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43화 (643/1,303)

643화 게르에서 (3)

‘나랑 비슷한 줄 알았더니…….’

제아무리 강혁이라고 해도 분변 가루까지 보이는 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의사가 되기는커녕 벌써 미쳐 버리지 않았겠나.

세상은 대충 가려 두는 편이 더 아름다울 때가 훨씬 더 많았다.

‘대화를 하는 거 같던데…….’

혹시 대머리 아니, 안대훈이라고 하던 친구랑 대화하나 싶었다.

세상엔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고, 강혁은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런 인간들을 적잖이 겪어 온 덕에 생긴 유연한 사고 덕이었다.

게다가 안대훈은 딱 수혁이 좀 이상하다 싶어진 순간부터 그에게 딱 붙어서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지만 안대훈은 그저 그러고만 있을 뿐이었다.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교감 자체가 없었다.

‘조태진이라는 놈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하던데.’

비행기 내에도 강혁의 프락치는 있었다.

일단 기장과 승무원들부터가 그랬다.

대부분 수혁이 얼마나 똑똑했는지에 관해서만 얘기를 했더랬다.

사실 그건 강혁이 듣기에도 퍽 놀라운 일이었다.

눈 없이 그걸 해냈다니.

말이 되나?

그러고 있으려니 누군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했다.

조태진이란 의사가 수혁이는 가끔 신들릴 때가 있다고 했다는 말이었다.

그냥 개소리라고 치부하고 있었는데 지금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잠깐 이리로 와 보실래요?”

“어, 그럴까요?”

그런 인간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멀쩡한 얼굴이 되어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고 손짓까지 해 가면서였다.

남들 앞에서는 심령 현상 따위는 없다고 떠들던 것이 강혁이었지만, 내심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여기고 있었더랬다.

당장 자신의 능력만 해도 불가사의에 속하는 것이기에 그랬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이상한 일 하나둘쯤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겠나.

[갑자기 존대를 하네?]

‘왜 그러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보죠.]

‘좋아.’

오해로 인해 얌전해진 강혁에게 수혁은 문진을 요청했다.

“아, 어렵지 않은 일이죠. 이리로 와 보래.”

일단 분홍빛 가루를 지금도 휘날리고 있는 둘을 불렀다.

그리곤 언제부터 설사를 했는지 묻도록 시켰다.

강혁도 이 둘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수혁과의 동질감을 느끼진 않았다.

‘누가 말해 줬나?’

그저 아까 수혁이 분홍빛 가루를 쫓느라 그랬던 것처럼 허공을 둘러보았을 따름이었다.

따라다니는 귀신이 있다면 눈이 없어도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당연히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 며칠 됐어요. 설사까지는 아니고, 좀 자주 가는데.”

“그게 언제냐고.”

“음……. 저번 정착지 떠나면서였으니까…… 3일?”

“저도요.”

문진 결과 둘 다 증상이 나타난 시점은 같았다.

수혁은 이 점을 문제 목록에 끼워넣으면서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는 아이들을 향해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어른을 향해서였다.

“얘들은 언제부터 이랬어요?”

“얘들도…… 3일 정도 됐어요. 그나마 처음엔…… 말도 타고 했는데, 어제부터는 완전히 뻗었어요. 그래서 좀 일찍 게르를 편 겁니다.”

“아하.”

증상의 시작 시점은 같았다.

그 말은 곧 이 병원체에 다 같이 노출이 되었을 거란 얘기가 되었다.

한데 증상의 정도나 종류는 어른과 아이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면역력의 차이가 둘 사이의 차이를 갈랐을 것이 분명했다.

‘근데 원래 아이들하고 성인하고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

[네,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냐, 이거지?’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설사는 기침 다음으로 강력한 감염 매개체였다.

아니, 어떻게 보면 가장 강력한 감염 매개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일단 기침할 때 튀는 분말에 섞여 있는 병원체보다 설사에 섞여 있는 병원체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게다가 설사는 물 성분이 있어 손에 잘 튀지 않나.

처리하고 손을 제대로 안 닦은 경우, 빠르게 주변으로 번져 나갈 수 있었다.

“혹시 계속 아이들 간호하셨나요?”

“네? 아, 네.”

“속은 괜찮으세요?”

“네? 음……. 네. 저는 괜찮아요.”

“혼자서 보신 건 아니죠?”

“아, 네. 아닙니다.”

“다른 분 있으면 좀 불러 주실 수 있나요?”

“네, 그럴게요.”

게다가 여기 있는 아이들은 어린애들이었다.

분명 아까 바루다가 선보였던 분홍빛 가루 쇼에서 손에서 휘날리는 양도 적지 않았다.

아이들을 돌보았던 사람들이라면 일찌감치 감염이 되었을 터였다.

“음.”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도요.”

하지만 불러 모은 이 중 증상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는 좀 불편합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그룹에서 증상이 있다는 사람이 나왔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3일?”

시점은 지금 누워 있는 아이들과 같았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염성이 없나?’

[그렇다면…….]

경험이 적은 사람이라면 여기서 바로 인수 공통 감염병, 즉 zoonosis만 떠올릴 터였다.

하지만 설사에서는 다른 주요 원인들도 있었다.

반드시 감별이 필요했다.

‘인수 공통 감염이나 독소를 의심해야 겠는데.’

독소 같은 경우에도 전염성은 보이지 않았다.

독소에 노출이 된 사람들만 문제를 보이게 될 뿐이었다.

게다가 어른과 아이의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어른과 아이의 용척차 때문에 농도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려면 이들이 전부 같은 양의 독소에 노출되었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그것도 이상하긴 하지.’

만약 물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어른이 그 물을 많이 마시게 될까, 아니면 아이들이 많이 마시게 될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자가 확률이 훨씬 높을 터였다.

용적은 그리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무시하면 안 돼.’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 독소가 계속 그 자리에 있다면 같은 양상의 환자를 양산할 수 있었다.

반드시 찾아내서 제거해야만 했다.

해서 수혁은 질문은 조금씩 더 구체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자, 그럼 증상이 있으신 분들……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3일 전. 그러니까…… 전에 정착지에 계실 때 이렇게 다 같이 움직였던 적이 있나요?”

“음…….”

“그렇죠, 아무래도. 동물들 밥도 줘야 하고. 물도 줘야 하니…… 애들이 우리 일을 돕습니다. 딱 우리만 돕는 건 아니긴 한데…… 이 녀석들 지들끼리 워낙 뭉쳐 다니니, 한 번쯤 우리랑도 같이 했을 거예요. 우리 셋은 같이 일하니까.”

한 번은 같이 있었을 거란 얘기가 되었다.

단서가 조금씩 잡혀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럼 아이들하고 있을 때 식사를 같이한 적이 있나요? 과일을 따 먹었다거나.”

“아뇨, 그런 일은…… 없습니다. 식사는 어지간하면 정착지에서 다 같이 해결해요.”

“음……. 그렇군요. 단 한 번도 없었나요?”

“네.”

식사는 정착지에서 한다라.

뭔가 수혁이 상상했던 유목민하고는 좀 달랐다.

내키는 대로 말 타고 달리다가 배고프면 육포 먹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칭기즈칸 시절에나 있던 일인 모양이었다.

하긴 밖에 동물이 정말 많던데, 그렇게 많은 동물을 돌보면서 멋대로 행동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일 터였다.

“물은요?”

“물……?”

“네.”

“물은 가지고 다니면서 마십니다. 호수에서 먹는 건 좀 위험해서요.”

“아하. 아.”

물은 마실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상상 속 유목민은 말 타고 지나다 호수가 보이면 바로 마실 거 같았으니.

하지만 상대는 품 안에 들고 있던 물통을 보여 주었다.

뭔가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게 물도 아닌 듯했다.

하여간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온 지혜가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풍습은 일상에서 발생 가능한 독소 노출 확률을 극도로 낮추고 있었다.

‘그럼 뭐지?’

[인수 공통 감염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아, 그렇지. 하긴.’

지금도 집중하면 짐승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수백 마리가 넘는 양이 밖을 나다니고 있었다.

녀석들 모두 감염원이 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들이 이끌고 다니는 애들은 더더욱 그럴 터였다.

“그럼…… 혹시 세 분이 주로 치는 동물이 나뉘어져 있나요?”

“아, 그렇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다 같이 치지만 우선적으로 책임지는 부분이 있죠.”

“지금 어디 있습니까?”

“밖에…….”

“한번 봐도 될까요?”

“네.”

수혁은 일단 애들을 두고 밖으로 향했다.

처치는 알아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설사라는 게 딱히 진단명을 알아야만 대응이 가능한 건 아니어서 그랬다.

강혁을 비롯한 의료진들이 벌써 수액을 놓은 덕에 탈수 증상에 대해서는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당장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상황은 피할 수 있을 터였다.

“교주님.”

“응?”

“저기.”

그렇게 뒤를 맡기고 나와 부족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동물 있는 곳으로 오니, 바로 안대훈이 말을 걸어왔다.

솔직히 조금이나마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놈은 영 엉뚱할 때 딱 도움이 되었으니까.

“저기 뭐.”

“양 똥이 원래 저렇게 무르지 않거든요.”

“응……?”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 엉뚱한 감이 있었다.

대체 수의사도 아니고, 그냥 의사가 어떻게 양 똥을 안단 말인가.

해서 물끄러미 안대훈을 돌아보고 있으려니 대훈이 껄껄 웃었다.

“저희 아버지가 여기저기 떠돌면서 일을 하셨거든요. 그러다 한번 양떼 목장에 계셨던 적이 있어요. 확실히 기억합니다.”

“아하.”

고아는 아니지만, 불우했던 대훈이지 않나.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농장까지 갔었구나.

수혁은 역시 잘해 주긴 해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물었다.

“저기, 저 똥 싼 놈은 어딨어요?”

“아……. 그 녀석 자꾸 설사를 해서 저희가 잘 보살피고 있습니다.”

“그놈이 설사한 건 얼마나 됐는데요?”

“한 일주일?”

“제가 볼 수 있을까요?”

“어……. 네.”

양 치는 사람들은 양이 다 구분이 가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수혁과 대훈 그리고 통역을 위해 따라온 강혁은 거의 동시에 문제의 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설사를 하루 이틀 한 게 아닌지 꽤 말라 있었다.

다른 녀석들에게 옮길까 봐 걱정이 되어서인지 혼자 묶여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더 아파 보였다.

‘양 보는 건 처음이라 이게 아픈 건지 뭔지 모르겠네.’

[굳이 우리가 아프다는 걸 알아야 할까요? 전문가들이 아프다고 판단했는데.]

‘아, 그렇지. 그럼…….’

[양에서 기원할 수 있는 인수 공통 감염 중 아이들에게 주로 발열과 설사를 일으키고, 인간끼리의 감염은 일으키지 않은 병을 정리하면 됩니다.]

‘그러면 쉽지.’

[그렇네요. 딱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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