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화 도장 깨기 (4)
수혁은 말을 이어 나가면서, 말이라기보다는 생각을 이어 나가면서 환자에게서 다가갔다.
바루다와의 대화를 알 수 없는, 그러니까 수혁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저 수혁이 갑자기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만 인식되었다.
그것도 수술대를 향해서.
“어어.”
“교수님?”
하필 이 자리에는 안대훈이 없었다.
우하윤도 없었고.
둘 다 각기 일이 바빠서 그랬다.
레지던트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물론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 빠진 것이라 해서, 둘의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내가 옆에서 보필해야 할텐데…….’
‘아, 내가 의뢰한 환자 보러 가셨는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먼 발치에서나마 모시고 있었다.
“어, 갑자기 뭐 하시는…….”
하지만 정작 기도하듯 무릎을 꿇은 건 수혁이었다.
수혁은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앞으로 다가가더니, 급기야에는 수술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확실히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하긴 하더니만.’
그 바람에 수술하던 한석준도 잠시 고개를 돌려다 봤을 지경이었다.
집도의들이 얼마나 수술에 신경을 쓰는지를 생각한다면, 이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지금 수혁이 벌인 일은 일종의 만행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방해는 했을지언정, 물리적인 방해는 일절 없었다.
수혁은 귀신같이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채로, 딱 드랩을 위해 쳐 둔 일회용 푸른 천만을 들춰내고 있었다.
‘대체 뭔 짓을 하는겨.’
물론 방해가 물리적인 것만 위력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애초에 그리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기에, 한석준은 아예 하던 것을 멈추고 수혁이 뭔 짓을 하고 있나 하고 구경하고 있었다.
간호사들이나 레지던트도 그랬다.
‘이러니까 외과에서 싫어할 만도 하지.’
수술실에 따라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않나.
사실 수술실은 온전히 집도의만의 공간인데, 내과 의사다 보니 그런 걸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수술실에서 수술에 대해 조언도 했다고 들었다.
그건 확실히 좀 선 넘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 수혁을 끌어내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질적으로 이상한 짓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방해는 안 하고 있어서 그랬다.
게다가 수혁의 눈에는 이상한 열기가 있었다.
비록 신앙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이들이라 해도 수혁을 함부로 대하기는 좀 어려웠다.
“여기, 컵 아무거나 하나만 줘 봐요.”
그때 수혁이 입을 열었다.
다들 뭐 하는 거래 하면서 수군거리고 있던 마당이었다 보니, 바로 요청을 들어줄 수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네?”
누군가 고개를 갸웃거린 게 다였다.
수혁은 그런 간호사를 보면서, 손으로는 아이에게 꽂힌 소변줄을 만지작거리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컵 줘요. 소변 좀 보게.”
“네? 그…… 소변 검사는 이미…….”
“아니, 그건 화학 검사고. 눈으로 좀 보려고요.”
“어…….”
소변을 왜 봐.
색을 본다는 건가?
그건 그냥 소변 주머니 안에 있는 걸 봐도 충분할 터였다.
애초에 소변 색 변하지 않나 보라고 투명하게 만들어진 부분이 있었으니까.
“아, 좀 줘요.”
“아, 네네.”
아마 레지던트가 이러고 있었으면 일단 끌어냈을 터였다.
그리고 어딘가에 연락도 취했을 것이고.
하지만 지금 수혁의 명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중에는 가끔 이상한 짓도 하는데, 나쁜 결과로 이어진 적은 없더란 소문도 뒤섞여 있었다.
원래 수혁이 그리 좋아하는 소문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또 도움이 되었다.
‘그래, 그냥 그런갑다 하랬지. 해 달라는 대로 하면 문제는 안 생긴댔어.’
간호사는 반쯤 포기한 얼굴로 수혁에게 컵을 전달했다.
설마 저걸로 소변을 여기다 뿌리기야 하겠냐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물론 혹시 모르는 일이긴 했다.
소문 중에는 미친 사람이라는 소문도 분명 소수 의견이지만 존재하긴 했으니까.
해서 간호사는 옆에 있던 신규에게 신호를 살짝 보내 두었다.
이상한 짓을 하면 붙잡으라고.
“좋아.”
하지만 그런 일은 당연하게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아예 수혁이 곧 사라져 버렸다.
그는 소변 주머니 안에 있던 소변을 컵에 졸졸 따라 내더니 수술실에서 나가 버렸다.
벙 찌게 된 것은 한석준이었다.
‘나갈 땐 인사도 안해?’
딱히 예의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소변 볼 생각에 신이 났을 뿐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점점 더 이상한 오해를 낳겠지만, 수혁은 그런 인간이 된 지 오래였다.
진료에 꽂혀 버리면 눈에 달리 뵈는 게 없어졌다.
도도도.
수술실에서는 그나마 걸었던 수혁은 이제 숫제 뛰고 있었다.
[몸도 성치 않은 양반이 왜 뜁니까? 이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요.]
‘또 받아 오면 돼.’
[뭔 소리…… 아, 소변. 정말 머릿속에 진료밖에 없구나.]
‘이게 네가 원하던 모습 아니니?’
[그건…… 그건 그렇긴 하죠.]
바루다마저 걱정할 정도로 진심을 다하고 있었다.
불편한 다리를 들고 겅중겅중 뛰는 모습은 지금의 바루다가 아니라 초창기 바루다가 봐도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어머어머.”
“왜 저러셔.”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야?”
“소변 컵……?”
“딴 데 봐. 딴 데.”
“어허. 씁.”
그러니 수술실을 빠져나와 마주치는 이들의 반응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그중엔 아까 보았던 수아의 부모님도 있었다.
진중한 얼굴로 괜찮다고 할 때만 해도 신뢰도 100%였는데 지금은 뭉텅이로 깎여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
[좋아요?]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재빨리 내달려 진단검사의학과에 도달했다.
“어, 이수혁 교수님?”
“현미경 남는 거 있어요?”
“어…… 있기는 한데. 그거 뭔데요?”
“편광 현미경도 있죠?”
“있죠. 근데 그거 뭔데요?”
“어딨어요?”
“저기요. 근데 그거 뭐냐고요.”
이현종의 똘마니들이 많이 서식하는 곳이었다.
사실 순환기내과하고의 연관성은 아주 크지 않았던 곳이라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심장 효소 검사를 보는 곳이긴 했고, 또 이현종이 워낙에 성질이 급하다 보니 최대한 빨리 검사 결과를 보길 원했더랬다.
때문에 몇 번이나 찾아가서 윽박질렀는데 그걸 보다 못한 신현태가 그럴 게 아니라 밥이나 사 주면서 부탁하라는 조언을 해 준 덕에 지금은 아주 관계가 좋았다.
“좋아. 보실까.”
“아니, 그거 뭐냐고.”
수혁에 대한 부탁도 잊지 않고 해 놓은 덕에 수혁은 교수의 안내를 받아 곧장 현미경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안내한 교수는 황당하기만 했고.
‘귓구녕이 막혔나, 시발.’
벌써 몇 번이냐 뭐냐고 묻는데 답이 없지 않나.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도 더 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를 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도 모양 빠지는 일이었다.
게다가 수혁의 눈알을 잘 들여다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열기가 있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설마……?’
동시에 언젠가 조태진에게 들었던 말도 떠올랐다.
태화의 영원한 기인이사가 이현종이라고 한다면 조태진은 그냥 좀 이상한 놈에 속한다고 보면 되었다.
세상에 의대생씩이나 되어 가지고 오컬트에 진심이라니?
그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혼자 자리 지키다 강철의 조태진이니 뭐니 하는 이상한 별명이나 생기고.
‘내가 왜 그 새끼 말을…….’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상한 놈이 했던 말도 신빙성을 띄었다.
톡.
무언가에 홀린 듯, 그것도 깽깽이 발로 뛰어와서 현미경 앞에 앉은 이수혁.
수혁은 이제 컵 안에 있던 소변을 스포이드로 빨아들여, 딱 한 방울만 슬라이드에 떨어뜨린 채 현미경에 몰두하고 있었다.
도저히 말을 섞을 상황이 아니었다.
방해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결정이…… 있긴 한데.’
[모양이 둥글군요.]
‘그러게.’
아이에게 발생한 선천성 결석 질환은 모두 특이한 구성 성분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어떤 대사 질환이 있어, 일반적으로는 처리가 되어야 하는 물질이 과하게 쌓이게 되면서 결석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모양이 꽤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이것도 다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하여간 있다면 도움이 되었다.
‘아무리 봐도 육각형은 아니지?’
[네.]
‘그럼 시스틴뇨증은 아냐. 배제하자.’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내려오면서 어떤 과정을 보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깨진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모조리 둥글어. 여기가 무슨 모래사장도 아니고 벌써 풍화가 일어나겠어?’
[수혁의 의견이 타당하군요. 동의하겠습니다.]
‘좋아.’
들여다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질환 하나가 나가리, 아니 배제되었다.
수혁의 얼굴에 점점 더 짙은 미소가 박혀 나갔다.
눈에는 열기가 점점 더 가득해졌다.
‘시발 무서워. 나가고 싶어.’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교수는 공포에 질렸다.
‘넌 왜 진단검사의학과에 지원하니’라고 했을 때 ‘저는 현미경이 좋아서요’라고 하는 놈은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 현미경을 좋아하는 놈도 거의 없었을뿐더러 저런 얼굴을 하는 놈은 아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왜 몸이 안 움직이지.’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그럴까?
수혁 옆자리에 붙박이장처럼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수혁은 편광 현미경으로 자리를 살짝 옮긴 채, 같은 슬라이드를 보고 있었다.
‘나가야…… 나가야…… 잉.’
교수는 그런 수혁을 보고 있다가, 문득 수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뱀 앞의 개구리가 이런 느낌일까.
온몸이 굳어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 웃어.’
수혁이 그냥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씨익 웃고 있어서 그랬다.
“교수님.”
“어, 네. 왜요.”
“이게 뭐냐고 하셨죠.”
“죄송합니다. 제가 아까는.”
“네?”
“아니, 그게 저.”
“저기 화면 봐요.”
“응? 어…… 아…… 와…….”
예전 같았으면 현미경에 눈을 박아야만 남이 찾은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기술이 발전해서 그냥 화면만 봐도 되었다.
그리고 지금 교수와 수혁이 같이 보고 있는 화면에는 십자가가 떠 있었다.
그중에서도 몰타 십자가가 떠 있었다.
아름다웠다.
이런 게 사람 몸 안에서 나온다니.
말이 안 된단 생각이 들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이걸 의심하고 온 거예요?”
“어느 정도는요.”
“와…….”
“그럼 저는 다시.”
“네? 어디로 가는데요?”
놀라고 있으려니 수혁이 돌연 몸을 일으켜 빠져나갔다.
교수는 급히 질문을 던졌지만 이번에도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사실 별로 들을 생각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과도 같은 광경에 넋이 나가 있을 뿐이었다.
홀린 듯 들어와 열기를 띠며 현미경을 보던 수혁이 띄운 게 하필 십자가라니.
찰칵.
교수는 입을 벌린 채 그걸 보고 있어서,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