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6화 힘을 쓰면 아프다고? (1)
사실 근육을 혹사하게 되면 통증이 뒤따르는 건 필수불가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필연적으로 근육에 젖산이 쌓이게 되지 않나.
심지어 근육이 찢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사람들 중에서는 그 과정을 거쳐야 근육이 성장한다고 하면서 통증을 즐기기도 했다.
‘그런 수준의 통증이 아닌 건가?’
[얼굴만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요? 지금은 통증이 있는 거 같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육을 혹사하면 아프다가, 쉬면 좋아진다라.
이걸 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만 들으면 그냥 장난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혁이나 바루다나 마냥 환자가 꾀병일 거라 생각지 못하는 건 바로 환자의 표정 때문이었다.
“저, 진짜 너무 아픈데…… 이게 정말 병일까요?”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이었다.
도저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거나,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 환자가 이 꾀병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없는 상황이지 않나.
교과서에도 써 있는 사안이었다.
대개의 꾀병은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득과 연결이 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작게는 학교에 가지 않는 것부터 해서 크게는 군대에서 빠지고픈 마음이 투영된다는 얘기였다.
‘이상한데……. 더 문진을 해 봐야겠어.’
[네, 그게 좋겠습니다.]
해서 수혁과 바루다는 일단 환자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는 의견에 동의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들여다볼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는데, 당연히 주된 호소 증상이 중심이 되어야만 했다.
지금은 근육통이었다.
“옆에 온 친구에게 물어볼게요.”
“아, 네.”
다행히 지금은 물어볼 만한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투덕거리고 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꽤 친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부족 사회다 보니 비밀도 별로 없을 텐데, 친한 친구 사이라면 어떨까?
상대가 모르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이 친구가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인가요?”
“네? 아, 아뇨. 그냥…… 평범한데요. 아니지……. 오히려 덜 하는 편이에요.”
“왜요?”
“좀만 뭐 하면 아프다고 해서요.”
“뭐 했다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걸까요?”
수혁도 운동이라고 하면 어지간히 안 하는 편이지 않나.
특히 바디 프로필이니 뭐니 하는 거지 같은 게 유행하면서부터는 사람들의 기준이 올라가서 그런지, 나름 헬스를 해도 운동 하나도 안 한다는 말만 듣고 있었다.
즉 운동량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이기보다 상대적일 수 있단 얘기였다.
‘여기야 뭐…… 뛰려고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도 뛰지.’
[그러니까요. 기준이 우리랑은 아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좀만 뭐 하면 이라고 해 놓고 10km 달리기 이러면 어쩐단 말인가.
해서 수혁은 질문을 구체화해 나갔다.
훈련이 된 사람이라면 바로 따라올 수 있겠지만.
몽골 초원의 소년에게는 좀 어려운 일인 모양이었다.
살짝 시간이 걸렸다.
“우리끼리 놀거나 하는 거요.”
“그러니까 어떻게 노는데요?”
“어른들 하던 거 하고 놀죠.”
의뭉스러운 애라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원래 일상생활을 구체적으로 수치화시킨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학교에서 수학이라도 제대로 배웠다면 일이 빨라지겠지만, 오리엔테이션 시에 들었던 말에 따르면 여전히 유목민의 습성을 따르는 부족들에서 고등 교육까지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했다.
해서 수혁은 좀 더 질문을 아이가 알아듣기 좋도록 성형했다.
“질문을 바꿀게요. 뛴다고 칩시다.”
“네, 많이 뛰어요.”
“얼마나 뛰죠?”
“음…….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를 거리 1이라고 할게요. 그럼 보통 한 번 놀면 얼마나 뛰어요?”
“여기서부터 저기요? 그게 1?”
“네.”
“그럼…… 어유. 수십 배는 뛸 거 같은데.”
“수십 배라.”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수혁이 가정한 거리는 대략 100m였다.
이 거리의 수십 배는 수 km가 될 거란 얘기였다.
이게 좀 뭐 하면이라면, 충분히 근육통이 생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마 수혁이 뛴다면, 다리가 온전하던 시기의 수혁이라고 해도 반도 못 따라가서 쓰러지지 않을까?
“꽤 뛰기는 하는데…… 그럼 다시 친구.”
역시 초원에 사는 아이들의 운동량은 장난이 아니란 생각을 하면서, 수혁은 이제 아프다고 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사이 아이는 좀 민망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다들 뛰는 거리 뛰면서 아프다고 한 셈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같이 놀 때, 처음부터 힘들어요? 못 따라가는 경우가 있어요?”
“처음부터는 아니에요.”
“처음은 아니다라.”
하지만 수혁은 그럴 만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질환들을 하나하나 지워 나갈 작정뿐이었다.
일단 중요한 것은 근위약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의 감별이었다.
‘근육이 약화한 건 아니겠군.’
[딱 봐도 그렇잖아요. 다른 애들처럼 건장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쇠약해 보이진 않아요.]
근위축은 사실 관찰만으로도 어느 정도 감별이 되는 질환이었다.
하지만 간혹 근육의 성질이 변화하거나 근육의 신경 전달 물질이 잘 분비가 되지 않는 등의 문제로 근력이 떨어지는 병도 있었다.
수혁은 환자가 혹시 이 경우는 아닌가 했지만, 꽝인 모양이었다.
만약 위의 경우라면, 환자는 처음부터 힘을 쓰지 못할 터였다.
‘빨리 지친다라…… 이건 좀 애매한데.’
[성격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통증…… 음. 통증이라.’
오래달리기를 생각해 보면 쉬웠다.
딱 봐도 절대 못 뛸 거 같은, 심지어 단거리는 잘 못 뛰는 애가 정작 오래달리기는 제일 잘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일명 악바리라 불리는 애들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는 건 곧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단지 성격의 차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걸리는 지점이 있었다.
[통증은…… 확실히 이상합니다. 이번엔 통증에 집중해 보죠.]
‘좋아.’
바루다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여긴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놀 때 끝까지 따라 놀지 못한다는 뜻인가요?”
“네.”
“아, 엄청 엄살이라니까요?”
“그럼 그렇게 다 따라서 놀지 못한 날에도…… 다음 날 다리가 아파요?”
“네. 엄청 아파요.”
“아픈 거 같긴 했어요. 진짜 손도 못 대게 해요.”
수혁은 환자의 대답과 친구의 추임새 모두를 종합했다.
말하는 투로 미루어 볼 때 친구는 여느 10대 후반 남자아이처럼 짓궂은 면이 있었다.
원래 친하면 친할수록 함부로 대하고 그러지 않던가.
그럼에도 통증만큼은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운동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통증은 심하다라…….’
[병리적인 기전이 개입했을 여지가 있군요.]
어쩌면 근육통이 아닐 수도 있었다.
다리뼈의 구조적인 이상이 있다면, 동일한 운동을 수행하려 해도 훨씬 근육이나 관절에 부담이 갈 수 있었으니까.
이게 무슨 심대한 이상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왜 평발이 군대에 안 갔겠나.
“발 좀 올려 봐요.”
“네?”
“신발 벗고 발 올려요.”
“그건 좀.”
“냄새나도 괜찮으니까…… 와우.”
신발이 통풍이 안 되는 종류의 것이라 그런가, 진짜 생전 처음 맡아 보는 냄새가 풍겨져 왔다.
확실히 이런 발이라면 모르는 사람 얼굴에 들이대는 게 망설여졌겠다 싶을 지경이었다.
[데, 데이터화할까요?]
바루다조차 이렇게 질문을 해 올 지경이었다.
‘아니, 근데…….’
[아치는 정상이네요.]
이렇게까지 심한 냄새를 맡았으면 보람이 있었어야 할 텐데.
아쉽게도 그렇지는 못했다.
발도 그렇고 다리도 그렇고 구조적인 이상은 찾지 못했다.
아마 보통의 의사라면 여기서 짧더라도 좌절감을 느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굳이 바루다가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경험을 쌓은 참이지 않나.
워낙 어려운 환자를 끊임없이 봐 왔다 보니 사고가 많이 유연해져 있었다.
‘이 환자…… 다리만 아플까? 전신 문제일 가능성은?’
[구조가 아니라……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근육의 문제일 가능성을 보자는 말이죠?]
‘응.’
[필요한 과정이라고 판단합니다.]
‘좋아.’
해서 어느 한 추론에 깊이 빠져 있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바로 후진할 수 있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현장에서는 실로 엄청난 재능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었다.
“환자분.”
“네.”
“혹시 팔이나 다른 데는 아픈 적이 없어요?”
“아……. 가끔 팔도 그래요.”
“보통 언제 그래요?”
“저기 양 밥 주거나 하면 다음 날 아파요.”
“밥이 많이 무겁나요?”
마지막 질문을 하면서는 환자뿐 아니라 친구도 바라보았다.
이쪽이 보다 객관적인 답을 해 줄 거 같아서였다.
“아뇨, 들 때는…… 그렇게 무겁진 않아요.”
“네, 뭐. 저희보다 어린 애들도 다 들어요. 저기 설사하는 애들도 드는 건데. 저희보단 가볍게 들긴 하지만요.”
하지만 놀랍게도 환자 또한 비슷한 답을 해 왔다.
진짜로 그리 무겁진 않은 모양이었다.
[추측만 할 게 아니라 아예 들어 보죠.]
‘아, 그럴까? 하긴 여기 있겠지.’
그러고 나서도 긴가민가한 느낌이 들었다.
얘들이 말하는 가볍다는 무게가 한국 기준으로도 가볍다는 건지 뭔지 헷갈려서였다.
해서 수혁은 혹시 본인도 들어 볼 수 있겠냐고 요청을 했고, 환자 친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먹이통을 들고 왔다.
“어우. 가볍진 않은데?”
확실히 가볍진 않았다.
적어도 5kg은 될 거 같았다.
하지만 이거 든다고 다음 날 팔이 아파?
저만한 두께의 팔이?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거짓말은 아닌 거 같아.’
[네, 증상은 실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 이제 분석이 돼?’
[100%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데이터 분석해 보면 거짓말할 때 나타나는 징후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얘가 뭐 어디 가서 훈련받았을 리는 없잖아?’
[그렇습니다.]
뭔가 이상한 병리 기전이 있을 거란 얘기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해서는 도통 감이 잘 잡히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또 본인도 이런 식의 추론에 익숙해진 마당이었다.
그 결과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병이 있다면…… 근력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통증에는 영향을 끼치는 기전을 일으키는 병이어야 해. 이걸 세포 단위로 끌고 들어가 보자.’
[보통 근육통은…… 근육의 피로로 인해 발생합니다. 피로를 유발하는 상황으로는…… 역시 근세포 막의 Na+/K+ Pump와 연관이 있겠군요.]
‘분극성이 감소하면 그렇게 된다 이거지?’
[네, 그렇습니다.]
생리학 수준의 추론이었다.
이건 수혁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대개는 연구의 영역이지, 임상 영역은 아니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바루다의 존재가 이를 가능케 하고 있었다.
한번 배우고 잊었어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을 지식들이 수혁의 머릿속에서 범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