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화 도장 깨기 (3)
입원 기간 동안 알아봐 주겠다는 말은 어찌 보면 꽤 광오한 말이기도 했다.
수술이 결정된 이상, 일단 비뇨기과로 입원하게 되지 않겠나.
완전 내과 환자로 판명난 환자라면야 내과에 입원시키고 협진 수술 성격으로 맡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 말은 곧 진단이 입원 기간의 기준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란 얘기였다.
“한 교수. 오늘 오후에 응급 하나 떴다며.”
한석준 혼자만 상대한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 외과계는 모조리 수혁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 네. 교수님.”
“그거 응급실 통해서 온 환자 맞지? 이수혁 교수가 관여했다던데, 맞아?”
“아……. 노티 들을 땐 몰랐는데, 차트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일단 수술해야 할 필요성 있는지 같이 리뷰 해 보자고.”
“네.”
비뇨기과 시니어 교수가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을 지경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깊숙한 사정을 들여다보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상황도 아니었다.
일단 비뇨기과는 미달 확정이었다.
이비인후과처럼 어떻게 잘 찾아보면 채울 수도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냥 확정이었다.
“가뜩이나 사정도 어려운데…… 내과가 말이야 애들 쓸데없이 환상 품게 해서 되겠어? 내과 의사가 신이야? 어떻게 모든 질환을 다 진단하겠어. 이수혁 교수 뛰어난 건 알겠는데…… 말을 더 잘하잖아. 그래서 순진한 인턴들이 홀라당 넘어가는 거라고.”
비뇨기과 미달 사태는 벌써 수년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고질적인 병태였다.
아니 수년이라고 하는 것도 낙관적인 말이었다.
10년도 넘었다.
“그……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한석준 교수는 이게 딱히 내과 탓이 아니라 그냥 과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이긴 했다.
전립선 질환이 요새 얼마나 많아지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개원가 사정은 좀처럼 좋아지질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비아그라라는 기적의 약이 나올 때만 해도 이제 비뇨기과는 살아난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생각보다 환자들 중에 비아그라 때문에 비뇨기과를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우리 과는 뭔지 모를 편견으로 가득한 과여서 말이야.’
비뇨기과 교수 한석준.
이름 높은 태화 의료원 교수인데 어딘지 모르게 좀 낯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실제로 한석준은 신장을 주로 보는 사람인데도 그랬다.
의사를 향한 시선도 이러할진대 환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나.
어지간하면 안 오게 되는 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자,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 이 환자 수신증으로 의뢰된 환자야. 결석이 신장 하부에 쌓여서 소변 아웃이 안 되고 있어. 이수혁 교수가 초진 봤고…… 의뢰한 수술은 쐐기 절제술이지?”
“정확히는…… 미니 경피적 신장 절제술입니다.”
“수술명 알려 줬어?”
“아뇨. 그렇게 의뢰가 왔습니다.”
“거참.”
미니 경피적 신장 절제술이란 수술명을 내과 의사가 입에 담다니.
아마 비뇨기과 의사 중에서도 수련받은 지 좀 된 사람들은 잘 모르는 말일 텐데, 그랬단 말이지?
시니어 교수는 이 인간들이 내과 인기 끌려고 아주 환장을 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과 입장에서는 비뇨기과랑 인기로 비교되는 게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으나, 비뇨기과 입장은 좀 달라서였다.
오죽 인기가 없었으면 3년제로 했을까라고 여기고 있었다.
“하여간…… 초음파 사진이랑 랩…… CT 보니까 확실히 하기는 해야겠던데.”
“네, 맞습니다. 애가 아직 너무 어려서요. 빨리 정리를 해 줘야지, 안 그러면 큰일 납니다.”
“그래, 애가 무슨 죄야. 그럼 한 교수가 일단 진행하라고. 근데…… 애한테서 이렇게 결석이 크게 생기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 원인은 뭐라고 생각해. 짐작 가는 질환이라도 있어?”
생각 같아서는 무슨 이런 케이스에 수술을 하냐고 가서 윽박지르고 싶었다.
물론 그래 봐야 이현종한테 틀어막히긴 하겠지만, 적어도 수혁이 이 병원 최고의 의사라는 소문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검토를 해 봐도 처치는 수술밖에 없어 보였다.
해서 원인 질환 찾기로 승부를 옮겨 보기로 했다.
저쪽이 아무리 진단이 특기라고 하지만 비뇨기과적 질환까지 그럴까 싶어서였다.
이미 신경외과, 흉부외과, 외과, 이비인후과 등이 본인들 전문 분야에서 털렸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었다.
“그게…… 아직은 없습니다. 소변 검사를 봐도 두드러지는 건 혈뇨뿐입니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확연한 혈뇨가 특징적이긴 했지만…… 그건 원인 질환보다는 결석 크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흐음……. 아마 유전적 원인이겠지?”
“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도 열심히 찾겠지만, 여러 교수님들께서도 도와주신다면 든든할 거 같습니다.”
한석준은 안대훈에게 포섭되어 수혁의 편을 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편을 든다기보다는 대적을 포기했다고 하는 게 더 옳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 비뇨기과 질환인데 수혁보다 낫지 않나 싶기도 했다.
안대훈이 이런 속마음을 알게 되었다면 상대가 교수건 말건 ‘이 독사의 자식아’라고 했겠지만, 다행히 여긴 비뇨기과였고, 그 누구도 한석준의 속내를 읽지 못했다.
“그래, 그러지.”
“음……. 결석은 제가 많이 보니까 저도 돕겠습니다.”
“타도 이수혁!”
“타도 통합진료센터!”
그중 몇몇은 선 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석준은 웅얼웅얼 흉내 내는 척만 하고는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지던트가 바짝 다가왔다.
“수술방 어레인지 됐습니다. 원래 교수님 수술방에서 이어서 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프리옵(Preop: 수술 전 검사)은 괜찮아?”
“네? 아, 네. 괜찮습니다. 마취과에서 승인 떨어졌습니다.”
“그래? 랩 좀 깨져 있긴 하던데…….”
“그게, 내과랑 소아과에서 코사인으로 괜찮다고 의견을 남겨 놨습니다.”
“아.”
수혁과 이기자 교수 측에서 수를 쓴 모양이라고 한석준은 생각했다.
여전히 회의실 안에서 열띤 토론을 빙자한 내과 욕을 하고 있는 이들은 이런 것도 다 주제넘은 참견이라고 여길 게 뻔했다.
하지만 한석준에게는 수술을 재빨리 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일일 뿐이었다.
“잘됐네.”
“네. 이수혁 교수님이…… 좀 과하게 참견하는 편이긴 한데, 그래도 이런 건 편한 것 같습니다.”
한석준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레지던트는 마이너 서저리과 특유의 아부를 했다.
자기 생각보다는 상대의 감정을 더 중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석준은 잠시 그런 레지던트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고마운 건 고마운 일이지. 안 그래?”
“아, 네. 교수님. 그렇습니다.”
수술 과에게 프리옵이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아마 대개 이렇게 생각할 터였다.
마취과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수술 외적인 사고가 안 나게끔 해야 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당장 수술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깐깐하게 환자 상태를 봤는데, 그중에는 당연히 요식적인 행위도 섞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내과나 영상의학과 등의 확인을 받아야 했는데 그걸 알아서 해 줬으니 당연히 잘된 셈이었다.
“그럼 환자 내려오면 바로 연락 줘. 수술하고 입원 수속 되는 거지? 지금은 응급실에 있고.”
“네.”
“그럼…… 내려오고 나서가 아니라, 그냥 수술방 오면 연락 줘.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 얼굴은 봐야지.”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뇨기과에서 이런 작당을 하는 사이, 수혁은 오후 회진을 마치고 다시 응급실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수아야, 좀 어때?”
통증이라도 가라앉히기 위해 진통제를 쓰고 있었다.
소염제 중에서는 신장 기능을 망가뜨리는 종류가 꽤 많아서 주의 깊게 고른 마당이었다.
“좀 나아요.”
이제 고작해야 25개월밖에 안 된 아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봐서는 확실히 통증은 잡혀 가는 거 같았으나, 지친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병원은 어른에게도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으니까.
“아, 연락 왔네요. 일단 수술방으로 가시죠. 수술이 그렇게까지 큰 수술은 아니고, 또 아직 아이 상태가 수술이 위험할 정도로 나쁘진 않아서 별일은 없을 겁니다.”
수혁이 안타깝다는 얼굴을 하는 사이, 이송 요원이 다가왔다.
수술실로 모시겠다는 말을 하면서였다.
지팡이를 짚어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수혁은 잠시 뒤로 빠져서 부모에게 얘기를 전했다.
레지던트 시절이라면 같은 말을 해도 별다른 임팩트가 없었을 테지만 이제는 입장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감사합니다.”
눈에 띄게 안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수술실 입구에서 만난 한석준도 인물이 훤칠하고 또 친절한 사람이었다.
덕분에 아이도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채로 수술실로 향할 수 있었다.
수혁도 방 안에 들어갔다.
어차피 수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기도 했고, 여기서 보면 아무래도 힌트를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조용히 보겠습니다, 교수님.”
“아, 네. 그럼…… 시작하죠.”
수혁은 예의상 인사를 한 후, 곧장 바루다와의 대화에 돌입했다.
‘아이는 그냥 요로결석이 아냐. 신장 결석이지. 원인으로는…….’
[성인에서 호발하는 질환을 제외하고, 아이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질환 위주로 분석합니다. 시스틴뇨증, 원발성고옥소산뇨증, APRT 결핍증, 덴트병 등이 있겠습니다.]
‘다 희귀 질환 아냐?’
[애초에 이렇게 어린아이에게서 결석이 생겼다는 거 자체가 희귀한 상황입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다.’
둘 다 어느 정도 다시 준비를 하고 온 마당이었다.
시간이 있지 않았나.
그 와중에 다른 협진 환자도 보고, 병동 환자도 보고 했지만 워낙에 빨리 볼 수 있는 인간이다 보니 놀랍게도 시간이 남아 버렸다.
‘아무튼, 음. 시스틴뇨증은…… 방사선 투과성 결석이 생길 수 있지. 신장에 잘 생기고.’
[네, 그렇습니다. 이 질환은 배제가 어렵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들고 있는 단서가 적어서…… 더 그렇긴 해.’
[맞습니다.]
‘하여간 다음으로 넘어가면.’
[원발성고옥소산뇨증입니다. 사실 환자 히스토리상 아주 흡사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요로감염도 그렇고…… 호발하는 연령도 비슷하고…….]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지. 이 질환에서 결석은 칼슘옥살레이트로 이루어져 있잖아.
그렇다 보니 몇 개의 질환을 감별해 낼 수 있었다.
지금 떠올린 네 개의 희귀 질환은 그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4개 안에서의 감별이라고 해서, 아주 더디지만은 않았다.
[칼슘옥살레이트는 방사선 불투과성이죠.]
칼슘은 우리 뼈를 이루는 주된 물질이지 않나.
엑스레이에서 결석이 하얗게 보였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렇지가 않았다.
‘오케이, 이거 빼고. 그럼 남은 건 셋.’
[감별하려면…… 소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소변 검사 말고요.]
‘어, 사실 그거 보려고 따라 들어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