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09화 (609/1,303)

609화 이제 외과 계열에서도 (1)

와이번 메이슨 증후군.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올 텐데, 정말이지 극히 드문 질환이었다.

대학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조차, 심지어 와이번 메이슨 증후군이 침범하고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부위를 보는 과에 근무하는 의사조차 평생 단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일 지경이었다.

‘얼굴 피부와 망막, 안와, 그리고 중심신 경계에 발생하는 동정맥 혈관 기형의 일종…… 지금 이 환자는 피부에는 없지만, 코점막과 입천장 점막 아래에는 있지.’

[네, 하필이면 그게 이 증후군 내에서도 거의 확인된 적이 없는 소견입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무엇보다 여기서 묘사하는 망막의 동정맥 교통이 지금 이 환자에게서 관찰되는 소견과 매우 유사합니다.]

바루다는 매우 유사하다고 했지만, 솔직히 수혁은 차이가 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딱 시신경유두와 망막에 존재하는 동맥과 정맥이 서로 직접 연결되면서 발생한 이상이지 않나.

게다가 아까 보았던 환자 머리 내에 발생했다는 동정맥 교통 또한 와이번 메이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견과 같았다.

‘확실히 진단이 늦게 되다 보니…… 머리에 있는 혈관이 터져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구나.’

[네, 예후가 그거 때문에 아주 좋지 못하군요. 그나마 아이가 두통이라는 증상을 호소한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이게 있다고 해서 반드시 두통이 생기리란 보장은 없지. 오히려…… 망막 쪽 혈관 이상 때문에 안압이 올라가면서 두통이 생긴 거 같은데.’

[네, 그게 현 상황에서 훨씬 잘 들어맞는 추론이라고 판단합니다.]

수혁은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면서 동시에 해당 논문을 쭉 읽어 내려갔다.

논문이라기보다는 케이스 리포트였는데, 아마 와이번 메이슨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너무 드문 질환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논문이라는 것도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나오는 거 아니겠나.

아직까지 이런 질환에 관해서는 현상을 관찰하고, 그것에 관해 토론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었다.

‘맞는 거 같아.’

[네. 저도 동의합니다.]

‘좋아.’

혹시 몰라 비슷한 논문을 몇 개 더 읽어 보았다.

데이터를 저장하고 비교까지 했는데, 결론은 같았다.

수혁은 그제야 마침내 하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를 따라왔던 모든 이가 어리둥절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또 이랬나.’

[괜찮습니다. 인간들은 이걸 천재성의 발현이라고 여기는 거 같습니다.]

‘보통은 그런데, 안대훈은 접신 같은 거로 생각하잖아.’

[뭐 어떻습니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아니, 이걸 같다고 하기엔 너무…….’

수혁은 접신과 천재성의 발현을 동일 선상에 놓고 있는 바루다를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이놈이 비록 인간 비슷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깡통이지 않나.

게다가 지금 또 멍하니 이놈하고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남들이 보기에 이상해 보일 만한 짓은 충분히 한 참이었다.

“음. 아까 망막 소견. 안과 선생님은 어떻게 봅니까?”

“네? 아, 네. 교수님. 망막에 동정맥 교통이 있습니다. 저게 황반 근처에 자리하고 있어서 시력을 일부 손상시키고 있고요.”

안과 4년 차가 보기에도 망막에 동정맥 교통이 있어 보이긴 하는 모양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은 4년 차가 됐건 뭐가 됐건 그냥 다 레지던트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대학 병원 4년 차 레지던트는 전문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숙련된 사람들이었다.

특히 1, 2월도 아니고 여름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수혁은 다시금 본인의 판단이 옳았다 여기면서 환자를 돌아보았다.

머리가 좀 아픈지 이마를 짚고 있었다.

왜 그런지도 이제는 알 거 같았다.

“안압이 정상보다 높을 거 같은데. 나나 님. 혹시…… 아까 안약 넣고 머리 더 아파지지는 않았어요?”

“어……. 네. 조금. 아니, 꽤…… 약 먹어서 좀 낫기는 했는데요.”

“안과 선생님, 안압 좀 재 주세요. 아이 시력 약화에 아마 그것도 영향이 있을 겁니다. 동시에 두통에도 안압이 어느 정도 기여했을 가능성이 크고요.”

산동액을 넣으면 안압이 더 올라가는 수가 있었다.

특히 원래 안압이 높았던 상황이라면 그렇게 될 확률이 훨씬 높았다.

때문에 녹내장이 있는 환자에서는 산동액 넣는 것을 대단히 주의해야만 했다.

심지어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산동액 때문에 급성 녹내장이 오기도 했다.

“어……. 안압이 좀…… 어, 이거 안약 줄게. 꽤 높은데.”

설마 하며 아이의 안압을 잰 안과 4년 차가 당황한 얼굴이 되어 간호사에게 요청해 안약을 넣었다.

그사이 수혁은 아이 부모를 향해 몸을 돌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아낸 것이 너무도 많지 않나.

이제부터 그것을 공유해야 했다.

“일단 아이의 질환명은 와이번 메이슨일 가능성이 큽니다.”

“네?”

“와이번…….”

“와이번 메이슨 증후군입니다. 아주 드문 질환입니다. 진단이 쉽지 않아서, 본원 신경외과에서 놓쳤다기보다는 진단 과정이 오래 걸렸다고 보는 게 옳을 거 같습니다.”

이현종이야 최낙필이라고 하면 이를 바득바득 갈지만, 수혁은 딱히 별 감정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되긴 했으나 동시에 바루다를 얻게 되지 않았나.

그 덕에 가난한 가정 형편 따위 모조리 씹어 먹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셈이었다.

게다가 신현태에게 들었던 말도 수혁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명백한 의료사고가 의심될 때는 침묵하고 있으면 안 돼. 하지만 의료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 너무 많아. 남들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일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걸 자꾸 공격하면 적만 생겨. 환자나 보호자들도 쓸데없는 분쟁에 휘말리게 되고. 알지? 의료사고 판정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논문과 통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거.’

얘기를 들어 보면 최낙필이 분명 최선을 다해 진단에 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그가 행한 수술이 이 아이에게 닥칠 수 있었던 불의의 사고, 그러니까 방금 수혁이 읽은 케이스 리포트의 환자가 겪은 뇌출혈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았나.

게다가 그것만으로 지금의 진단명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와이번 메이슨 증후군은 얼굴 피부나 아까 보신 눈 그리고 머리와 같은 중심 신경계에 동정맥 기형이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아이의 소견과 정확히 일치하죠.”

“아……. 그…… 그럼.”

아이의 부모는 당연히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지 않나.

게다가 뭔 기형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예후가 좋지 않을 거 같았다.

이럴 때 아니라고, 완전히 고칠 수 있는 병이라고 해 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쉽게도 현대 의학의 한계는 제아무리 수혁이나 바루다라 해도 완전히 극복하는 건 어려웠다.

“혹시…… 치료는 되나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아빠 대신 엄마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마저도 간신히 의미 있는 말을 뱉은 것일 뿐, 목소리에 묻은 물기가 끈적했다.

결국 둘 다 울상이었다.

나나도 덩달아 표정이 어두워졌다.

수혁은 우선 나나의 어깨를 툭 두드려 준 후 말을 이었다.

“이미 벌어진 변화에 대해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다만…… 아까 보니 약간의 출혈 소견이 있던데, 그건 레이저 응고술로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할 겁니다. 시력을 조금 회복하거나 혹은 악화를 방지할 수 있을 겁니다.”

“머리, 머리는요?”

“이미 머리에 대해서는 최낙필 교수님이 수술을 해서, 당장은 주의를 요하지 않습니다. 아무 처치도 하지 않고 방치했을 경우엔 뇌출혈이 발생할 확률이 굉장히 높지만…… 지금 당장은 동반된 다른 이상은 없어 보여요.”

“두, 두통은…….”

“두통은 머리가 해결되었고, 안압에 대해 관리를 하기 시작하면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또 코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고 나면…… 그러니까 코로 숨을 쉴 수 있게 되면 두통에도 호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그렇군요.”

완치는 어려웠다.

하지만 관리는 어느 정도 가능한 병이었다.

무엇보다 드디어 이게 뭔 병인지 알게 되었다는 일종의 해방감도 있었다.

불치병이 아니다 보니 그랬다.

“감사합니다.”

“나나야, 감사하다고 해.”

“네, 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때문에 아주 희망적인 말을 듣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 인사가 이어졌다.

비단 환자나 보호자들만 인사를 해 오진 않았다.

신경외과 레지던트와 펠로우 또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사 인사만은 아니었다.

둘이 그래도 몇 달을 질질 끌며 고민했던 것을 단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진단했다는 데에 대한 놀라움도 적잖이 섞여 있었다.

동시에 펠로우는 조금 걱정도 들었다.

‘이걸 이제…… 가서 말씀을 드려야 할 텐데.’

최낙필의 됨됨이를 생각해 볼 때, 외래로 오던 환자가 하나쯤 더 이상 별 이유 없이 오지 않는다 해서 이상히 여기진 않을 거 같긴 했다.

그렇게 꼼꼼한 편은 아니지 않나.

아니, 더럽게 꼼꼼한데, 그 모든 꼼꼼함을 수술실에서 소비하는 느낌이었다.

‘예의가 아니지. 환자 말없이 데려가는 건…….’

하지만 모시는 입장에서 쌩 까는 건 안 될 말이었다.

병원이라는 곳이 워낙에 좁은 곳이지 않나.

오늘 여기 와서 나나라는 환자를 진단했다는 사실이 언제 어떻게 최낙필 귀에 들어갈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얘기를 펠로우나 레지던트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과 사람을 통해 듣게 되면, 그 순간 최낙필은 완전히 폭발하고 말 터였다.

딱히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

“그럼…… 일단 병실로 돌아가시죠. 가능성은 99% 이상이지만 그래도 확진을 위한 검사가 몇 남아 있습니다.”

“네, 교수님.”

“그리고 기왕 입원하신 김에 이비인후과 쪽 협진을 통해 수술 날짜도 잡아 보겠습니다. 코로 숨 쉬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서요.”

“네, 교수님. 뭐든지 교수님 말씀대로 다 하겠습니다.”

펠로우가 고민하는 동안 수혁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병에 관해 좀 더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도 말해 주었다.

‘진짜 대단하다.’

보면 볼수록 최낙필을 비롯한 타과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원래 내과 계열이 외과 계열보다 좀 더 젠틀하기는 하지만 이건 그냥 품성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이미 머릿속으로 이 환자에 대한 정리가 다 끝나야 할 수 있는 말들이지 않나.

‘좋아. 펠로우 너부터 전도한다.’

안대훈은 완전히 뿅 가 버린 펠로우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뭐가 되었건 신경외과도 크리티컬 한 과이지 않나.

저쪽에서 교세를 확장하면 도움이 될 거란 확신이 있었다.

펠로우는 그런 안대훈의 생각도 모른 채, 인사를 하고 최낙필에게로 향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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