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22화 (622/1,303)

622화 도장 깨기 (1)

1년 차가 어느 과에 주로 지원하는가.

이건 적어도 병원 내에서만큼은 무척이나 예민한 문제였다.

아닌 척하지만 신경 안 쓰고 있는 교수들은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되었다.

1등이 지원한 과라고 하면 괜히 교수들 어깨가 으쓱해지고 한달까?

물론 이비인후과가 피이안성(피부과, 이비인후과, 안과, 성형외과)에 묶여서 일등이 지원하던 시절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된 지 오래다 보니 1등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설마 미달이니?”

하지만 지원율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아무리 이비인후과가 훅 가고 있다고 해도, 스테디셀러이지 않나.

정형외과의 동의가 필요하겠지만 개원가의 양대 산맥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쓰였을 정도였으니.

당장 여기 서 있는 최지은 교수만 해도 학교 성적이 좋았다.

눈앞에 있는 레지던트도 1등급이었고.

“네? 아직은…… 뭐 정식으로 지원을 받진 않았고요. 과 도는 애들한테 구두로 조사한 거라서요.”

“지원자 모두 몇인데?”

“아직 둘입니다.”

“우리 티오가 넷인데, 둘? 반밖에 안 돼?”

근데 1등이 오기는커녕 미달이 나게 생겼어?

과 전체가 그 사달이 나고 있는 상황이면 그나마 괜찮았다.

가령 비뇨기과나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은 전국이 미달이지 않나.

하지만 이비인후과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 말은 곧 태화 의료원의 이비인후과만 이러고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 교육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있나? 아니면 나가서……? 우리 병원 출신들이 개원은 잘 못 해도 대학 병원 스텝 잘만 가잖아?”

“그런 게 아니라…… 역시 문제는 내과가…….”

“내과. 하……. 거기 지원자 몇이라고?”

“거의 60명입니다.”

“이런 미친. 내과 나와서 뭐 한다고 그렇게 바락바락 가? 대부분 소화기내과로 빠져서 내시경 하다가 나이 50에 어깨 나가지 않아?”

아마 소화기내과 의사가 옆에서 들었다면 최지은 교수의 뒤통수라도 후려쳤을 터였다.

암만 의사들이 과에 따라 사분오열되어 있는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교수씩이나 되어서 레지던트 앞에서 다른 과 욕을 이렇게 해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이 자리에는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뿐이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교수 말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사람뿐이었기 때문에 별일 없이 지나갔다.

“그게…… 그러게나 말입니다. 근데 하도 언론이나 이런 데서 이수혁 교수님을 잡아 주니까요. 애초에 인턴 지원하는 친구들이 내과를 많이 생각하고 오는 거 같습니다. 지방 병원 1, 2등은 이제 아선이나 칠성은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왜. 여기 내과 들어오려고?”

“네.”

“미친……. 아, 근데 이건 물 건너갔다 이거지?”

“네, 아무래도 맞는 거 같습니다.”

“거참…….”

내과가 대학 병원의 기둥인 것은 맞았다.

사실 최지은 교수만 해도 벌써 몇 번이나 내과의 도움을 받았던 바 있었다.

마이너 과들은 아무래도 전신 질환이 없는, 건강한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에 더 관여하고 있다지만 대학 병원에 있다 보면 전신 상태가 굉장히 안 좋은 환자들도 일부 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다 보면 환자가 급격히 나빠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비인후과에서 할 수 있는 진료라는 것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내과라도 그렇지 60명……? 안 그래도 요새 외과계 지원율 떨어지는데 이러다 다 말라 죽겠네. 원외턴이라도 열어야 할 정도야?”

“아뇨, 아직입니다. 제가 애들 시켜서 백방으로 알아보고 또 홍보하고 있습니다. 저희 과…… 나름 로컬 강자 아닙니까? 죄다 대학 병원 남을 생각은 아닐 테니 돌아서는 애들 있긴 할 겁니다.”

“그래, 일단 그건 그럼 네가 알아서 하고. 9월까지 상황 봐서 여전히 미달 날 거 같으면 말해 줘. 내가 학회 차원에서 지방 병원에 뿌려 볼게.”

“네, 교수님.”

고마운 것도 모르고 둘이 이런 작당을 하고 있는 사이, 수혁은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교수님, 2년 차 우하윤입니다. 노티 드릴 일이 있어서요.”

“어, 말해 봐.”

“사실 딱 내과 환자는 아닌데…… 소아과 교수님이 혹시 모르니 협진 형식으로 보라고 했습니다.”

“응, 그래. 나 어차피 지금 당장 할 일 없어.”

정확히 말하면 할 일이 없다기보다는 할 일을 없앴다는 말이 더 맞을 터였다.

괜히 천재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전광석화처럼 일을 끝장내 버렸다.

이현종마저도 오늘은 좀 질린다는 얼굴을 했을 지경이었다.

‘내 아들이지만 오늘은 진짜 기계 같네.’

출근하자마자 1초도 지체하지 않고 회진을 싹 돌더니만 밤새 발생했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낮에 생길 거 같은 문제까지 정리해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교수 아니라 교주라 불릴 만하시네.’

주변에 있던 레지던트들은 그 모습을 온전히 봤을 뿐 아니라, 지금 친절한 전화 응대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깊은 감명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안대훈과 같은 신앙심을 가질 자신은 없었지만, 존경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얘기였다.

물론 제일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은 전화를 건 우하윤이었다.

하윤은 속으로 몇 번이나 역시 교주님이라는 단어를 되뇌면서 노티를 이어 나갔다.

“25개월 여아입니다. 속옷에 자꾸 묻어나는 혈흔을 주소로 내원하였습니다.”

“혈흔? 혹시……?”

예전 같았으면 엄두도 못 낼 의심이었다.

하지만 시절이 하 수상하다 보니 의사로서 말 못 하는 아이의 반복되는 혈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동학대가 되어 버렸다.

“아, 아뇨. 외상은 전혀 없습니다. 아마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혈뇨가 원인일 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뇨기과 측도 협진 진행하였고, 지금 진료 중입니다.”

“아……. 혈뇨? 25개월이면 이제 3세 아냐?”

“네. 그렇습니다.”

“흐음. 드문 소견이네. 그리고?”

원래 아이들에게서는 모든 증상이 드물긴 했다.

아플 나이가 아니기에 그랬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혈뇨는 더더욱 드문 편이었다.

수혁은 어쩔 수 없이 유전병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혹 난청이 있다면 알포트 증후군과 같은, 이비인후과적 유전 질환이지 않을까 하면서였다.

“그 외에는…… 아이가 옆구리가 좀 아프다고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아파? 요로 감염력은 없어?”

“있습니다. 한번 입원 치료까지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 흐음. 아무튼, 가서 볼게.”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요로감염이라.

그렇다면 요관의 이상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요관 형성 과정에서 이상이 있었다면, 역류가 쉽게 일어나게 되고 그럼 감염도 쉽게 일어나는 법이니까.

‘소아에서는 요로 감염으로도 충분히 혈뇨가 생길 수 있지.’

[게다가 여아라면…… 비뇨 생식기 구조상 남아에 비해 요로 감염에 있어서 취약합니다.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하긴, 그렇네.’

소변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린내가 나기는 해도, 사실 소변 자체는 무균 상태로 배출이 되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대변은 아예 대장균을 품고 있는 존재 아닌가.

기저귀를 찬 상태에서 빨리 제거가 안 되면, 특히 돌출된 구조가 아닌 여아인 경우 위로 감염이 발생할 수 있었다.

괜히 요로감염의 주된 균주가 대장균인 게 아니란 얘기였다.

“교수님, 이쪽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응급실이었다.

그 응급실 문을 열며 앞쪽을 가리킨 것은 지금 센터 근무 중인 레지던트 3년 차였다.

사실 3년 차쯤 되면 응급실 정도는 교수가 가더라도 안 가고 빈둥댈 수 있을 텐데, 수혁의 진료 과정을 한번 보는 게 교과서 몇 번 들여다보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돌아서 그런가 최근 들어서는 부득불 따라붙는 애들이 늘어난 편이었다.

“어, 어어. 소아던데?”

“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래.”

태화 의료원은 초거대 의료원이니만큼 응급실 구획도 딱딱 잘 나눠져 있었다.

안 그러면 안에서 길을 잃을 공산도 있어서였다.

소아과 섹터만 해도 어지간한 대학 병원 응급실만 하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저기, 우하윤 선생이 있습니다.”

“아, 그래. 저긴가 보다.”

하여간 둘은 우하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예상대로 그 바로 옆 침대 부근에 아이가 누워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온 레지던트들은 아이의 생김새부터 살폈다.

25개월에서 혈뇨가 있다면, 아무래도 선천성 질환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천성 질환은 단독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동반되는 기형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뚜렷한 이상 소견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네, 하지만 아직 모릅니다.]

미추를 떠나 특징을 보이기 마련인데, 적어도 수혁은 발견하지 못했다.

바루다의 도움이 있었음에도 그랬다는 건 외형상의 이상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 내가 봐도 되나?”

도착하자마자 단서 하나를 소거한 수혁은 하윤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하윤 대신 옆에 있던 소아과 레지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비뇨기과 선생님은 이미 보고 처방 내려서요. 교수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소아를 내과 의사가 본다는 거 자체가 월권이고 또 영역 침탈이었다.

하지만 이기자 교수가 하도 분위기를 잘 짜 둬서 그런가 소아과는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비뇨기과는 아마 수혁을 마주치기 싫어서 저기 숨어 있는 모양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바루다의 말에 따라 고개를 돌린 수혁은 이내 a존 근처 스테이션에 숨어서 키보드를 두드려 대고 있는 레지던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바루다라 해도 다른 과 레지던트들까지 데이터베이스화해 두진 않았지만, 그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까 소아과 친구도 저쪽을 보며 말했으니까.

‘그러라지, 뭐.’

수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별거 아니겠지, 아니겠지 했는데……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해서요.”

“네, 제가 좀 보겠습니다. 혹시 그냥 상처가 난 것일 수도 있는데 그건 확인받으셨나요?”

“아, 네. 그건 오자마자 여기 선생님께서.”

“그렇군요.”

보호자는 수혁에 대해 전해 들은 게 있는지 딱 오자마자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그 바람에 수혁은 비뇨기과 일은 까맣게 잊은 채, 아이만 보게 되었다.

사실 그런 일이 없었다 해도 마찬가지이긴 할 터였다.

수혁의 환자에게 골몰하는 병세는 나날이 심해져만 가고 있기에 그러했다.

“혹시 아이 아직 기저귀 차나요?”

“아뇨, 뗀 지 좀 됐습니다. 아, 밤에는…… 아직 차고요. 가끔 실수를 해서요.”

“오, 빠르네요? 25개월인데.”

“네. 답답해하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럼 혹시 요로 감염으로 입원한 건……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땐가요?”

“두 번인데…… 한 번은 차고 있을 때고 한 번은 그 후입니다.”

“그래요?”

심지어 이번엔 대화에서 예상치 못한 정보까지 나왔다.

‘기저귀를 뗐다고 해서 여아에서 요로 감염이 남아보다 덜 걸리게 되는 건 아니더라도…….’

[가능성은 떨어지겠죠. 역시 단순히 생각해서는 안 될 케이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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