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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616화 (616/1,303)

616화 천재면 다래 (2)

이현종과 신현태의 따스한 눈빛을 그리고 수혁에게는 미심쩍은 눈빛을 받던 안대훈은 흠흠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수혁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냥 황송하단 생각을 하면서였다.

이런 생각을 수혁이 알게 된다면 참으로 소름이 쫙 돋아날 만한 일일 텐데.

다행인지 뭔지 몰라도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에게조차 남의 생각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아주 자세히 바라보면 또 모를 일이긴 한데, 수혁은 애초에 안대훈의 얼굴을 그렇게까지 성의 있게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게 제가 비뇨기과 한석준 교수님한테 들은 얘긴데요.”

비뇨기과란 얘기를 듣자마자 일단 이현종이 급발진했다.

“비뇨기과? 한석준? 그 새끼들 그거 싹수 노란 새끼들인데.”

“아유, 형. 또 뭘 싹수가 노래. 같은 병원 사람들끼리.”

“그 새끼들이 수혁이 엿 먹이려고 똘똘 뭉쳤던 거 기억 안 나? 네가 그러고도 어? 삼촌을 자처하니?”

“아, 맞네. 그 개새끼들.”

말리던 신현태도 수혁이 얘기가 나오자 급발진했다.

“자자, 그만하시고…… 어차피 다 지난 일 아닙니까…….”

말하던 안대훈마저 머리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때 생각을 하니 열이 뻗치는 모양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당사자인 수혁이 나서서 말려야 했다.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난 그렇게 화가 안 나는데…… 이 사람들은 왜 이러는 거야.’

딱히 수혁이 이 사람들보다 속이 넓어서는 아니었다.

훨씬 긍정적이고 허허하는 성격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옛말 아닌가.

이현종의 영향을 받다 보니 슬금슬금 안 좋은 쪽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비뇨기과가 개기면 또 어때?’

또 밟으면 되지.

실력이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 이따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말해 봐.”

덕분에 수혁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안대훈을 채근할 수 있었다.

안대훈은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수혁의 말을 우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감정이나 생각보다도 우선하는 사람 아닌가.

덕분에 안대훈은 곧장 수혁의 말대로 아까 하려던 말을 이어 나갔다.

“네, 사실 한석준 교수님 동생이 전에 이수혁 교주…… 아니, 교수님 진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응? 그래? 누구지?”

“완전 비밀로 하고 오셔서 모르셨을 거예요. 변호사신데, 갑자기 법정 공포증이 생겼던 케이스입니다.”

“아, 그…… 갑상선 항진증 환자분.”

“네.”

건강한 육신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지 않겠나.

이 말이 꼭 맞는 건 아니겠지만, 육신과 정신은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얘기였다.

갑상선 항진증이라는 게 아무래도 심장이 빨리 뛰게 되다 보니 긴장이 더 되고, 법정에서 조리 있게 말을 해야 하는 변호사 입장에서는 공포심까지 유발할 수 있었다.

때문에 주된 호소 증상을 법정 공포로 생각했고, 그 말을 들은 의사들도 거기에 매몰되어 진단을 완전히 놓쳐 버렸던 케이스였다.

“교수님 진료 보고…… 하루 걸렸나요? 바로 좋아지셔 가지고, 그 후로 저희 교…… 아니, 동호회 들어오셨습니다.”

“거기 교수님들도 계셔?”

“네? 네. 조태진 교수님이 저희 지도 교수님 자원하셨어요.”

“아, 조 형.”

오컬트 마니아라고 하더니만.

결국, 종교에 귀의한 모양이었다.

어찌나 학생 때부터 일관된 모습을 보여 왔던지 다들 그럴 줄 알았다 했다.

그 종교라는 게 사이비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수혁교가 될 줄은 그 누구도 모르긴 했지만.

‘뭐…… 조 선배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긴 해요. 이수혁 교수…… 뭐가 있긴 있거든요.’

김진실 교수가 어느 정도 두둔하고 나선 덕에 과한 비난은 없었다.

게다가 겉으로는 동호회를 표방하고 있다 보니 더더욱 무풍지대에 놓여 있었다.

“네, 아무튼. 지금 최낙필 교수님 필두로 해서 회동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회동? 거기는 왜? 그 새끼 그거 아직도 버릇 못 고쳤나?”

안대훈의 말에 이현종이 또 급발진을 해 댔다.

예전엔 그냥 성질 좀 더러워도 실력 좋은 후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최낙필만 보면 수혁이 고아라고 하면서 좋아했던 모습만 떠올랐다.

“그게 외과계 교수님들은 여전히 불만이 있는 모양입니다.”

“불만이 있어? 왜? 우리 요새 딱히 자극 안 하잖아?”

안대훈도 이현종을 하루 이틀 보는 게 아니다 보니 급발진하는 시니어급 교수를 눈앞에 두고서도 멀쩡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덕에 이현종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안대훈의 말을 받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이상한 광경일 터였다.

그 이름 높은 태화의 석좌 교수와 3년 차 대머리 레지던트가 이렇게 쿵짝이 잘 맞는다니.

“그…… 이수혁 교수님께 레지던트들이 청탁을 해서요.”

“청탁……? 우리 수혁이는 금품 수수 그런 거 안 하는 앤데?”

“아,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진료 봐주십사 부탁을 합니다.”

“넌 새꺄, 말을 똑바로 해야지. 나야 괜찮지만 애매한 놈들은 의심한다고.”

“네,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몇 개 봤더니 모인 모양입니다.”

“왜 모여? 잘못 봐줬을 리가 없잖아?”

“네, 다 잘 봤습니다. 근데…… 아시잖습니까. 교수님들 자존심이…….”

“이런 병신들.”

이현종은 혀를 츠츠 찼다.

교수란 것들이 얼마나 알맹이가 없으면 자기가 오진 내렸거나 끙끙대던 환자 진단 내려 준 일로 꽁한단 말인가.

‘이런 거 보면 차라리 우창윤이 괜찮은 놈이야.’

그놈은 뭐가 되었건 간에 이수혁이 우리나라 제일의 의사라고 인정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고 통합진료학회 이사직을 흔쾌히 수락한 것은 아니긴 했지만.

하여간 맡기는 했더랬다.

최고랑 함께하는 거니 하기는 하겠다고 하면서.

“근데 이건 내가 어떻게 할 만한 일은 아닌 거 같네.”

예전의 이현종이었다면 지금쯤 최낙필 방 앞에 있을 터였다.

신현태도 그럴까 봐 이현종의 팔뚝을 붙잡고 있다가, 의외로 가만히 수혁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민망한지 슬그머니 힘을 풀었다.

“저요?”

“그래, 수혁이 넌 어떻게 생각해. 외과계 진료 그만둘 거야?”

이현종은 길길이 날뛰는 대신 은근히 기대하는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본인이 날뛰는 거보다 아들내미가 칼춤 추는 거 응원하는 게 훨씬 즐거운 일이라는 걸 늘그막에 알게 된 까닭이었다.

“아뇨.”

“역시.”

“네?”

“아니, 아냐.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수혁의 칼춤은 정말이지 날카롭지 않던가.

모든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라지만, 실력이 미쳐 날뛰다 보니 결과는 죄 어마어마했더랬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저쪽에서 일부러 함정 파고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격투기에서도 이런 말이 있지 않나.

기술은 결국,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의학에서는 압도적인 실력이 제일이었다.

“뭐……. 방법이 필요할까요? 그냥 지금처럼 요청 있으면 가서 봐줘야죠.”

“역시 그냥 봐주겠다?”

“네. 안 될까요?”

“되지. 왜 안 돼. 근데 그거 몰래 하지 말자.”

“네? 그럼……?”

“케이스 싹 모아. 우리 추계 때 1회 학회 열 거잖아. 아직 빈 세션들이 좀 있는데, 하나를 외과계 협진 결과로 채우자고.”

“아.”

물론 이현종이라고 아주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주연은 이수혁이라고 한다면, 연출 정도는 자신이 맡을 생각이었다.

다행한 것은 수혁과 이런 쪽으로 합이 진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잘 맞았다.

“그거 진짜 재밌겠는데요?”

“어, 그렇지? 학자가 되어 가지고 말야…… 뒷구녕으로 함정 파고 해서 되겠어? 학자면 논문으로 말하거나 학회에서 떠들어야지.”

“그러니까요.”

“협진 안 오나? 오면 나도 가고 싶은데.”

둘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런 종류의 지성은 하늘도 들어주고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전화벨이 울리긴 했는데 협진이 아니라 밥 왔다는 소식만 들을 수 있었다.

“일단 먹자. 대훈아 너도 먹어라. 넉넉히 시켰어.”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다 같은 배 탄 사람들끼리.”

“하하, 그 말이 제일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면 안대훈은 진짜 줄 하나 잘 선 셈이라 할 수 있었다.

일부 사람들이 안대훈의 수혁을 향한 신앙이 진짜가 아니라, 그저 원장단에 줄 대기 위함이라 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세상에 수혁처럼 실력이 미쳐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어떤 레지던트가 원장과 전임 원장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겠나.

하지만 안대훈은 진심이었다.

그는 다른 둘이 아니라 그저 수혁만 보고 있었다.

‘교주님과 식사를…….’

수혁이 그 눈빛을 눈치챘더라면 언짢아했을 텐데.

다행인지 뭔지 수혁은 그저 케이스 생각뿐이었다.

사실 이미 본 두 건의 케이스도 꽤 흥미롭지 않았나.

그런 거로 세션 하나를 채우면 나름 학회까지 따라와 준 사람들에게 보은이 될 거 같았다.

대상이 되는 최낙필이나 조근호에게는 악몽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부우웅.

그때 문자가 하나 왔다.

수혁이 아니라, 안대훈에게였다.

<형님, 저희 과에서 협진 하나 갈 텐데…… 이거 진짜 오리무중이거든요? 형님이 보시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냥 반려해 주세요. 아무리 봐도 느낌 좀 쌔해요. 아시죠? 최 교수님…… 신경외과 최낙필 교수님이랑 친한 거.>

이비인후과에도 퍼진 교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믿음이 부족한 놈.’

어찌 이수혁 교주님을 의심할 수 있단 말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드디어 수혁의 눈에 들어왔다.

알고 싶지 않은데 딱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놈에게 뭔가 케이스 하나가 들어왔다는 걸.

하도 오래 가까이에서 보다 보니 이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뭐야, 뭐 왔어?”

“아, 네. 교수님. 아직 협진이 온 건 아니고요. 이거.”

“응? 아……. 벌써? 이비인후과 최 교수님이면…….”

“최지은 교수님입니다.”

“김보영 교수님하고 동기지? 비과?”

“네. 소문이 안 좋지는 않은데…… 수술과 프라이드가 진짜 너무 세서 고집불통이라는 평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안과 시니어 교수랑도 한바탕 싸웠을까.

원래 마이너 서저리과 교수 하려면 어느 정도 파이팅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정도가 좀 지나친 사람이었다.

하여간 좋은 뜻으로 내는 협진은 아니란 얘기였다.

아까 한석준이 건네준 명단에 바로 이 최지은 교수도 있었으니까.

“받을 거야?”

이현종이 국수를 후룩거리곤 물었다.

수혁도 국수를 후룩거리며 답했다.

“받아야죠. 알고 냈든 모르고 냈든 전 진단하고 치료만 하면 될 일이잖아요?”

“캬, 명언이다. 야, 신현태 술 꺼내 와.”

“여기 형 연구실이야.”

“아, 맞네. 대훈아, 거기 서랍 까 봐라. 30년 깐다.”

“응? 이렇게 갑자기?”

“뭐 인마. 아빠가 기분 좋아서 아들이랑 아들 제자 놈 한 잔씩 주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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