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21화 (621/1,303)

621화 이번엔 이비인후과인가 (5)

안대훈이 또 기절해 버리는 바람에 일행이 CT실에서 나가는 시점은 무한정 연기되었다.

밖에 있던 프락치는 그렇지 않아도 일각이 여삼추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었는데 절대적인 시간까지 길어지자 배까지 아파 왔다.

‘돌겠네, 진짜?’

마려워 본 사람은 알지 않나.

사실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이만한 물리적인 통증을 감내해야 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렇게 프락치가 홀로 아무도 알 수 없고, 아무도 알지 못하기 원하는 사투를 벌이는 동안 드디어 안대훈이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엔 혹시 몰라서 아예 라인도 잡아 두었다.

“으.”

“정신이 드냐? 너 오늘 왜 이래? 공황도 아니고.”

“그게…… 아까 과음을 하기는 했나 봅니다.”

“아. 술도 먹었지. 이 미친.”

술 먹고도 수혁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모양이었다.

보통 같으면 여기서 한 번쯤 울컥해야 할 텐데, 사람 마음이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불쾌하기도 했다.

왜 내게는 이런 놈만 있는 걸까.

‘대훈이가 여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머리 여자친구요?]

‘아니, 외모도 여자여야지. 지금은 사람인지도 의심스러운데.’

[사람 외모로 그렇게까지 차별하는 거 아닙니다.]

마음의 파장을 바루다와의 대화로 순식간에 정리한 수혁은 아까 하려던 말을 다시 이었다.

“다 알려 줄 거야. 질문 아니니까 기절하지 마.”

다시는 기절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 가면서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안대훈은 더없이 안정된 얼굴이 되어 수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흡사 경건하게까지 보였는데, 그걸 보면서 이비인후과 신도 또한 신앙심이 한층 깊어졌을 지경이었다.

‘얼마나 진심이면 교주님 말에 대답하려고 진짜 기절까지 하냐.’

세간에 알려진 소문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대훈은 수혁이 죽으라고 하면 시늉만 내는 게 아니라 진짜 죽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이미 육신을 정신이 지배한 지 오래인 듯했다.

“포레스티에병이라고도 하고 DISH라고도 해. Diffuse idiopathic skeletal hyperostosis, 즉 미만성 특발성 골격 과골증이라는 말로 요새는 더 부르지. 말 그대로 이유 없이 뼈가, 특히 척추에서 골극이 자라나는 병이야.”

“네.”

“아쉽게도 아직 원인이 명확하지는 않아. 아마 자가면역질환이 연관이 있지 않나 하는 추론이 있기는 한데…… 그건 치료제에 기반한 추론일 뿐이고 아직 이렇다 할 이론도 정립된 건 없어. 여기까지가 일반론이고, 이제 환자를 떠올려 보자.”

“네.”

수혁의 설명은 언제나처럼 군더더기 없이 청산유수로 진행이 되었다.

심지어 아주 조금은 스토리텔링과 같은 부분도 있어 재미있기까지 했다.

사실 당직이라 빨리 찍고 쉬려고 했던 방사선사까지도 발이 묶여 있을 지경이었다.

“이 질환의 위험인자로 분류되는 건 일단 남자, 고령, 고지혈증, 통풍, 고혈압 그리고 기계적 스트레스가 있어. 우리 환자분은 남자고 고령에 고지혈증이 있지.”

“네.”

“게다가 손 봤어?”

“손이요?”

“그래. 손은 하얗고, 팔뚝은 타 있었어. 무엇을 의미하지?”

“어……. 전혀 모르겠는데요?”

“환자의 사회경제적 상태를 고려해 봐.”

“어…….”

“하긴 네가 필드에 나가 본 적은 없겠구나. 이현종 교수님이나 신현태 교수님 여름 지나면 그렇게 되는데.”

“아, 골프!”

장갑은 끼고, 반팔을 입게 되면 굉장히 특이한 모양새가 되기 마련이었다.

방금 수혁이 말한 것처럼 손은 하얗고 팔뚝은 까만 상태가 되는데, 수혁도 골프를 치지는 않지만 친하게 지내는 둘이 노상 골프장에서 사는 인간들이다 보니 괜히 골프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골프로 인한 여러 질환에도 익숙했다.

대개는 팔꿈치나 허리 또는 갈비뼈에 무리가 가지만, 노인에게서는 작은 공을 응시해야 하는 골프 특성상 목에도 무리가 갈 수 있었다.

“그래. 골프 칠 때…… 나는 잘 모르지만 두 분 가끔 연구실에서 연습하는 거 보면 생각보다 순간적으로 격렬하거든.”

“기흉도 생기잖습니까.”

“그래. 노인이라면 경추에도 무리가 갈 수 있겠지. 아무튼, 위험 요인은 충분해. 게다가 보이고 있는 증상도 특징적이지. 일반적으로는 어떤 증상이 있을 거 같아?”

“일반적이라.”

“아, 질문 안 한다 해 놓고. 괜찮냐?”

“아, 네. 이제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안대훈은 여전히 머리끝까지 누렇게 뜬 주제에 손사래를 쳤다.

그렇다고 해서 목숨이 위험할 거 같지는 않아서 수혁도 내버려 두기로 했다.

‘골극…… 단어만 보면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 척추는 워낙 중요한 곳이다 보니 나름 여유 공간이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주변을 붙잡고 지탱해 주는 근육도 엄청 단단했다.

그렇다 보니 어지간한 크기의 골극으로는 증상이 별로 없었다.

이 질환으로 인한 골극이라고 해서 특별할까?

크기가 무지막지하다면 얘기가 좀 다를 수 있겠는데, 수혁이 하는 말을 들어 봐서는 이 환자 케이스가 특별한 듯했다.

“거의 무증상일 거 같은데요?”

“어, 그래. 맞아. 그렇다면 경추에 이게 튀어나와 있다면 어떨까?”

“아……. 그럼 음. 일단 이 환자처럼…… 연하곤란이 있을 수 있고. 더 심각하다면…… 그러니까 위치가 안 좋으면 호흡곤란도 있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발성장애나 수면 무호흡도 있을 수 있고요.”

“그래. 그래서 흉추 변화가 더 흔하지만 실제로 진단이 되는 건 이비인후과를 통해서 되는 경우가 더 많아. 이쪽은 증상을 딱딱 일으켜 버리니까.”

“아하.”

이비인후과에서 진단이 잘된단 말에 신도의 얼굴이 거무죽죽해졌다.

경추란 얘기에 아, 우리 과랑 관계없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몰라도 됐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듣다 보니까 그게 또 아니지 않나.

의도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사람 들었다 놨다 하는 솜씨가 아주 미칠 거 같았다.

‘뭘 하길래 안 나와, 시발.’

물론 밖에서 여러 사투를 벌이고 있는 프락치가 제일 미칠 거 같았다.

그를 제일 괴롭히고 있는 생각은 아까 다녀왔으면 지금쯤 그나마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었을 거란 것이었다.

하지만 타이밍을 놓쳤고, 계속 간 사이 튀어 나갈 거 같다는 생각만 들어서 몸을 이리저리 틀면서 버티고만 있었다.

“저기 응급실을 가는 게 어때요?”

“아니, 아닙니다.”

“많이 아파 보이는데.”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오가던 보안요원이 이런 말까지 했다.

끼익.

그때 문이 열리고 셋이 나왔다.

표정만 봐서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래도 됐다.

평소라면 설명을 이어 나가고 있을 테니.

하지만 수혁도 대훈도 신도도 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미 안에서 치료제로는 일단 소염진통제를 쓰고, 물리치료를 해 봐라.

그래도 안 되면 수술을 고려해야 하는데 나이 생각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는 둥의 얘기를 나눈 바 있어서였다.

안대훈이 또 기절할까 봐 수혁이 배려한 탓이었는데, 프락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 되었다.

‘그래, 그래…… 약을 뭐 쓰는지 보면 돼. 그럼 알 수 있지.’

애써 자기 합리화를 거쳤으나 처방된 약은 소염진통제뿐이었다.

이건 어디 아프면 쓰는 약이지 않나.

일반적인 약이란 얘기였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것만 봐서는 절대 왜 쓰는 약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보고만 있었다?”

다음 날까지도 그랬다.

한 가지 다행한 점이 있다면 그래도 급한 일 중 하나는 처리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묘하게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최지은 교수의 심기를 더 거슬렸다.

“네, 그게…… 도저히.”

“조영제까지 쓰고 CT를 찍었으면 노티를 했어야지. 뭘 잘했다고 그런 얼굴이야?”

“네? 제가 어떤…….”

“몰라. 뭔가 기분 드러운데, 지금.”

“그…… 아닙니다, 교수님.”

오랜만에 후련하게 싸 제겼습니다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프락치는 잠자코 혼나기로 했다.

최지은 교수는 그런 프락치를 향해 계속 뭐라고 하다가, 이내 환자 기록을 까 보았다.

어디에도 수혁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으나 어제 진료 본 기록은 조금씩 업데이트가 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외래 들어가기 전에 완전히 정리를 해 놓을 생각인 듯했다.

1, 2년 차 그러니까 주치의가 이렇게 늦게 기록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불러다 놓고 혼내야 마땅할 텐데 상대는 그래도 3년 차였다.

‘여전히 3년 차들 별명이 투탕카멘이라던데…… 이걸 굳이 이수혁 교수한테 보이고 진료를 봤다 이거지. 1, 2년 차를 제끼고 지가 알아서?’

1, 2년 차 주치의 하는 동안 개고생했으니 잠시 실무에서 벗어나 쉬는 연차란 뜻이었다.

말이 쉬는 것이지.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식에 이론을 더하는 과정을 거치는 시기이긴 했지만, 하여간 낮에도 가끔 낮잠 잘 시간이 생길 만큼 여유가 있었다.

오죽하면 깨우면 저주받는다는 의미로 투탕카멘이라 불리겠나.

하여간 그런 놈이 알아서 환자를 봤다는 건 칭찬할 일이지 뭐라 할 일은 아니었다.

최지은 교수로서도 명분을 찾기 어려운 일이란 얘기였다.

“뭐야, 이거. 나도 내시경 봤는데 목 안이 이랬나?”

“외래 기록에서는 편도를 주로 찍으셔서…… 이 뒤는…… 아주 약간 융기되어 있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이건 뭔데. 파이버 옵틱으로…… 본다고 그게 이렇게 보여?”

“삼키라고 하면서 찍었습니다.”

“삼켜…….”

해서 점점 추가되는 기록을 실시간으로 따라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가관이었다.

최지은은 전혀 짐작지 못했던 소견이 계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CT에서도 엄청난 크기의 골극이 관찰되지 않았나.

이렇게 되면 도저히 허락도 없이 찾아와서 쓸데없는 검사를 했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위에서 싸고도는데 이런 거로 대들었다가는 어찌 되겠나.

아무리 병원이 과별로 어느 정도 권한을 인정해 주는, 회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집단이라고 해도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증상도 좋아졌다고? 이건 맞아?”

“아침 먹으면서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그렇긴 한데…… 플라시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플라시보건 뭐건 좋아졌다고 한 건 맞다는 거야?”

“네, 교수님.”

“하…….”

최지은 교수의 눈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진단명이었다.

포레스티에병이라니.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질환이었다.

‘이번엔 운이 좋았군.’

대단하다는 생각부터 했어야 할 거 같은데, 의외로 운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 과 증상으로 왔는데 우리 과 질환은 아니었다 이거지? 그래, 이번에는…… 졌다고 치자. 그래도…… 계속 이렇게 조심성 없이 다니다 보면 사고는 치게 될걸.’

최지은 교수는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고는 다시금 4년 차를 바라보았다.

“아, 그래 이번에 인턴들은 어디 쓴대?”

“네? 아…… 그게.”

“그게 뭐.”

“내과가 경쟁률 2.3 대 1이 되어 가지고요…….”

“뭐? 아니, 나가면 우리 과보다 못하잖아.”

“근데 이수혁 교수 때문에 우리 병원은 내과가 짱이라는 생각을…… 아니, 이게 제 생각이 아니라요.”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