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11화 (611/1,303)

611화 이제 외과 계열에서도 (3)

“저…….”

수혁은 여느 때처럼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있었다.

딱히 뭔가 할 일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병동 환자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그렇다고 학회 발표할 일이나 논문 작성할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논문은 있었는데, 아까 뚝딱 써 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없었다.

“와이번 메이슨 증후군이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단은 무슨. 나도 잘 몰랐어. 검색해 보니까 그거 같아서 본 거지.”

“저 같은 놈은 뭘 검색해야 할지도 몰랐을 겁니다.”

수혁이 병원에 있는 이유는 딱히 집에 가도 할 일이 없어서였다.

게다가 안대훈이 어찌나 치킨이라도 사 달라고 성화를 부리는지, 도무지 거절하기가 좀 그랬다.

일단 오늘 직접 공을 세운 건 아니었으나 안과 협진을 며칠이나 땡겨 준 공이 있지 않나.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엄청난 일이었다.

며칠 더 고뇌하고 또 불안에 떨어야 했을 수도 있는데 그걸 획기적으로 줄여 준 셈이었으니.

“여기 있는 이 친구들도 그럴걸요?”

“맞습니다, 교수님.”

“와, 이거 정말 맛있네요.”

그렇다고 안대훈만 달랑 사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해 보면 안대훈은 사실 지금 통합진료센터 도는 놈도 아니지 않나.

이 상황에서 얘만 사 주고 통합진료센터에 소속된 인원은 안 사 준다면 분명 말이 나올 터였다.

이수혁이 안대훈을 편애한다든가 하는.

진짜 억울한 일 아닌가?

반쯤 광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놈을 편애한다니.

게다가 수혁은 부센터장이라 일반적인 교수들보다 월급도 더 셌고, 거들다를 통해 부가 수입도 거두고 있는 형편이다 보니 돈도 넉넉했다.

“크으, 진짜 교수님 같은 분은 없습니다.”

“진짜요. 와, 치킨에 피자를 이렇게 푸짐하게…….”

“무엇보다 술 강제로 안 먹이시는 게 진짜 인격자이십니다.”

해서 수혁은 아예 통합진료센터 인원 전체, 그러니까 간호 인력까지 다 포함해서 한턱 쏜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치킨, 피자만 쐈는데 사람이 많은 데다가 레지던트가 말이 의사지, 실상은 밖에 나갈 일도 별로 없이 떠도는 거지들이나 마찬가지다 보니 각 사람당 먹는 양도 많았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달려드는 느낌이랄까?

‘와……. 피자랑 치킨으로 50만 원이 넘게 나왔어.’

[파인다이닝 갔으면 이현종이랑 둘이 먹고 땡 칠 금액입니다. 잊으세요.]

‘파인다이닝이랑 이게 같냐?’

[저는 사실 둘 다 맛있어서 좋습니다.]

해서 무려 50만 원이 훌러덩 나간 참이었다.

딱히 달리 쓸 데가 없는 돈이라 아까워하는 것도 우습긴 한데, 그래도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물론 그냥 앉아 있기만 하면 식충이 바루다가 온갖 지랄을 할 게 분명했기에 입으로는 각 음식을 씹고 있었다.

확실히 바루다 말대로 피자, 치킨도 그 나름의 맛이 있었다.

이런 맛은 호텔 간다고 느낄 수 없는 맛이지 않나.

게다가 수혁은 원래 긍정적인 인간이다 보니 어느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저기, 저기요.”

그때 아까부터 센터 밖에서 서성이던 외과 레지던트가 손을 들고 다가왔다.

아마 이런 축제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망설임 없이 다가왔을 텐데, 워낙 사람이 많은 데다가 뭔가 술이라도 한잔한 거 같은 들뜬 분위기라 어색한 모양이었다.

쭈뼛쭈뼛하는 폼이 병원의 거주민들이라 할 수 있는 레지던트가 아니라 실습 학생 같았다.

[누가 왔습니다.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꼴을 하고 있는 게…….]

‘그새 소문이 돌았구나.’

다른 녀석들은 죄 먹는 데 정신이 팔렸거나, 아니면 안대훈처럼 수혁교 포교에 열중하느라 외과 레지던트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으로 오감을 통해 습득하는 정보를 세밀하게 분간할 수 있는 인간 아닌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외과 레지던트를 바라볼 수 있었다.

사실 수술복만 입고 있어서 무슨 과인지는 불명확했으나, 하여간 못 씻고 못 자서 꾀죄죄한 것이 분명 외과계 같았다.

“어, 와. 밥은 먹었니?”

제아무리 수혁이 인간성을 많이 잃어 가고 있다고 해도, 저런 모습을 한 사람을 보면 동정심이 샘솟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수혁은 피자 한 조각을 집어다 그에게 주었다.

외과 레지던트, 김병길은 아까 분명 밥을 먹어 놓고서는 또 그걸 받아서 걸신들린 듯 먹었다.

“체하겠네. 울지 말고 먹어.”

“네네. 감사합니다.”

수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아까 바루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똥 마려운 강아지라.

뭐가 마려운지는 모르겠는데, 약간 들개 같은 느낌이 있기는 했다.

일부러 머리를 기르느라 기른 게 아니라, 그냥 못 잘라서 긴 머리에 푸석한 피부.

‘쯔쯔.’

안쓰러운 마음에 푸근한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바루다가 딴지를 걸었다.

[수혁도 비슷한 꼴입니다. 뭘 안쓰러워하시나요.]

‘야……. 내가 이것보다는…….’

[네, 이것보다는 낫습니다.]

둘이 투닥거리는 사이, 게 눈 감추듯 피자를 먹은 김병길이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외과 레지던트 김병길입니다.”

“그래, 외과구나. 왜 왔어.”

“소아외과 조근호 교수님 파트를 돌고 있는데요…….”

“아, 조근호 교수님.”

보통 소아외과라고 하면 다들 좋은 사람들만 가야 할 거 같지 않나?

그냥 소아과도 아니고 애들 수술해야 하는 과니까 당연히 그래야 할 거 같은데, 세상일이라는 게 꼭 그렇게 상식적으로만 굴러가는 건 아닌 법이었다.

조근호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개새끼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환자나 보호자에게까지 지랄을 하진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그때 참은 본성을 아랫사람들한테 다 푸는 건지 뭔지는 몰라도 모든 의대생, 모든 인턴 그리고 모든 레지던트들은 조근호를 악마라고 생각했다.

수혁도 지금이야 교수가 되었고 또 신현태, 이현종이 싸고돌다 보니 뭐라 말을 못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레지던트였기에 조근호에 대한 감정은 좋을 수가 없었다.

“네, 이번에 입원한 환자가 있는데…… 이게 너무 이상해서요.”

“이상해? 어떻게요?”

때문에 수혁은 조근호가 당연히 환자를 개판으로 보고 있겠거니 하면서 김병길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말해 봐. 뭔데.”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눈을 빛내며 다가온 대머리 안대훈이 있었다.

하필 딱 빛이 떨어지는 곳에 있어서 그런가, 머리가 번쩍이고 있었다.

“읏.”

수혁이야 그런 모습이 익숙했지만 김병길은 처음 아닌가.

눈이 부셔서 잠깐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안대훈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래, 후광이 있으시지.”

“아니, 인마. 왜 말하는 데 방해해.”

“앗, 죄송합니다. 잠자코 있겠습니다.”

“그래. 음. 김병길 선생 말해 봐.”

수혁은 폭주하는 안대훈을 제지하고는 김병길을 돌아보았다.

김병길은 여전히 안대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곧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떠올렸는지 결연한 얼굴이 되어 입을 뗐다.

“아이는 지금 생후 4일입니다.”

“어, 4일?”

사실 수혁은 애가 좀 후줄근하기도 하고, 괜히 눈에 총기도 없어 보이기도 해서 별다른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맨날 이현종이 했던 말 때문이기도 했다.

‘외과? 외과야 뭐 칼잡이지. 걔네 질환이 복잡할 게 뭐 있어. 우리가 여기랑 여기 썰어 주세요 하면 거기 써는 거지.’

처음 들었을 때는 와 사람이 어떻게 다른 과에 대해 저렇게 말을 할 수가 있지 했으나.

정말로 하루도 빠짐없이 듣다 보니, 그리고 수혁 본인도 내과 의사로 살아가다 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하지만 생후 4일이라는 얘기를 딱 듣고 나니까 생각이 바꼈다.

‘이만큼 어린 애를 내가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소아도 아니고 신생아로군요.]

‘그러니까 말야. 흐음. 이건…….’

[모를 수도 있습니다. 꽤 어려울 겁니다.

산부인과도 아니고, 소아과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아외과도 아닌 사람이 신생아 환자를 보는 건 정말 극히 드문 일이었다.

오히려 협진에 의해 아이를 봐야 하는 마이너 과들, 그러니까 안과나 이비인후과 또는 정형외과나 성형외과가 내과보다는 훨씬 많이 보았을 터였다.

제아무리 수혁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수혁은 다소 긴장한 얼굴이 되어 김병길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정상 주수 채워서…… 본원 산부인과에서 출생했습니다.”

“제왕절개? 아니면 자연분만.”

“제왕절개입니다. 근데 무슨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산모와 가족분이 원했습니다.”

“그래? 그렇군. 음. 그래서?”

인간은 머리가 크지 않나.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포유류에 비해 출산이 좀 위험했다.

제왕절개가 개발되기 전에는 산모나 아이가 태어나다 죽는 경우가 꽤 흔했을 지경이었다.

옛날 소설들이나 신환에서 엄마 죽고 태어난 주인공 같은 인물이 많이 나오는 게 우연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반대로 말하면 제왕절개를 뭔가 이유가 있어서 한 경우라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닐지라도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히스토리가 그렇지는 않았다.

“아이는 태어난 즉시 청색증이 있었고 빈호흡이 있었습니다.”

“으음. 그래서?”

“소아과에서 신생아 중환자실로 받아서 기관 삽관하고 인공호흡기 치료 시작했습니다.”

“그렇군.”

신생아 중환자실.

태어나자마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입원하는 곳이었다.

그냥 중환자실도 끔찍하지만 이곳은 그 궤를 달리했다.

그저 부모 품에 안겨 있어야 할 거 같은 아이들이 생명 유지 장치에 의지해 여기저기 누워 있는 모습은 비참하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수혁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쓴 채, 물었다.

“워크업은 했나?”

의사가 아니라면 그저 안타까워하고 말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보기 괴로운 광경이라도 무릅쓰고 들어가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파헤쳐야만 하는 존재였다.

“네, 아이가 곧 복부 팽만과 담즙성 구토를 일으켰습니다.”

“아……. 그럼 엑스레이 찍었나?”

“네. 대장에 가스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렇군. 그럼…… Hirschsprung 병일까?”

“지금은 그걸 제일 의심하고 있습니다.”

Hirschsprung 병.

교과서에서 보면 장내 신경계(enteric nervous system)에 신경절 세포의 선천적 부재로 인해 장폐쇄 증상을 보이는 질환이라고 되어 있다.

보다 쉽게 말하면 그냥 대장이 움직이질 않아서 그 밑으로 아무것도 배출하지 못하는 병이라고 보면 되었다.

신경절 세포가 없는 부분이 짧은 경우엔 성인이 되어 변비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지금 이 아이처럼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음.”

드문 질환이기는 했다.

이렇게 대장 전체가 이환 되는 경우는 더욱 드물고.

태화 의료원 수준에서도 진단이 어려운 질환이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괜히 국내 제일, 더 나아가 세계 최고를 꿈꾸는 게 아니지 않나.

“일단 복압 줄여 주면서 보면 되는 거 아니니? 필요하면 수술하고.”

“아, 네. 근데…… 여전히 인공호흡이 필요해요. 아니, 아예 호흡에 호전이 없습니다.”

그럼 그렇지라고 해야 할까?

환자가 보이는 증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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