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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598화 (598/1,303)

598화 그럼에도 우리는 기적을 바란다 (4)

바루다의 분석에 의하면 희성이는 지금 통증이 있었다.

아주 강력한지의 여부는 얼굴이 부어 있어서 확인이 불가했지만.

하여간 미약한 사인은 볼 수 있었다.

왜 이걸 아무도 몰랐냐는 말은 하기도 애매했다.

애초에 안면 부종에서 통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드물뿐더러, 수혁도 바루다의 분석이 없이는 확인이 불가능했던 상황이지 않나.

심지어 지금도 확신은 없었다.

“희성아.”

“네.”

“혹시 아픈 데 있어?”

“네? 얼굴이요?”

“아니, 통증이 있냐고.”

“아…… 네.”

“어디가 아파?”

“배요.”

“배……?”

질문을 던진 수혁뿐 아니라, 옆에 있던 아버지도 깜짝 놀랐다.

얼굴이 저렇게 퉁퉁 부었는데 갑자기 배라고?

둘만 이러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라고 했던 바루다도 놀란 상황이었다.

아니, 놀란 것으로만 따지자면 바루다가 제일 놀랐다.

[뭐지? 대체 뭐야. 설마 동시에 다른 병이? 아니면 음.]

‘횡설수설하지 마. 어지러워.’

[안 그러게 생겼습니까? 새로운 증상이 나왔는데 너무 뜬금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하지 마. 어지러워.’

어찌나 놀랬는지 이상한 소리를 해 대며 파닥거렸다.

수혁은 그런 바루다를 애써 제지한 후, 계속 말을 이었다.

“배가 언제부터 그랬어?”

“아까…… 병원 오기 전에요.”

“근데 왜 말을 안 했어!”

중간에 보호자가 끼어들었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애가 아프다는데 자기가 몰랐으니 당연하지 않겠나.

“얼굴이…… 얼굴이 부어서 당황해서 그랬어.”

“어, 어. 그래. 아빠도 놀라긴 했어. 교수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얼굴 부어서 그랬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아버지는 희성이 반응도 그랬거니와 자신이 감히 수혁의 문진에 끼어들었단 생각에 사과하며 뒤로 빠졌다.

수혁은 딱히 사과할 만한 일은 아니라 생각했기에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젓고는 희성이를 바라보았다.

배라니.

복통이라니.

생각도 못 했더랬다.

“희성아. 무릎 좀 굽혀 봐. 굽힐 수 있어?”

“아……. 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론적으로 안면부 부종과 복통 사이에 연결 고리가 아예 없지는 않을 수도 있었다.

부종이라는 게 결국, 내 몸이 붓는 거 아닌가.

붓기 위한다고 표현하면 좀 이상하지만 하여간 붓기 위해 필요한 물이 다 내 몸 어디선가 왔다는 얘기였다.

결국, 혈액량이 줄게 된다는 뜻인데.

그럼 활발히 움직이는, 그러니까 혈액이 필요한 장기 중 두뇌와 심장보다는 중요성이 떨어지는 복부의 혈액량이 줄게 되어 있었다.

“제일 아픈 곳이 있어?”

“어……. 아뇨. 그냥 전체적으로…….”

“눌러 보면 어때?”

“약간……?”

“땔 때는?”

“모르겠어요.”

“그래, 그렇군. 여기는?”

“거기도…….”

수혁은 습관적이라고 하기는 뭐해도 하여간 응급실에 가면 달아 두는 수액을 바라보면서, 환자의 배 이쪽저쪽을 눌러 보았다.

다행히 수술이 필요한 사인은 아예 없었다.

“혹시 병원 와서 좀 좋아졌어?”

“네? 아, 네. 좋아졌어요.”

“그래, 그렇구나.”

아마 저 수액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터였다.

혈액량이 부족해지긴 했어도, 안에 있는 혈구들이 부족해진 건 아니지 않나.

그 안에 있던 물 성분이 빠져나간 거지, 혈구가 빠져나간 건 아니었을 테니까.

물이 보충되면서 증상이 훨씬 나아졌을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그럼 다 좋아져야 했을 텐데.’

수액은 1000mL짜리가 달려 있었고, 이미 400mL 넘게 들어간 상황이었다.

아무리 얼굴이 부었다 해도 그 이상의 수분이 소실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상하군요.]

‘그렇지?’

[게다가 안면 부종에 의해 복통이 생긴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입니다. 아무리 부종이 심하다 해도 전체 혈류량의 10%나 될까 말까 한 양일 텐데…… 그 정도는 얼마든지 축적하고 있는 여유분으로 견딜 수 있습니다. 기능에는 이상이 안 생긴다는 얘기죠.]

‘맞아. 그렇지.’

방금 바루다가 한 말은 우리가 헌혈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말이기도 했다.

그냥 공허한 말로써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논문과 경험을 토대로 더 견고해진 이론이었다.

그러니 복통이 오직 부종에 의해 생겼다고 하는 건 의학의 한 기둥이 되는 이론을 부정한다는 뜻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복부 쪽은 어떤지 확인을 해 봐야 했다.

“초음파 좀.”

“네? 아, 네.”

다른 사람한테 말한 것인데 안대훈의 답이 들려왔다.

컴퓨터로 확인해 보라고 했더니 여기 있어?

황당한 마음이 들었지만, 하여간 안대훈은 통합진료센터 내 지리와 기구 위치 등을 수혁이나 이현종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인간이었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초음파를 들고 나타났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죠.]

‘그래.’

궁금증이 일면, 특히 그 궁금증이 의학적인 부분에 접해 있으면 참을 수 없을 만큼이나 성미가 급해지는 수혁으로서는 칭찬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잘했다.

“네, 교…… 수님.”

“그 말이 어렵니.”

“진심은 다른 곳에 닿아 있어서.”

“하.”

수혁은 그렇게 초음파를 받아 아이의 배를 보았다.

그와 동시에 수혁과 안대훈 그리고 뒤에 있던 레지던트 중 일부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시 말하면 소견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동그래졌다는 얘기였다.

“왜 장이 부어 있죠?”

“그러게나 말이다. 왜…… 여기도 부종이…… 있지? 여기는…….”

복부의 부종은 알레르기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너무 알레르기 반응이 심한 경우 설사 정도까지는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 아이의 복부 부종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애초에 초음파로 복부 부종이 이렇게나 확연하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으음……. 복부 부종이라…….”

하지만 수혁에게는 이게 마냥 이상하게만 보이진 않았다.

이상한 일이니만큼 동시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주어서 그랬다.

[추가 질문을 요합니다. 이 비슷한 양상의 복통이 있었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바루다도 그랬다.

당연하다는 듯 추가 문진을 요구해 왔다.

수혁의 생각도 일치했기에 별 망설임 없이 희성이를 바라보았다.

“희성아.”

“네.”

희성이는 이제 아까보다도 좀 더 나아져 있었다.

그와 함께 아버지의 안색도 많이 밝아져 있었다.

아마 이번 한 번, 그냥 지나가는 일일 거라 생각하고 있어서일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너 혹시 이렇게 배 아픈 적이 또 있었니?”

“어……. 네. 가끔요.”

“설사는 하지 않았고?”

“그것도 가끔.”

“하고 나면 좋아졌어? 배 아픈 게?”

“아뇨. 설사가 나오긴 하는데 별로…… 그냥 시간 지나면 좋아졌어요.”

“그래, 그게 몇 번이나 됐어?”

“모르겠어요. 대여섯 번?”

복부 부종은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질환에서는 꽤 자주 동반되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90% 이상에서 동반되었다.

“어……. 교수님. 이거 혹시 심각한 건가요?”

질문과 답변이 묘하게 이어지자, 아버지의 안색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안 그래도 수혁은 아버지와 할 얘기가 있었던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전에 확인할 것이 있어요.”

“네네.”

“혹시 아버님은 희성이 나이 때 배 아프거나 한 적은 없었나요?”

“네? 그…… 음. 있었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없어져서 딱히…….”

“그렇군요.”

아버지도 있었다라.

수혁의 머리는 이제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맹렬한 속도로 돌아갔다.

‘외상으로 인한 증상 유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안면 부종. 거기에 동반된 복부 혈관 부종에 가족력.’

[유전성 혈관 부종(Hereditary Angioedema)이군요.]

‘치료 없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희성이처럼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안면 부종은 환자를 거의 평생 괴롭히게 되지. 일단 피부를 좀 더 볼까.’

[네.]

거의 확신한 채, 수혁은 뒤에 있던 안대훈을 비롯한 다른 레지던트를 부르면서 동시에 아이의 피부를 면밀히 살폈다.

그러다 홍반같이 보이는 발진을 찾아냈다.

“희성아 여기 따갑지 않아?”

“어, 네. 따가워요. 근데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요.”

“그렇구나. 아버님, 희성아. 이 병이 뭔지 알겠습니다.”

“어……. 네네.”

안대훈은 뒤에 딱 따라붙은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아버지와 희성이에게 말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데 교육의 목적도 있기도 한 데다가, 방금 아주 어려운 진단을 맞혔단 뿌듯함까지 뒤섞여 있던 참이라 수혁은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담담히 설명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아이의 병은 유전성 혈관 부종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처럼 어릴 때 잠깐 앓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희성이처럼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죠. 비단 얼굴이나 배뿐 아니라 신체 어디서건 생길 수 있습니다. 손목이나 팔꿈치, 발목도 가능하죠.”

“어…….”

“희성이가 그랬던 적이 있는 모양인데.”

“네. 저 손목이…….”

“네, 그렇다면 더더욱 확실해지는군요.”

수혁의 담담한 얼굴과는 달리 아버지의 얼굴은 거무죽죽하게 죽어 가고 있었다.

유전성이 붙은 질환은 대개 심각하지 않던가.

게다가 희성이는 심각한 형태라고 했다.

원인은 의도했던 바는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있는 듯했고.

“아무튼, 이 병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오늘은 운이 좋았어요. 일찍 오시기도 했고 약도 적절한 때에 적절한 약이 들어가서 진행을 일부 막았습니다.”

수혁은 교과서나 케이스 또는 논문에서 읽었던 유전성 혈관 부종에 대해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건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병이었다.

비단 기도가 막혀서만은 아니었다.

복부 혈관 부종도 심각한 경우, 아예 장 폐색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혜준 환자를 떠올립니까?]

그렇다 보니 비슷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같은 유전 질환인 아까 본 환자가 생각났다.

자연인지 신인지 모를 존재가 희망을 거세해 버린 질환.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 본다고 하지만 결국에 기적을 바라는 게 고작인 질환.

방금까지만 해도 수혁은 그런 환자가 오면 어쩌면 빨리 절망을 고하는 것이 도리어 나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다.

‘응. 아까 봤던 그 환자랑…… 소담이가 생각나. 이기자 교수님이랑 김보영 교수님도.’

[그렇다면 정말 이상하군요.]

‘뭐가?’

[심장박동 및 분비되는 신경 전달 물질들로 미루어 볼 때 현재 수혁의 감정은 아까 전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아까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오히려…….]

‘뭐, 맞아. 근데 넌 이유를 모르겠냐?’

[같은 질환을 떠올리면서 상반된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한 분석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수혁은 방금 바루다가 말한 것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미쳐서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관리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만…… 최근 이 병의 원인을 밝히게 되면서 약이 나왔습니다. 일단 그걸로 시작해 보죠.”

현대 의학은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유전 질환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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