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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632화 (632/1,303)

632화 마저 깨고 (4)

손장난 많이 하면 뼈 삭는다든가, 키가 안 큰다든가 하는 얘기는 많이들 들어 봤을 터였다.

하지만 너 그거 하면 두통 생긴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터였다.

심지어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환자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보다도 황당했다.

“아니, 선생님. 그거 많이 해서 머리가 아프다고요……?”

많이 했다는 말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양심이 있으면 그래야 할 터였다.

세상에 어떻게 쓰레기통 그거 작지도 않은 거 한 통을 휴지로만 꽉 채울 수 있단 말인가.

기숙사 관리인 말에 따르면 매주 한 번은 꼭 비운다던데.

그 말은 곧 눈만 뜨면 했다는 얘기가 되었다.

‘그래도 양심이 아주 없진 않네.’

[그러니까요. 그게 그렇게 좋나.]

‘아직 젊으니까.’

[수혁도 젊어요.]

‘그럼 야수 같은 느낌인가?’

[보통 사람은 아니죠.]

대개의 사고를 의학적 근거를 가지고 이어 나가는 편인 수혁이나 바루다조차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횟수였다.

그러니 뒤에 있던 안대훈으로서는 이런 생각만 들 수밖에 없었다.

‘횟수랑 두통이랑 관계가 있을 수가 있나? 그런가 본데? 와, 나는 진짜 아직 멀었구나.’

공부를 하지 않아서 저 둘 간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하는 거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양이나 다른 신도도 비슷한 생각 중이었다.

조금 충격받은 듯한 얼굴로 수혁과 환자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초가 더 지난 후에야 수혁이 입을 열었다.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면서였다.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많이 해서 생긴 건 아니에요. 뭐…… 많이 해서 더 심해진 건 맞지만.”

“어…… 정말로…… 이게……?”

수혁의 말에 환자는 저도 모르게 아랫도리를 내려다보았다.

죽도록 아프던 머리가 이거 때문이라고?

말도 안 된단 생각만 들었다.

그때 수혁이 재차 입을 열었다.

“아마 병원에 입원한 후, 한 번도 못 하셨을 거예요. 맞죠?”

“아…… 네, 그건…… 네.”

다인실 병실에서 그걸 할 만큼 간 큰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아무리 정욕의 화신이라 해도 좀 더 익숙해진 다음에나 시도할 터였다.

“그러고 나서 증상이 좋아졌죠.”

“음……. 그건.”

“일단 들어요. 제 얘기를 듣고 나면 납득이 갈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럴싸하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반발심이 들었다.

하지만 고만하라고 하기엔 수혁의 얼굴이 너무 진중했다.

심지어 양옆에 있는 이들도 그랬다.

여전히 예배드리고 있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환자가 나이가 좀 더 있어서 고집이 생긴 다음이었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는 아직 21살이었다.

“우선 처음 증상이 발생한 시점도…… 사춘기 좀 전이죠. 빠른 애들은 그때부터도 하긴 하니까 납득이 갑니다. 실제로 환자분은 그때 시작했죠.”

“그…… 네.”

“하지만 그때는 빈도가 그리 잦지 않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 힘들기도 했을 거라 원인이 헷갈렸을 거예요. 약도 어느 정도 들었고요.”

“네네.”

“그러다 대학을 가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생기자, 그때마다 한 거예요.”

“아니, 그렇게까진.”

“했어요, 안 했어요.”

“해, 했습니다.”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분위기가 너무 엄숙했다.

성당에 가 본 적도 없는데 고해성사라도 해야 하나 하는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혁 뒤에 서 있는 대머리까지 끼어들자 좀처럼 수혁의 말에 거역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후광처럼 빛나는 광경에 환자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짓지 않은 죄도 다 털어놓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빈도가 폭발적으로 느니까 증상도 심해진 거예요. 약을 먹어도 듣지도 않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약은 들었는데 그러고 나서 또 하니까 증상이 다시 심해지는 겁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본인 생활 패턴을.”

수혁이 아주 근거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 그가 확인한 재생 목록을 보면, 환자는 정말이지 시도 때도 없이 영상을 봤다.

“그…… 네,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환자도 실토하고야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은 드디어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체 이게 다 뭔데요?]

여전히 바루다는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상황이었다.

덕분에 수혁의 미소는 정말이지 진하다 못해 에스프레소 원액 같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푸근한 마음이 들게 한달까?

이미 신도인 이들에게는 이것이 주님의 사랑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일반적으로 자위행위와 두통이나 피로감과는 크게 연관이 없어요. 물론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하게 되면 감염이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한 피로감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제가 그 정도까지는…….”

“아슬아슬했죠. 하여간,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우리 몸은 꽤 신비로워서 얼마든지 일반적이지 못한 경우도 있죠.”

“어떤…….”

“오르가슴 후 동통 장애(Postorgasmic illness syndrome). 일명 POIS가 있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게 뭔…….”

오르가슴이라는 단어는 모르는 이가 없을 터였다.

성적인 쾌락이라는 뜻 아닌가.

문제가 있다면 그 뒤에 따라온 단어들이었다.

동통 장애가 뒤따를 수 있다니?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말 그대로예요. 오르가슴을 겪고 난 후, 통증을 비롯한 기타 증상들이 나타나는 질환군입니다. 제일 흔한 게 두통이죠.”

“아니, 이런 미친. 그럼 저는?”

“네, 오르가슴 후에 반드시 이런 증상이 찾아오게 돼요. 그나마 다행인 건, 환자분이 아직 자위행위만 했지 실제 성행위를 하진 않았다는 겁니다.”

“아니, 아니. 선생님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해요.”

“만약 그랬다면 선후 관계를 모르지 않았을 거예요. 가뜩이나 몸이 피로해지는데 이런 증상까지 겹치게 되면 훨씬 더 심각한 증상을 겪게 되거든요. 뭐, 해 본 적이 있으세요?”

“아니, 그건 아닙니다. 음.”

환자는 황당하기도 하고 곤혹스럽기도 해서 입을 다물었다.

바라건대 이제 이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면서였다.

하지만 이건 환자에게뿐만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아니,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저기, 그럼 이게 증상이 두통만 있나요?”

일단 양이 손을 번쩍 들었다.

“오르가슴 후에 두통만 생기나요?”

굳이 환자를 돌아보면서였다.

자연히 환자는 고개를 숙였고, 공감 능력 떨어지는 수혁은 여상한 태도로 답했다.

“아니, 당연히 아니지. 자세히 물어봐 봐. 발열도 있었을 거야.”

“그랬어요?”

“아니, 나도…….”

“코막힘이나 기분장애, 피로감 등등. 증상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어.”

“그랬어요?”

“아니, 나는.”

그때마다 최종적으로 답을 해야 하는 건 환자였다.

워낙에 드문 질환이다 보니, 수혁도 환자를 응시하고 있어서였다.

순식간에 동물원 우리 속에 들어간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이 대화에 깽판 놓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뭐가 되었건 아직 원인이나 치료 방법 같은 건 안 나오지 않았나.

이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럼 원인은 뭔가요?”

“증상 보면 느낌이 어때?”

“어쩐지 알레르기……?”

“그래. 아직 정확히 규명이 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알레르기 반응이 아닌가 하고 있지. 자신의 정액에 있는 물질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자가면역 또는 알레르기 질환이라는 거야.”

“와, 진짜 무슨 그런 끔찍한 일이…… 그럼 치료는요?”

치료.

사실상 모든 환자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내용 아닐까?

이 환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때문에 환자는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수혁도 뻔히 그 반응을 보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수혁은 진료보다는 의학 자체에 미친 인간이었다.

“아니, 아니지.”

“네?”

“치료가 아니라…… 이제 확진 방법을 물어야 할 차례지.”

“아…….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환자가 궁금해하는 건 부차적인 일 아닌가.

케이스 발표를 할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이 자리에 신현태라도 있었으면 좀 말렸을 테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죄 신도들뿐이었다.

아니, 신도라는 말도 좀 부족했다.

수혁의 광신도들은 수혁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아?”

“알레르기 반응이니까…… 음.”

수혁의 말에 따라 고민을 하던 양과 신도 그리고 대훈은 동시에 환자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의 아랫도리 쪽이었다.

그나마 대훈은 카메라 너머에 있었지만, 나머지 둘은 양옆에 있지 않은가.

환자는 황급히 아래를 가렸다.

“뭐, 뭡니까. 이거 뭐 뭐예요. 아픈 거예요?”

“아니, 아뇨. 거기에 항원이 있을 거라 예상이 되는 거잖아요.”

“뭔 소린지 몰라요.”

“정액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이 있을 거란 말입니다.”

“그, 그래서요?”

“그 정액으로 피부 단자 시험을 하면 거기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거예요. 한 여기쯤.”

양과 신도는 꽤 죽이 잘 맞았다.

하나가 환자의 팔을 딱 붙잡자, 다른 하나가 팔뚝 살에 동그라미를 쳐 주었다.

원래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 몸 만지는 게, 그중에서도 팔 정도 만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소름이 돋았다.

그런 걸 봤으면 제일 높은 사람이 중재에 나섰어야 할 텐데, 수혁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답. 게다가, 정액을 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

“아. 자위 후 증상이 발생하는지 여부도 바로 볼 수 있네요?”

“그렇지! 환자분.”

“왜, 왜요.”

“하시죠.”

“미친놈들이?”

“왜요. 맨날 하시면서. 오늘 건너뛰었으니까 아쉽지 않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서 어떻게.”

“아, 상상으로는 좀 그런가. 노트북 가져다드려요?”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오히려 한술 더 뜨고 있었다.

보다 못한 안대훈이 나서고 나서야 상황이 진정되었다.

“교수님.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합니까…….”

“아, 그렇네. 그렇지. 그래. 나도 별로 과정을 보고 싶진 않아.”

“네네.”

“자리 비켜 드리지. 전화는 끊지 말고. 밖에서 기다리자. 한 5분.”

“적당히 하세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통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다.

수혁은 자기가 뭘 잘못했냐는 얼굴이었다.

[성격 이상하네. 진단해 주겠다는데.]

‘그러니까 말야.’

바루다도 그를 옹호하고 나섰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영 교정될 가망은 없어 보였다.

하여간 양과 신도는 골방 같은 곳에 환자를 두고, 세심한 배려를 한답시고 노트북까지 건네준 후에 밖으로 나왔다.

‘아니, 이 개새끼들. 자라 새끼들.’

안에 혼자 남은 환자는 한숨을 푹 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보아하니 자기가 완료할 때까지 밖에서 서성거릴 요량 같지 않나.

심지어 문틈으로 그림자가 요란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분명 사람이 늘어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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