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화 환자가 머리가 아프대요 (4)
코가 틀어막혔다는 게 무슨 점막이 붓거나 비중격이 휘었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코 뒤쪽에 뚫렸어야 뼈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드문 선천성 질환이긴 하지만 김효열 교수처럼 태화 의료원이라는 거대한 병원에 있는 이비인후과 교수라면 적어도 매달 볼 수 있는 질환이지 않나.
그런 거라면 놀랄 일도 없었다.
“이거…… 상악동후비공 폴립(Antrochoanal polyp)일까요?”
외래 보조로 들어와 있던 레지던트가 물었다.
김효열 교수는 순간 ‘이놈이?’라는 표정이 되었으나, 이내 질문을 던진 이가 1년 차라는 것을 깨닫고는 금세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3년 차만 되었던 이따위 멍청한 질문을 했다면, 김효열 교수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내시경 빼다 머리통을 후려쳐도 무죄일 터였다.
하지만 1년 차는 얘기가 달랐다.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시기 아닌가.
그저 저 진단명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분위기는 훈훈해졌다.
“아니, 아니지. 그건 말 그대로 상악동에서 후비공까지 자라는 폴립이잖아. 나잇대는 뭐…… 대강 맞을 수도 있는데 이 환자는 보면 상악동은 괜찮아. 그냥 후비공이 안 보이는 거야.”
“아.”
김효열 교수의 말이 끝나자, 갈이 진료실에 들어와 있던 수혁이 손을 들었다.
애초에 김효열도 수혁과 대화를 하고 싶었던 참이었다.
‘신내림을 받은 아이라고 했던가?’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말이라 여겼지만, 근묵자흑이라고 조태진과 어울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되어서 그랬다.
그 후로 잘 모르겠는 케이스만 뜨면 자꾸 수혁이 생각났다.
사실 몇 번 물어볼까요? 라고 테이블 미팅에서 얘기를 꺼낸 적도 있었다.
그 바로 위 교수가 서헌종이라고, 아마도 이비인후과 비과 역사상 제일 무서운 사람이지 않겠냔 소리를 듣는 사람이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몇 번 의뢰가 들어왔을 터였다.
“제가 비 내시경은 익숙지가 않아서 그런데…… 이거 바닥이 올라온 건가요?”
“음. 네, 제가 보기에도…… 바닥이 올라온 느낌입니다.”
“이런 경우가 있을까요?”
“음…….”
김효열 교수는 침음을 삼키더니, 이내 비 내시경을 빼냈다.
어차피 특이 케이스라 들었던 참이다 보니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사진도 찍고 심지어 영상으로도 다 남겨 둬서 관찰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다른 곳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잠시만요. 입안을 볼게요.”
“아, 네.”
김효열 교수는 아이에게 입을 벌려 달라고 한 후, 설압자도 없이 내시경을 집어넣었다.
보통 0도 내시경을 많이 쓰지만, 숙련된 비과 교수들은 30도 내시경이라고 해서, 각도가 있는 내시경을 써서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 김효열 교수가 보려는 건 편도를 포함해 구강 뒤편에 있는 구조물이 아니었다.
그는 입천장을 보고 있었다.
입에서 보면 입천장이지만 코에서 보면 바닥이지 않나.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이 말이었다.
“아, 여기도…… 살짝 두꺼워져 있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둥글게…… 두꺼워져 있어요.”
“골종일까요? 제가 아는 모양하고는 좀 다른데.”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해당 영상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면서 물었다.
연신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봤던 골종, 즉 뼈로 이루어진 종양과 비교하기도 했다.
[명백히 모양이 다릅니다. 골종은…… 거의 완전한 구형입니다.]
‘근데 우리는 사진으로만 봤으니, 혹시 모르는 일이지.’
[네, 이분들은 이쪽 질환은 맨날 보고 있을 테니까요.]
‘잘 저장하고 있지?’
[물론입니다. 저는 수혁의 저장 체계를 신뢰하지 않으니까요.]
‘하.’
비교한 결과, 완전히 다른 모양이기는 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탓에 확신할 수는 없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의학은 특히 섣부른 판단은 금물 아니겠나.
환자의 몸은 하나뿐이고 돌이킬 수 없는 저질렀는데 결과는 치명적이었으니까.
의사는 늘 돌다리로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심정으로 환자를 봐야만 했다.
“네, 제가 봐도 골종은 아닌 거 같습니다. 조직검사를 해 볼까…….”
“바로요?”
“네? 아, 네.”
“혹시 혈관종이거나 하면…….”
“혈관종이요? 이렇게 큰 혈관종은 본 적이 없습니다만…… 아, 뭐 선천 질환이 있거나 하면 가능은 한데…… 아이 나이가…….”
조직검사는 말 그대로 해당 조직을 째서 검사를 해 보는 것이었다.
침습적인 검사임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보통은 별문제가 되진 않았다.
일단 지금처럼 악성일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혈관종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말 그대로 혈관으로 이루어진 종양이라는 뜻 아닌가.
그런 거 잘못 쨌다간 진료실이 피범벅이 될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자칫하면 환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아이 나이가 뭐 그럴 나이는 아니긴 한데…… 머리 쪽에 동정맥 기형이 있었어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또…… 음. 조심해야겠네요.”
다행히 김효열은 조태진에게 어느 정도 세뇌된 데다가, 혈관 이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두경부 기관에 동정맥 기형이 있게 태어난 경우 숨을 못 쉬는 경우도 있지 않나.
초기 처치에 나서는 게 이비인후과 의사다 보니 관여했던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다.
“네, 우선 영상을 찍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 코 막힌 게 일단 구조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군요. 감사합니다.”
“아, 아뇨. 결과 나오면 연락 주세요. 저희도 팔로우 업 하겠습니다.”
“네, 교수님.”
“네네.”
하여간 한 가지 단서를 얻게 된 수혁은 이제 환자와 함께 센터로 바로 향했다.
밥도 안 먹고서였는데, 적어도 수혁은 그게 그리 걸리적거리지 않았다.
바루다도 그랬다.
식충이 주제에 감히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바루다의 원초적인 욕망은 의식주가 아닌 의학에 기원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사실 수혁은 사람이라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맨날 바루다와 대화를 하고 있는 데다가 그 외에 제일 가까이 지내는 인간이 이현종이다 보니 정상에서 한참 벗어나게 된 지 오래였다.
‘밥은……?’
‘그러게요, 식사 안 하시나…….’
뒤따라가는 이들 중 신경외과 측 레지던트와 펠로우는 지극히 정상인이었다.
과가 과다 보니 수술하다가 밥때 놓치는 경우야 허다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먹을 수 있을 땐 반드시 먹는 습성을 가지게 되어서 그랬다.
‘교화가 필요하겠네. 감히 교주님이 가르침을 주시려는데 밥 따위를.’
안대훈은 그런 둘을 보면서 혀를 찼다.
레지던트야 같은 레지던트니 그렇다 치고 넘어갔으나, 펠로우는 학교 선배이기도 한 마당이다 보니 이놈이 설마 하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안대훈의 눈에 묘한 열기가 서려 있는 데다가 옆머리까지 바짝 민 머리를 보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위엄까지 느껴져서 다시 앞을 보았다.
‘뭐야, 이 새끼? 원래 저런 인상이었나?’
좀 특이한 녀석이긴 했어도 저 정도는 아닌 거 같았는데.
지금은 눈도 못 마주치겠는 인상이 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무서웠다.
‘이것이 교주님의 위엄이다, 이것아.’
안대훈이 저 혼자 섀도 신앙 싸움을 이어 나가는 사이 일행은 곧 센터에 도착했다.
수혁은 CT실이 비어 있음을 확인한 후,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밥때를 놓친 것은 마찬가지지만 아이 걱정에 묵묵히 뒤따르던 부모가 눈에 들어왔다.
“두 분은 아이 짐 챙겨서…… 몇 호죠?”
“8호입니다.”
“네, 8호 안쪽 자리 가 계시고요. 나나는 CT 좀 찍어 보겠습니다. 라인 잡아야 해서 약간 아플 수 있는데, 참을 수 있죠?”
“네. 그 정도는…….”
역시 수술까지 한 친구라서 그런지 라인 잡는 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사실 나이도 이 정도면 이제 성인 취급을 해도 되지 않겠나.
의학적으로는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그랬다.
“아야.”
나나는 눈 한번 찡그리는 것으로 라인을 잡고는 CT실 안으로 들어갔다.
전속 방사선사에게 수혁은 머리와 입천장 그리고 목 일부까지 영상에 나오도록 세팅해서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전속이라고 해 봐야 사실 다른 병동 환자들 사진을 더 많이 찍고 있지만, 소속이 소속인지라 수혁의 말발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잘 먹혔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부센터장 아닌가.
보직 순으로 쭉 나열하면 수혁보다 확실히 위라고 할 수 있는 의료진이 간호사와 방사선사까지 다 포함해도 열이 채 되지 않았다.
위이잉.
CT의 장점은 일단 빠르다는 거 아닌가.
게다가 나나는 의식이 온전한 상태라 인턴이건 누구건 같이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수혁과 안대훈 그리고 신경외과 둘 모두 촬영실에서 편안히 앉은 채 결과물을 볼 수 있었단 얘기였다.
“음.”
신경외과 레지던트를 제외한 모두의 입에서 무언가 알겠다는 듯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까 조직검사 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교수님.”
그중에 수혁에게 본인이 뭔가 알고 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살아가는 안대훈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눈앞에 드러난 덩이의 정체가 혈관 기형이었기에 그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맥과 정맥이 서로 교통하면서, 정맥이 확 늘어나 있었다.
혈관 벽에 근육층이 있는 동맥과는 달리 정맥은 동맥압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러니까. 음……. 근데, 이게…… 흐음.”
“머리에도 있고, 이쪽에도 있고. 동정맥 기형이 이런 식으로 다발적으로 있는 경우가 있을까요?”
“그보다 선천성 질환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야. 아니지, 선천성이기야 하겠지만 아주 천천히 진행했다는 건데…….”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촬영을 마친 나나가 아래로 내려섰다.
나이치고는 꽤 두꺼운 안경을 고쳐 쓰면서였다.
신경외과 둘은 그 모습을 보면서 딱히 이상하단 느낌을 받지 못했다.
둘 다 환자를 꽤 유심히 보아 온 덕에 이미 익숙해져서 그랬다.
하지만 안대훈과 수혁은 뭐든 의심하는 훈련을 하고 있고 또 받고 있는 몸들이지 않나.
그런 둘의 눈에 저 두꺼운 안경은 확실히 좀 이상해 보였다.
아무리 요새 애들이 눈이 나쁘다 해도, 뭔가 기질적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는 얘기였다.
“같은 생각하고 계시죠?”
하지만 안대훈이 이렇게 물었을 땐, 수혁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을 뻔했다.
안대훈과 통했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수준이 아니라 뭔가 좀 꺼림칙한 수준이어서 그랬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안과를 떠올리고 있는데.
게다가 안대훈은 제가 알아서 안과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망할 놈이 쓸데없이 유능해졌네.’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죠.]
‘하.’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대훈은 더없이 신나는 얼굴이 되어 안과에 협진을 의뢰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원래 마이너과 협진은 인력이 적어서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대훈은 전화를 끊으며 껄껄 웃어 재꼈다.
“운 좋게 오늘 당직이 신도네요.”
지금 즉시 환자 데리고 안과 병동 가면 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