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33화 (633/1,303)

633화 마저 깨고 (5)

“정말?”

“그렇다니까. 오르가슴 후 동통 장애. POIS. 들어 본 적 있냐?”

“없지.”

“선생님은요?”

“없지…… 완전 처음 들어.”

밖이 소란스러워졌다는 건 환자의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로 사람들이 점점 몰려오고 있었다.

누군가를 놀리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POIS.

이 얼마나 희귀한 질환이란 말인가?

이번 진단을 놓치면 평생 가도 다시는 못 볼 가능성이 컸다.

“왕팡도 왔네.”

“오, 교주님. 알아봐 주시는군요.”

“아니, 본 지 얼마나 됐다고 까먹어. 근데 우리…… 그, 음. 동호회라고 할까? 회원들이 이렇게 늘었니?”

수혁조차 놀랄 정도의 인파가 몰려 있었다.

저게 다 신도라고 하면 싱가포르의 새로운 우환거리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죄다 의사인데 수십 명이 사이비 종교에 한꺼번에 투신했다고 하면 문제가 되지 않겠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왕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하게도 그건 아닙니다. 그저 전도의 장으로 삼아 볼까 하는 마음에.”

“아니, 그건 됐어.”

“근데 그쪽도 사람이 많네요?”

“어? 어어. 이거 희귀한 거니까. 진단 과정 보면 좋겠다 싶어서.”

사람을 불러 모은 건 양뿐만이 아니었다.

수혁도 그랬다.

일단 통합진료센터에 있는 애들 다 불렀고, 다른 곳을 돌고 있는 이들도 다 불렀다.

심지어 이현종이나 조태진 그리고 신현태까지 끼어 있었다.

“아니, 뭔 그런 병이 다 있니.”

“그러니까 말야.”

다시 말하자면 문밖도, 카메라 너머도 시끌시끌해졌다는 얘기였다.

‘이런 개새끼들.’

방 안에 갇힌 환자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이보다 더 가혹한 순간이 올까?

“아들!”

절대 없을 거라 단언하는 찰나에 그 순간이 다가왔다.

“어, 엄마? 아니, 엄마는 왜 불렀어.”

“너 그러게 내가 아유.”

“아, 왜 왔냐고…….”

“하여간 빨리해라. 빨리하고 치료받자.”

“아, 엄마…….”

밖에 엄마가 왔다.

심지어 조용히 있지도 않았다.

“여보, 고만해. 애가 부끄러워서 하겠어?”

자세히 들어 보니 아빠도 왔다.

설마 하는 순간 동생 목소리도 들려왔다.

“오빠 이거 유튜브 올려도 돼?”

“이 미친.”

누가 철딱서니 없는 동생 아니랄까 봐 저따위 소리를 하고 있었다.

골방이 아니라 창문이라도 있는 방이었다면 아마 그리로 뛰어내렸을 거 같았다.

‘설마 이것도 다 계산해서……?’

소름이 돋았다.

의사가 아니라 순 악마 새끼들 아닌가.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설마하니 일가친척 다 불렀나 하고 있으려니, 그 누군가가 말을 이었다.

“저, 담당 교수입니다.”

“아…… 네.”

점잖은 목소리.

그래, 이 목소리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사람이라면 이 지옥에서 구원해 주지 않을까?

적어도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라도 데려다주길 바랐다.

“그,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좀 그렇지만…….”

“네?”

“그, 피부 단자 시험하는 거랑 증상 발생하는 거 녹화가 가능할까요? 아, 물론 치료비는 전액 지원하고, 거기에 더해 소정의 수고비도 드리겠습니다.”

“뭔 미친.”

“양해 바랍니다. 의학 발전에 큰 기여 하시는 겁니다.”

“기여요?”

“네.”

“음.”

전도유망한 대학생에서 전설의 딸쟁이로 전락해 버린 상황 아닌가.

하지만 의학에 기여를 하게 된다면?

반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숨 막히는 상황 속에 그야말로 골방에 갇혀 있다 보니 정신이 나가서 든 생각인데, 지금은 사리 분별이 잘되지 않았다.

“그 비디오 뭐 어디 유출되거나 하진 않겠죠?”

“네? 아유. 얼굴 다 가리고…… 학술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하게 됩니다.”

“그럼 뭐…… 알겠습니다.”

“대단한 결단입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네.”

누군가 내 은밀한 시간이 끝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게 될 줄이야.

살다 살다 별꼴 다 본단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환자는 거사를 치르기로 결심했다.

비록 부끄러운 상황이기는 해도 그냥 막 하기는 싫다는 생각에 엄선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럼에도 밖은 조용했다.

다행히 교수가 한마디 한 모양이었다.

덜컥.

마침내 문이 열리고 환자가 나왔다.

그와 동시에 교수와 몇몇 레지던트들이 달려갔다.

“주시죠.”

“아니, 이거.”

“좋아. 이수혁 교수님.”

담당 교수는 정액을 받아 들고는 수혁을 바라보았다.

이게 남들에게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냄새 좀 나는 오물일 뿐일지 몰라도.

저 환자에게는 독극물이 될 수 있지 않나.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극도로 희석해야 합니다. 1만분의 1, 10만분의 1로 희석한 액을 준비하죠.”

“그것만으로도 반응이 나타날까요?”

“그보다 농도가 높으면 쇼크사 가능성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냥 피부에 닿은 것만으로도 알레르기 반응이 극심하게 일어나지 않나.

피부 단자 시험은 그 정도가 아니라, 주사를 하는 것이기에 훨씬 더 강한 반응을 보이게 될 터였다.

자칫 잘못하면 환자가 쇼크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아니, 드물게는 죽을 수도 있었다.

설비가 갖추어져 있으니 그럴 일은 적겠지만.

단지 진단을 위해 감수할 수는 없는 정도의 위험이었다.

해서 진단검사의학과에 검체를 보내 희석할 것을 명했다.

그사이 교수는 환자의 증상 변화 추이를 살폈다.

“으.”

“시간 얼마나 됐지?”

“나온 지…… 30초 정도요.”

“되게 빠르네.”

환자는 곧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여기에 모여든 모두가 관찰했다.

심지어 촬영까지 하고 있었다.

“으으으.”

통증의 정도가 꽤 심한지, 환자는 식은땀마저 흘렸다.

여동생이야 빼앗긴 핸드폰이 아쉽단 표정만 짓고 있었지만, 부모 마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원인이야 좀 어처구니없어도 하여간 아들이 아파하고 있지 않나.

“이거 계속 지켜봐야 할까요? 약 먹으면 안 됩니까?”

“아……. 잠시만요.”

그 말에 담당 교수가 수혁 쪽을 바라보았다.

이걸 더 관찰할 필요가 있을지 묻는 것이었다.

수혁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르가슴 후 동통 장애에서 통증은 보통 이틀에서 일주일까지 갑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경미해지긴 하지만…… 고작 그 과정을 보기 위해 환자를 아프게 할 필요는 없겠죠. 이미 선후 관계가 명확해진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좋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통증이 수분 또는 수 시간 내에라도 가라앉을 것이었다면 마음 좀 독하게 먹고 참아 보라고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며칠이라지 않나.

제아무리 숭고한 목적을 띄고 있다고 해도 그만한 고통을 사람에게 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이건 그리 숭고한 목적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 충족을 위해서였다.

“약 드리지.”

“네.”

해서 환자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약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다고 약발이 바로 올라오진 않았다.

아무래도 바로 항원을 대량으로 풀어낸 탓일 터였다.

여전히 아프단 얘긴데, 그나마 아까보다는 나아 보였다.

꼭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하아.”

그리곤 원인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모여 있던 이 중 왕팡이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네? 아니, 흠. 네.”

누가 봐도 억지로 괜찮다고 하는 모양새였지만.

여기서 더 캐묻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시약 왔습니다.”

무엇보다 환자의 체액을 이용해 만든 시약이 도착했다.

이제 확진을 위한 검사를 해야 할 차례였다.

“에피네프린 준비됐지?”

“네.”

“삽관도?”

“네.”

“좋아. 신호 주면 바로 놔. 물론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하여 일행은 이제 처치실로 이동했다.

수십 명의 의료진이 단 하나의 환자와 세 명의 보호자를 둘러싸고 이동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만했다.

병마가 오다가도 도망칠 것 같은 모양새였다.

“후.”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자, 찌릅니다.”

“네, 읍.”

그 와중에 교수가 직접 나서서 환자의 팔을 찔렀다.

총 세 번이었는데, 하나는 물, 다른 하나는 히스타민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체액으로 만든 시약이었다.

세 번째 것에 대한 반응이 히스타민과 유사하게 나온다면 환자는 양성이었다.

즉 오르가슴 후 동통 장애로 확진할 수 있단 얘기였다.

“어…….”

“엄청 부푸는데요? 만분의 일 아냐, 이거?”

“네네.”

“아니, 근데…… 이거 더 볼 필요가 있나?”

유사하게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는 건 확정이었다.

한데 환자의 팔은 히스타민하고 비교할 의미가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거의 팔 전체에 급격한 반응이 있었다.

“으, 으으.”

그에 더해 두통까지 더 심해지는 상황.

“약, 바로 줘요. 스테로이드 쏴요.”

모두가 당황하는 가운데 수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행히 싱가포르 국립 병원의 수준도 썩 괜찮은 편이다 보니, 오더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두 알아먹었다.

덕분에 순식간에 과민 반응을 억제하기 위한 약이 들어갔고 환자는 곧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엄청 심하네…….”

“만분지 일인데…….”

다들 가슴을 쓸어내리며 처치실 침대에 누운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태반이 신기해하고만 있었다면 지금은 태반이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병이란 말인가.

오르가슴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단기간의 쾌락 중 가장 강한 것인데, 그걸 느끼면 바로 저런 통증을 느껴야 한다니.

신의 저주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정말 신 취급을 받고 있는 수혁은 딱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확진됐군요.”

그저 눈앞의 케이스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아, 네.”

“그럼 이제 치료해야죠.”

해서 진단 후 마땅히 따라야 하는 절차, 치료를 입에 담았다.

그 말에 환자뿐 아니라 교수, 레지던트, 간호사 할 것 없이 모두가 양이 들고 있는 작은 핸드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듣도 보도 못했던 병 아닌가.

치료법이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모두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수혁은 환자를 바라보았다.

“환자분.”

“네.”

그에게는 권리가 있지 않나.

자신의 병에 대한 치료법에 대해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눈치 좋은 양이 아예 핸드폰을 환자 앞으로 옮겨 주었다.

덕분에 환자는 수혁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왜 그런?”

“알레르기 질환의 제1 원칙은 회피입니다.”

수혁은 그런 환자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의료진은 저마다 탄식을 내뱉었다.

환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자분은 이제 혼자만의 시간은 갖지 않는 게 좋아요. 성행위도 피하시는 게 좋은데…… 그건 알아서 잘 피하시는 거 같으니 다행입니다.”

“아니…… 뭔…….”

“물론 약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만…… 보조적이에요.”

“보조적이라면?”

“잘 듣길 바라 봐야요. 궁극적으로는 아예 안 하는 게 최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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