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화 게르에서 (2)
수혁은 남몰래 지었던 미소를 얼른 지우고, 차에서 내린 장비 중 마스크와 고글을 착용했다.
무려 장갑에 덧가운까지도 착용해야만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니까. 여기…… 기껏해야 지역 획득성 폐렴일 거 같은데.’
보통 이렇게까지 보호 장구를 쓰는 건 지독한 원내감염이거나 슈퍼박테리아 또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되었을 때뿐이었다.
동네 병원을 생각해 보면 간단했다.
거기 의사들이 맨날 열나고 기침하는 환자 보지만 마스크만 끼지 않던가.
대개의 경우 그저 지역 획득성 폐렴이나 바이러스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다.
‘그래도 뭐……. 로마에 오면 로마 법을 따라야지.’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수혁은 유별나게 구는 대신 일단 하라는 대로 했다.
가뜩이나 다들 성질 더럽다는데 여기서 괜히 시비 걸어서 좋을 게 없을 거 같아서였다.
게다가 뒤를 돌아보니 여기 사람들도 마스크에 가운까지는 착용하고 있었다.
“오버하는 거 같지?”
“네? 아, 네. 좀.”
하라는 대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수혁은 원래 좀 담백한 사람 아닌가.
바루다의 도움이 없었다면 벌써 여러 사람 앞에서 본심을 들켜 곤욕 좀 치렀을 터였다.
그러나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강혁을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혁은 즉시 수혁의 얼굴을 읽어 내고는 물었다.
수혁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까 별놈의 감염병을 다 겪어서 말이지. 에볼라에 탄저병에.”
“네? 탄저요? 그건…….”
“보통 테러로 일어나지. 근데 자연 발생하기도 하더라. 지금까지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아…….”
에볼라와 탄저를 겪었다라.
그럼 이건 오버가 아니었다.
두 질환 모두 치사율이 어마무시하지 않나.
특히 에볼라는 치사율이 너무 높아서 오히려 전 세계적인 유행을 일으키지 못했단 평을 받고 있는 바이러스였다.
눈앞에서 그런 환자를 봤다면, 뭐라도 하기는 해야 할 터였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익숙해 보일지 몰라도 왕진까지 다니게 된 건 얼마 안 됐어. 몽골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일한 건 3개월?”
“아…….”
“여기 풍토병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다는 얘기야. 문제는 이쪽 의사들도 완전히 파악을 하진 못했다는 거지. 그래서 정보가 좀 부족해.”
“의학에서 과한 건 문제가 안 되죠.”
“그래, 바로 그거야.”
과한 건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단 말은 많이 들어 봤을 터였다.
실제로 여러 분야에서 그렇지 않던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하고.
하지만 의료에서는 차라리 과한 것이 나았다.
실패했을 때 두 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 있어서였다.
게다가 의료가 대상으로 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이었다.
의료계가 지극히 보수적이면서 경직된 상하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 안에 있나?”
“네.”
강혁은 모든 인원이 장비를 착용하길 기다렸다가 게르 안으로 들어섰다.
안내를 받으면서였는데, 안에 딱 들어가자마자 신음이 들려왔다.
요상한 냄새도 났다.
게르 자체의 냄새도 있는 데다가, 주변에 동물들까지 있고 또 낯선 음식으로 인한 냄새도 있어 순간적으로는 무슨 냄새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수혁도 마찬가지였으나, 수혁에게는 바루다가 있었다.
[변 냄새가 섰여 있습니다.]
‘설사병인가?’
[그럴 수 있겠습니다.]
‘하여간 전염병이겠네.’
대강 봐도 누워 있는 애들 수가 적지 않았다.
모두 8명.
다들 젖은 천을 머리에 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열도 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긴장 좀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상태가 급변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가져온 물자는 기껏해야 일반적인 왕진에 필요한 수준일 뿐이었다.
“칼로 쨀 만한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그사이 강혁은 아이 중 하나의 진찰을 마쳐 가고 있었다.
청진도 하고 배도 꾹꾹 눌러 보고 난 후였는데, 옆에서 보기에도 소위 말하는 외과적 절제가 필요한 배로 보이진 않았다.
이건 철저히 내과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한 상황이었다.
“제가 좀 볼까요?”
“그게 좋겠는데. 뭐 나도 볼 거고. 거기 대…… 아니, 이름이 뭐지?”
수혁이 대신 나서는 사이, 강혁은 엄청난 실례를 저지르려다 말고 이름을 물었다.
아무리 성질이 더러운 인간이라도, 인간은 인간이지 않은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게 있었다.
초면에 대머리라니.
칼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안대훈입니다. 이수혁 교수님의 제자입니다.”
“아, 제자. 그래, 기대하지.”
하여간 그렇게 수혁과 대훈은 페어를 이루어 환자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처음엔 자신만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염 질환을 놓친 적은 없었으니까.
아니, 만 하루를 넘긴 적도 잘 없었다.
하지만 막상 환자를 마주하자 조금 아득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 뭐가 없군요?]
‘어, 병원이 아니니까.’
일단 검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전도 정도는 가능했지만, 설사와 발열이 주된 증상인 상황에서는 그저 보조적인 역할만 할 수 있을 뿐, 결정적인 도움을 두진 못할 터였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문진뿐.
문제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안 되냐? 영 안 되겠어?’
[저 몽골어 오늘 처음 들었는데요.]
‘뭔 인공지능이 이래. 몽골 온다고 들었으면 미리 공부를 하든가.’
[멀뚱히 있다가 온 건 수혁이지 않나요?]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지만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바루다는 이런 식의 난타전에 능숙한 녀석이었으니.
하여간 수혁은 바루다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이의 안색을 살피는 건 허투루 하지 않았다.
‘입술이 말랐어. 옆에서 계속 목을 축이게끔 하고 있는데…… 그래도 소용이 없어. 그 말은 탈수 증상을 일으킬 만한 요인이 굉장히 강하단 건데…….’
[발열과 설사. 그중에서 설사가 일정 수준 이상이라면 단지 목을 축이는 정도로는 부족할 겁니다.]
‘그 말은 꽤 심한 종류의 설사라는 건데…….’
[그런데 수혁.]
‘응?’
발열과 설사 외에도 다른 증상은 있어 보였다.
피로감이나 근육 동통 등과 같은 증상들.
하지만 우선은 발열과 설사에 집중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일단 이 안에 누운 아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증상이어서 그랬다.
해서 이 두 가지 문제 목록을 놓고 고민 중이던 수혁에게 바루다가 입을 열었다.
[아이들별로 증상 수준이 다릅니다.]
‘그럴 수 있잖아?’
[너무 달라요.]
‘으음……. 너무 다르다라…….’
[그리고 어른들 중에도 증상이 있는 사람이 하나 있어 보입니다.]
‘누구?’
[분석 결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윽, 이게 뭐야.’
바루다가 눈앞에 펼쳐 놓은 것은 어떤 가루들이었다.
눈에 잘 띄게 분홍빛으로 칠해 두었는데, 바람에 따라 그리고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따라 이리저리 휘날렸다.
이런 게 눈에 보일 리는 만무하니 그저 바루다가 어떤 데이터를 토대로 기류의 흐름을 시각화한 것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게르 안의 분변 지도입니다.]
‘시발.’
그래서 물었더니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흘러나왔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이 게르는 거대한 화장실이나 다름없지 않나.
“으, 으으으으.”
“도저히 못 참겠어? 그럼 바지 내려!”
“여, 여기!”
“어쩔 수가 없어!”
“으아아.”
“그래, 싸! 싸면 나아져!”
지금도 밖으로 나가려던 아이 하나가 바닥에 싸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수혁이 지금 서 있는 주변에도 이리저리 닦아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미처 다 지워 내지 못한 흔적들이 보였다.
하긴 성인도 급성 설사는 참아 내기가 힘들 텐데 아이들은 어떻겠나.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분변이 날아다니는 걸 눈으로 보고 있으려니 참 기분이 묘했다.
“우웁.”
[갑자기 그러면 실례죠. 저 친구가 싸고 싶어 쌉니까.]
‘아니, 미친놈아. 이거…… 이거 왜 띄웠어.’
묘하다기보다는 참으로 괴로웠다.
방금도 분변의 일부가 마스크 쪽으로 들어오려다 흐트러져 사라지는 걸 본 참이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아니면 원효대사의 해골물이라든가.
하여간 옛 선인들의 말씀 중에 참으로 버릴 것이 없었다.
[잘 보세요.]
‘보기 싫어서 계속 하는 말이거든?’
[아니, 잘 보라고.]
‘그냥 말로 해.’
[원래 성인의 항문에도 분변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 성인이라도 해도 변 닦는 걸 체계적으로 배우진 않으니까요.]
‘고만할래? 진짜 욕지기 나와.’
[말로 하라더니 이제는 그만하라고 하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바루다가 신이 나서 더더욱 실감나게 떠들어 대고 있어서 짜증이 나긴 했지만.
맞는 말이긴 했다.
항문의 구조 때문이었다.
울퉁불퉁하기에 그냥 문질러 닦아서는 분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꼬집듯이 닦아 줘야만 했다.
‘근데 그 정도로는 냄새가 날 정도로 분변이 많이 남지는 못합니다. 물론 제대로 못 닦는 지역이면 뭐 또 모르겠지만.’
[본론만 얘기해 주면 너무 좋겠다…….]
‘지금 여기 유독 심한 사람이 둘 있어요.’
[응? 아, 시발 자꾸 추적하지 말라고…….]
바루다는 수혁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분변을 분홍빛 가루로 묘사해 근원지를 찾아 주었다.
두 명의 성인이었다.
하나는 젊은 여자, 다른 하나는 나이가 꽤 있는 남자.
유독 변을 못 닦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쏟아져 나오는 분변의 양을 보니 딱히 그렇지는 않은 듯했다.
저건 방금 거사를 치르곤 난 후라야 가능한 양이었다.
‘내가 왜 이런 걸 이렇게까지 심도 있게…….’
[진단에 도움이 되니까요.]
‘뭔 도움이 돼.’
[저 두 사람은 발열이 없습니다.]
‘아.’
같은 병원체에서 증상이 다를 수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간에게 익숙한 병원체일수록 증상은 비교적 균일하게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아예 무증상으로 지나가든지, 증상이 나타나면 균일하게 나타나든지.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병원체가 지속적으로 감염을 일으키고 있어서 모두 다른 질병 경과를 밟고 있다는 것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게 익숙지 않은 병원체에 의한 감염일 거라는 것 하나.
‘좋아. 그럼 문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통역을 써야겠죠. 백 교수를 부릅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수혁은 마침내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경건한 태도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안대훈이었다.
“뭐야.”
“오셨죠?”
“뭔…… 아.”
이제 수혁도 바루다가 익숙해지다 못해 한 몸으로 여겨진 지 오래 아닌가.
어지간해서는 이상한 행위를 안 한단 뜻이었다.
하지만 분홍빛 분변 가루 시각화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때문에 실로 오랜만에 수혁은 마치 접신한 듯한 모습을 보여 주고야 말았다.
“일단 백 교수님.”
“어, 어. 왜, 왜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좀 무서울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