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23화 (623/1,303)

623화 도장 깨기 (2)

수혁은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고는 다시금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얼굴만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눈꺼풀을 보시죠.]

‘오케이.’

수혁은 조심스레 아이의 얼굴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름을 확인하고서였다.

“수아야. 선생님이 잠깐 눈 좀 봐도 될까?”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한 반응을 보이는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원래 낯선 공간에서 태연할 수 있는 아이는 없는 법 아니겠나.

그중에서도 병원은 다분히 공포스러울 수 있는 공간이기까지 했다.

‘애가 침착하네.’

[괜히 두 돌 지나서 바로 기저귀 뗀 게 아니죠. 제가 알기로 수혁은…….]

‘원래 남아가 더 오래 걸리는 건 알고 있지?’

[평균을 아득히 넘어갔던데요?]

‘보육원이라 그래. 거기 스트레스가 얼마나.’

[아, 아이 눈.]

수혁은 바루다의 방해에 굴하지 않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꺼풀을 까뒤집었다는 얘긴데, 그러자 살짝 창백해 보이는 안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말은 곧 헤모글로빈이 떨어져 있다는 뜻이었다.

‘혈뇨로…… 이렇게까지?’

[드문 일이죠. 뭔가 이상한데요?]

‘신장 괜찮은 거냐, 이거?’

[초음파 검사를 요청합니다.]

‘그래, 바로 봐야겠는데…… 혈액 검사는 아직이지?’

[네, 바로 나가긴 했을 텐데…… 나왔으면 말을 했을 겁니다.]

‘하이씨……. 애 너무 어린데.’

빈혈을 일으킬 정도의 혈뇨는 정말이지 드문 소견이었다.

만약 이게 신장에서 걸러지지 않아서 그냥 막 내려오는 거라면 큰일이었다.

이미 아이의 신장이 많이 망가졌을 거란 얘기가 되니까.

“여기 초음파 좀 볼게요.”

“네, 교수님!”

사실 신장 기능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검사는 혈중 크레아틴 농도와 bun이었다.

거기에 더해 소변 검사까지 한다면 더더욱 정확해질 터였다.

하지만 제일 빨리 볼 수 있는 검사를 논한다면 역시나 초음파였다.

시행하는 사람의 실력에 크게 좌지우지되는 검사이기는 하지만, 실력이야 수혁에게는 걸림돌이 되지 못하게 된 지 오래였다.

드르륵.

단지 수혁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수혁을 잘 아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 또한 그랬다.

특히 수혁교 부회장 아니, 이제 거의 성직자라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춘 우하윤에게 수혁의 실력은 절대적이었다.

해서 하윤은 초음파 얘기가 떨어지자마자 후다닥 달려 초음파를 끌고 왔다.

“오, 세팅 배웠어?”

“네. 이 정도는 내과도 봐야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내가 그랬지.”

심지어 세팅도 할 줄 알았다.

언젠가 한번 수혁이 지나가듯 가르쳐 준 적이 있는데, 잊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거 좀 차가워. 근데 아픈 검사는 절대 아냐. 할 수 있지?”

수혁은 하윤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검사 준비를 마치고 환아에게 검사할 것임을 알렸다.

이번에도 아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뭔가 체념한 얼굴로도 보였다.

요로 감염으로 두 번 입원했다고 했으니, 벌써 큰 병원이 세 번째이지 않나.

이미 나는 뭔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단 인식이 자리 잡을 숫자란 얘기였다.

‘빨랑 진단해야겠는데.’

원래 수혁은 어떤 환자를 봐도 그저 덤덤한 편이었다.

아이라고 해서 특히 더 마음 아파하는 것이 적었단 뜻이었다.

하지만 이기자, 김보영 교수와 함께 진료한 후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흔들리지 마세요. 그러면 오히려 진단이 늦어집니다.]

‘이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냐. 감정에는 명령어 쓰는 거 아니라고 했지?’

바루다는 그런 수혁을 염려했으나, 수혁은 이런 게 다 의사로서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는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가 그날 보았던 의사들은 전부 훌륭한 의사들이었으니까.

누구 하나라도 젊은 날의 자신보다 지금 더 나은 의사가 되지 못한 이는 없었으니까.

“음.”

하여간 수혁은 차가운 초음파 프로브를 아이 옆구리에 가져다 댔다.

말했던 것처럼 통증은 없었지만, 예상보다 더 차가웠는지 아이는 잠시 몸을 움츠렸다.

“괜찮아. 진짜 아픈 건 아냐. 이렇게 하면 잘 안 보여서 더 오래 해야 해. 힘 좀 빼 줄래?”

그러자 옆에 있던 하윤이 나서서 아이를 달래 주었다.

워낙 하윤의 미소가 노소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위력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 더해 타고난 성품이 부드러운 것도 있어 아이는 눈에 띄게 안정을 되찾았다.

이런 건 수혁에게는 없는 재능이었다.

물론 연기는 잘하지만, 어른에게는 잘 통해도 아이들은 귀신같이 진심을 꿰뚫어 보는 경우가 많았다.

“으음.”

덕분에 시간을 들여 아이의 신장을 살필 수 있게 된 수혁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초음파 하는 게 힘들다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눈앞에 뜬 소견이 처참해서 그랬다.

‘수신증(Hydronephrosis)…….’

[원인은…… 결석이군요. 아이가 결석이라…… 이상하군요.]

‘그래, 게다가 크기도 커. 이거…… 일단 수술이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우선 수신증이 있었다.

신장에 물이 찼다는 소린데, 신장 기능 저하를 나타내는 아주 뚜렷한 소견이라고 보면 되었다.

원인 불명이었다면 더 절망스러웠을 텐데, 다행인지 뭔지 이상 소견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선 수신증을 보이고 있는 좌측 신장 하부로 5mm에 달하는 결석이 있었다.

성인의 그것이라고 해도 작지 않은 크기인데, 아이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거대하다는 표현마저 가능한 크기였다.

‘이건 쐐기 절제술이라도 해야 해. 경피적 접근으로 충분히 될 거 같은데…….’

[네.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비뇨기과 레지던트가 여기 있으니, 가서 말해 보죠.]

‘오케이.’

수혁은 방금 본 초음파를 사진으로 남기곤 여전히 멀찍이 떨어져 있던 레지던트를 향해 다가갔다.

비뇨기과 레지던트는 한창 자신이 본 바에 대해 기록 중이었기에 대번에 수혁의 접근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딸각.

하지만 지팡이 소리가 들릴 만큼 충분히 가까이 다가갔을 땐, 흠칫 놀라며 옆을 돌아보았다.

수혁은 그런 레지던트를 향해 말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결석이 있어요. 수신증도 있고…… 아마 결석이 지금 소변 나가는 걸 막아서 물이 차는 거 같은데…… 크기가 커서 단지 약을 쓰거나 물만 먹어서는 해결이 안 될 거라 판단돼요. 수술을 해야겠는데, 노티 가능해요?”

“네?”

수혁의 말은 늘 그러하듯 일목요연했다.

어떤 의견을 제시하기 전에 근거를 제시했다 이 말이었다.

심지어 그 근거라고 하는 것도 풀어서 설명했기 때문에 해당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바로 알아먹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비뇨기과 레지던트는 걸리는 게 있는지 즉시 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 수혁이 어지간한 실력자에 지나지 않았다면 이 새끼가 왜 이러나 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적어도 레지던트 수준에서 보면 절대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관찰력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엑스레이에서는 결석 안 보일 거예요. 원래 흔하지 않나요? 방사선 투과성 결석…… 처음 보는 건 아 닐텐데.”

“아……. 아, 네. 그럼 교수님은…….”

“나야 초음파로 봤죠. 사진은 저기 남겨 놨어요.”

“그, 그렇군요. 근데 아직 랩이…….”

“랩? 일단 입원하고 수술 준비하는 건 가능하지 않아요? 급해요. 애 벌써 수신증이 있다고. 원인 소거하지 않으면…… 자칫하면 급성 신부전이 올 수도 있어요. 애가 아직 어린데 그렇게 되면 생명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새, 생명.”

그 결과 수혁은 레지던트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근거로 삼고 있던 엑스레이 소견을 박살 낼 수 있었다.

그 외에 협박도 할 수 있었는데, 효과는 대단했다.

‘주, 죽어?’

상대가 내과나 외과라면 좀 덜했을 터였다.

아니면 소아과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이들은 모두 생명을 다루는 과였고, 그만큼 어떤 감이라는 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비뇨기과는 대표적인 마이너 서러지 과 중 하나 아닌가.

이쪽도 신장암 등의 생명과 연관된 수술을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의 마지막을 꾸준히 볼 수 있는 과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지 말고 빨리 전화해요. 할 수 있으면 오늘 하는 게 좋아.”

“아, 네.”

게다가 수혁은 유명인사였다.

비뇨기과에서는 약간 원수 같은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수혁의 유능함을 감히 훼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인간이 생명 운운하고 있으니 레지던트로서는 겁이 덜컥 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담당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한 교수님 만만치 않은데…….’

대상은 한석준이었다.

이미 안대훈에게 포섭되었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정보였기에 레지던트는 말 그대로 몸을 바들바들 떨며 전화를 걸었다.

“어, 웬일?”

“그…… 응급실 환자 때문에 노티 드립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그냥 읊어요.”

물론 수혁은 레지던트가 떨든지 말든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관찰하고 진단해 낸 것을 가감 없이 교수에게 전달하고, 하루빨리 아이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아……. 수신증이 있고 원인이 결석이다? 크기는?”

“5mm x 6mm 정도 됩니다.”

“애 몇 개월이라고?”

“25개월입니다.”

“그냥은 안 나오겠네. 알았어. 오늘 하지. 근데 랩은?”

“랩은…… 랩은 아직입니다.”

“그럼 초음파는 누가 왜 본 거야?”

“그…….”

“응급실에서 봤나?”

“아, 네.”

“알았어. 나 어차피 수술 6시 넘어 끝나니까…… 내 방 마지막으로 넣고. 금식 시간 꼭 확인해. 그 안에 수술할 수 있게 싹 준비 끝내. 알았지?”

“네, 교수님.”

레지던트는 곤란해할 만한 질문을 교수가 지레짐작하는 바람에 그냥 넘어갔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사실은 이미 한석준에게 비뇨기과가 얽힌 케이스를 수혁이 보게 되었단 것을 안대훈이 전달한 탓이긴 했지만, 하여간 수술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럼 수술하면 낫는 건가요?”

그리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부모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희망에 찬 얼굴이 되어 물었다.

일부분 아이 몸에 칼을 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침울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부모 얼굴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 표정은 희망 그 자체였다.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하네.’

[난감할 게 뭐가 있습니까? 사실 그대로 말하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걸 내가 부수는 느낌이잖아.’

[잘못된 기대는 교정해 주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수혁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예전 같았으면 바루다의 말 덕에 조금이라도 편해진 느낌이 들었을 텐데.

이젠 그렇지가 않았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네? 수술을 하면…… 지금 결석 제거하면 수신증? 그건 좋아진다고…….”

“이 결석이 일회성이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석이 하나가 아닙니다. 엑스레이를 잘 보니, 요관에도 하나가 더 있어요. 방사선 투과성이지만 요관 확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 우리 애는…….”

“제가 입원 기간 동안 왜 결석이 생기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걸 알게 되면, 그땐 완치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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