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19화 (619/1,303)

619화 이번엔 이비인후과인가 (3)

암.

아직 현대 의학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이면서 동시에 너무 커다란 숙제이기도 했다.

대체 이놈의 질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가.

특히 노화와 연관이 되어 있는 만큼, 노인 인구에서는 사망 원인으로 절대적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혹시 암은 아니겠죠?”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더니?”

환자도 그게 걱정이 되어 온 모양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애써 웃음을 짓고 있더니만 지금은 훅 어두워져 있었다.

당연한 소리였다.

예전보다는 생존율이 많이 올라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암은 죽음이란 단어와 쉬이 치환되었다.

“그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 검진 언제 하셨죠?”

수혁은 환자 보호자의 옷차림새를 슬쩍 훑어보고는 질문을 던졌다.

명품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보호자가 옆에 고이 모셔 둔 가방이 무지하게 비싼 브랜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슬픈 얘기지만 검진율마저 빈부 격차를 보이지 않던가.

잘사는 사람일수록 건강에 훨씬 신경을 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아, 작년인가.”

“그때 어땠나요? 혹시 어떤 항목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네네. 그…… 뭐 고지혈증은 있는데, 나머지 다 괜찮다고. 고지혈증도 약 먹으면서 조절 잘되고 있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항목은요?”

“그…… 페…….”

“펫 시티요?”

“아, 네.”

“으음.”

펫 시티를 검진 목적으로 찍는 것이 효율적이겠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방사선을 검사 때문에 꽤 많은 양을 쐐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이미 찍은 상황에서 이보다 더 진단에 도움이 되는 정보도 드물었다.

‘펫 시티에서 괜찮았다면…….’

[암은 우선순위에서 잠시 보류해도 되겠습니다. 아예 빼는 건 좀 그렇지만요.]

‘그러니까.’

노령 인구에서 암이 훨씬 잘 발병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암 자체가 노화에 의해 발생하는 병이니까.

하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일 중 하나가 바로 암도 나이가 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노인에게서의 암이 보이는 행태는 젊은 환자들에게서의 그것과는 명백히 달랐다.

급격한 성장보다는 환자를 천천히 죽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식사 못 하셨다는 게, 식사량 자체가 줄었다는 거죠?”

“아, 네.”

“왜 그러시죠? 속이 더부룩했나요?”

때문에 수혁은 혹 암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며 질문을 이어 나갔다.

환자야 수혁의 속내를 알 수 없었기에 이게 어쩌면 암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여기며 신중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로 답을 했다.

최지은 교수가 혹 이비인후과 교수도 아닌 사람이 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는데, 그럼 알려 달라는 말을 하긴 했는데 그건 다 잊은 지 오래였다.

환자 입장에서는 이 의사가 자신이 아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일단 자기 증상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또 생각해 주는 게 최고이지 않은가.

특히 환자의 질환이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이너 과 의사인 최지은 교수의 패착이라 할 수 있었다.

“음, 그건 아닌데.”

“그럼요?”

“잠시만요. 제가 말을 오래 하면 요새…….”

“아유, 밥을 안 먹으니까 이러지.”

“거 뭐만 하면 밥밥 거리지 말라고.”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던 환자가 돌연 손사래를 치더니 보호자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보호자는 연신 타박을 해 가면서도 일단 물을 건네주었다.

꿀꺽.

덕분에 수혁과 바루다는 환자가 무언가 삼키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응?’

[뭐죠?]

그와 동시에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 마시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이었나 싶었던 것.

그러나 환자는 이게 일상인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아까 하려던 말을 이어 나갔다.

“그게 뭘 먹으려고 하면 이물감이 있어서요. 뭔가 좀 힘도 들고?”

물을 마셨으나 딱히 말하는 게 더 편해진 거 같지는 않았다.

여전히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힘도 잔뜩 들어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성대 주변근보다도 다른 곳에 긴장도가 올라간다는 점이었다.

‘연하곤란이 있어. 근데 우리가 흔히 보던 거랑 좀 다른데.’

연하곤란이란 말 그대로 음식 삼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증상도 있나 싶을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대학 병원에서는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

특히 신경외과나 신경과 또는 재활의학과에서 그랬다.

생각보다 무언가 삼킨다는 게 꽤 많은 근육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다 보니 신경이 다치면 쉽게 생기는 증상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협진을 많이 보는 수혁은 그런 환자 보는 게 익숙했다.

[네, 좀 이상한데요? 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요? 신경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무언가 걸린 사람처럼 먹었지?’

[네. 근데 그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오래되었다는 뜻이겠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됩니다.]

결론을 내린 수혁은 뒤를 돌아보았다.

덕분에 몰래 훔쳐보고 있던 레지던트는 급히 몸을 숨겨야만 했다.

그로서는 다행인 게, 딱히 수혁은 그런 움직임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오로지 눈앞에 있는 환자가 대체 뭔 병인가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지금 내시경 볼 수 있어요?”

“네? 아, 네. 치료실 가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층에 있죠?”

“네. 저희는 환자 여기서 봐야 해서요.”

“그럼 환자분 잠시 그리로 가실까요? 목 안을 좀 보려고요.”

“아……. 네.”

해서 수혁은 환자를 데리고, 신도들과 함께 처치실로 향했다.

들었던 대로 처치실에는 이비인후과 유닛이 무려 세 개나 있었다.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는 환자를 그중 하나에 앉히고는 수혁을 바라보았다.

뭔 내시경을 써야 하나 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90도로 목?’

[아뇨. 그보다는 파이버 옵틱이 좋겠습니다. 가뜩이나 목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데…… 후두 내시경은 무리일 수 있어요. 게다가…….]

‘아, 삼키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도 보려면 파이버 옵틱이 좋겠구나.’

[네, 바로 그겁니다.]

아무리 교주님이라도 내시경 종류까지 골라 주실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안대훈의 말마따나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어서 그랬다.

아니, 사실 이비인후과는 완전 마이너 과라 전공자가 아니면 다른 과는 모를 만한 일이 많아서라고 보는 게 더 타당했다.

“파이버 옵틱으로 보지. 넓은 쪽으로 한번 넣어 볼까요?”

“아, 네.”

하지만 수혁은 일반적인 의사 수준은 아득히 넘어간 지 오래였다.

거의 모든 과에 대한 지식이 아주 빠르게 쌓여 나가고 있었다.

‘오.’

덕분에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환자의 콧구멍에 파이버 옵틱을 집어넣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내시경이었기에 끝을 코 뒤를 통해 아래로 꺾을 수 있었다.

그러자 환자의 목 안쪽 깊숙한 구조물이 화면에 떴다.

“흐음.”

이렇게만 봐서는 딱히 뭐가 문제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수혁이 후두 내시경 화면에 익숙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이미 정상 소견은 데이터화 해 둔 지 오래였으니.

[정상 같아 보이네요.]

‘삼킬 때도 그럴까?’

[아니어야 할 텐데요.]

한편 수혁의 지시로 내시경이 기어코 환자 코를 통과했을 때, 아까 숨어 있던 레지던트 또한 그걸 죄 보고 있었다.

보고하기는 좀 애매한 거 같단 생각을 하면서였다.

‘꽝이긴 한데…… 이건 병동 환자들한테는 굳이 청구할 만한 일이…… 어?’

그리고 그 생각은 수혁이 환자에게 물을 건네고 삼켜 보라고 하면서 크게 바뀌었다.

물을 삼키기 위해 환자가 꿀꺽하는 사이, 내시경 화면을 통해 무언가 이상한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후두개 위로 덩이가 있군요.”

수혁은 귀신같이 그 장면을 캡처하고는 환자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더, 덩이요? 암인가요?”

“이미 펫 시티를 찍으셔서……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이쪽에 생기는 암도 있는데, 보통 느리게 자라거든요. 그리고 이건 덩이라기보다는…… 안에서 뼈가 자라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니만큼 아예 안심하는 건 위험합니다. 확인은 필요하겠어요.”

“네네. 얼마든지요.”

수혁의 말대로 후두개, 그러니까 성대 부위를 덮는 구조물 바로 위로 덩이가 관찰되었다.

목 뒤쪽에서 뻗어 나온 모양새였다.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들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다시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도 어느 정도 튀어나와 있었다.

그저 그쪽은 아예 볼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보니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하여간 한번 보이기 시작하니까 이보다 이상한 소견도 드물 거 같았다.

“자, 그럼 일단 CT 찍지.”

“네, 교수님.”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치료실 한켠에 마련된 컴퓨터로 향했다.

밖에서 숨어 있던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고대하던 순간이 온 셈이었다.

내시경이야 조금 불편하고 말 검사라지만 CT는 조영제도 써야 하고, 무엇보다 비용이 발생하는 검사이지 않나.

만약 이게 쓸데없는 검사였다고 밝혀지게 된다면, 타격이 있을 터였다.

하나 그럼에도 레지던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쓸데없어 보이지가 않아서였다.

‘저런 건 처음 보는데…… 확실히 CT를 찍어야 할 거 같은데. 아, 그렇다고 이걸 그냥 두고 봤다고 하면 최지은 교수님 성격에…….’

김보영 교수와 동기고, 심지어 나이는 김보영이 위지만 아랫사람들에게는 최지은이 압도적으로 어려운 상대였다.

불같을 때가 있어서 그랬다.

특히 본인 야망에 무언가 방해가 될 거 같으면 앞뒤 안 가리고 화를 내는데, 그럴 때마다 비과 제일 위 교수님이 잘못 뽑았나 봐 라고 하면서 한숨을 쉰다는 소문마저 있었다.

‘하씨……. 그래, CT 결과를 보고 말하자. 그게 좋겠어. 응급 환자 와서 잠깐 놓쳤다고 하면 되겠지.’

아예 놓을 수 없었던 레지던트는 부리나케 핑곗거리를 만들었다.

<교수님 제가 응급 환자가 와서 잠시 뒤에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있지도 않은 응급 환자를 만들어서 문자를 보냈단 얘기였다.

물론 정신은 온통 수혁과 저 환자에게 쏠려 있었다.

그 덕분일까?

레지던트는 수혁의 얼굴이 아까와 조금 달라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설마 뭔지 알겠다는 건가?’

문자 보내고 하는 게 시간이 걸리면 얼마나 걸린다고, 그사이에 얼굴이 저렇게 되었을까 싶었다.

착각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수혁은 이제 환자가 아니라, 나머지를 보고 있었다.

완연한 교수의 얼굴을 하고서였다.

“자, 환자 증상하고 이 소견 보면 무슨 병이 떠올라?”

먼저 타깃이 된 것은 이비인후과 레지던트였다.

내시경 사진이 익숙할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거 같기는 한데, 사실상 완전한 오산이라고 보면 되었다.

정말이지 저런 건 아예 처음 보는 상황이었으니까.

심지어 그다지 기대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젓자마자 안대훈을 바라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너는?”

“어…….”

“역시 좀 어렵나. CT까지 보면 생각이 날까?”

“제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교수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