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1화 마저 깨고 (3)
양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자기 할 일은 했다.
들고 있던 폰으로 쓰레기통 안쪽을 비춰 주었단 얘기였다.
“와……. 프로 딸쟁이네.”
다만 옆으로 비켜선 채 연신 헛구역질을 하고 있던 바람에 의도했던 것보다 더 적나라하게 안쪽이 보이긴 했다.
굳이 적나라하다는 표현까지 쓴 건 쓰레기통 안쪽이 온통 구겨진 휴짓조각으로만 가득 차 있어서였다.
그 바람에 뒤에 슬며시 빠져 있던 안대훈마저 한마디 하며 끼어들었을 지경이었다.
정말이지 흔치 않은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저게 그렇게 작은 쓰레기통도 아닌데 저 모양 저 꼴이 되어 있다니.
“남아나나?”
대개 진료 볼 때는 의학적인 사고 말고는 아예 하지를 않는 수혁마저도 순수한 얼굴로 의문을 표했다.
그만큼 양이 많았다.
의사가 왔다고 해서 친히 문까지 따 주고 같이 들어왔던 기숙사 관리인도 흠흠 하며 민망해하고 있을 정도였다.
화면 너머에서는 느낄 수 없었지만, 저쪽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마저 배어 있는 모양이었다.
“어우, 이게.”
수 분이 지나고 나서야 양이 정신을 차리곤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일단 교주님. 이 안에 더 둘러보겠습니다.”
“어, 그리고 하면서…… 번거롭겠지만 컴퓨터도 켜 줘요.”
“네? 컴퓨터는 왜요?”
“해 봐요.”
“아, 알겠습니다.”
그리곤 수혁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일단 원래 하려던 일인 방 안 둘러보기를 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컴퓨터도 켰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만한 휴지를 소모하려면 상상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이었을 테니까.
그렇고 그런 자료가 컴퓨터에 가득할 텐데, 이걸 어찌 잠가 놓지 않을 수 있겠나.
“이건…… 이건 어쩌죠? 환자한테 물어볼까요?”
“양 같으면 알려 주겠어요?”
“아뇨.”
알려 주기는커녕 죽기 전에 일단 이거부터 어떻게 하고 죽지 않을까?
어쩐지 컴퓨터를 켜면 부팅 음 대신 신음 소리가 날 것 같은 광경이었으니, 그렇게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 환자…… 생일이랑 대학 입학 날짜랑 다 쳐 보지, 뭐.”
“설마 그렇게 허술하려고…… 어, 이게 되네.”
“생일이네.”
“아니, 이런 걸 어떻게 이렇게…….”
“뭐, 누가 들어올 거라 생각지는 않았겠지.”
“근데, 이걸 왜요?”
하여간 수혁의 조언에 따라 컴퓨터를 틀긴 튼 마당이었다.
비밀번호를 너무 얼렁뚱땅 설정해 놓은 건 아닌가 싶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사실 혼자 사는 집에 있는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걸어 놨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환자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심하다 여기긴 하는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최 이 컴퓨터를 왜 틀라고 한 건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수혁에게는 다 뜻이 있을 거란 생각에 양은 별로 당황하지 않고 물었다.
“동영상 플레이어 좀 틀어 봐요.”
“네?”
하지만 수혁의 답을 들었을 때는 당황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대체 왜 동영상 플레이어를 틀어야 한단 말인가.
‘설마…… 교주님, 남의 취향을 궁금해하고 그런 타입인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만한 단점은 있어야 그나마 사람 같을 거 같긴 했다.
인간이 너무 완벽하지 않나.
양의 수혁에 대한 평가 자체가 안대훈이 건네준 정보를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오류투성이지만.
하여간 그렇게 내린 평가 속의 수혁은 완벽 그 자체였다.
“무엇을 얼마나 자주 봤는지 확인하려고요.”
“네? 아니…….”
“진짜 틀 필요는 없고. 목록만 보면 됩니다.”
“아, 네네.”
그렇다고 해서 국제 전화를 하면서 성인 동영상을 틀 생각은 없었던 양은 수혁의 이어진 말에 적잖이 안심하면서 목록을 띄웠다.
재생 목록 제목만 봐도 낯이 확 뜨거워질 정도였다.
어떻게 된 게 정상적인 동영상 제목은 단 하나도 없었다.
환자는 이 컴퓨터로 오직 그것만 본 모양이었다.
“어흠, 흠.”
따라 들어왔던 관리인마저 민망함에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을 무렵, 수혁은 집중하고 있었다.
제목보다는 재생된 일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단 하루도 비는 날짜가 없어.’
[와……. 대단한데요?]
‘그러다 입원한 이후로 딱 끝.’
[당연하죠. 입원하고 뭐 원격으로 봅니까.]
‘이 환자 기숙사로 나오기 전에는 집에서 살았지?’
[그렇죠.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수혁만 집중하고 있었다.
바루다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환자의 행태가 이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지 않나.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었다.
이것도 지나치면 자해의 영역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라면 저 많고 많은 휴짓조각에 피 몇 방울 정도는 맺혀 있어야만 했다.
재생 목록을 봐도 하루 한 번에서 두 번 정도가 최대한인 듯했다.
‘멍청한 놈. 집에서 저런 거 보고 하는 게 쉬운지 알아?’
[어렵겠죠.]
‘아, 하긴. 너는 인간 행태에서…… 이쪽으로는 잼병이겠구나.’
[수혁 덕분입니다. 남녀 간의 일은 오직 매체를 통해서만 접했으니까요.]
‘후.’
하지만 수혁에게는 이 상황이 단순히 신기하게만 보이지 않았다.
어떤 한 질환을 머릿속에 떠올리자마자 모든 단서가 다 맞아떨어지기 시작해서였다.
“양, 잘했어. 이제 끄고, 병원으로 가도 돼.”
“네? 정말요? 진단이…… 된 겁니까?”
“일단 환자랑 대화를 나눠 보긴 해야 하는데, 그런 거 같아.”
“오……. 저도, 저도 듣고 싶은데요!”
“그럼 최대한 빨리 가. 기다려 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수혁 성미에 자랑할 만한 일이 생겼다면 당장 털어놓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뭡니까, 수혁. 정말입니까?]
‘어, 정말인데.’
[뭔데요?]
‘너도 추론해 봐.’
[어……. 지금 이 단서만으로 진단이 된다고요?]
‘어. 차고 넘치는데. 너 설마 감이 안 오니?’
[아예 안 오는데.]
‘깡통이네.’
[와…….]
하지만 지연된 시간 동안 바루다를 놀릴 수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바루다의 성능이 대단하긴 했지만, 최근 들어선 정말이지 완성형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나진 지 오래 아닌가.
그렇다 보니 바루다를 놀려 먹을 수 있을 만한 일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귀하디귀한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기다려 봐요. 내가 맞힌다.]
‘그래, 할 수 있으면 해 봐. 양이 오려면 1시간 걸리니까.’
[우…….]
솔직히 연애도 안 하는 수혁에게 이보다 귀중한 시간이 있을까?
덕분에 수혁은 1시간을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데도, 그러니까 남들에게는 정말이지 무료한 시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와……. 우리 교주님…… 역시 말로는 싫다 싫다 해도…… 신도 늘리는 데 진심이시다.’
그리고 그러한 수혁의 태도는 진한 오해를 낳고 말았다.
바로 안대훈이 바로 옆에서 수혁을 관찰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우리 교주님…… 자랑하실 때만큼은 정말 서두르시지 않나? 근데 이걸 참으시네. 그것도 웃으면서…….’
그가 아는 수혁은, 적어도 이럴 땐 이현종과 정확히 같다고 보면 되었다.
잘난 척하지 못해서 뒤진 귀신이 붙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수혁을 이뻐하는 신현태도 이 점만큼은 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딱히 비밀스러운 일도 아닌 것이 그냥 수혁을 아는 사람들은 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불초 소생이 더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한데 그 본능을 이길 정도로 포교에 대한 열의가 강할 줄이야.
안대훈은 잠시라도 쉬었던 것을 후회하며 결의를 다졌다.
밑에 핵심 멤버들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주지시켰다.
그러자 문자가 곧장 날아들었다.
<오늘도 전도하겠습니다.>
<역시 교주님…….>
죄다 정신 나간 문자들이었다.
수혁이 봤다면 벌컥 화를 냈을 법한 내용들로만 점철되어 있었다.
부르릉.
하지만 수혁에게 화를 낼 만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양이 정말 미 친듯이 노력했는지 4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시 전화를 걸어온 덕이었다.
그 바람에 수혁은 아까부터 수상쩍은 얼굴로 문자를 확인하던 안대훈에게 그거 뭐냐고 묻지도 못하고 국제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교주님! 저 지금 환자 바로 앞입니다!”
“아, 그래? 지금 환자 몇 인실에 계시지?”
그리고 언제 안대훈을 수상쩍게 생각했냐는 듯 바로 진료에 집중했다.
적어도 흥미로운 케이스를 눈앞에 뒀을 때의 수혁은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 4인실입니다.”
“환자랑 의료진만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나?”
“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양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수혁의 요청은 다소 황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정말 황당하게 여길 만한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남의 기숙사까지 몰래 가서 뒤지진 않았지 않겠나.
양은 그저 수혁이 시킨 대로 환자를 빈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도움을 요청했던 신도도 함께였다.
방이 작아서 복닥거리는 느낌을 주었다.
물론 수혁이 알 바는 아니었다.
아니, 아예 그런 느낌도 못 받았다.
“환자분, 몇 가지 질문할 게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고칠 수 있어요.”
오직 환자만 보고 있어서였다.
눈에는 열기를 띠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환자도 뭔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의사가 환자에게 묻는 것이니 절대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네.”
“혹시 처음으로 자위한 게 언제입니까?”
“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래 놓구선 이상한 질문을 하다니.
환자는 황당하단 얼굴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죠란 얼굴로 양옆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반응만 나왔다.
언능 대답하라는 표정만 마주할 수 있었단 얘기였다.
일반적인 의사들이 아니라 신도들이라 그랬다.
‘어…… 원래 이게 일반적인가.’
21살이 병원 와 보면 얼마나 와 봤겠다.
그렇다 보니 원래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의사가 환자에게 묻는 건데 이상한 것도 아니겠다 싶기도 했다.
“그…… 초등학교 고학년입니다.”
“그럼 대충 8, 9년 됐네요?”
“어…… 네.”
“처음 빈도는 얼마나 됐습니까?”
“어…… 음. 일주일에 한 번?”
“고등학생 때도요?”
“어…… 네, 뭐 많으면 두 번.”
어째 대화가 점점 더 이상하게 흘러간다 싶었지만, 항의하기엔 분위기가 지나치게 엄숙했다.
양도 자신의 주치의도 마치 예배드리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주 보고 있는 수혁의 얼굴은 진중하기 짝이 없었다.
“대학 들어가고 나서는요? 독립하고 나서는?”
“그…… 어.”
그래도 민망한 건 민망한 거라 대답이 망설여졌다.
해서 얼버무리고 있으려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단호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매일 하죠?”
“네? 아니, 그걸…….”
“그 후로 증상이 심해졌고요. 환자분의 증상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아니, 그럼…… 제…… 머리 아픈 게 너무…… 너무 해서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