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04화 (604/1,303)

604화 환자가 머리가 아프대요 (1)

두근두근.

이상한 일이었다.

방금 이현종 기준에 따르면 좀 떨어지는 편이라지만, 하여간 호텔에서 정성껏 준비한 뷔페를 먹은 참이었다.

심지어 전 세계적인 걸그룹 화이트핑크 공연도 봤고, 명사들도 만났다.

한데 환자가 있다는 말에 그때보다도 더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니,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나 혹시 미친놈일까.’

[의사가 환자 볼 생각에 두근거리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런가?’

[네. 저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보는데요.]

‘아니……. 아닌데, 내가 원래 이랬나.’

수혁의 고민에 바루다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처음 바루다가 수혁의 머릿속에 들어와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수혁이야 자신이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세계 최고의 진단, 치료 목적의 인공지능으로 설계되었고, 그 덕에 그것만을 지상 최대 과업으로 여기고 있던 바루다 입장도 들어 봐야 했다.

공부 좀 시킬라치면 주리를 틀고, 하기 싫다고 비명을 지르고, 괴성과 함께 당직방을 나서고.

그러던 수혁이 지금은 알아서 공부하고, 밤을 새워 가며 환자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만든 분위기인데 이걸 망쳐?’

언젠가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의 수혁은 처음 봤던 수혁과는 아예 다른 인간이 된 지 오래였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바루다는 전혀 낭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예상을 했다는 건 대비도 되어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처음 수혁과의 만남입니다.]

‘오…….’

어느 정도 기억 조작을 한 영상이 틀어졌다.

중간중간 수혁이 욕하던 장면들이 잘려져 나간 영상이었기에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수혁도 개눈깔은 아닌지라 바로 어색함을 알아차렸다.

‘뭔가 좀…….’

[오래된 기억이라 해상도를 낮춰서 그렇습니다.]

‘아, 그런가. 음……. 근데 내가 늘 이렇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그때는 아무래도 지금처럼 재미를 느끼진 못했죠. 그래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런 성취를 이루게 된 거죠.]

‘그건 네가 있어서가 아닐까?’

평소의 바루다라면 당연하다는 말은 물론이거니와 너 말고 다른 놈 머리에 들어갔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바루다는 지금 공작 중이었다.

[아닙니다. 연장이 좋다고 다 훌륭한 장인이 되는 건 아니죠.]

‘오……. 하긴, 그것도 그래.’

[그러니까 이상하단 생각은 마십시오, 수혁. 수혁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래, 그래. 내가 잘하는 거다 이거지?’

[네, 수혁은 훌륭한 숙주입니다.]

‘좋아.’

너무 공작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후후 웃는 수혁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내가 병신이냐, 인마. 그걸 기억 못 하게.’

수혁은 그저 바루다가 자신을 인정하는 말 한 번쯤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직도 아침에 시끄럽게 울리던 알람이 선명한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바루다는 자신이 데이터화해 둔 것만 수혁이 제대로 기억한다고 여기고 있겠지만, 사실 수혁의 머리도 꽤나 우수한 편이었다.

당연히 바루다의 영역에 벗어난 부위의 기억도 상당히 있었다.

아예 따로 사고를 이어 나갈 수도 있었고.

“아, 교수님. 여기쯤이면…… 될 거 같은데요. 너무 나오시게 한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뷔페 식당 밖이었다.

아니,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밖은 아니었다.

약간의 담벼락으로 화장실과 식당을 구분해 놓은 공간이었다.

“아뇨. 근데 어떤…… 음? 이분은?”

“아, 환자 주치의입니다. 처음 저한테 물어 왔는데…… 부끄럽게도 저도 잘 모르겠어서요.”

“아…….”

수혁은 바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신경외과 과장 최낙필이 실력이 없는 의사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술 쪽으로는 견줄 자가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나이가 들고 있고, 그에 따라 기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도 있기는 했지만.

원래 외과계 의사들은 떨어지는 피지컬을 그간 쌓아 온 경험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지 않나.

‘단점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아카데믹 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지.’

[논문도 아랫사람들이 다 써 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냥 비난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최낙필이 교수가 되었던 시절에는 논문은 그저 거들 뿐이지 않았나.

그 시절 교수가 된 사람 중 이현종 같은 논문 기계가 있다는 게 더 신기한 일이었다.

게다가 외과 계열은 아무래도 내과와는 달리 개개인별 실력 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곳이다 보니 더더욱 논문보다는 수술 실력을 더 위로 쳐주는 편이었다.

이건 지금도 그랬다.

아예 수술 잘하는 의사가 진짜 의사란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환자를 생각해 봐도 아예 틀린 말은 또 아니지 않나.

“그래, 어떤 환자예요?”

수혁은 그러니 최낙필이 희귀 질환이라면 잘 모르고 깔아 두었을 가능성도 있을 거라 여기며 물었다.

그러자 주치의가 나섰다.

3년 차로 보이는 녀석이었다.

안대훈과 동갑이라는 얘긴데, 안대훈에 비하면 애기처럼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네, 이게 사실 외래 환자입니다.”

“외래……?”

“네.”

“두통을 주소로 오고 있는 13살 여자아이입니다.”

“두통이라. 음……. 13살에 두통이라?”

두통은 무척 흔한 증상이었다.

딱히 객관적인 질환이 없이도 생길 수 있는 증상이기에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13살의 두통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특히 대학 병원에 와야 할 정도로 심각한 두통은 더더욱 그랬다.

“CT나 MRI는 찍어 봤어요?”

“네네. 찍었습니다. 아주 약간의 동정맥 기형이 있어요. 근데…… 그게 그렇게 심하지는 않습니다.”

“동정맥 기형이 있으면 그게 두통의 원인이 될 수 있을 텐데요? 심하지 않다고 하는 건 누구 의견이죠?”

“아, 그건.”

주치의가 우물쭈물하자, 펠로우가 나섰다.

사실 나이 차이로만 보면 이쪽이나 전공의나 별로 나지도 않을 텐데, 신경외과 의사가 만만치 않은 직업이다 보니 폭삭 삭았는지 어쨌는지 거의 40대로 보였다.

펠로우는 관록 있어 보이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같이 봤습니다. 두통…… 일으킬 수 있는 수준입니다만. 약을 먹으면 조절이 돼야 합니다.”

“음……. 근데 그럼 그거 치료하지 않았어요?”

“발견된 혈관 기형은 치료했습니다. 수술로…… 어차피 그리 중요한 교통 지점은 아니어서요.”

“근데 두통이 계속된다는 거군.”

“네.”

“으음.”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대화를 통해 습득한 문제 목록을 떠올렸다.

우선 하나는 약으로 조절되어야 할 크기의 동정맥 기형인데 약을 먹어도 조절이 되지 않았던 통증이었다.

또 하나는 심지어 수술까지 해서 처리했는데도 여전한 두통이었다.

아예 연관이 없던 걸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수혁.]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해서 수혁은 질문을 던졌다.

“증상이 좀 좋아지기는 했어요?”

“아이는 좀 낫다고는 하는데…… 정작 바스 스케일을 통해 보고하는 통증은 변화가 없습니다.”

“으음. 그래요? 그 아이 뭐 더 특이해 보이는 건 없어요?”

“특이해 보이는……?”

“외양이라던가, 뭐 이런 거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 동반된 기형은 없는 거 같습니다.”

아이의 나이를 고려해 보면 유전 질환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전 질환은 하나의 특질만 갖기보다는 여러 특질을 보이는 법이었다.

그런 경우는 보통 외모로 어느 정도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이렇게만 들어선 모르겠는데…….”

“네, 저희도 지금 당장 어떤 답을 들으려고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혹시 센터에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 환자 보호자랑은 얼추 얘기가 됐습니다. 근데 이걸 최낙필 과장님이 아시면…….”

“아, 알아요. 그분 성격 보통 아니시지.”

“네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알아서 보도록 할게요. 아예 메인 지정의를 이현종 센터장님으로 하면, 아마 최낙필 교수님도 뭐라 못 하실 거예요.”

“아, 그렇게까지요?”

“네, 기왕 보기로 한 거 제대로 봐야죠.”

“감사합니다.”

그 후 행사는 솔직히 말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혁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던 조태진과 이현종이 이렇게 물어 왔을 지경이었다.

‘누구 맘에 안 드는 새끼가 왔어? 죽일까?’

‘죽이긴요, 회장님. 그냥 묻죠.’

‘아, 그럴까?’

상당히 과격한 언사였던 데다가, 둘이라면 진짜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이현종은 수혁의 다리 복수를 하겠답시고 트렁크에 톱을 들고 다니다가 불심 검문에 걸린 적도 있었다.

지극한 아들 사랑의 발로라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긴 했으나 하여간 오바하는 건 사실이었다.

“아니, 아니. 환자 의뢰가 하나 왔는데, 아까부터 그 생각하느라 그래요.”

“오, 어떤?”

“최낙필이요.”

“그 새끼…… 사람 새끼도 아닌데.”

“직접 온 건 아니고, 밑에 주치의가 했어요.”

“그래, 환자가 뭔 죄야. 아프면 고쳐야지. 뭔데.”

해서 수혁은 아까 들었던 말을 고대로 읊어 주었다.

조태진이야 수혁의 신봉자이기도 하고, 또 나름 훌륭한 의사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수혁이나 이현종에 비하면 정상인의 범주에 있는 사람이었다.

해서 딱히 행사에서 이탈할 생각이 들지 않은 데 반해, 이현종은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발까지 동동 굴러 댔다.

“머리가 아파. 동정맥 기형이 있었어. 치료했는데 여전히 아파. 와씨 뭐지?”

“학회장님…… 곧 연설 하나 해야 합니다.”

“어, 동정맥 기형?”

“아니, 우리 학회 창설이요. 아니지, 우리는 아니지. 나는 아니잖아.”

보다 못한 신현태, 그러니까 오늘은 그저 원장으로서 축사를 해 주러 왔을 뿐인 그가 나서야 했을 지경이었다.

“아, 너도 멤버야.”

“네?”

“원장이라 직함 아직 고민 중인데 하여간 멤버야.”

“아니, 아는 진짜 바쁜…….”

“안 할 거야? 수혁이랑 이사회 모임도 있고 밥도 먹을 건데?”

“합니다.”

물론 신현태도 정상은 아니어서 그렇게까지 커다란 도움이 되진 않았다.

“저기, 학회장님. 이제 일어나시죠.”

“아, 우 이사.”

“네, 정신 좀…….”

“알았어, 알았어.”

다행히 우창윤은 아직 수혁교도 아니고, 의학에 정신이 나가 버린 사람도 아니라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 덕에 이현종은 간신히 창설 기념회에 걸맞은 연설을 할 수 있었다.

“각과 레지던트들, 특히 비인기과 여러분. 나가면 고생입니다. 남아도 교수가 될지 어떨지 모르죠. 그럼 뭘 해야 할까. 우리 통합진료센터가 열려 있습니다. 시험에 통과해야 하긴 하겠지만, 하여간 자신 없으면 오세요.”

물론 ‘걸맞은’이란 이현종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연설이 끝나자마자 저 인간이 역시 미친놈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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