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화 이제 외과 계열에서도 (2)
“뭐?”
펠로우의 말에 최낙필이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오늘 모처럼 수술도 일찍 끝났겠다, 회진 휘리릭 돌고 오겹살에 소맥이나 한잔 말아 먹을 생각으로 빙글빙글 웃으며 왔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쯤 펠로우는 바짝 얼었어야 정상이었다.
‘이거 봐, 이거. 이수혁 교수님은…… 나이도 어린데 그렇게 인품도 실력도 좋던데…….’
하지만 펠로우는 지금 잠시 이수혁 뽕에 취해 있는 참이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대개의 젊은 의사라면 압도적인 실력자를 볼 때 동경하게 되기 마련 아니겠나.
특히 펠로우 시절에는 레지던트보다 마음이 가난해져 있다 보니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나나…… 와이번 메이슨 증후군이 강력하게 의심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나가 누군데, 인마.”
“두 달 전에 동정맥 기형으로 수술한 13살 여자 환자입니다.”
“13살……? 아, 걔.”
신경외과는 거친 과이지 않나.
모야모야와 같이 어린 환자들에게 발생 가능한 병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대부분은 성인 환자들이었다.
또 혈관 질환이 주로 남자들에게 생기다 보니 그중에서도 남자 환자가 많았다.
당연히 13살 여자 환자는 제아무리 최낙필이 수술에만 관심이 있고, 딱히 환자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인간이라 해도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뭐라고? 와이번 메이슨 증후군?”
“네.”
“그게…….”
최낙필은 그건 또 뭐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아무리 봐도 펠로우는 정확히 알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 어떤 의사가 자기도 모르는 진단명을 들먹이면서 환자가 이거라고 하겠나.
‘이 새끼 봐라?’
수술이나 똑바로 배울 것이지, 어디 잡 질환을 배워 와서 까부나 싶었다.
솔직히 몰라도 되는 질환 아니겠나?
이 나이 먹도록 이 큰 병원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못 들어 본 질환인데.
하지만 최낙필은 펠로우 앞에서 자신이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모양 빠지는 일이니까.
“근거는 뭔데.”
해서 질문을 바꿔 던졌다.
이미 최낙필을 모신 지 꽤 되는 펠로우는 눈빛만 보고도 이 양반이 모르는 말을 들었다는 걸 알았지만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이미 잔뜩 심기를 거스른 마당인데 괜히 그럴 이유가 있겠나.
아무리 펠로우의 장래 희망이 교수가 아니라 로컬 센터장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최낙필쯤 되면 사람 키워 주는 건 못해도 못 크게 밟는 거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까.
“네, 교수님.”
펠로우는 더없이 공손한 태도로 아까 수혁에게 들었던 질환에 대한 정보와 직접 노티 하기 전에 찾아본 정보를 줄줄 읊어 나갔다.
기본 지식이야 펠로우다 보니 충분해서 꽤 그럴싸한 노티가 되었다.
하나도 모르던 최낙필도 펠로우의 말이 끝날 때쯤엔 ‘아, 이런 병이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을 지경이었다.
“그거 너 혼자 진단했어?”
심지어 칭찬을 해 줄까 싶기도 했다.
신경외과의 본분이 수술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공부 열심히 하는 걸 뭐라 할 일은 없지 않겠다.
게다가 눈앞에 선 펠로우는 잡일이면 잡일, 논문이면 논문, 진료면 진료 다 최선을 다하는 녀석이었다.
생각 같아선 교수 자리 준다고 하고 하염없이 붙잡고 있고 싶을 지경이라고 할까?
‘이현종 교수님만 아니면 그래도 되는데.’
실제로 이런 사이코패스 같은 인간들이 많았다.
미래를 보장해 줄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희망 고문만 하고 오만 잡일은 다 시키는 인간들.
최낙필도 그중 하나였는데 워낙 그런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잘못이라는 자각조차 없었다.
그걸 병원 차원에서 지양해야 된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현종이었다.
기인이긴 하지만 아랫사람 챙기는 건 또 진심이지 않나.
책임지지 못할 거면 아무리 제자라고 해도 시간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게 이현종의 생각이었고, 원장이 되었을 때 아예 공지를 내려 버리기까지 했다.
물론 강제성이 있지는 않았다.
병원만큼 과별로 따로 분리되어 돌아가는 집단도 드무니까.
하지만 최낙필은 안 그래도 이현종한테 찍힌 참이라 말을 듣고 있었다.
“아뇨, 이현종 교수님이 이끄는…… 통합 진료센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뭐?”
이현종이 무섭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그랬다.
원장에서 물러났으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야 했는데, 신현태가 온전히 그 자리를 물려받으면서 오히려 더 활개를 치고 있지 않나.
더군다나 아들놈도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해서 정말이지 앓던 이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뜸 펠로우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최낙필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고아 드립 쳤다가 뒤지게 혼났다더니…… 아직도 이러시네.”
펠로우는 이제는 좀 안쓰럽단 생각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이 부모님이 따로 부탁을 하셔서요. 두통이 사라지질 않는데 혹시 다른 원인도 있는 거 아닌가 해서.”
“그렇다고 그걸 네가 해 줬어?”
“부모님이 너무 부탁을 하셔서요.”
“왜 나한테는 안 하고?”
맨날 수술 부위만 보고 괜찮다고 했던 주제에 이런 말을 하다니.
펠로우는 진짜 이수혁이 교수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준비했던 말을 했다.
황당한 말이긴 하지만 최낙필의 성격상 반드시 할 법한 말이기도 했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게 아무래도 교수님은 과장님이시고, 또 명의로 이름이 나신 분인데…… 어떻게 또 부탁을 하겠습니까. 부모님 입장에서는 제가 만만하죠.”
“음, 하긴 또 그렇긴 해?”
적절히 아부를 했더니 역시나 최낙필은 희희낙락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 나가 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사실 자기 환자가 어디 가서 잘못된 거만 아니라면 그리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비록 자신은 진단을 못 했고, 그걸 남이 했다는 사실은 좀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했지만.
이현종이 머리 수술은 못 할 거 아닌가.
‘내과가 뭐…… 진단이라도 잘해야지.’
에고가 워낙 세다 보니 이런 것도 있었다.
“그래, 잘됐네. 그거 축하도 할 겸 나가자.”
“아, 네. 교수님.”
“레지던트 애들은 바쁘니까, 펠로우 싹 챙겨서 가자. 내가 쏜다.”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펠로우는 정작 쏘는 건 최낙필이 아니라 제약 회사 직원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감사 인사를 했다.
불법이면 꼰질러 볼까 싶기도 할 텐데, 메뉴를 오겹살로 정한 이상 아마 안 될 터였다.
인당 접대 비용 내에서 해결이 되지 않겠나.
이런 거 보면 최낙필은 훌륭한 인간이 아닐 뿐, 나쁜 인간도 아니었다.
“그렇다니까. 진짜 간지 미쳤더라.”
펠로우가 별로 원하지 않는 회식에 끌려가고 있을 때쯤, 같이 환자를 해결했던 레지던트는 당직방에 걸터앉은 채 썰을 풀고 있었다.
같은 외과계 레지던트들과 함께 식어도 그나마 먹을 만한 음식이면서 동시에 배도 채울 수 있는 햄버거를 오물거리면서였다.
“와……. 그게 말이 되냐? 뭐라고? 진단명이?”
“와이번 메이슨 증후군. 시벌…… 무슨 판타지 게임인 줄.”
“그러네. 그걸 하루 만에?”
“하루도 아냐. 오전부터 해서…… 거의 뭐 한두 시간? 협진 두 개 딱 골라서 보시더니 진단하시더라니까.”
“와……. 진짜 미쳤다. 완전 천재구나.”
주변에 모여 있던 레지던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감탄을 해 댔다.
천재 의사에 대한 동경이야 누구나 한 번쯤 품지 않았겠는가.
아니, 사실 의대에 들어올 때만 해도 나야말로 그런 인재랑 생각을 다들 해 보기 마련이었다.
의대라는 곳이, 그중에서도 태화 의과 대학이라는 곳은 전국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사람만 몰리는 곳이다 보니 그랬다.
하지만 정확히 같은 이유로 ‘아, 나는 적어도 의대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머리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고 또 선배들과 교수들을 보면서 결국, 훌륭한 의사는 시간과 부단한 노력이 만들어 내는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되기 마련이었다.
동시에 천재라는 게 그냥 만화에서나 나오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는데, 수혁은 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실재하는 천재였다.
“개멋있네…….”
“내과 애들은 좋겠다. 그런 교수님한테 배우고.”
“어, 이번에 전문의 시험도 봐. 다른 데 싹 떨어지는데 이수혁 교수님이 가르쳐 가지고 태화만 합격률 높잖아. 본인은 수석 했고.”
“그것도 진짜 미쳤지. 같은 3년 차가 다른 3년 차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천재길래 그러지?”
“아니, 오늘 보니까 진짜…… 와, 이게. 이게 의사다 싶더라.”
그렇다 보니 레지던트들은 마치 지가 그런 천재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사실 수혁이 천재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퍼진 지 오래긴 했다.
하지만 외과계 질환도 이렇게 잘한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주체하기 어려운 흥분이 일었다.
“야, 그럼 신경외과만 잘하시진 않겠지? 다른 과도 잘하겠지?”
그때 잠자코 먹기만 하던 이가 입을 열었다.
외과 레지던트였는데, 이쪽도 고생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어? 당연하지. 신경외과도 이러신데 외과는 기본 과잖아. 더 잘하실걸?”
“왜 네가 자부심을 갖냐.“’
“오늘 봤잖아. 진짜 쩐다니까.”
“음.”
“왜. 뭐 모르겠는 환자 있냐? 가서 물어봐. 아니면 협진을 내든지. 인품도 좋으셔. 흔쾌히 보시겠다고 하시더라.”
수혁이 어려운 케이스만 보면 사족을 못 쓰게 되는 일종의 불치병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는 행사 때 수혁이 보여 준 모습이 그저 훌륭한 인품의 발로라 여기고 있었다.
아마 수혁이 나는 어려운 케이스만 보면 정신 못 차린다고 직접 말을 한다 해도 이 생각이 바뀌진 않을 터였다.
너무 정신 나가 보이는 말이니까.
“그래? 아, 이게…… 선뜻 용기가 안 나서. 근데, 진짜 그 정도이시면 몰래 가 봐야겠다.”
“왜 몰래 가?”
“아, 이게…… 조근호 교수님 환자라.”
“아…….”
조근호라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과에서도 다 알 만큼 미친 인간 아닌가.
진짜 무섭다는 말로는 표현이 다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냥 미친 거 같았다.
심지어 언젠가 한 번은 수술 잘 안 된다고 기구를 냅다 집어 던져서, 보조 들어와 있던 레지던트 허벅지에 상처를 입힌 적도 있었다.
그나마 허벅지라서 망정이지, 얼굴로 튀었으면 대형 참사가 날 뻔했다.
“안 잘리는 것도 용해.”
“교수 철밥통이잖아. 논문 실적이랑 수술은 잘하니까 또…… 게다가 그 레지던트가 지금 직속 펠로우잖아. 교수 하고 싶어 죽겠는데 곧이곧대로 진술했겠냐.”
“하여간 뭔데?”
“네가 들으면 알고?”
“아니, 하나도 몰라. 신경외과 들어오고 나서는 다른 과는 진짜 모르겠어.”
“신경외과는 잘 알고?”
“그것도 아니지. 아 나는 뭐 하는 새낄까.”
그래도 한때 수재 소리 들었던 이들이 갑자기 한탄을 하면서 벌러덩 자빠졌다.
그것마저도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띠띠.
따르릉.
여기저기서 찾아 대기 시작해서였다.
“야, 그럼 이따 살아서 보자.”
“보긴 뭘 봐. 잠이나 자고. 낼 밥이나 먹어.”
“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