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36화 (636/1,303)

636화 몽골로 (3)

[눈을 꼭 감고 있군요.]

‘통증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죠.]

상상 이상의 통증이 엄습하게 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게 된다.

사실 외력에 의한 상처가 발생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도망쳐야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 건 훈련 받은 소수일 뿐이었다.

하나 이 환자는 손아귀에 힘을 좀 주고 있을 뿐 온몸을 수축하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표정만큼 극심한 통증이라면 바이털 사인과 매치가 되지 않습니다.]

‘하긴……. 그랬으면 혈압이 더 뛰었어야지.’

[아예 엉뚱한 증상일 가능성도 있어요. 보아하니, 아직 문진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다행이라면 환자의 증상이 저절로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표정으로 유추한 거야?’

[네. 인상 쓴 것이 조금씩 풀리고 있어요. 좀 더 기다려 봐도 좋을 겁니다. 어차피 심장과 폐 질환이 아니라면 시간이 있어요.]

‘하긴.’

심장과 폐 질환을 배제했다는 건 생각보다 커다란 의미를 가졌다.

우선 비행기를 회항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대폭 올라갔다는 얘기가 되지 않겠나.

대개 항공 상황에서의 치명적인 응급은 저 두 가지 중 하나로 수렴하니까.

수혁이 판단하기에도 이현종, 홍창기의 의견은 틀리지 않은 거 같았다.

해서 조금은 여유를 가진 채 보호자를 돌아볼 수 있었다.

“보호자분?”

“아, 네네!”

보호자는 급히 수혁의 말에 답했다.

응급 상황에서는 누구나 다 이랬다.

수혁은 우선 보호자의 어깨를 살포시 두드려 주었다.

급하게 반응해 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과도한 흥분은 제대로 된 병력 청취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였다.

“아까 환자분…… 혹시 이렇게 되기 전에 뭘 하고 있었죠?”

“어…….”

지금도 그렇지 않나.

보호자는 경황 없는 얼굴로 비행기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유의미한 진술을 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것이 분명했다.

‘어, 환자 눈 떴다.’

해서 수혁은 잠시 환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그때 마침 환자가 눈을 떴다.

“환자분,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이러면 문진부터 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심장과 폐를 제외하면 제일 위험할 수 있는 머리에 대한 질문을 해야만 했다.

시작은 오리엔테이션 즉 지남력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비, 비행기요.”

환자는 별 망설임도 없이 정답을 말했다.

보아하니 정신을 잃은 적은 없는 듯했다.

눈을 감고 있었을 뿐, 상황은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였다.

역시나 아득할 만큼의 통증은 가능성이 많이 떨어져 보였다.

“이름 한 번만 말씀해 보시겠어요?”

“김동현입니다.”

머리일 가능성도 떨어지는 상황.

하지만 수혁은 어찌 되었건 이름은 물었다.

그리고 환자는 또박또박 답함으로써, 머리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외에 움직임이나 감각도 정상이었으니 더 누워 있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수혁은 섣불리 환자를 일으켜 세우는 대신, 보호자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보호자는 드디어 준비가 되었는지 또렷한 눈으로 수혁을 마주했다.

“환자분, 뭐 하고 계셨는지 기억나시나요?”

“아, 네. 얘가…… 비염이 있어요.”

“비염. 음, 네.”

일반인 같으면 여기서 왜 비염 얘기를 하나 했겠지만.

수혁은 모든 것을 단서화할 수 있는 인간이 된 지 오래 아니던가.

딱히 바루다의 도움이 없을 때조차 그랬다.

‘비염이 있으면 점막이 잘 붓지. 비행기에서라면…… 코 뒤의 이관 점막부종을 야기할 수 있어.’

[항공성 중이염의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귀가 자주 아팠을까?’

[알 수 없죠.]

한순간에 여기까지 사고를 전개할 수 있었다.

“귀가 좀 아픈 편이에요.”

아니나 다를까, 보호자는 귀 얘기를 하다가 문득 환자를 바라보았다.

아까 환자가 뭘 했는지 더 자세히 상기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지금은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여간 보호자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코 막고 숨 막 참는 거…… 그거.”

“발살바요?”

“아, 네. 그거. 그거 자주 하거든요. 아까도 그거 했는데…… 그러다 갑자기 으악 하더니, 저렇게 됐어요.”

“흐음. 발살바라…….”

환자는 코를 막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숨을 들이쉰 상태에서 코와 입을 막고 내쉬는 방식이지 않나.

일상생활에서는 대개 복압을 높이기 위해 쓰이는 방법이었다.

발살바라는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스쿼트나 데드리프트를 중량 높여서 해 본 사람이라면 살기 위해서라도 딱 숨을 참게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였다.

복압을 높여 전반적인 근력을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의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위험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음……. 아냐, 뭐가 있지는 않아.”

“청진에서도 그래.”

옆에 있던 이현종과 홍창기가 거의 동시에 환자의 배를 까고는 타진과 촉진 그리고 청진을 시행했다.

과하게 복압이 올라가면서 혹 배에 문제가 생겼을까 봐서였다.

젊은 환자이긴 해도 원래 동맥류와 같은 것이 있었다면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하지만 혈압을 봐도 그렇고, 신체 검진 소견을 봐도 그렇진 않아 보였다.

‘배는 별문제 없을 거야. 귀가 아파서 행하는 발살바는 복압이 아니라…….’

[강제로 이관을 여는 데 쓰이죠.]

애초에 수혁은 그쪽을 크게 의심하지도 않았던 상황이었다.

목적이 그쪽에 있지 않았을 테니까.

오히려 문제는 저 위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강제로 이관만 열었다면 다행이겠지만, 과도하게 힘이 전달되는 경우엔 혈고막 소견을 보이기도 하지 않던가.

말 그대로 귀 내부 압력이 너무 올라가면서 혈관이 터지기도 한다는 뜻이었다.

“이경 있으신 분…… 없겠죠?”

“그거까지는…….”

“이비인후과 의사라도 그건 안 들고 다니지.”

해서 수혁은 무의미한 질문을 동료들에게 던지고는 환자를 돌아보았다.

“환자분, 혹시 지금 귀가 아프세요?”

“네? 어…… 아뇨. 그건 잘.”

그렇게 되었으면 당연히 귀가 아파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환자는 그저 어리둥절하다는 얼굴이었다.

아프지 않았거나 귀의 통증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수혁은 그 얼굴을 보면서 문제 목록을 다시금 정리했다.

또 다른 진단명을 도출해 내기 위함이었다.

‘압력이 올라갔는데 통증 쪽은 아니다……. 눈을 꼭 감아야만 했던 상황이다……. 바루다. 귀 쪽 해부 띄워 봐.’

[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래, 역시. 이쪽으로 내이 기관이 있어. 압력이 전달되었을 가능성은?’

[농후합니다.]

‘좋아.’

[현재로써는 가장 가능성이 큰 진단명이겠어.]

다른 이들에게는 어려운 과정이었을 터였다.

일단 머릿속에서 노트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지도 않을뿐더러.

바루다의 도움으로 3d로 해부학적인 영상을 띄울 수도 없어서였다.

“환자분, 지금은 어지럽진 않으세요?”

“네? 아…… 아, 이게 어지러운 거구나.”

덕분에 수혁은 매우 의미 있는 질문을 뜬금없이 던질 수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환자조차 수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의 증상이 뭐였는지 깨닫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다른 이들이 얼마나 놀랐을지는 굳이 말 안 해도 될 정도였다.

“역시 미쳤다.”

“어지럼증……?”

“갑자기 왜.”

몇몇은 수혁이 대체 어떤 추론을 통해 저 결론에 도달했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재들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현종, 신현태 그리고 어느새 뒤따라 나온 대머리 안대훈을 제외하고는 감을 잡는 사람이 없었다.

“발살바가…… 원래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닌데요. 이관이 극도로 좁아진 상황에서 발살바를 시행하다 보면 귀에 예기치 않게 너무 커다란 압력이 가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수혁은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그러나 눈은 환자를 향한 채 설명을 시작했다.

눈높이가 환자에게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못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통 그렇게 된다 해도 안에 혈관만 터지고 말곤 하는데, 재수 없으면 내이 쪽으로 압력이 전달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바닥뼈에 골절이나 균열 또는 틈이 생기게 되면…… 외림프 누공이 생기게 되죠.”

“아.”

“아하.”

“그렇군. 외림프 누공.”

여기까지 말하자 몇몇은 아예 다 알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환자를 비롯해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있는 사람이 훨씬 많았기에 수혁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정상적으로는 달팽이관 또는 세반고리관 안에 있어야 할 물이 새어 나오면서…… 청각과 평형기능에 모두 이상이 발생합니다. 아마 환자분 지금 소리가 잘 안 들릴 거예요. 먹먹하게 들릴 겁니다.”

“아, 네. 저는 이게 그냥 비행기 타서…….”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문제가 생긴 겁니다.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우선 약부터 쓰죠.”

수혁은 거기까지 말하곤 승무원을 바라보았다.

승무원은 아까부터 들고 있던 구급 통을 넘겨주었다.

안에 있는 약은 대개 상비약 수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전문 의약품들도 더러 낑겨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약방의 감초처럼 쓰이는 스테로이드도 있었다.

“우선 이거 주시고요.”

“네.”

“제가 놓겠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수혁은 그렇게 약을 주면서, 질문을 더 했다.

“혹시 지금 일등석에 자리 있나요?”

“아, 네. 있습니다.”

승무원은 일등석 쪽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텅 비어서 가는 게 일등석이지 않나.

오늘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럼 자리 좀 내주세요. 환자분 30도 정도만 머리를 세우게 해서 눕히는 게 좋습니다. 제가 타 보니 그런 기능도 있던데요.”

“아, 네. 가능합니다. 그럼…….”

“회항은 불필요합니다.”

“그렇군요.”

승무원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 잘됐군요 따위의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까지는 피하지 못했다.

승무원은 잠시 그렇게 있다가 이내 뭔가 생각났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 근데…… 옆에서 의료진이 지켜볼 필요는 없을까요?”

“음, 그건…….”

수혁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으려 했다.

위급 상황이 아니고서는 딱히 의료진이 필요친 않을 거라 그랬다.

하지만 세태와 야합한 지 오래인 바루다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모든 행위가 무위로 돌아갔다.

‘뭔 지랄이지?’

요새 이렇게까지 방해한 적은 없지 않나.

수혁은 정말로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바루다를 불렀다.

바루다는 수혁보다 더한 얼굴을 한 채 말했다.

[멍청한 수혁. 지금 필요하다고 하면 환자 옆자리로 가잖아요!]

‘그게 뭐.’

[일등석 옆은 뭐다?]

‘아. 제가 큰 잘못을 저지를 뻔했네요.’

세태와 야합한 수준으로만 따지면 수혁도 만만치 않은 사람 아닌가.

해서 수혁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있는 게 좋죠.”

“그럼 이수혁 교수님 같이 가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뭐. 제가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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