델링 한 까닭에 여전히 새 냄새가 나는 창문을 만지작거리면 설명을 마쳤다.
요약하면 이렇게 하는 게 환자 예후에 더 좋다 이 말이었다.
그 말을 세상 어떤 환자나 보호자가 싫어하겠는가.
정말 삐뚤어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고마워하기 마련이었다.
“잘 봐줘요. 바이털 조금이라도 변하면 저 불러 주시고. 어차피 여기나 저기 당직실에 있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혹 모를 일이니까.”
수혁은 그렇게 보호자를 안심시키고는 담당 간호사에게도 당부했다.
간호사는 그런 수혁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교수급이 나 어차피 여기 있을 거라고 하는 말은 온전히 믿기 어려웠다.
잠은 자야지 않나.
집에도 가야 하고.
하지만 수혁은 레지던트와 교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이가 그런 것도 있는데, 그냥 사람 자체가 환자 보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았다.
‘좋은 사람 같은데…… 의학이랑 결혼을 하셔 가지고.’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좋은 의사가 되라는 법은 없으나, 좋은 의사는 대개 좋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간호사들이나 레지던트들이 보기에 좋은 의사라면 거의 100%라고 해도 좋았다.
당연히 수혁에 대한 간호사들의 호감도는 굉장했다.
아마 이현종이 퍼뜨린 소문만 없었어도 고백받는 일도 꿈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사이비라지? 그건 안 되지.’
간호사는 마지막으로 머리에 맺힌 땀을 병동 수건으로 조심스레 닦아 내고 있는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어휴.”
“네?”
“아뇨, 아닙니다.”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바람에 간호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스테이션 안쪽으로 사라졌다.
만약 수혁이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저 사람이 대체 왜 저랬을까 대해 아주 잠깐이라도 고민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수혁은 바루다와 이현종에게 절어 버린 지 오래였다.
심지어 정작 이현종은 의학이라는 세계에서 살짝 벗어나 이기자 교수와 현실 속 알콩달콩을 추구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읏차.”
“웃차.”
“너도 앉아? 넌 응급실…… 알레르기 파트 아냐?”
“네, 알레르기 파트 치프인데 응급실에서 노티가 와서 내려간 아주 가련한 사람이죠. 또 노티가 올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
내과라고 하면 다 비슷비슷할 거라 생각할 것이었다.
뭔가 비슷한 이미지 아닌가.
하지만 내과 안에서도 세부 전공에 따라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였다.
가령 소화기내과는 내시경을 하지 않나.
심장은 중재 시술을 하고.
이쪽은 외과 쪽에 가깝다 보면 되었다.
응급도 진짜 많고.
“저 알레르기 파트 이번이 한 4번 짼가 그런데 응급실 콜은 처음이에요.”
“그렇지, 사실. 입원 환자는 있어?”
“없습니다. 완전 개꿀.”
“그래, 좋겠다.”
그에 비해 알레르기 내과는 귀족 과였다.
외래 베이스로 돌아가는, 응급도 거의 없는.
그러면서도 환자가 적은 것도 아닌 데다가 현대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질환이기도 해서 연구도 하기 좋았다.
교수 자리만 많았다면 정말 인기과가 되었을 텐데, 병동 환자가 적다 보니 TO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태화 의료원같이 거대한 병원도 기껏해야 교수가 둘밖에 없을 지경이었다.
“아뇨, 좋지는 않습니다. 레지던트면 모름지기 배우는 사람 아닙니까? 외래에서 배우긴 하지만…… 아무래도 저는 좀 어려운 케이스가 좋아서요.”
“그래서 오늘 여기서 죽치고 있을 거야?”
“네.”
“그래…….”
안대훈은 애초에 그런 과에는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다.
아니, 수혁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시간도 낫겠다, 마침 수혁과 환자로 엮였겠다, 일어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어 보였다.
어이없는 새끼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내칠 이유도 없겠다 싶었다.
‘저번에 탈모는 확실히 도움이 됐지.’
[네, 그렇습니다. 환자는 사토요시 신드롬으로 확진되었습니다, 경과도 좋고요.]
‘음, 그래. 이번에도 혹 몰라.’
[네. 저는 소 뒷걸음질 치다 개구리 잡은 격이라고 판단하지만…….]
‘하지만?’
[이현종이 내년 센터 군 펠로우 TO 신청해 볼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조건을 다 제하고 의학적인 역량만 따지고 보면 전국에 안대훈만 한 레지던트는 없을 겁니다.]
‘아, 그건…… 그건 그렇지.’
일단 안대훈이 열심히 하는 놈이긴 하지 않나.
아니, 열심히만 하는 게 아니라 능력도 꽤 좋았다.
“그래, 일단 환자 문제 목록은 안면 부종이야. 외상하고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 정도가 아주 심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에피네프린, 스테로이드에 일정 부분 저항성도 있고.”
“네, 그렇게 솔팅 해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또 네가 생각나는 특이점 있으면 말해 줘. 나는 일단 보호자 분하고 더 대화해 볼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게다가 수혁의 말이라면 뭐든지 최선을 다하지 않나.
어떻게 생각해 보면 대단한 영광이기도 했다.
사실 안대훈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고 또 의사까지 되었을 만큼 똑똑한 놈인데 이토록 충성을 다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니까.
툭툭.
해서 수혁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안대훈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안대훈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대지 말자. 나대지 마…….’
안대훈은 금세 흐릿해진 눈을 애써 깜빡이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수혁은 자신이 20대 후반 성인을 손짓 하나로 울린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보호자에게 향했다.
보호자는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진, 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상태로 보이는 아이의 이마를 짚고 있었다.
“아버님.”
“아, 네. 교수님.”
“몇 가지 질문을 더 해 보려고요.”
“아……. 네네. 얼마든지요. 제가 아는 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수혁은 아까 했던 질문도 일부러 또다시 던졌다.
의학적인 사고라는 게 의료진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처음이지 않나.
반복하다 보면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득이 없었다.
해서 아예 다른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다.
“이전에는 아예 이런 일이 없다고 하셨죠?”
“네. 얼굴이…… 아유. 저런 일이 있었으면 알죠. 본인도 알고요.”
“얼굴이라…….”
[다른 곳은 부었던 적이 있는 걸까요?]
아까도 얼굴은 처음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럼 다른 곳은요?”
“그건…… 그건 제가 잘…….”
“희성아. 희성이는 어때?”
“음…….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것도 꽝인 듯했다.
희성이는 입술이 잔뜩 부어 발음이 불명확한 와중에도 제대로 답을 해 주었다.
그 모습에서 수혁은 아니, 바루다는 무언가 어색함을 느꼈다.
[아이, 통증이 있는 거 같습니다.]
‘통증?’
[부종이 아주 심하면 가능하죠.]
‘아……. 왜 아직 그걸 말을 안 했지?’
[알 수 없습니다만, 지금이라도 답을 들어야 합니다.]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