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13화 (613/1,303)

613화 이제 외과 계열에서도 (5)

위이잉.

실제로 기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은 마치 이명처럼 그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아마 바루다가 인공지능이라는 고정 관념 때문일 터였다.

아니면 그냥 혈류량이 부족해지면서, 소리를 인식하는 뇌 부분이 오작동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음.”

뭐가 되었건 수혁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아이를 보다가 말고 돌연 머리를 짚었다.

인상도 좀 쓰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 사람이 어디가 좀 불편하구나란 생각이 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전부 의료진이지 않나.

“아이구.”

“어어.”

외과 레지던트 김병길과 아이의 담당 간호사가 따라붙으려 했다.

“아니, 아니. 괜찮아요.”

그때 안대훈이 나섰다.

예의 그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서였다.

병원치고 빛이 어두운 곳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이번에도 머리가 매우 반짝였다.

그렇다고 해도 안대훈의 머리는 유독 번쩍이는 편이었는데, 수혁은 이놈이 따로 광을 내고 있을 거란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매번 이렇게 태양권처럼 상대의 시야를 순간만이라도 앗아 갈 수가 없었다.

“읏.”

“으읏.”

효과는 만점이었다.

그저 앞을 가린 것만으로 김병길과 담당 간호사는 눈을 감고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방해하지 마시죠. 지금 교수님 고민 중이시니까.”

“네? 아니, 아프신 거 같은데.”

“원래 천재는 이렇게 고뇌합니다. 저도 이렇게 해요.”

김병길이 개소리하지 말라는 투로 나오자, 안대훈이 오랜 시간 연습해 온 것을 보여 주었다.

정말이지 수혁의 표정을 고대로 베낀 것과 같은 얼굴이었다.

아마 수혁이 이걸 봤다면 혹시 이놈 머릿속에도 바루다가 있나 싶었을 터였다.

그만큼 흡사했고, 그래서 기괴하게만 느껴졌다.

“이게 뭔…….”

동시에 좀 무서웠다.

해서 김병길은 불만을 계속 토로하지 못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바루다는 아무 방해 없이 계산을 끝마칠 수 있었다.

꽤나 성공적이었는지,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즘 뜸했습니다.]

‘뭐가 뜸해?’

[수혁이 아예 감도 못 잡고 있을 떄, 제가 뻗어 주던 도움 말이죠.]

‘아…… 아씨. 뭐지?’

수혁도 바루다가 분석할 때 사용한 데이터를 받아 볼 수는 있었다.

다만 그의 연산 속도로는 바루다처럼 빠른 분석이 불가할 뿐이었다.

‘분명 어디서 보긴 봤다는 얘긴데.’

지금 하는 말은 그저 다 넋두리에 불가하단 얘기이기도 했다.

그냥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고 봐도 무방했다.

바루다는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수혁을 보며 씨익 웃었다.

[잘 보세요. 이 환자는 우선 Hirschsprung 병이 있습니다. 아직 조직 검사로까지 확인이 되진 않았습니다만…… 임상적인 특성을 고려하면 그 외에 다른 병을 의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죠?]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저렇게 대장이…….’

대장으로는 음식이고 뭐고 아무것도 넘어가고 있질 못했다.

저 말은 대장이 아예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고, 동시에 대장에 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신경절들이 없다는 얘기였다.

드문 질환이기는 해도 모르면 안 되는 질환이기도 하기에 수혁쯤 되는 의사가 이런 걸 모른다고 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김병길도 의심하지 않았나.

여기까지는 쉽다, 이 말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아이 호흡을 보겠습니다. 이 아이의 호흡이 어땠다고 했죠?]

‘빈호흡이 있었어. 거기에 담즙을 동반한 구토가 있었지. 히스토리는 정확히 복부 팽만으로 인한 호흡 곤란을 가리키는데.’

성인에서도 그렇지만 횡격막 등의 근육이 덜 발달한 신생아에서 복압 상승은 더욱 복잡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이 흉강을 압박하면서 발생하는 호흡 곤란 증세였다.

응급처치로 기관 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다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하긴 했지만.

이것도 계속 지속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래에서 밀어 올리고 있는데, 이쪽에서도 힘을 줘서 폐를 펴려고 하면 어찌 되겠나.

강제로 힘이 더 강해지게 되고 연약한 아이의 폐는 죄 터져 버리고 말 터였다.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게 아니라, 실제 케이스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생하는 일이었다.

[네, 그래서 바로 처치에 들어갔습니다. 기관 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동시에 복부 팽만을 해결하기 위한 처치도 했습니다. 지금 아이가 엘 튜브를 꽂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었겠죠.]

‘그래. 지금은…… 뭐 확실히 들어가는 압력이 낮아.’

복부 팽만은 많이 해결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래 봐야 완전히 해결이 된 건 아니긴 했지만.

하여간 호흡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란 얘기였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인공호흡기에 호흡을 의존하고 있었다.

무턱대고 이랬을까?

태화 의료원 소아과나 소아외과라고 하면 그래도 국내 제일이라고 알아주는 곳인데?

조근호라는 교수가 개새끼긴 하지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실력이 좋아서였다.

[소아외과에서는 소아과 그리고 마취과에 이비인후과까지 불러서 발관을 시도했습니다.]

애초에 호흡 곤란이 복부 팽만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나.

원인이 해결되었다면 아이를 깨워서 인공호흡기를 위닝 하는 것이 옳았다.

이변은 그때 발생했다.

[하지만 아이의 호흡은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발관에 실패했습니다.]

보통 마취과와 이비인후과가 오는 건, 삽관했던 것을 뺐는데 호흡 곤란이 발생했을 때 다시 삽관하거나 기관 절개술을 하기 위함이었다.

소아과나 소아외과 의사들이라면 당연히 신생아에게 삽관하는 일이 잦기는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관 삽관이나 절개술의 스페셜리스트는 이쪽이라서 그랬다.

하지만 이 아이는 아예 빼지도 못했다.

인공호흡기 세팅이 바뀌자 산소 포화도가 쭉 빠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도 차트 봤어. 발관에 실패했지.’

[그 과정에서 아주 특기할 만한 소견이 있는데 혹시 놓치셨나요?]

‘놓쳐? 잠깐만.’

바루다가 아주 징그럽게 웃었기 때문에 수혁은 느낌을 빡 받았다.

아, 내가 뭔가 놓쳤구나.

그리고 이놈은 그게 뭔지 아는구나.

놓친 게 지금 진단 과정에서 핵심이구나.

해서 부리나케 아까 보았던 차트를 다시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눈여겨봐도 당황을 해서인지 뭔가 특이한 게 보이질 않았다.

아니, 차팅 자체가 개판이었다.

‘Extuation 시도했으나 CPAP 다음 과정에서 위닝 실패함. 이게 다잖아.’

외과계 기록은 이런 경우가 되게 많았다.

수술실과 병동, 그리고 협진에 응급실, 외래까지 다 책임져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다른 교수들도 딱히 이걸 가지고 레지던트들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그냥 들으세요, 그럼.]

‘하씨.’

바루다는 후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슬슬 남들이 이상히 여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약간 서둘렀다.

[중요한 것은 CPAP 다음 단계에서 실패했다는 데 있습니다.]

‘뭔…….’

[우리가 이 벤틸레이터 세팅을 바꿀 때 어떤 순서를 밟죠?]

‘일단 환자 깨우고 밖에서 강제로 숨 불어 넣어 주던 걸…… 환자 호흡을 보조하는 식으로 하지. 환자 호흡에 맞춰서.’

[네, 그것이 SIMV입니다. 그다음은요?]

‘그다음부터는 압력만 더하지. 그리고 나서는 이제 자발 호흡을 확인하고…….’

[네, CPAP까지는 됐어요. 다음에서 실패했습니다.]

‘그게 뭐?’

자발 호흡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의미할 뿐 아닌가.

수혁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바루다가 또다시 후후 웃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이런 경우가 꽤 오랜만이다 보니 아주 제대로 즐길 작정인 듯했다.

기분이 무척 나빴지만 의학에서 칼자루는 늘 아는 놈이 쥐고 있는 법이었다.

여기서 수혁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바루다가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약간 귀엽단 생각도 들었다.

요새 활약이 좀 덜하긴 했으니까.

[아이는 당시 완전히 깨지 못했어요. 당연한 얘기입니다. 완전히 깨우고 삽관을 유지하는 건 아이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는 일이니까요.]

‘그래, 그렇지.’

[그 상태에서 CPAP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이건 뭘 의미합니까?]

‘뭔 소리야.’

[깨우지 못했다는 건 아이가 자고 있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자? 그렇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자는 상황에서 CPAP은 괜찮았다…….’

CPAP이라는 것은 continuous positive airway pressure의 약자로, 우리 말로 하면 지속적 기도 양압을 뜻했다.

한국말로 써 봐야 의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그냥 외계어로만 들릴 텐데, 쉽게 말하면 밖에서 압력을 보조해서 숨을 불어 넣어 준다는 얘기였다.

이 모드의 호흡 보조 방식은 비단 중환자실에서만 쓰이는 건 아니었다.

‘수면…… 무호흡증?’

[네, 그렇습니다. 아이에게 구조적인 원인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는 뭘까요?]

‘중심성 저환기 증후군…… 그래, 이게 있었구나. Hirschsprung 병하고 극히 드물게 병발할 수 있다는 거. 이제야 생각난다.’

[네, 맞습니다. 정말 드문 상황이지만 이런 케이스를 부르는 말도 따로 있지 않습니까?]

수혁은 바루다의 말을 듣다 말고 눈을 부릅떴다.

여기까지 들었으면 되었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 뜨셨다.”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호들갑 떠는 안대훈의 면상이었다.

기분이 막 좋거나 하지는 못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반짝인다기보다는 번들거리는 이 머리를 눈앞에서 봐야 한다면?

“하다드 증후군.”

하지만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았다.

왜냐면 수혁은 언제고 자기 자랑할 만한 타이밍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는 인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진짜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나도 바로 생각지 못했던 진단명이야, 이거.’

조금 거만한 생각이지 않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옛날과는 달리 지금의 수혁에게는 이런 생각을 해도 좋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

바루다마저 이제 더 이상은 다른 숙주 얘기를 안 꺼내고 있지 않나.

설령 이현종 머릿속에 들어갔다 해도 수혁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을 지는 의문이어서 그랬다.

“네?”

“그게 무슨…….”

“수멘.”

셋 다 하다드 증후군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건 매한가지였다.

해서 김병길과 간호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안대훈은 오히려 눈을 감았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서였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경건해 보여서 더 싫었다.

“잘 들어. 일단 이 환자 Hirschsprung 병이 있는 건 맞아. 신경절이 없어지는 병이지.”

“네네. 그건 저희도…….”

“이 Hirschsprung 병이 있는 상황에서 선천성 중심성 저환기 증후군이 병발하는 경우가 있거든?”

“어……. 처음 들어 봅니다.”

“선천성 중심성 저환기 증후군 자체가 드문데, Hirschsprung 병이랑 같이 있는 경우가 대략 3% 정도밖에 안 돼서 그래. 극히 드물 질환이지. 하지만 워낙 특징적이어서 이름도 붙었어. 그게 하다드 증후군이야.”

“수멘, 수멘…….”

“넌 좀 닥쳐 줄래? 수멘 그만하라고.”

“수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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