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39화 (639/1,303)

639화 백강혁 (2)

둘의 묘한 의심은 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이어졌다.

한번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고 나니까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그랬다.

‘그러고 보니…… 진단 속도가 기이할 정도로 빠르다고 했지. 몇몇 검사는 생략하기도 한다고 하고. 그 말은…….’

우선 강혁은 앞자리에 앉은 채 연신 수혁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과 동류라면, 더없이 좋겠단 생각이 주를 이루었다.

강혁은 어느 순간 연구자로서의 길에서 내려와 임상 의사로서의 길만 걷고 있지 않나.

중간중간 미군 병원이라든지 하는 큰 병원에서 일했던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본질은 현장에 있었다.

사명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남았다.

‘내가 대학에 남았으면 세상이 어찌 되었을까.’

물론 밖을 떠돌아다니면서 살려 온 생명이 적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강혁은 그저 의술로만 사람을 살린 게 아니라 지역을 변화시켜 왔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다른 길을 택했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생각은 간혹 들었는데, 마침 수혁은 그 안에 있었다.

[근데 저 사람이 의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벌써 거의 40년 전 아닙니까? 그때 인공지능이 있었을까요?]

‘음…….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럼 대체 뭐야, 아까 그건.’

[태화 전자가 개발에 착수한 것도 20년 전이에요. 말이 안 됩니다. 그냥 우연이라고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래도…….’

[알아는 보죠. 실력이 과하게 뛰어나다면, 그리고 추론 과정에서 생략이 섞여 있다면 가능성은 있다는 얘기입니다.]

‘좋아.’

다만 수혁의 고민은 조금 더 멋이 없었다.

애초에 강혁과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의사가 된 건 아니어서 그랬다.

그래도 처음 마음먹었던 의사, 그러니까 돈만 잘 버는 의사보다는 지금 꾸는 꿈이 훨씬 낫긴 하지만.

그럼에도 수혁은 세속적인 사람이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세태와 야합한 인간이란 얘기였다.

“와……. 교주님, 밖에 좀 보십쇼. 초원입니다.”

그때 안대훈이 말을 걸어왔다.

하여간 심각할 때 분위기 풀어 주는 건 이놈이 최고였다.

일단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너 머리에 자국 남았는데, 아까 잠을 어떻게 잔 거냐?”

“아……. 교주님 덕에 자리가 넓어져서요. 그냥 누웠는데……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좋네. 초원……. 엄청 넓구나, 진짜.”

거기에 더해 몽골 초원의 풍광은 과연 압도적이었다.

푸르른 초장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중간중간 작은 호수들도 보였는데, 물이 정말 맑아 보였다.

정말이지 개발이라고는 거의 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저긴가 본데요?”

원래 같으면 수혁에게 이현종도 신현태도 저 멀리 쭈그려 앉아 있던 조태진도 우르르 다가와 말을 걸어 댔을 터였다.

아니, 김승규도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꽤 친근하게 대해 주는 사람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그저 안대훈만 조잘거리고 있었다.

다들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 울란바토르 벗어나기 전에 있구나.”

생각보다 병원은 가까웠다.

중간에 보였던 초원 지대는 울란바토르 외곽에 위치한 것들이었고, 결국, 병원은 수도 내에 있었기에 그랬다.

어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초원에도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 수가 말도 안 되게 적지 않겠는가.

애초에 울란바토르가 인구가 150만인데 두 번째로 큰 도시 인구가 10만가량밖에 안 되는 곳이 바로 이곳 몽골이었다.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서 큰일을 도모하려면 결국, 수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 차례로 내립시다. 기기는 먼저 와서 다 설치했으니까, 각자 자기 짐만 들고 내리면 돼요.”

버스가 병원 주차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강혁이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잘생겼는데 백발이라서인가 정말 만화 속에서 뛰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설레하는 것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무리는 아니었다.

이성애자인 동성이 보기에도 멋졌으니까.

뭔가 그림이 된다고 해야 할까?

꼭 유명한 배우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무성인 바루다가 보기에도 매력적인 모양이었다.

[저기 보다가 창에 비친 수혁을 보니까 오징어가 한 마리 보이는군요.]

‘이 새끼가.’

[부정하십니까?]

‘아니.’

[역시 수혁은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사람이군요.]

‘발전의 근거가 되지. 근데 되게 슬프다.’

수혁은 그런 바루다의 반응에 잔뜩 상처를 입고는 버스에서 내렸다.

뒤를 돌아보면 분명 초원이 보이는데, 병원 앞은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흙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기후가 건조해서 그래. 눈에 들어가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주의하라고.”

그걸 보면서 멍하니 있으려니 어느 틈엔가 강혁이 다가와 눈을 가려 주었다.

실제로 이런 모래 알갱이가 잘못 눈에 들어가면 각막에 손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그러한 사실은 굳이 안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익히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지금 강혁이 보이는 모습은 좀 유난스러웠다.

태화 사람들이 보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강혁을 잘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랬다.

“아니, 숨겨 둔 아들이야? 뭘 그렇게까지 해?”

안에서 진짜로 귀밑머리까지 새하얀, 염색이 아니라 진짜 백발 할아버지가 나오면서 역정을 냈다.

여든은 족히 넘어 보였다.

“아들은 무슨. 딸이나 잘 챙겨요.”

“와, 사람 섭섭하게…….”

말투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기껏해야 40대?

하긴 강혁이라는 사람도 이렇게 보면 머리 하얀 30대 또는 40대로만 보이지 않은가.

이제 곧 70이라는데, 말도 안 되게 젊어 보였다.

여기서 몰래 줄기세포라도 배양하고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아까 환자나 데리고 들어가지.”

“아, 네네.”

말도 안 되는 의심을 키워 나가고 있을 때쯤, 강혁이 수혁은 잊고 있던 환자를 상기시켰다.

수혁도 곧 정신을 차리고 환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은 바깥 모습도 꽤 인상적이었지만, 안쪽이 더 휘황했다.

몽골이 아니라 그냥 서울 어딘가에 있는 병원 같은 모습이었다.

“좋지? 요새 몽골 정치인들이 왜 한국에 안 들어가겠어. 다 여기서 치료받아.”

“아…….”

“태화 이름 달고 있으니까, 너무 후달려 하지는 말고. 아무튼, CT를 찍어 볼까.”

“네. 크기가 작아야 할 텐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하지만 안진 세기가 너무 강해요. 아까 보니까 머리를 흔들지 않고도…… 그냥 귀만 눌러도 안진이 바로 튀더라고요.”

“그래서 수술 준비도 해 놓으라고 지시해 놨어. 어때? 하게 되면 들어와서 볼래?”

외림프 누공에 대한 수술이라.

이비인후과 의사에게라면 꽤 특별한 수술일 터였다.

아주 드문 질환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수술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흔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내과적으로 무언가 깨달을 만한 것이 있을까?

[이쪽 해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는 않을 겁니다. 어차피 오늘 일정은…… 짐 풀고 이곳 소개받는 게 다 아닙니까?]

‘나 좀 힘들어.’

[일등석 타고 온 주제에 뭐가 힘듭니까.]

‘사실은 하나도 안 힘들어. 농땡이 좀 피워 보려고 했지.’

[70 먹은 노인네도 이 시간에 수술을 하네 마네 하는 와중에 농땡이요? 역시 저 인간한테 들어갔어야…….]

‘어딜 봐서 70으로 보이냐. 염색 안 했으면 형이라고 해도 될 거 같은데. 도대체 우리 교수님들은 왜 이렇게 삭았어.’

[하여간 고고.]

‘오케이.’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도움이 아예 안 될 거 같진 않았다.

사실 모든 일에 배울만한 점이 있지 않겠나.

게다가 바루다 말대로 오늘은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농땡이라고 해 봐야 안대훈 아니면 이현종 패거리랑 노는 게 다일 텐데, 안대훈은 좀 이상하게 놀 게 뻔했고 이현종의 상태를 보면 도저히 놀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오죽하면 긴장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인데놀까지 챙겨 왔겠나.

“좋죠.”

“좋아.”

아주 순수한 배움의 의지 표명은 아니었지만, 강혁은 그런 데로 수혁이 마음에 들었다.

내과인데 외과 수술을 참관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어서 그랬다.

‘이현종이 만약 이랬으면 내가 좀 봐줬지.’

아버지라고 하는, 솔직히 말해 생물학적으로는 닮은 구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현종도 그러진 않았다.

“아…….”

“발살바로 이렇게까지 깨지는 경우는 드문데. 환자가 비염이 아주 심한가?”

“네. 그 상태에서 억지로 압력을 불어 넣은 모양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되다니. 운이 없네.”

“네. 수술…… 해야겠죠?”

“응, 빨리 하는 게 좋아. 기다려 봐야 별 의미가 없어.”

수혁이 보기에도 그랬다.

[판단이 빠르고 정확하네요.]

바루다가 보기에도 그랬고.

문제는 수술을 누가 하느냐였다.

백강혁은 외과 의사지 않나.

그중에서도 외상외과.

“여기 이비인후과도 있나요?”

“아니, 없어.”

“네? 그럼…… 애초에 환자를…….”

그런데도 천연덕스럽게 데리고 오길래 당연히 이비인후과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고?

이 사람이 미쳤나 싶었다.

“내가 할 거야.”

“네?”

“내가 한다고.”

이제는 진짜 미쳤구나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가 그래도 태화 자본으로 굴러가는 병원이라는 점이었다.

그 말은 곧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 거란 말이 되었다.

이 미친 짓을 수혁이 아니더라도 말릴 사람이 아마 많을 터였다.

“외림프 누공…… 수술할 거야.”

“네, 준비됐습니다.”

“마취는?”

“벌써 들어와 있습니다.”

“좋아.”

하지만 그 누구도 말릴 생각은커녕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만 할 뿐이었다.

누굴 만나도 굽신거리기만 했다.

심지어 마취과도 그랬다.

‘보통 마취과랑 외과랑 사이가 이런가?’

[김승규는 이렇죠.]

‘아.’

처음 보는 일이 아니긴 했다.

확실히 태화에서도 김승규가 뜨면 다들 말을 들었으니까.

“마취됐습니다.”

“좋아. 칼.”

어어 하는 사이에 수술이 시작됐다.

강혁은 뒤에 서 있는 수혁을 힐끔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보조는 해 본 적 있나? 다리가 불편해서 안 되나?”

“아……. 네. 제가 지팡이 없이 서 있을 수 있는 건 30분이 고작이라서요.”

“30분…… 짧네.”

“네. 죄송합니다.”

감사한 제안이었다.

사실 귀 수술에서 보조가 할 일은 그리 많지는 않았던가.

오라고 하는 건 기왕 들어온 김에 더 가까이에서 보라는 배려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혁은 거절해야만 했다.

암만 수술을 받은 몸이라 해도 오래 서 있는 건 무리였으니까.

그렇다고 수술 보조에 들어간 마당에 지팡이를 짚는 것도 안 될 일이었다.

“근데 내 수술은 더 짧아.”

“네?”

“들어와. 뭘 볼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고.”

하지만 들려오는 답은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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