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05화 (605/1,303)

605화 환자가 머리가 아프대요 (2)

다소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아니, 해프닝이라고 하기엔 조금 격한 언사가 오가기는 했더랬다.

‘아니, 그럼 우리 과 레지던트들 거기로 펠로우 오라고 부른 거예요?’

‘너네 과 펠로우 하면 취직은 하냐?’

‘하, 하죠!’

‘어디.’

‘해, 해남…….’

‘거기 한 자리 갔어. 그럼 다음은 어디야.’

‘그…….’

‘새끼.’

비인기과 교수들이 항의를 해 온 탓이었다.

비인기과니 인기과니 해 봐야 다 같은 의사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과별로 받는 대우는 천차만별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게 그만큼 실력 차이가 있거나 혹은 기울이는 노력의 차이가 있어서 그런 거라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태반은 그냥 정책에 따른 차이라고 보면 되었다.

오히려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과들이 힘들기만 하고 돈도 못 버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심지어 흉부외과는 나가서도 심장 수술을, 그러니까 오픈 하트 수술을 하고 싶다면 레지던트 수준의 월급만 받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수술이다 보니 병원 측에서 그나마 줄일 수 있는 비용, 그러니까 의사 인건비를 후려치기 때문이었다.

“아, 어제 진짜 화 많이 내더라.”

그랬기에 비인기과 사람들의 울분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내과도 딱히 인기과로 구분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어제 나섰던 이들보다는 훨씬 나아서인지 정말 진심으로 화를 낸 사람도 있었다.

“아빠가 잘못했죠……. 놀리면 어떡합니까.”

“놀린 게 아니라, 난 진심으로 걱정해서 해 준 말이야. 교수가 제일 열심히 해야 되는 게 뭐냐?”

“환자 고치고, 레지던트 교육하는 거죠.”

“아니, 아니. 그런 건 그냥 당연한 거고.”

“그럼……?”

수혁이 보기엔 100% 이현종 잘못이었다.

비인기과 사람들이 비인기로 몰리고 싶어서 그렇게 했겠는가.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정책에 일부 희생당한 소수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그러니까 생명 살리는 데 몰두하는 사람들 아닌가.

이 땅 위의 의료진은 모두 얼마간 그런 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이현종은 본인도 충분히 많은 사람을 살리고 있고, 로컬에 나가는 거에 비하면 훨씬 적은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희생하고 있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딱히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하여간 어제는 좀 심했다 여기고 있었다.

“자기 밑에 사람 챙겨야지. 레지던트만 했어도 챙겨야 해. 근데 펠로우까지 했다? 그럼 걔 먹고살 걱정은 없게 해 줘야 할 거 아냐. 솔직히 펠로우들이 어? 뭐가 모자라서 지들 뒤치다꺼리 다 하냐? 술기나 지식 가르쳐 주니까 당연히 누려야 되는 권리냐고.”

“아…… 아니, 그건 아니긴 하죠. 챙겨 줘야죠.”

“그래, 교수로 꽂아 주든지. 정 자리가 안 나면 촉탁의 자리라도 만들어 주든지. 아니면 2차 병원 원장한테 가서 강력하게 어필을 하든지 해야지 말야. 해 주는 것도 없으면서 지들 펠로우 줄어들 거 같으니까 득달같이 화내는 거 봐. 2년, 3년 밑에서 구른 애들 책임도 안 져 주면서.”

“그…… 음. 그건 맞는 말이네요.”

하나 끝까지 말을 듣고 보니 이현종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생각해 보면 토사구팽당하는 펠로우들이 얼마나 많이 있단 말인가.

2, 3년이면 그나마 다행인 수준이었다.

자리가 더럽게 안 나는 외과 계열 쪽에서는 무려 5년 넘게 펠로우로 있었는데도 자리가 안 나고, 위의 교수들도 신경을 안 써 줘서 지금껏 쌓아 온 커리어와는 전혀 관계없는 미용으로 빠진 선배들도 더러 있었다.

미용에서 인정해 주는 전문의 자격증은 피부과와 성형외과뿐이니, 외과 전문의를 따고 그 후로도 5년을 더 수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의 대우를 받게 되었단 얘기였다.

“내가 원장 퇴임하면서, 우리 병원에 펠로우 2년 이상 했던 애들이랑 회식 자리 가졌던 거 알지?”

“아, 알죠.”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병원을 떠난 사람들과 원장이 회식을 하다니.

당사자들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는지 참석률은 상당히 저조했다.

내과 출신들이야 꽤 왔지만 별 관계 없는 과 출신들은 거의 안 와서였다.

“내가 얼마나 충격받은 줄 아냐. 물론 나도 나 교수 할 적이랑 지금 많이 다른 걸 알고 있었지. 근데 와……. 이렇게까지 고생하고 논문도 많이 쓴 애들이 머리 심으러 가고, 레이저 쏘러 가는 게 말이 되니. 개원이라도 해서 잘되면 좋은데…… 이게 분과 전문의 되면 너도 알잖냐. 다른 과 지식은 점점 잊는다고. 게다가 대학 병원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외골수가 돼 놔서 개원은…….”

“그것도 맞는 말이죠. 으음.”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제 이현종이 내질렀던 방식이 옳았단 생각이 들진 않았다.

딱히 통합진료센터 펠로우를 한다고 해서 교수로 남을 수 있을 거 같진 않아서였다.

당장 태화 말고 다른 곳에는 센터 자체가 없지 않나.

안대훈 정도나 교수 가능성이 있을 거란 얘기였다.

“우리는 통합 진료잖아. 딱 봐서 교수 재목 아닌 애는 개원에 필요할 거 같은 지식 쌓게 해 주자고. 아니면 파견 형식으로 받아도 돼. 너도 이거 하면서 느끼겠지만…… 분과로는 뛰어난 놈들이 다른 과 지식은 하나도 몰라. 근데 사람 몸이 딱딱 그렇게 나뉘냐? 종합적으로 볼 줄 알아야지.”

“아……. 그렇게요? 그럼 뭐 말이 되네요.”

“그렇지? 이 애비가 생각 없이 한 말은 아니라니까.”

“그렇죠. 하하.”

수혁은 어제 신현태가 억지로 이 형 취했네, 취했다! 하면서 이현종을 끌고 간 일을 떠올렸다.

그 후로 화 많이 난 교수들을 수혁이 직접 나서서 달래 주었다.

다행히 이기원 교수와 김다현 사장 등이 도와주어서 오히려 잘된 감도 있었다.

본의 아니게 배드캅, 굿캅 노릇을 하게 된 느낌까지 들었다.

“아, 오늘 외래 따로 연다며.”

“네. 환자 하나 의뢰가 와서요. 어제 말씀드린 그 환자요.”

“음……. 일단 내 이름으로 받아? 나 근데 신경외과는 사실 잘 모르는데.”

“실질적으로는 제가 봐야죠.”

어제 일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환자 얘기를 꺼냈다.

펠로우 교육도 좋고 학회 일도 다 좋지만, 의사의 본분은 역시나 진료 아니겠나.

특히 이현종은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미쳤다 싶을 정도로 집착하는 편이었다.

“아, 그래. 나도 들여다보기는 할게.”

“네, 아빠.”

“좋아. 회진 돌아야지. 이따 보자.”

“네.”

수혁은 이현종과 헤어진 후, 1층에 있는 외래로 향했다.

통합진료센터는 기본적으로 전원을 받거나 전과를 받는, 그러니까 입원 화자 베이스로 돌아가는 과였기 때문에 따로 외래 진료실이 마련되어 있진 않았다.

다른 분과 진료실을 빌려다 써야 한다는 건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현종이 여전히 순환기내과 과장보다 더한 영향력을 해당 분과에 행사하고 있어서였다.

거의 순환기내과의 아버지 격인 사람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 교수님.”

“오셨습니까.”

“교수님!”

진료실 앞엔 어제 봤던 신경외과 펠로우와 레지던트가 와 있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이었고 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너도 왔어?”

“네, 바늘 가는 데 실이 가야죠.”

“너 지금 도는 데는 일이 없니?”

“하하. 없습니다!”

“그래…….”

한데 안대훈도 와 있었다.

기인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

어차피 안대훈을 통합진료센터 내에서 키워 줄 생각이 있었으니까.

해서 수혁은 옅은 한숨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기왕 외래를 연 김에 기존에 봤던 환자 중에 당겨서 올 수 있는 환자들도 오라고 했던 참이었다.

“좀 어떠세요?”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일본 혼혈이었던, 사토요시 증후군 아이도 끼어 있었고.

“어떠세요?”

“이제는 뭐 다 나은 거 같은데요?”

학계에 보고되었을 정도로 드문 경과를 보였던 말라리아 환자도 있었다.

마치 짜고 연기하는 것처럼 하나같이 상태가 좋았다.

신경외과 쪽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수술을 잘해도 그것과는 별대로 그냥 경과가 좋지 못한 경우도 많은 과여서 그랬다.

게다가 지금 이 둘의 최낙필에 대한 불만은 최고조에 달해 있는 데 반해, 수혁에 대한 호감도는 엄청난 상황 아닌가.

‘역시…… 역시 이 사람은 진짜 천재구나.’

‘대단하시다……. 어쩜 친절까지 하시고.’

해서 둘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다르죠라는 뜻으로 눈도 마주치고 있었다.

‘오케이, 니들도 전도 대상이다.’

안대훈은 그런 둘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눈도 그윽하게 뜨고 있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라도 안대훈의 지금 이 모습을 봤다면 소름이 돋았을 텐데.

다행히 둘은 그저 수혁이 진료 보는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더욱이 이제 곧 둘이 의뢰했던 환자가 들어올 차례였다.

“다음…… 김나나 환자분 들어오세요.”

이름이 불리자 어린아이 하나가 부모님 손을 붙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사실 나이가 13세인 거지, 딱 봐서 작아 보이진 않았다.

요새 애들 발육이 남다르지 않나.

키가 벌써 160 정도 되어서 앳된 얼굴만 아니면 성인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부모가 보기엔 여전히 애기인 모양이었다.

둘 다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안에 들어서자마자 질문을 쏟아 냈다.

“갑자기 여기로 오라고 하셔서…… 우리 나나 무슨 큰 문제 있는 걸까요?”

“수술까지 했는데 애가 계속 아프다고 하니까…… 얘가 막 엄살이 심하거나 그런 애가 아니거든요.”

“혹시 몰라서 정신과 진료도 봤어요.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들어서.”

“그것도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아니고…… 선생님.”

“교수님, TV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제발 우리 나나 살려 주세요.”

“네, 교수님. 살려 주세요.”

어떻게 보면 좀 지나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 광경이었다.

들어오자마자 폭풍 질문 세례라니.

하지만 신경외과 쪽 의사 둘은 모두 이해한다는 얼굴이었다.

최낙필 앞에서는 도저히 이런 말도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해서 그랬다.

진료 스타일이 딱 수술실에서 집도할 때랑 같지 않나.

강압적이고 불친절했다.

“그…… 교수님. 이해해 주세요. 나나가 워낙 오래 다녀서.”

“네네, 그리고 아시잖습니까? 최 교수님…….”

그렇다고 수혁도 이해해 줄 거 같진 않아서 부연 설명을 해 댔다.

하지만 수혁은 딱히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그저 나나를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머리 크기는 정상입니다. 한쪽 머리카락이 짧은데…… 그건 수술 때문이겠군요.]

‘눈이 많이 나쁜가 본데. 안경 도수가 꽤 높아.’

[요새 야외 활동이 적으니 가능한 일입니다만…… 부모님은 안경을 끼고 있지 않군요.]

‘렌즈도 없나?’

[빛 반사 정도를 분석해 보면, 없습니다.]

‘황달은 없고. 음……. 애가 구호흡을 하나? 입을 살짝 벌리고 있네.’

[인중이 약간 길군요. 구호흡의 결과로 생각됩니다. 아직 변형이 그리 크지는 않은 거 같군요.]

아니, 이미 진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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