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화 학회 창설 (3)
그 시각 수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대한통합진료학회’의 학회장은 이현종이 맡고 있지만.
이현종은 어쩐지 다가가기가 좀 무서운 양반 아닌가.
불세출의 기인이라느니 쌈닭이라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의사한테 붙기 어색하거나 붙으면 안 될 거 같은 별명이 주르륵 붙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수혁은 대외적인 이미지가 그래도 이현종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아, 이기원 대표님. 안녕하세요.”
“하하, 축하드립니다. 학회라는 곳들이 다 비영리라…… 돈이 없는 줄 알았는데 호텔에서 창설식을 하다니 영 신기합니다.”
“두바이 왕자님이 자기 이름 걸려 있는데 첫 단추부터 허름하면 안 된다고 하셔서요.”
“역시 기름이 좋긴 하네요. 정책적으로도 워낙 중요한 사람인데…… 저희도 이쪽으로는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물론 원내에서는 여전히 수혁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기는 했다.
일단 누가 봐도 수상쩍은 종교 집단을 거느리고 있지 않나.
제아무리 점조직식으로 운영되고, 정말 믿을 수 있는 사이가 돼야 포교한다는 지침이 있다고는 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이라고 해서 정말 믿음을 갖게 되는 건 또 아니다 보니 사이비라더라, 교주라더라 하는 소문이 돌았다.
[수혁.]
‘왜.’
[진짜 이런 거 잘하시네요.]
‘나야 타고났지.’
[연기라는 게 일종의 사긴데, 타고났다는 말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해도 되나요?]
‘뭐든 잘하는 건 좋은 법이지.’
하지만 수혁은 로비에 타고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보통 교수들은 사회성이 좀 떨어지거나, 사회성을 갖추고 있다 해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볼 때는 어딘지 모르게 좀 불편하단 느낌을 주기 마련 아니던가.
아무리 기업 병원들이 들어서고, 또 일반 대학에서의 기조도 교수들을 쥐어짜 내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교수는 교수였다.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 중에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오히려 대부분 편의를 맞춰 주는 쪽이지 않나.
게다가 의대 교수는 도제식 교육이 일반화되어 있다 보니 레지던트들이 거의 알아서 모시는 수준이었다.
교수한 지 오래된 사람이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얘기였고, 그래서 신현태가 인품으로 유명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이수혁 교수님.”
“아, 김다현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어째 볼 때마다 더 젊어지시는 거 같아요.”
“하하하. 맨날 빈말로 듣는 말인데, 실력 있는 의사한테 들으니까 느낌이 색다르네요.”
“요새 더 바쁘실 텐데 시간 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통합진료센터가 병원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와야죠.”
김다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까 미리 인사를 나눈 싱가포르 대사와 아랍 에미레이트 대사 쪽을 돌아보았다.
싱가포르야 워낙 해외 자본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고 또 예전보다 해외 자본들이 보기에 매력이 떨어져 있어서 그리 아쉬운 상대는 아니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큰 시장이었고, 특히 인구 3억의 인도네시아,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1인당 소득이 높은 말레이시아 등등의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가 되어 주는 곳이기도 했다.
‘리홍이 의원이 의료 외에도 긍정적으로 봐주고 있지. 일본 기업하고 경쟁해야 하는 게 참 걸림돌이었는데…….’
싱가포르는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별개로 민주주의 지수가 엄청나게 떨어지는 나라 아닌가.
정치인이 기업을 도와주게 되면 정말이지 거대한 힘이 되는 곳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저쪽이지.’
아랍 에미레이트.
도대체 그 부가 어디까지 닿을지 알 수 없는 시장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태화 그룹의 중심이 되는 전자에는 딱히 매력적이지 않은 도시이기도 했다.
핸드폰과 반도체에 주력하고 있는데, 돈이 많다고 해서 폰을 색깔별로 사거나 하지는 않지 않나.
게다가 반도체를 대량으로 쓸 만한 산업이 돌아가지도 않았다.
물론 언젠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 도시를 완성하겠단 포부를 밝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먼 미래의 일이었다.
‘우리 쪽은 완전히 얘기가 달라.’
하지만 바이오는 어떤가.
돈이 많건 적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돈이 많은 사람은 이를 위해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것인데, 아랍 에미레이트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비단 아픈 것을 고치는 국제 진료소만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실 진짜 돈이 되는 건 검진과 안티 에이징이지 않나.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은 검진도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나라 중 하나였고, k-뷰티로 대변되는 안티 에이징은 그냥 최고라고 보면 되었다.
“게다가 그 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주가 많이 오르더라고요.”
“하하, 계속 들고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좋은 소식 계속 있을 테니.”
“네, 근데 이런 말씀 해 주셔도 되나요?”
“대표는 원래 대외적으로 회사 주식은 오를 거란 말밖에 못 합니다. 떨어진다고 하면 배임으로 주주들한테 고소당해요.”
“아, 하하. 그렇긴 하겠네요.”
워낙 일들이 다 잘되고 있다 보니 대화는 화기애애하게만 굴러가고 있었다.
심지어 대사들과의 대화도 그랬다.
“의원님이 안부 전해 달라고 하십니다.”
“왕자님이 따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아이고……. 저는 뭐 해 드릴 게 없는데.”
“이미 많이 해 주셨다고 하십니다.”
왕자 쪽은 또 뭘 줬다.
쓸데없이 커다란 쇼핑백이었는데, 흔들거리는 느낌으로 봐서는 물건도 큰 거 같진 않았다.
‘뭘까?’
[지금 약간 탐욕스러운 표정이 드러났습니다. 아직은 모임 중이니 계속 연기하시죠.]
‘이제 중요한 사람은 다 만났는데?’
[전공의들 만나야죠. 관대함을 보이십시오.]
‘아아. 맞네. 혼자 하기는 좀…….’
[저기, 학술이사가 오네요.]
‘오.’
마침 우창윤이 다가왔다.
어딘지 모르게 좀 민망하단 얼굴을 하고서였다.
“저기, 이수혁 이사님?”
그리고 아주 어색한 인사를 던졌다.
라이벌 병원 사람이기는 해도, 나름 자주 보던 사이 아닌가.
일단 부회장인지 부주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하윤이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왜 그렇게 부르세요, 우 교수님?”
“이현종 회장님이 이제 존대하라고 하셔서요.”
“에유, 뭘 또 그렇게까지. 그냥 편하게 대해 주세요.”
“회장님한테는 말하면 안 돼……. 나 충분히 시달리고 있다…….”
“알죠, 알죠. 가시죠.”
“고마워.”
우창윤은 다행히 수혁은 이현종보단 나은 인간이란 느낌을 받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본격적인 인사를 돌기 시작했다.
수혁은 전공의를 생각했으나, 우창윤은 교수들부터 돌기를 희망했다.
“교수들이 이런 거 진짜 예민해. 아까부터 이쪽만 보고 있었을걸. 언제 오나 하고.”
“아……. 그럴까요? 하긴 몇 분 눈 마주치긴 했는데.”
“그렇지. 여기 태화다 보니 뭐……. 감히 김다현 사장보다 먼저 오길 바라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대사들보다는 먼저 오길 바랐을 수도 있어.”
“아니……. 저 서 있는데 그분들이 온 건데도요?”
“에이, 하루 이틀 의사해? 회식 안 해 봤어? 그때 분위기 보면 딱 알겠잖아.”
“아……. 저희는 아빠가 그런 거 다 없애 가지고.”
“없애긴. 이수혁 교수 있을 때만 그렇지, 내가 가 보니까 내분비고 어디고 다 그렇게 하더만 뭐.”
우창윤이 말하는 회식 분위기란 일반 직장인 회식하고는 좀 많이 다를 터였다.
일단 장소에 들어가면 제일 안쪽 자리에 시니어 교수들이 앉고 그 밖으로 마치 벽을 쌓아 가듯 하나씩 낮은 이들이 채웠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면 두 번째로 높은 교수들이 일어나 시니어들에게 인사를 하고 술 받고, 뭐가 감사한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감사하다고 하면서 술을 마셨다.
그들이 앉으면 다음 펠로우들이 일어나 인사를 하고 술을 먹고.
그때 몸이 안 좋거나 하다는 이유로 인사를 빼먹으면, 사람도 많은데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교수였다.
“그럼 가야죠.”
“그래. 이렇게 좋은 거 맥여 놓고…… 욕 먹을 수는 없지, 아까 어? 공연도 미쳤더만. 난 연예인 진료실에서 말고 본 건 첨이야.”
“박자 나름 맞추시던데요?”
“어, 봤어? 나도 나름 어? 소싯적엔 좀 놀았어.”
놀았을 거 같은 이미지였다.
아니, 이미 그런 소문이 한바탕 돌았더랬다.
지금도 나름 미중년이지 않나.
듬성한 머리만 아니었으면 아마 더 괜찮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춤도 아니고 살짝 박자만 타는 데도 이리저리 빛나는 조명에 빈 머리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난 괜찮으려나.’
그걸 보고 있자니 세월의 야속함이 느껴졌다.
[유전 아닙니까? 남성형 탈모는? 이현종은…… 아,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구나.]
‘어, 알 수가 없네. 랜덤 뽑기도 아니고…….’
[문제 생기면 안대훈에게 물어보죠.]
‘걔 완전 뚜껑 날아간 앤데, 물어보긴 뭘 물어봐.’
[심리적 대처 같은 걸 말한 겁니다. 안대훈은 그렇게 됐는데도 전혀 어두운 구석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분석을 해 봐도 녀석은 머리에 관해서는 아예 자각조차 하고 있지 않습니다.]
‘와……. 그건 진짜 대단하다.’
하여간 수혁은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교수들과 별 어려움 없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태화 의료원이 워낙에 큰 병원이다 보니 아예 처음 대화를 나눠 보는 교수들도 있었다.
그 말은 곧 친분도 없으면서 호텔 밥과 공연 그리고 셀럽들과의 교분을 위해 온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얘기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럴 때 티를 내서는 안 되었다.
말 그대로 관대함을 보여서, 추후 수혁의 행보에 보탬이 되고자 열어 준 행사였으니까.
“아, 저 그런데…… 이수혁 교수님.”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누군가 인사를 건네 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신경외과 쪽 펠로우였다.
신경외과와는 현재 과장이자 가장 끗발 날리는 교수인 최낙필 때문에 좀 껄끄러운 사이가 된 지 오래이지 않나.
아직도 이현종은 최낙필이 수혁이 고아라 다행이라고 했던 사건 때문에 사람 취급도 해 주지 않고 있었다.
그에 비해 수혁은 딱히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에 관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진 않아서 별생각이 없었다.
아버지나 조상 중에 대머리가 없었으면 좋겠다 정도가 다였다.
이미 충분히 좋은 가족들이 생겼는데 얼굴도 모를 때 자신을 버린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왜 남아 있겠나.
“아, 네. 안녕하세요.”
하여간 인사를 걸어왔는데 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펠로우는 정말이지 용기를 내서 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딱히 그런 얼굴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유추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수혁이 기억하기로 아니, 바루다가 쌓아 둔 데이터에 따르면 눈앞의 펠로우 김태우 선생이 모시는 사람이 바로 최낙필이었으니까.
“그, 저 잠시만 드릴 말씀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네, 얼마든지요.”
“여기선…… 여기선 좀 그런데…….”
“그럼?”
“조금만 사람 적은 곳에서요. 이상한 얘기는 아니고, 환자 때문입니다.”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