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12화 (612/1,303)

612화 이제 외과 계열에서도 (4)

“호흡이 여전히 안 된다?”

“네. 그 양상도…… 단순히 복압 때문에 호흡이 안 되는 거 같지는 않아서요.”

“흠.”

수혁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는 말에 일단 턱을 짚었다.

그리곤 피자 소스가 입가에 묻어서 심지어 아까보다 더 후줄근해 보이는 김병길을 바라보았다.

이놈이 과연 몇 년 차일까 생각하면서였다.

다시 말하면 이놈이 하는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김병길 선생.”

“네.”

“혹시 몇 년 차예요?”

“아, 네. 죄송합니다. 저는 3년 차입니다.”

“아, 3년 차.”

그리고 3년 차라는 말에 조금 놀랐다.

내과는 그래도 3년 차쯤 되면 안대훈처럼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데, 이쪽은 외과라 그런지 진짜 빡센 모양이었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땐 1년 차인 줄 알았더랬다.

삶에 찌든 얼굴이 딱 그랬으니까.

하여간 3년 차의 노티라면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근데…… 이거 나한테 처음 얘기하는 거예요? 아무리 조근호 교수님이 그래도…… 그 밑에 펠로우는 있을 텐데요.”

타과 교수도 이렇게 생각해 줄 정도면 같은 과 교수나 펠로우라면 더더욱 무시하면 안 되었다.

한낱 레지던트의 노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일 아닌가.

외과 3년 차면 벌써 주치의만 2년 넘도록 한 몸인데, 그 말은 곧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뜻이었다.

“펠로우 선생님께 말씀은 드렸는데…… 저희 펠로우 선생님이 유독 교수님을 무서워하셔서요.”

“아니……. 그래도 이런 노티를 씹어요?”

“그게, 전에 수술방에서 허벅지 찔린 분이세요.”

“아, 아……. 그분.”

병원 내 소문은 정말로 빨리 퍼지는 편이었다.

환자 얘기 말고는 딱히 할 얘기가 없는 곳이지 않나.

의료진들이 맨 모여서 그 얘기만 하는 건 환자 얘기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할 얘기가 없어서라고 보면 되었다.

근데 누가 맞았다? 아니면 누가 누구랑 사귄다? 이런 얘기가 돌기 시작하면 그냥 병원 전체가 하루 만에 다 알게 되기 마련이었다.

누군가가 정말 높은 사람이라서 최선을 다해 막으면 이틀 정도 버티려나?

하여간 비밀이랄 게 없었다.

“맞은 사람이면 이해는 가네. 흠.”

“교수님도 좀 어려우실까요? 조근호 교수님이 이게 좀…….”

“응? 아니, 뭐. 상관없지.”

조근호 교수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수혁은 딱히 병원 내에서 어려워할 만한 사람이 없다 여기고 있었다.

아니, 환자가 있다면 그냥 생각 없이 가서 보는 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선에 가서 그 난리를 피웠을 턱이 있는가.

심지어 이번엔 싱가포르에서도 한바탕 활약을 했다.

근데 같은 병원 환자를 누가 무서워서 못 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갈까?”

“네? 지금요?”

“조근호 교수님 퇴근하시지 않았을까? 아무도 없을 때 가서 보는 게 나도 편한데.”

“아, 네. 제가 앞장서겠습니…… 어.”

해서 몸을 일으켰다.

김병길은 정말 다행이라 여기며 앞으로 나섰고.

하나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광신도 안대훈 때문이었다.

“교수님 앞장은 내가 선다.”

“아니, 이 미친.”

동기인 둘은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안대훈은 대머리를 빛내며 여유로운 표정이었고, 김병길은 그런 안대훈을 대체 이놈은 뭐지 하는 얼굴로 마주했다.

태화 의과 대학의 전신이 한국대학교인 만큼 동기 수가 100명이 넘기는 했다.

하지만 동기끼리, 그것도 같은 나이의 동성끼리 아예 모르고 지내진 않았다.

‘이 새끼 요새 좀 이상하다 하더니. 진짜…….’

김병길이 아는 안대훈은 좀 과몰입하는 성향이 있기는 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가시죠.”

“그래…….”

그사이 안대훈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포기해 버린 바 있는 수혁이 김병길을 지나쳐 갔다.

수혁이 수술을 받고 나서 걸음이 괘 자유로워지긴 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만큼 편한 것은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기척이 훨씬 셀 수밖에 없었다.

잠시 정신이 나가 있던 김병길은 이내 아이쿠 하면서 둘에게 따라붙었다.

드르륵.

“빨리, 빨리!”

야밤의 병원이라도 지나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셋은 초조한 얼굴의 보호자, 침대에 누운 채 실려 가는 환자,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이송 요원과 의료진 등등을 지나쳐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 도달했다.

언제 와도 참 분위기 우울한 곳이었다.

특히 이번엔 더했다.

“보호자 면회 시간이었나?”

“네. 7시 45분부터 8시까지요.”

“그래서 이렇게 몰려 계시는구나.”

“네. 그…… 열겠습니다.”

방금 면회를 마치고 나온 보호자들이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아픈 자식을 둔 부모들이 다들 그러하듯 얼굴이 좋지 못했다.

몇몇은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터였다.

신생아는 그 특성상 정말 언제 아팠냐는 듯 깨끗이 낫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이들은 그럴 확률이 적었으니까.

지금 여기 있는 부모의 아이들 중엔 당장 오늘밤을 넘길 수 있을지부터가 걱정이 아이들도 있을 터였다.

수혁은 아이도 없고, 이현종을 만나기 전까지는 부모를 만나 본 적도 없었으나 그들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덜커덕.

해서 고개를 숙인 채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섰다.

수혁이 얼굴이 어려 보이긴 하지만 그의 태도나 앞선 둘이 수혁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부모들은 수혁이 교수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게다가 수혁은 꽤 유명인이지 않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부모들 중 적잖은 수가 수혁을 알아보았다.

“왜…… 왜 오셨지?”

“우리 애인가?”

“소아인데…….”

일순 소란이 일었다.

이수혁이라고 하는, 태화 의료원에서도 밀어준다는 걸출한 의사가 혹 자기 아이를 보러 왔나 해서였다.

사실 이미 진단이 되었고, 치료 방법이 없을 뿐인 아이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교과서나 논문에 희망이 없다고 적혀 있다고 해도, 부모들이 아이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저쪽입니다.”

셋은 뒤쪽에서 일어난 소란을 애써 무시하고 중환자실 안쪽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김병길은 그중 한 명의 아이를 가리켰다.

“아이고, 엄청 작네.”

“네. 이제 생후 4일이라서요.”

아이는 엄청 작지는 않았다.

슬쩍 몸무게를 보니, 3.8kg이었다.

분명 절대적인 수치로는 엄청 작은 아인데 양옆으로는 이보다 훨씬 작은 애들도 있었다.

몸무게가 1kg이 채 되지 못하는 아이들.

미숙아들이었다.

‘거참……. 언제 와도 여기는.’

[일단 봐야 하는 환자부터 봅시다.]

‘그래, 그래야지.’

수혁도 사람인지라 이런 아이들을 보면 잠시라도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바루다가 있어서일까?

금세 눈앞의 환자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단 아기 태어날 때 기록 좀 보자.”

“네, 여기 있습니다.”

김병길이야 노상 들어오는 곳이라 그런지 별 감흥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일상적인 업무 보는 듯한 얼굴로 아이 차트를 띄웠다.

그제야 수혁은 아직 아이에게 이름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김혜진 아기로 되어 있구나.’

산모 이름이 김혜진일 터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커다란 이유는 아무래도 아이가 곧 죽을 수도 있어서일 터였다.

그렇다고 이름도 안 붙이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으나, 이름 없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과 이름까지 지어 준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당연히 후자가 압도적으로 힘들었다.

해서 의료진들은 대개 좀 미루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 주는 편이었다.

‘체중은 3.83kg(90 백분위 수 이상), 신장 53cm(90 백분위 수 이상), 머리둘레 36cm(90 백분위 수 이상)이었고 체온은 37.1도. 맥박수 140회/분, 혈압 67/53mmHg. 흠…….’

[엄마 배 속에서는 잘 컸군요. 예상과는 좀 다르네요.]

‘그러니까. 꽤 잘 컸어. 일단 진찰을 해 볼까.’

수혁은 차트를 보다가 목에 걸고 있던 청진기를 귀에 끼웠다.

그리곤 아이가 숨을 어떻게 쉬고 있는지 관찰했다.

슈욱.

슉.

지금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고 있다 보니, 숨은 지극히 규칙적으로 쉬고 있었다.

이건 당연한 거라 관찰할 의미가 없었다.

수혁이 지켜보는 건 복부 팽만이 지금 아이의 숨찬 증세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그가 보기에, 또 바루다가 보기에 아이의 흉곽은 딱 양쪽 대칭으로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복부 팽만이 있기는 한데…….’

[이미 처치를 해서 그런가, 아주 심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니까 이것만으로도 횡격막이 위로 눌릴 수는 있어. 하지만 그렇다면…….’

[흉강 내압의 만성적인 상승 소견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양측 팔이나 경정맥 등이 확장되어 있어야 하지.’

정맥은 피가 심장으로 돌아오는 길이지 않나.

동맥처럼 탄력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심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리면 그 음압으로 인해 쑥 하고 피가 들어갈 뿐이었다.

때문에 심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좁아지거나 압력이 증가해 있으면 들어가는 피의 양이 줄어들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남은 피는 정맥에 남아 혈관을 부풀어 올렸다.

[그런 소견은 전혀 관찰되지 않습니다.]

이걸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가능하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팔은 몰라도 경부는 손만 대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니까.

아니, 사실 아기들은 얼굴을 봐도 됐다.

“애 얼굴에 울혈이 전혀 없네.”

“네, 흉강 내압이 올랐다면……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확실히 김병길 선생 말대로 좀 이상해요. 호흡할 때 흉곽의 움직임도 그렇고…… 일단 들어 볼게요.”

“네, 교수님.”

수혁은 역시 3년 차쯤 되니까 노티를 허투루 하지는 않는구만 하면서 숨소리를 들었다.

‘거칠군.’

[하지만 수포음은 없습니다.]

‘염증도 없다는 거지. 거친 거야, 뭐…….’

[네,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수혁이 행한 검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신생아 진료는 낯설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준비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어서였다.

이미 머릿속에는 대강 뭘 해야 한다는 것이 딱딱 정리되어 있었다.

“복부는 팽만해 있고, 당연히 뭐 장음은 감소 되어 있네. 간이나 비장의 종대는 없고, 심부건반사는 정상. 흐음.”

순식간에 대강의 검진을 끝낸 수혁은 턱밑을 짚다가, 이내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아이, 김혜진 아기의 차트가 띄워져 있었다.

“검사 결과는 없나? 혈액 검사 같은 거.”

“아, 네. 보여 드리겠습니다.”

김병길은 내과 의사가 이렇게 아이를 잘 볼 줄 몰랐단 얼굴을 하고 있다가 서둘러 검사 결과를 띄웠다.

그런 김병길의 어깨를 안대훈이 다 알겠다는 투로 툭툭 두드렸다.

성가셨지만 지금은 뭐라 할 때가 아니었다.

무려 교수가, 그것도 부센터장이 여기까지 온 마당 아닌가.

예의를 지켜야만 했다.

‘딱히 이상한 게 없어. 심지어 오늘 찍은 흉부 엑스레이도 그래.’

[그렇네요. 음.]

‘짚이는 거 있어?’

[일단 분석해 보겠습니다.]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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