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18화 (618/1,303)

618화 이번엔 이비인후과인가 (2)

당 들어간 수액의 위력은 대단했다.

사실 컨디션 회복하거나 하는 데 있어서는 수액이라는 게 그냥 마시는 거랑 비슷하거나 오히려 못 한 효용을 갖고 있다는 게 주류 의학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술을 깨는 데 있어서만큼은 효과가 좋았다.

이건 일종의 약물로 인한 급성 중독을 해독하는 느낌이기에 그러했다.

“어우.”

“개운하시죠.”

“어, 갈까? 근데 가도 되나? 열 시 넘었는데.”

“제가 계속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가도 됩니다.”

심지어 이 둘은 병동의 배려로 지금 비어 있는 2인실을 잠깐 빌려다 쓸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침대보도 빨아야 되고 해서 병원 물품이 소비되는 느낌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눈을 감아 주는 편이었다.

병원에서 너무 깐깐하게 돈돈돈 하는 것도 눈꼴 사나운 일 아닌가.

하여간 개운하게 일어난 수혁에게 대훈이 폰을 내밀었다.

폰에는 카톡 대화창이 떠 있었다.

“아, 너 이거. 신도냐?”

“네. 신도요.”

“교세가…… 대단하구나.”

“해외에도 퍼져 있는데요. 우리 병원이야 당연하죠. 이게 다 교주님의 흥복입니다.”

“흥복.”

이비인후과 레지던트가 대훈에게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죄 보고하고 있었다.

어차피 자기 병동 환자니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사실 엄청난 일이었다.

이비인후과가 동네에서 보면 코 빨아 주고 귀 파 주는 사람들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학 병원에서는 엄연한 외과 아닌가.

그중에서도 제일 빡센 외과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한데 자기 쉴 시간을 따로 빼서 교주님 수월하게 오실 수 있게 배려한다?

말이 안 되는 헌신과 봉사였다.

“네, 교주님. 아무튼, 지금 오시면 된답니다. 미리 얘기해 두었다고 합니다.”

“그래, 가자.”

“네네.”

일개 인간을 위해 다른 사람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이거야말로 엄청난 일 아닌가.

수혁의 나르시시즘이 들썩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신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대단하긴 한가 보다. 알아서 이러는 걸 보면.’

[방금 발언은 위험한데요? 인류 역사에 수없이 탄생해 온 사이비의 태동을 보는 듯했습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사이비에 대해서 모를 수가 있습니까. 수혁교를 계속 주시하고 있는데.]

‘아.’

다행히 그의 나르시시즘이 상당히 위험한 곳에 발을 들이려는 순간 바루다가 제동을 걸었다.

바루다가 추구하는 건 세계 최고의 의사이지, 세계 최고의 종교인은 아니었기에 그랬다.

“별관으로 가시면 됩니다.”

“어, 그래. 근데 넌 안 바쁘니?”

“네, 교주님의 은혜죠.”

“아니…… 이럴 시간에 좀 쉬든가.”

“어떻게 레지던트가 되어서 10시에 벌써 쉬나요? 공부해야죠.”

“그럼 공부를 해, 인마.”

“지금 가장 생생한 공부를 하러 가고 있습니다.”

“음.”

덕분에 정신을 차리게 된 수혁은 일단 원흉이 되는 안대훈을 보내고자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배를 인도해 와서 그럴까?

녀석의 말발이 꽤나 늘어 있었다.

틀린 소리는 아니지 않나.

책이나 논문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게 있기는 하겠지만.

결국, 의사의 가장 큰 스승은 환자였다.

“오셨습니까?”

별관 7층 서병동에 도착하자마자 얼굴에 ‘저는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듯한 친구 하나가 달려 나왔다.

피곤해 보이는 기색에 비해 행동은 무척 재빨랐다.

마이너 과 특징이라고 보면 되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수가 많은 과에 비해 유독 윗사람들에게 잘하려 애썼다.

“이쪽입니다.”

같이 잘해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힘들고 짜증 났을 테지만.

지금 수혁은 교주로서 대상이 된 마당 아닌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병동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환자가 있는 병실로 안내되는 순간까지의 과정이 워낙 부드러웠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 열겠습니다.”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는 병실 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안으로 향했다.

들었던 대로 할아버지 환자는 똑바로 앉은 채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랐다.’

[노인 인구에서 영양 결핍은 그리 드물지 않은 현상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기초 대사량이 감소하기 마련이었다.

근육의 양도 줄어들뿐더러 다른 세포들의 에너지 소비량도 줄어들기에 그랬다.

때문에 식욕도 줄어들기 마련인데, 이로 인한 만성 영양 결핍은 노인 건강에 있어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비슷하게 먹어도 소화 기능의 저하로 인해 영양소 흡수의 능률이 떨어지는데, 먹는 양까지 줄어들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는가.

괜히 노인이 되면 젊은 날에 비해 사람이 확 쪼그라드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그렇다고 하기엔…… 이 환자 SES(Social economic status: 사회 경제적 상태)가 꽤 좋아 보이지 않냐?’

[근거는 무엇입니까?]

바루다도 환자를 보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옷을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였기에 딱히 사회경제적 상태를 유추할 만한 단서는 없어 보였다.

아니, 사실 옷을 본다고 해 봐야 수혁의 안목이 형편없기에 수혁의 수준에 압도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바루다로서는 분석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수혁은 그래도 인간인지라 여기저기 의학 외적인 부분에도 관심이 있었고 또 최근 어울리게 된 무리가 교수나 사회 지도층이나 보니 자꾸 듣는 게 있었다.

‘일단 시계 봐라.’

[손목이 얇아서 안 어울리는군요.]

‘아니, 인마. 시계 자체를 봐. 금이잖아. 롤렉스라고. 저거 몇천만 원 할걸.’

[핸드폰으로 시계 볼 텐데 왜 그런 낭비를 합니까?]

‘그게 멋이래.’

[으음. 아무튼, 좀 산다 이거죠?]

‘그래, 게다가 옆에 보호자도 있잖아. 부인분, 손 꽉 잡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금슬이 적어도 나쁘진 않다는 거야. 어느 정도 케어를 받았을 거야. 그리고 환자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아.’

[웃을 때 이도 많이 보이는군요. 오케이, 동의합니다.]

둘은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동시에 환자가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상태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최지은 교수 차트에 VIP라고 쓰일 리도 없기는 했다.

‘그렇다면 환자가 마르게 된 게…… 뭔가 의학적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겠네.’

[네, 그걸 염두에 두시죠.]

꽤 많은 대화를 나눈 거 같지만 실제로는 찰나였다.

그저 수혁이 병실 문에서 환자 가까이 걸어가는 동안 일어난 일이란 얘기였다.

참으로 놀라운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수혁의 인사에 환자가 애써 웃으며 화답했다.

목소리가 살짝 걸걸한 것이 발성에 어려움을 겪는 느낌이었다.

‘담배를 태우시나?’

[아뇨. 외래에서 비흡연자라고 진술했습니다.]

‘뭐, 노인이시니 성대에 주름이 잡혔을 수 있지.’

[네, 하지만 그런 타입의 발성 장애는 아닌 듯합니다.]

‘무슨 소리지?’

[보통 성대에 주름이 잡힌 경우엔 말을 하기 위해 성대 주변근에 과도하게 힘을 주게 됩니다. 잘 안 보이는 게 정상이나 이 환자는 말라서 그나마 분석이 가능한데…….]

‘아, 안 보이네.’

바루다 덕에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남들은 불가능한 분석이 가능했다.

수혁은 바루다가 빨간색으로 강조해서 보여 주는 목 근육의 움직임을 보며 발성 장애 또한 문제 목록에 넣었다.

하지만 지금 급한 건, 이 환자의 주소 그리고 왜 이렇게 말랐는지에 대한 확인이었다.

“저는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기침과 이물감이 불편하시다고요?”

“아, 네. 이게…… 벌써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아휴.”

“기록을 보니까 최지은 교수님께서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거듭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왜 하나도 나아지질 않죠? 오히려 더 심해진 듯한데…….”

“흔한 질환이 아닐 수 있다는 사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괜찮으신가요?”

“네, 뭐.”

환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급히 입원하느라 6인실에 들어오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았다.

별관 7층은 중환자들보다는 대개 코와 귀 수술 환자들이 있는 곳이다 보니 다른 곳에 비해 분위기가 유해서 그랬다.

“오……. 이수혁 교수다.”

“누군데?”

“엄청 유명해. 여기 최고 명의.”

“와, 엄청 어린데…….”

게다가 몇몇이 수혁을 알아보기까지 했다.

사실 태화 의료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수혁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가 더 어려웠다.

김다현이 수혁을 필두로 해서 태화 의료원을 브랜딩 하는 데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그랬다.

‘기침의 양상은 특별할 게 없네.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네, 그렇습니다. 이물감도 그렇고요. 딱히 식사 전후로 심해지는 양상은 아닙니다. 그냥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심해진 양상이군요.]

‘질문을 좀 바꿔 볼까.’

덕분에 수혁은 기침에 대해 별 어려움 없이 쭉 질문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시간이 꽤 걸렸는데, 그걸 밖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최지은 교수의 지령을 받고 쪽지를 보낸 레지던트였다.

탓할 만한 일은 아닌 게, 이 레지던트의 꿈은 비과 교수였다.

그러자면 최지은 교수의 말을 절대적으로 받들어야 했을 터였다.

<교수님, 지금 이수혁 교수님 와서 진료 중입니다.>

<어때? 뭐라도 아는 거 같아?>

<아뇨, 굉장히 기본적인 질문만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냥 노화에 의한 변화인데, 그걸 진단하려고 하는 게 우스운 거지. 하여간 쓸데없는 검사하는지 안 하는지 보라고. 특히 비용 발생하는 거 있으면 더 좋아.>

<네, 교수님.>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막 떳떳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단 의사씩이나 되어서 환자 미끼로 쓰는 추잡한 짓을 한다는 것부터 그랬고.

이비인후과도 간혹 암센터 지하 전체 당직실을 쓰는 경우가 있고, 그러다 보면 수혁에 대해 듣는 게 있어서 더 그랬다.

‘그래도 환자 봐주러 온 사람을…… 어휴.’

해서 몸을 좀 더 감추었다.

그렇다고 교수의 당부를 잊지는 않았다.

여전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사이 수혁은 질문의 맥락을 조금 바꿨다.

“환자분 혹시 식사는 잘하시나요?”

이비인후과 의사들로서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주소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딴 길로 새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믿음이 충만한 안대훈은 흔들리지 않았다.

‘확실히 환자가 이렇게 마른 게…… 좀 이상해.’

심지어 환자를 종합적인 눈으로 보는 훈련까지 받아서 더더욱 그랬다.

“아, 그게. 최근에 잘 못 먹어요.”

“그렇게 먹으라고 하는데…… 삼키질 못하더라고요.”

보호자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바라던 바였다.

“얼마나 됐죠?”

“한 석 달?”

“에이, 석 달은 무슨. 여섯 달도 넘었어요. 이이가 소갈비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는데, 요새는 도통 먹지를 못한다니까요. 아마 거기 식당 주인은 이 양반 돌아가신 줄 알 거야.”

“거 재수 없게. 아예 고사를 지내라.”

“속상해서 그래. 막 체격이 좋지는 않았어도 마르지는 않았었거든요.”

반년은 넘게 못 먹었다는 뜻이었다.

나이를 고려할 때 제일 먼저 떠올려야 할 질환은 다름 아닌 암이었다.

‘좋지 않네.’

[그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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