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37화 (637/1,303)

637화 몽골로 (4)

[껄껄.]

바루다는 그야말로 광소를 터뜨렸다.

일등석에 승객이 단 하나도 예약이 안 되어 있던 바람에 일등석 승객을 위한 밥은 당연히 없을 줄 알았더랬다.

실제로도 일등석 승객이 먹는 밥이 그대로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비즈니스석에 제공되는 밥이 나왔다.

“원래 기장님이 드시는 건데…… 닥터 콜에 대한 조그마한 감사 표시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 기장님은……?”

“아, 부기장님하고 메뉴를 다르게 해서 여유 있게 준비하거든요. 부담 없이 드시면 됩니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히 비행기 기장이나 부기장도 밥을 먹어야 하지 않던가.

중간에 배탈이라도 나면 사고가 날 테니, 당연히 검증된 밥을 먹어야 할 터였다.

검증된 밥이란 기내식을 뜻했다.

일부 항공사에서는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허용하기는 했지만, 문구를 덧붙인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준비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 비행에 차질이 생겼을 시 모든 책임은 개인이 진다.>

무섭지 않나?

때문에 굳이 기내식 외에 다른 걸 먹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와……. 뭔 비행기가 거의 바네, 바. 술이 술술 나오네.’

[그러니까요. 와인 리스트가 훌륭한데요?]

‘좋다. 밥도 맛있고.’

[아까부터 이현종이 자꾸 커튼 뒤에서 서성거리는 거 같은데, 그건 어쩌시겠습니까?]

‘밥이 남는 거면 부르겠는데 아까 들어 보니까 그게 아니잖아. 모른 척하자.’

[역시 수혁. 먹는 거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군요.]

기내식뿐 아니라 주류 구성도 일등석에 맞게 업그레이드되었다.

평소 먹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현종이 안달이 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예 아무도 못 먹는 상황이라면야 그냥 넘어가겠지만 그게 아니지 않나.

“수, 수혁아. 뭐 나왔어? 넘어가 보고 싶은데 자꾸 막네.”

“아…… 그냥 기내식이요.”

“그래? 어디 좀 봐 봐.”

“아니, 뭘 이런 걸 보려고 그래요.”

“아빠한테 설마 거짓말하는 건 아니지?”

“에이, 제가 어떻게 아유.”

“그, 그래. 믿는다? 믿어?”

“네네.”

“그래……. 근데 이게 이거 먹으면서 캬, 캬 할 수가 없는데…… 내가 자꾸 의심이 드네.”

“아빠 실망이에요.”

“그래, 미안하다.”

해서 자꾸만 질척거렸다.

양심에 가책 느끼게 하면서였는데.

다행인지 뭔지 수혁은 바루다 덕에 부정적인 감정을 상당 부분 인위적으로 덜어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원래도 긍정적인 인간 아닌가.

한없이 뻔뻔해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제 우리 비행기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좌석 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자리에 앉아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간 더 흐른 후, 기장의 방송이 있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바로 비행기가 내려간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승무원 하나가 수혁과 환자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괜찮으실까요?”

이륙과 착륙은 압력에 아주 많은 변화를 야기하는 행위이지 않나.

실제로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이 딱 이때만 중이염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걸 항공성 중이염이라 따로 명명해 불렀는데, 그만큼 압력이 심하단 얘기였다.

승무원들은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숙지하고 있었기에 무조건 응급 상황이 있었던 환자나 닥터 콜에 응해 준 의사에게 의료 자문을 하는 편이었다.

“아, 네. 이미 약이 다 들어가서…… 점막 부종은 빠졌을 거예요. 괜찮습니다. 다만 좀 어지러울 수는 있는데…… 그건 제가 옆에서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나중에 저희 본사에서도 따로 감사 인사드릴 겁니다.”

“뭘 그런 걸 다.”

수혁은 허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바루다도 미처 수혁의 눈에 스치고 지나간 탐욕스러움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위이잉.

하여간 수혁의 확인이 있자마자 비행기가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다.

기체가 덜컹거리기 시작하자, 환자가 긴장되는지 옆을 돌아보았다.

물론 수혁이 해 놓은 말이 있어서 고개보다는 거의 눈만 돌리는 느낌이기는 했다.

“저, 저 그럼 어찌 되는 건가요?”

“일단…… 병원 입원하셔야죠. 거기 가는 건 관광이 아니라, 일 때문에 가시는 거라고 했죠?”

“네. 장기 출장입니다. 한, 두 달…… 근데 몸이 이러면 이거…….”

“정확한 건 CT도 찍어 보고, 또 며칠 지켜봐야 알겠지만…… 간혹 수술 없이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도 있어요. 문제는 이걸 봐줄 만한 병원이 울란바토르에 있느냐인데.”

수혁은 그렇지 않아도 일등석에 앉은 김에 이런저런 검색을 해 본 참이었다.

그 결과 울란바토르에도 나름 큰 병원이 있다는 것까지는 확인한 참이었다.

하지만 그 수준은 그리 높지 못했다.

한국과 비교하는 건 실례가 될 지경이었다.

경제력도 차이가 어마어마하겠지만, 의료 쪽은 더더욱 심해서 그랬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봉사하러 가는 병원이 제일 나을 수도 있어요. 사실 한국 사람이 하는 병원이다 보니 한국에 이런저런 의견 묻기도 좋고요. 위치가 좀 울란바토르에서 떨어져 있기는 한데…….”

해서 수혁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달했다.

수혁 입장에서야 조심스러운 의견 전달이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 않겠나.

아까 환자는 의식을 잃은 게 아니라 그저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었다.

수혁이 이거 진단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저 일반인들 사이에서 그런 게 아니라 무려 태화 의료원의 기라성 같은 의사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이 바로 수혁이었다.

“그럼 거기로 가겠습니다.”

“아니, 일정이.”

“괜찮아요. 저희 엄마도 같이 일하러 오신 건데…… 며칠은 백업 가능하실 거예요.”

“그럼…… 알겠습니다. 부탁드려 볼게요. 저희 팀 숫자만 적지 않아서…… 아마 차량이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뭘요.”

수혁이 손사래를 치는 사이, 비행기가 칭기즈칸 국제공항으로 내려앉았다.

전 세계에서 랜딩 제일 잘하는 파일럿들이 죄 한국에 있다더니 과언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부드럽기 그지없는 착륙이었다.

동시에 모두의 눈에 공항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야가 탁 트여서는 아니었다.

“와……. 저게 공항이구나.”

“아, 네. 몽골 국제공항은…… 거의 버스 터미널만 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혁의 말에 옆에 있던 환자가 옆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사업차 왔다더니 한두 번 온 게 아닌 모양이었다.

“칭기즈칸이 보면 울화통이 터지겠네.”

“내륙 국가의 설움이죠. 게다가 위로는 러시아, 아래로는 중국이 있어서…… 정치, 군사, 외교적인 압박도 심하고요.”

“아 그렇구나. 음.”

“사실 인구도 적어서…… 내수 시장도 작습니다. 참 다녀 보면 다녀 볼수록 열악해요.”

자세히 들어 보니 대한민국의 무려 7배가 넘는 면적을 자랑하는 땅덩이에 고작 300만 조금 넘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쯤 되면 내수 시장이 작은 수준이 아니라 어떤 사업도 내수만 바라보고 해서는 돈을 벌기 어렵다는 얘기가 되었다.

“저는 여기서 광물 수입하는 일을 하는데…… 그게 여기 먹여 살리는 산업입니다.”

“그렇구나. 음. 아, 저희 먼저 내리는 거 같네요. 자, 여기 휠체어로 오세요.”

“이것 참 실례가 많습니다.”

“아뇨.”

실례랄 것이 없는 일이었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치고 비행기에서 일찍 내리는 걸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아니, 비단 한국 사람만의 얘기도 아니었다.

일등석 승객이 제일 먼저 타고, 제일 먼저 내리는 건 만국 공통된 일이었다.

[좋군요.]

‘사람 아픈데 자꾸 좋다고 하지 마.’

[미소나 지우고 말하세요.]

‘웃는 거 티 났어?’

[제가 안 지웠으면 여기 오는 내내 웃고만 있었을걸요.]

‘그래, 나도 주의할게.’

하여간 둘은 먼저 내린 것으로도 모자라, 환자가 있다는 이유로 공항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짐도 먼저 받아 챙길 수 있었다.

사실 몽골도 다른 개발 도상국과 마찬가지로 친절한 행정 서비스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태화가 나선 일 아닌가.

몽골은 국토 면적 대비 인구 밀도가 너무 적은 탓에 통신이 굉장히 중요한 곳인데, 태화 모바일이 이쪽에서 아주 강세였다.

게다가 봉사차 나와 있는 백강혁도 몽골 정부와 아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썰이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수혁은 휠체어를 밀면서 단 한 번의 지체함 없이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와.”

“초원이죠? 울란바토르 말고는 계속 이렇다고 보시면 됩니다. 근데…… 숨은 안 차세요?”

“응? 아뇨. 아닌가? 약간 힘든가?”

“여기가 고원 지대입니다. 해발 천 미터 정도 돼요. 내륙인데다가 고원 지대라 날씨가 추운 편이에요.”

“아, 그래서 여름인데 긴 팔 준비하라고 했구나. 확실히…… 밖인데도 시원하네.”

밖에는 직원이 말해 준 대로 차량이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바로 타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나머지 일행은 기다리는 게 좋을 거 같았으니까.

“아.”

“진짜 왔네.”

“하아.”

나머지도 비행기에서 빠져나오는 게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공항에서 입국 심사하는 건 재깍재깍 처리를 해 준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금세 밖으로 나왔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러한 특혜를 받을 때 당연히 태화를 떠올릴 터였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도 그렇지 않았나.

하지만 이현종, 신현태, 김승규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백강혁…… 여기선 또 뭔 짓을 했길래.”

“어어, 이름 함부로 말하지 마요, 형. 뒤지고 싶어요?”

“그래, 조용히 하는 게 좋아. 괜히 그러다…….”

“일단 내기의 ‘ㄴ’자도 꺼내지 마요. 그러기 전에는 그래도 버틸 만했었어.”

“버틸 만해? 하루에 우리가 몇 명을 봤는데.”

“아무튼, 아휴. 시발.”

심지어 김승규는 욕까지 했다.

저 얼굴에 욕이라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뭔 일 났을 줄 알고 두리번거렸다.

드르륵.

그렇게 다들 모이고 나자, 공항 앞에 붙박이장처럼 서 있던 버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차에서 내렸다.

딱 봐도 보통 체격이 아니었다.

기럭지도 그렇고, 어깨도 그렇고.

거의 모델 같은 느낌?

‘와……. 잘생겼다.’

[와……. 저 사람한테 들어가 보고 싶다.]

‘야, 갑자기 배신이냐?’

[아니, 진짜 잘생겼네요.]

얼굴은 몸매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다.

하얀 백발이었는데, 워낙 얼굴이 뺀뺀하다 보니 늙어 보인다기보다는 스타일리시해 보였다.

외국 영화에 나오는 잘생긴 신사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야.”

그 신사가 입을 열었다.

이현종, 신현태, 김승규가 있는 쪽을 향해서였는데 처음엔 그 누구도 그들을 향한 말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원장, 전직 원장에 김승규는 김승규이지 않나.

얼굴만 봐도 나이 차이가 20년은 더 아래로 보이는데 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니들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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