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27화 (627/1,303)

627화 봉사단 (1)

“기독교 계열의 신인가…….”

레지던트들끼리는 이리저리 사진을 공유했지만.

교수들에게까지 이 사진이 함부로 전달이 되진 않았다.

제아무리 조태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태진은 거의 실시간으로 해당 사진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안대훈이 도맡아 관리하고 있는 이수혁 나무위키에 거의 매시간 들어가 보고 있던 덕이었다.

‘이적’란에 들어가 보니 사진이 떡하니 하나 떠 있었다.

‘수혁아, 너의 그분이 혹시 예수님이니?’

조태진은 화면 가득 떠 있는 십자가를 보면서 남몰래 신심을 키우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감상하고 싶었으나, 세상일이라는 게 꼭 그렇게만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조 교수. 뭐 해?”

특히 회의실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넋 놓고 있는 조태진을 발견한 신현태가 바로 조태진을 불렀다.

내과 출신 원장이 주재하는 전체 회의에서 내과 교수가 핸드폰이나 들여다보고 있다니.

과의 기강이 엉망이라는 뜻 아니겠나.

당연하게도 신현태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이쯤 되면 분위기 파악이 되어야 할 텐데, 조태진은 안타깝게도 나사가 좀 빠진 인간이었다.

“아, 네. 수혁이 소식이.”

“뭔 소리야! 여기가 지금 이수혁 교수 얘기하는 곳이야?”

신현태도 비슷하기는 해서 순간 저도 모르게 입술을 씰룩이고야 말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원장 노릇을 하고자 마음먹었던 참이었기에 신현태는 뭐가 되었건 간에 쳐야 하는 대사는 다 칠 수 있었다.

“사진이.”

“이따 보여 줘. 아니, 이게 아니고!”

“네, 보여 드리겠습니다. 원장님.”

“아니, 아오.”

끝까지 위엄을 지키지는 못했다.

사진 얘기에 슬쩍 무너져 내린 탓이었다.

“원장님. 중요한 얘기 중입니다.”

아마 이기자 교수가 제때 나서 주지 않았다면 개판 났을 터였다.

어쩌다 보니 전체 회의인데 주로 내과계 교수들이 들어온 까닭이었다.

벌써 이현종은 주접 시동을 부릉부릉 걸어 놓은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멀리 있는 수혁이 눈앞의 이기자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곧 회의실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아, 그렇죠. 음. 다들 아시겠지만…… 저희 태화 의료원에서는 매년 두 번씩 정기 의료 봉사를 갑니다.”

그사이 안정을 되찾은 신현태는 뭔 사진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접어 두고, 애써 침착을 가장한 채 입을 열었다.

의료 봉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 종교 단체도 아니고, 세금으로 돌아가는 병원도 아니어서 딱히 봉사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병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화 의료원 자체가 태화 그룹의 대외 이미지 개선을 위해 돌아가고 있는 만큼, 봉사 활동을 꽤 강조하고 있었다.

“이번 여름은 몽골 쪽으로 가게 되었는데…… 일단 필수 과 목록은 원래와 같습니다. 보시면…….”

필수 과는 봉사를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당연한 일일 터였다.

하지만 봉사를 강조하고 있다고 해서 전담 부서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보니 그냥 매년 같은 과를 뽑고 있었다.

어차피 의료란 과하게 준비를 해서 간다고 문제가 발생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더더욱 그랬다.

하여간 뽑힌 과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다.

“성형외과,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일반외과, 안과, 치과, 내과, 소아과입니다. 각 과 과장님들 다 오셨죠?”

“아, 네.”

“네, 왔습니다.”

“저희는 과장님 수술 중이셔서…… 제가 대리로 왔습니다. 말씀 다 전하겠습니다.”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과라 해도 대리 정도는 보내왔다.

신현태가 수혁 앞에서야 헬렐레하고 있지만, 끗발 날리는 원장이라서 그랬다.

임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뿐더러 장인도 꽤 거물이지 않나.

게다가 위에서는 내과를 꾸준히 밀고 있었다.

과장급 정도 되면 원내 정치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으니 더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이번 봉사는 특히 더 중요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몽골에 있는 분원으로 가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 분원에…….”

“아……. 그분.”

“그렇구나.”

“아. 맞네. 그럼 실력자들도 다시 구성해야겠는데요?”

더군다나 이번 봉사는 예년과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몽골에는 태화에서 반강제적으로 짖게 된 분원이 있어서 그랬다.

사실 분원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예 따로 운영되고 있기는 한데, 지원금이 매년 들어가고 있는 데다가 애초에 설립과정에서도 태화 자본이 많이 투입되었다 보니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네, 신경 좀 많이 써 주세요. 망신당하는 것도 좀 그렇고…… 또 조만간 한국 다시 들어오신다고 하니까요.”

“아, 그렇습니까……. 언제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신현태는 왜인지 모르게 급격히 얼굴이 어두워진 외과 교수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신현태도 영원히 모르고 싶어서 그랬다.

‘그때 뒤지는 줄 알았지.’

몽골 분원에 있는 인간과의 인연은 정말이지 별거 없었다.

고작해야 2주 정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감히 고작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어려울 거 같았다.

짧지만 강렬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어지간하면 과장님들이 가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신현태는 얼마 전 꿈에 나왔던 얼굴을 애써 지운 채 말을 이었다.

그러자 대번에 반발이 일었다.

“에, 에헤이. 과 일이 바쁜데요.”

“그러니까요. 저희가 신경 써야 할 일이…….”

“그러는 원장님은 가십니까?”

심지어 물귀신 작전을 피는 사람도 있었다.

인간이 어찌 저렇게 치사할까 싶었지만, 신현태는 당당했다.

“네, 갑니다.”

“네?”

“저도 갑니다.”

“왜, 왜요?”

“오라고 했으니까요.”

“아.”

오란다고 병원 원장이라는 사람이 갑니까 라는 말 따위는 없었다.

그 사람이 오라고 하면 가야 했으니까.

안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삼합회의 일원이라는 등 야쿠자라는 등 하는 소문까지 돌 지경 아닌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CIA 고문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하필이면 실제로 미군 쪽에서 꽤 오랫동안 활동한 데다가, 미군 병원에서도 원장으로도 활약한 적이 있다 보니 더더욱 그런 소문이 신빙성이 있었다.

“아니, 왜 그런 사람이 몽골에…….”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냥 이제 돌아와서 편히 계시지.”

“예끼. 큰일 날 소리. 돌아왔다간 여기서 일하실 텐데.”

“아. 내가 시, 실언을.”

“그래, 빨리 어? 취소해. 취소.”

“네네.”

삽시간에 소란이 일었다.

다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올라서였을 터였다.

그러나 사실 직접 겪은 이들이 보기엔 그저 우스운 일일 뿐이었다.

옆을 돌아보니 이현종이 아주 복잡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입 모양을 잘 보니 시발이라고 하고 있었다.

입이 험한 편이긴 해도 진짜 욕은 잘 안 하는 양반인데도 그랬다.

‘그럴 만도 하지.’

신현태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같이 갔던 사람을 하나 더 찾았다.

외과의 폭군, 김승규였다.

‘저분은 어떤…… 아. 거의 우네. 근데 우는 게 무서워.’

여기서는 폭군이지만, 거기서는 아니었다.

아마 평생 겪을 수모란 수모는 다 거기서 겪지 않았을까?

처음이었을 터였다.

저 얼굴로 살아오는 동안 무슨 수모를 당할 수 있었겠나.

하여간 신현태는 몇몇 잔인한 말을 더 이어 나가야만 했다.

며칠 전 받은 이메일을 떠올리면서였다.

‘내 잘못은 아니야…… 거기서 찍은 거야.’

신현태는 고개를 계속 가로젓다가 말고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일단 지목된 사람들이 있어요.”

“어?”

“지목?”

“네. 그쪽에서 지목하셨습니다. 일단…….”

“아니, 왜 지목을. 그게 대체 무슨”

“전화번호 알려 드릴까요? 직접 말하실래요?”

“아, 아닙니다.”

반발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화번호 운운하자 바로 수그러들었다.

놀랍게도 그중엔 김승규도 끼어 있었다.

누군가 정신이 났다면 김승규의 실로 보기 드문 얼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제 코가 석 자다 보니 다들 그저 신현태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바람에 신현태는 마치 사형 선고라도 내리는 기분이 되고야 말았다.

본의 아니게 전혀 다른 직업인 판사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달까?

“일단 일반외과 김승규 교수님.”

“왜!”

“전화번호…….”

“아오.”

“내과 이현종.”

“아.”

“소아과 이기자.”

“시발.”

“성형외과 박태수.”

“하아.”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한탄과 욕설이 뒤이었다.

병원 회의실에서 나올 법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신현태는 별말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과 신현태. 하.”

본인도 한숨을 쉬어야만 할 지경이 아닌가.

그런 주제에 남들에게 뭐라 할 만큼 신경이 굵은 사람은 못 되었다.

“아, 또 있습니다. 그…….”

신현태는 잠시 눈치를 보았다.

이현종의 눈치였다.

이현종은 왜 그러냐는 얼굴이었다.

그 인간이 불렀으면 가는 게 당연한데 뭐 하러 그래? 뭐 이런 뜻이라고 보면 되었다.

“내과 이수혁.”

“어?”

하지만 뜻밖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의문은 잠시였다.

걱정이 치밀어 올랐다.

우리 수혁이를 그 인간한테 보여?

칠성이나 아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 안 돼.”

“네?”

“몽골에 가져다 박는 거 아냐?”

“아, 그럴 일은 없다고 했어요.”

“근데 어떻게 알고? 어떻게 알고 딱 수혁이를?”

“TV 계속 나오고 하잖아요. 게다가 여전히 논문 매일 읽으시는 모양인데…….”

“이런 망할. 그럼 이거 어떻게 전해?”

“아빠가 해야지, 이런 건.”

“삼촌이라며?”

“삼촌보다는 아빠가 낫죠.”

데려가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니 그건 안심이었다.

적어도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이 가서 겪을 고초는 여전히 걱정이었다.

레지던트 시절부터 오냐오냐 키운 귀한 자식이지 않나.

솔직히 말하면 수혁은 여태껏 죽도록 고생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걸 굳이 거기까지 가서 그 인간 밑에서 겪게 해야 하나 싶었다.

“어, 수혁아.”

하지만 이현종도 사람인지라 공포에 굴복했다.

회의실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기깔 나는 진단을 해낸 참이라 자랑하고 싶었던 수혁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오, 아빠!”

평소라면 수혁의 목소리만 들어도 하루의 피로가 후루룩 날아갔을 텐데.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어, 그래. 수혁아. 중요한 할 얘기가 있는데.”

“네? 어떤……?”

이현종의 목소리에 담긴 불길한 징조는 곧장 수혁에게 전달되었다.

둘이 하루 이틀 함께한 것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수혁도 덩달아 긴박해진 목소리로 되물어 왔다.

이현종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너 혹시 백강혁 교수라고 알아?”

“아, 알죠. 엄청 유명했잖아요.”

“어, 유명하지. 양재원 교수 스승이기도 하고…… 하여간 그 인간이 너 오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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