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34화 (634/1,303)

634화 몽골로 (1)

‘오르가슴 후 동통 장애라는 거 들어 본 사람.’

‘없지…… 그걸 대체 어떻게 진단한 거야?’

‘야, 이수혁 교수님 없었으면 신경과 완전 개삽질할 뻔했어. 진짜 대박이다…….’

‘그러니까. 아예 이상이 없는데 두통이 있어. 근데 그게 자위 때문이다? 와……. 돌았다.’

수혁이 최근 외과계 쪽으로 순회공연 돌고 있다는 건 이미 병원 내에 짜하게 퍼져 있던 소문이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긴 했다.

적어도 레지던트들에겐 그랬다.

이제 와 수혁의 우수성을 의심할 만한 젊은 의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저지른 짓은 이미 신도가 되어 버린 이들에게조차 놀라운 일이었다.

‘근데 뭔 마이너 서저리과 교수들이 이수혁 교수님 벼르고 있어?’

‘그러니까. 아는 게 뭐가 있다고.’

‘아휴. 오르가슴 말고는 아무것도 모를 듯.’

‘그러게.’

여파는 당연히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지나는 애들마다 마이너 과 애들 보면 한마디씩 하게 되었을 정도였다.

“야, 너네는 왜 그러냐?”

“나는 아냐……. 나도 이수혁 교수님 믿어.”

“근데 왜 그래. 가서 소리쳐, 인마.”

“아니, 그래도 어떻게 소리를 쳐……. 우리 과 분위기 모르냐? 나 수술방 복도에만 서 있을 수도 있어.”

“하긴…… 어휴, 꼰대들.”

사실 마이너 과일수록 상하 관계가 오히려 더 견고한 법이었다.

왜냐면 수술 부위가 좁으면 좁을수록 집도의가 안 알려 주면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지 않겠나.

도제 관계가 더더욱 심각해진다는 얘기였다.

“일단 조용히 있을까…….”

“그게 좋겠어요. 안 그래도 봉사니 뭐니 해서 이수혁 교수도 2주 정도 자리 비운다니까…… 지금 당장은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이 일개 레지던트 눈치를 안 볼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특히 니들이 뭘 알아서 감히 이수혁에게 반기 들 생각을 하냐는 의견은 숫제 뼈까지 아플 지경이었다.

뭐라도 좀 반박을 할 건덕지라도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개뿔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

실제로 오르가슴 후 동통 장애에 대해서는 최낙필 교수를 비롯해 그와 작당했던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 재미없게 됐네.”

이러한 분위기는 즉각 태화 의료원 레지던트 중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안대훈에게 전달되었다.

안대훈은 내심 이번 기회에 대량 전도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무산된 느낌이다 보니 아쉽단 생각만 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촉각 곤두세우고…… 특히 이제 곧 나랑 교주님 다 자리 비우니까, 그동안 공백 없게 잘하라고.”

“네.”

하지만 조직의 수장으로서, 개인감정만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일 윗사람이 안 그러면 또 모르겠지만.

이수혁이나 이현종이나 조태진이나, 하여간에 수혁교와 연관된 어른들은 하나같이 감정적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안대훈은 어쩔 수 없이 냉정함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교주님!”

“아니, 교수라고 하라니까?”

물론 그것도 남들 앞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뿐, 수혁 앞에서는 가장 충직한 개가 되기 일쑤였다.

“교주님. 다다음 주 몽골 일정 짜 봤습니다.”

“아니……. 일정을 왜 네가 짜. 어차피 거기 초원에만 있을 거라던데. 봉사하는 거 아냐?”

“주말에는 말도 타고 할 거라던데요?”

“말을 타? 논다고?”

“네.”

“이상하네? 백강혁 교수님 소문 들어 보니까…… 아예 쉬는 시간 없이 굴릴 거 같은데.”

강혁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수혁이 바루다를 동원했음에도 알아낼 수 있는 게 전혀 없을 지경이었다.

수혁이나 바루다나 딱히 의학적이지 않은 부분에 관해서는 관심이 적어서 더 그렇긴 했지만.

하나 안대훈은 그런 수혁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후후. 제가 다 정보를 입수했죠.”

“어떻게……?”

수혁의 얼굴에는 강한 의문이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교수인 자신보다 안대훈이 어찌 다른 이들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뛰어날 수 있겠나.

하지만 수혁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안대훈은 이제 더 이상 평범한 레지던트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싱가포르 국립 병원 측에서 작년에 몽골 쪽으로 봉사를 갔다고 하던데요.”

“아……. 거기 통해서 들었어?”

“네. 지금 몽골에 가면 어떻게든 백강혁 교수님이 운영하는 병원하고 접점이 생길 수밖에 없대요. 거기서 제일 큰 병원이라.”

“오…….”

“옛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늘 봉사랑 관광을 결합해서 다녀야 된다고 주장하시나 봐요. 그래서 주말에는 무조건 논대요.”

“그거 좋구만.”

이 말을 들으면서 수혁은 역시 이현종, 김승규 등이 괜히 오버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놀 시간까지 다 주는 사람이 뭐가 무서워서 벌벌 떨었단 말인가.

“어디 봐 봐.”

“네, 여기.”

“음……. 좋네. 그래, 나도 말 한번 타 보고 싶었어. 거기는 풀이 하도 무성해서 떨어져도 안 다친다던데.”

“어휴, 떨어지면 안 되죠. 제일 좋은 말로 구해야죠.”

“네가 가능하냐?”

“어떻게든 가능하게 하겠습니다.”

해서 노는 얘기를 하고 있으려는데, 고작해야 말 타는 얘기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대훈의 열의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이나 불타올랐다.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안대훈은 요새 점점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게다가 그 까다로운 이현종도 안대훈은 울타리 안에 속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고 있지 않나.

“그래……. 노력해 봐라. 아, 너 가서 입을 옷은 있냐?”

“네? 그…… 있기는 합니다.”

“뭐, 평소에 입고 다니는 거?”

“네.”

안대훈의 외모는 아무리 좋게 봐 줘도 추남과 평범의 경계 선상에 있었다.

머리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대머리가 더 유리한 부분도 있지 않나.

뭘 해도 전문가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보니, 옷을 좀만 잘 입어도 패셔니스타처럼 보이기도 했다.

안대훈의 가장 큰 문제는 후줄근하다 못해 거지 같은 옷이었다.

실제로 거진가 해서 따로 알아봤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편도 아니었다.

‘돈 없는 설움이라면…… 내가 잘 알지.’

수혁은 그래서 교수의 길까지 포기하지 않았던가.

그에 비하면 안대훈은 그런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노력을 이어 나가는, 아주 훌륭한 놈이었다.

수혁은 기특하다는 생각과 함께 카드를 내밀었다.

“이거 들고 가서 옷 좀 사 입어라. 명색이 치프에 동호회장인데 그래도 비싼 거 입어야지.”

“아니, 이건…… 이건 너무.”

“뭐 인마. 나 돈 많아. 쓸데도 없고.”

“오히려 제가 헌금을.”

“미친 소리 하지 말고.”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 바람에 안대훈은 눈물 콧물 짜내며 한동안 수혁에 대한 칭송을 이어 나갔다.

놀랍게도 이건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진 않았다.

안대훈이 수혁 칭송하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오히려 화제가 된 것은 안대훈이 그 돈으로 산 옷이었다.

녀석은 그걸 공항에 입고 왔다.

“야……. 이게 뭐야.”

“왜요?”

“네가 지디야?”

“교주님이 제 지디죠.”

“아니, 대훈아…….”

지디병이라고 하던가.

가수 찬혁이 걸린 병인데, 이게 나름 전염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소화하기 어려운 병이니만큼 사람 골라 가며 걸렸으면 좋겠는데, 다들 알다시피 병에는 눈이 없었다.

하필 안대훈이 그 병 환자였을 줄이야.

[새로운 케이스로군요.]

‘아니……. 진지하게 접근하지 말고.’

[아뇨, 이건 병입니다.]

‘그…… 아냐.’

[맞습니다. 병이 무엇입니까.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죠? 보세요, 안대훈 주변을.]

어찌나 흉한지 바루다는 즉시 안대훈의 몰골을 데이터화해서 저장해 버렸을 지경이었다.

반박하기도 어려운 것이, 실제로 안대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나름 레지던트들의 왕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는 걸 감안해 보면 지금의 패션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해 봄 직했다.

“자자. 태화 의료원 분들. 이쪽으로 오세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게 평범한 여행이 아니라 봉사라는 점이었다.

말이 봉사지, 태화의 이미지를 걸고 하는 것이라 어찌 보면 정기적인 일에 더 가까울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일정이 꽤 빠듯했다.

자연히 안대훈의 패션에 대한 관심도가 계속 유지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

“이날이 왔구만…….”

“아하…….”

게다가 시니어 교수급들은 딱히 안대훈에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앞으로 펼쳐질 지옥도가 걱정인 모양이었다.

벌써 수혁이 몇 번이나 이제는 그렇지 않을 거라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소용은 없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남성 호르몬이 떨어져 보통은 다 부드러워진다는 말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네가 뭘 아느냐는 식의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수혁으로서는 적어도 이현종과 신현태가 이러는 건 처음이다 보니 약간 상처까지 받았다.

“그…… 늘 그래 왔듯이 비행기 표는 직급과 관계없이 이코노미입니다. 명색이 봉사단인데 너무 좋은 좌석을 타고 가는 게 좀 그렇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고…… 또 몽골 병원 측에서 그럴 돈 있으면 기부하라고 나와서요.”

“아, 뭐.”

“그래요.”

“그래야지, 뭐.”

원장도 이코노미인데 수혁이라고 해서 별수 있을까.

당연히 이코노미석을 받았다.

그리고 좀 실망하는 자신을 보며 놀랬다.

‘와……. 내가 출세하긴 한 모양이네. 이걸 보면서…… 실망하네.’

[저도 실망했습니다. 수혁의 감각은 제게 전달이 되니까요. 그나마 촉감은 둔감하지만…….]

‘좁게라도 가야지, 뭐.’

[일등석이 뭐 얼마나 한다고 이걸 아끼는 거죠?]

‘사실 나도 잘 몰라. 맨날 받아서 타기만 했으니까.’

[으음.]

하여간 방법이 없는데 뭘 어쩐단 말인가.

이현종, 신현태도 도살장 끌려가듯 가고 있었다.

심지어 체격 때문에라도 이코노미석은 무리인 김승규조차 한숨을 푹푹 쉬며 들어간 지 오래였다.

수혁은 하릴없이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같이 가요!”

안대훈도 함께였다.

바짝 붙어서 다닌다 싶더니 비행기 자리도 바로 옆이었다.

녀석은 머리끝까지 상기된 얼굴로 끊임없이 조잘거렸다.

몽골이 그리 가까운 편은 아니지 않나.

그 말은 곧 꽤 오랜 시간 수혁과 단둘이 붙어 있을 수 있단 말이었다.

“설마 닥터 콜 생기는 건 아니겠죠?”

이런저런 말을 막 하길래 대강 대꾸를 해 주었더니 급기야 이런 말도 했다.

일반인들에게야 별 특별한 말이 아니겠지만 의사들에게는 그들만의 미신 같은 것이 있었다.

“미쳤냐? 그러다 진짜 생기면 어쩌려고.”

응급실에서도 환자 없다는 소리 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나.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얼굴이 아닌데.”

“사실 여기…… 태화 의료원이 있는 셈이나 마찬가진데…… 설마 별일 있겠습니까?”

안대훈은 예과생도 다 아는 금기를 범한 주제에 당당했다.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하긴 했다.

수혁도 안대훈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하긴…… 닥터 콜이고 나발이고 다 씹어 먹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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