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26화 (626/1,303)

626화 도장 깨기 (5)

수혁은 자신이 방금 누군가의 신심에 불 지피는 짓을 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다시 수술실을 향해 부리나케 발을 옮겼다.

‘마음이 급한데, 다리가 안 따라 주네.’

[아까처럼 한 발로 뛰세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 무아지경에 했던 거야.’

[세상에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올 때와는 달리 그렇게 빠르진 못했다.

덕분에 수혁이 수술실 입구에 도달했을 땐, 이미 비뇨기과 한석준 교수가 수술을 끝내고 나온 다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닫는 건 밑에 사람들에게 맡긴 다음이라고 보면 되었다.

하여간 한석준은 아이 부모와 마주하고 있었다.

“수, 수술은…….”

“어떻게 되었나요?”

수술 설명은 수술 전에 이미 충분히 해 둔 참이었다.

비뇨기과에서도 그랬지만, 수혁도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위험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머리로는 이해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부모 마음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된단 말인가.

내 새끼 몸에 칼을 댄다는데 편안히 발 뻗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엄마, 아빠의 얼굴은 그저 울상이었다.

한석준은 그나마 수술이 잘되어서 다행이라 여기며 입을 열었다.

“목표했던 대로 아이 신장 일부를 잘라 냈습니다. 결석도 깨끗하게 제거됐고요……. 지금은 소변 아주 잘 나옵니다. 당장 잘못될 가능성은 없을 겁니다.”

“아, 아이고. 감사합니다.”

“소아과랑 협진해서 볼 테니 일단 너무 걱정은…….”

설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위로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픈 아이를 두고 있는 부모에게는 아무리 의사라도 차갑게만 말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

나쁜 소식 전하기는 최대한 뒤로 밀어 두고만 싶은 것이 의사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부모들은 마음이 너무 급했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거죠? 수아 다 나은 거죠?”

한석준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는 엄마 얼굴을 보면서 기어코 이 질문이 나오고야 말았구나 싶었다.

하긴 수술이 잘되었다는데 이 질문이 안 나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한국 사람들 아니라, 그냥 전 세계 일반인들에게 수술은 어딘지 모르게 최종 치료로 인식되고 있지 않던가.

본인도 외과계 의사로 그런 생각을 아예 품고 있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늘 그렇게만 흘러가는 건 아니었다.

“그게…….”

한석준은 말끝을 흐렸다.

의학적으로 뭘 잘못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진단명도 안 나왔는데 수술부터 했다는 말이 쉬이 나오진 않았다.

어떤 진단 과정에서는 이게 당연하지만, 일반인들이 볼 때는 말도 안 되어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선 부모라고 해서 이해심이 남다를까?

그럴 거 같진 않았다.

“아직 아이에게 결석이 왜 생겼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생길지 아니면 이걸로 완치가 될지 여부는 알 수 없어요.”

물론 속으로 이런저런 걱정이 든다고 해서 명색이 의사씩이나 되어서 해야 할 말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의사는 때론 환자에게 듣기 싫은 말도 해야 하기에 그랬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걸 제일 제대로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이 소위 전문가들이었다.

“아…… 그럼…….”

“일단은 시간이…….”

한석준이 우물우물하고 있는 사이 수혁이 딱 고 앞에 도달했다.

헥헥거리면서였다.

때문에 막상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지팡이 짚고 다가와 숨을 헐떡이는 건 꽤 진귀한 광경이지 않겠나.

한석준과 부모님까지 해서 셋 모두 잠시 대화를 멈추고 수혁을 돌아보았다.

이건 뭘까 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까 깽깽이로 뛰어다니더니만…… 지금까지 뛴 건가? 체력 좋네.’

‘소변 들고 달리더니…… 소변은 어디 갔어?’

단지 지금 모습만 봐서는 아니었다.

나름 맥락이 있는 의구심이었다.

하여간 수혁은 셋의 묘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 숨을 골랐다.

“휴.”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살겠다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쳐들었다.

그떄까지도 셋은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이상한 광경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술은 잘 된 건가요?”

수혁은 일단 한석준을 향해 말했다.

진단을 내렸건 뭘 했건 간에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수술이었기에 그랬다.

비록 진단을 내리기도 전에 시행한 수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중요성이 훼손되는 건 아니었다.

일단 지금 해결이 안 되면 아이는 투석을 돌려야 할 테니까.

“네. 수술은 잘 됐습니다.”

“좋군요. 설명은 드렸고요?”

“아, 네.”

“좋아.”

수혁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제 부모 쪽을 바라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잘난 척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원래 대학 병원 의사라는 게 돈보다는 명예로 하는 일이고 그래서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들이 많다지만 환자들 앞에서조차 이런 성향을 숨기지 않는 이는 몇 없었다.

인간인 이상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진과 같은 실수를 하게 되어 있었고 그때마다 큰코다치게 되기에 그랬다.

하지만 수혁은 아직까지 그랬던 적이 없어서 교정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강화만 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방금 한석준 교수님이…… 모른다고 한 건 맞죠? 멀리서 들으니까 그런 거 같던데.”

“아, 네. 이유는…… 아직…….”

“하하.”

“왜 웃으시는지…….”

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가 별안간에 웃으니까 정말이지 재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한석준은 옆에 서 있어서 수혁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도 그랬다.

‘아……. 좀 이상하시긴 하지.’

좌불안석이라고 해야 할까?

뭐가 되었건 수아란 아이는 비뇨기과에 입원한 아이이지 않나.

주구장창 얼굴을 봐야 한다는 뜻인데 이런 식으로 라포가 깨져 버리면 골 아플 일만 남았다고 보면 되었다.

다행인지 뭔지는 몰라도 수혁은 아직 대화를 끝맺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사실 보호자의 대답을 기다린 것도 아닌지 연신 입술을 달삭이고 있었다.

“진단은 걱정 마세요.”

“아……. 입원 기간에…….”

“아니, 이미 했습니다.”

“네?”

“네? 교수님?”

뭔 말을 하려고 저러나 싶었다.

이제 보니 지금 꺼낼 말을 하려고 달려온 거 같은데, 한석준으로서는 도무지 그게 무슨 말일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말리려고 하는데, 이미 했다는 말이 나왔다.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여기서 했다는 건 필시 진단일 터였다.

‘뭔 소리야.’

그게 가능할 리는 없었다.

결석 질환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아이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질환으로 한정하면 좀 줄어들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많았다.

세상에 희귀 질환으로 분류되는 녀석들만 해도 벌써 몇 개란 말인가.

골 때리는 건 그러한 질환들 중에서는 진단이 오직 다른 질환이 아니라고 판명되었을 때만 진단이 되는 녀석들도 있다는 점이었다.

괜히 커다란 병원들에서조차 여전히 오진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진단했다고요. 제가 내과 의산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수혁은 눈이 화등잔만 해진 한석준을 돌아보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번 진단은 퍽 대단하기에 그랬다.

여기서 쥘부채만 쥐어다 주면 딱 제갈공명 그 자체가 될 거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와, 진짜 재수 없다.’

한석준은 신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수혁을 아는 교수들 중에 일부 극렬 안티가 있는지 알겠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교, 교수님. 그럼……?”

물론 이런 건 모두 동료 의사들의 관점일 뿐이었다.

환자 입장에서는 수혁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저 진단이 되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네. 아이 진단명은…… APRT 결핍증입니다.”

“네?”

“네?”

진단명은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뭔가 좀 이름 자체도 어려웠다.

APRT가 대체 뭐란 말인가.

보호자뿐 아니라 한석준의 얼굴에도 의문이 떠올랐다.

명색이 비뇨기과 의산데도 불구하고 이건 처음 듣는 단어라서 그랬다.

“쉽게 풀어서 말씀드리면.”

“네네. 좀 쉽게.”

“아데닌 포스포리보실트랜스퍼라제(Adenine phosphoribosyltransferase)라는 효소가 없어서 생기는 질환입니다.”

“아…….”

수혁 입장에서야 효소 이름을 풀네임으로 말하면 나름 풀어 쓴 것이 되겠지만 남들에게는 더 어려워질 뿐이었다.

이름이 너무 길지 않나.

다행히 수혁은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남들 가르치는 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그가 진짜 천재성을 자각하게 된 계기가 바루다의 갈굼 때문이어서 그럴 터였다.

“말이 좀 어려울 거예요. 상당히 드문 상염색체 열성 오류에 의한 질환입니다. 이 때문에 아데닌이 과하게 쌓이게 되고 그 결과 결석이 생기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2,8-디히드록시아데닌이라는 물질이 쌓이게 되는데, 이로 인한 결정은 꽤 특이한 모양을 보이게 됩니다.”

“아…… 진짜 어렵네요.”

“무슨 병인지 완전히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쉽게 말해 아데닌을 분해하지 못해서 그게 쌓여서 결석이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네.”

그리고 그 자신이 워낙에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과감한 생략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덕분에 대화를 이어 나갈수록 부모님들의 얼굴이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아이에 대한 희망이 생겨서라기보다는, 지금은 그저 아이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알 거 같아서였다.

“이게 아까 아이의 소변에 섞여 나온 결정을 편광 현미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수혁은 그런 부모와 한석준에게 핸드폰에 뜬 사진을 보여 주었다.

동그란 배경에 묘한 빛깔을 지닌 몰타 십자가가 아로새겨진 사진이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마치 보석을 세공해 넣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이게…….”

“네, 이 질환의 특징입니다. 소변 검체에서 2,8-디히드록시아데닌 성분 검사해 보면 높게 나올 겁니다.”

수혁은 부모에게 설명을 끝마치고는 한석준을 바라보았다.

어떤 검사를 나가야 할지 말해 주면서였다.

“아, 네.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치료도 시작하시죠.”

“네? 검사는……?”

“현미경으로도 진단 내릴 수 있어요. 검체 검사는 그저 확인에 불과합니다.”

“아, 네.”

“그럼, 치료는 알로퓨리놀로 하죠. 이렇게 하면 신장 기능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아니, 아이는 아직…… 기능이 비가역적 손상이 있진 않으니 예방한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아.”

치료는 좀 걸림돌이 있었으나 수혁이 워낙에 강하게 말을 해 버렸기 때문에 한석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시점,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찍은 사진이 이리저리 퍼지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 몰타 십자가가 떠 있고, 수혁이 그걸 등지고 서 있으면서 동시에 진단 검사 의학과 교수가 멍하니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