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47화 (647/1,303)

647화 힘을 쓰면 아프다고? (2)

‘탈분극을 저해하는 요소는…….’

[ATP 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때입니다.]

‘글리코겐과 연관이 되어 있겠군.’

[네, 골격근의 에너지는 보통 거기서 획득하게 되니까요.]

수혁은 환자를 세워 놓고 잠시 눈을 감은 참이었다.

‘뭐 하시는 거야?’

‘네가 꾀병 부리니까 화난 거 아닐까?’

‘야, 나 진짜 아프다니까? 몰라?’

‘아니, 알지. 아는데 남들이 볼 때는 영 이상하긴 해.’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상상도 하기 어려울 터였다.

세상에 나를 진료하던 사람이 갑자기 눈을 감고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다니.

심지어 잘 보면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이 뭔가 혼잣말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또 이러고 있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그사이 오토바이를 타고 온 강혁이 그런 수혁을 발견했다.

물론 발견했을 뿐,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눈깔 이상하다 싶더니만 이젠 감아 버렸네.’

감았으면 그냥 가만히 있지.

왜 입은 달싹거리고 있단 말인가.

잘 보니 ATP니 뭐니 하는 단어를 씨불이고 있었다.

의대생이라면 모를까, 의사가 되고 나서는 거의 머릿속에 떠올려 본 적도 없는 단어였다.

내과 의사라고 사정이 다를 거 같지는 않았다.

‘확실히 신 내렸구만.’

강혁은 이제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다.

해서 환자에게 다가갈 때조차 멀리 돌아서 갔다.

심지어 물어볼 때도 목소리를 죽였다.

혹시 수혁이 아니, 신이 들을까 봐서였다.

“뭐 해?”

“아……. 제가 다리가 좀 아프다고 했더니 이러고 계셔요.”

“다리? 음……. 생긴 건 괜찮은데? 다친 건 아니지?”

“네. 그냥 언제부터인가 움직이면 아파요.”

“움직이면……? 아,”

강혁도 우수한 의사이지 않나.

아니, 감히 천재라는 단어를 함부로 써도 좋을 수준의 의사라 할 수 있었다.

비록 외과적인 처치에 특히 치우쳐져 있기는 하지만, 추론 능력도 보통은 넘었다.

‘ATP가 그래서 나온 건가.’

물론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아무리 백강혁이 천재라 해도 수십 년간 등한시해 온 생리학의 영역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으니.

“오……. 교주님.”

해서 잠자코 수혁의 기행을 바라보고만 있으려니, 게르 문이 열리고 안대훈이 나왔다.

강혁이 아는 대머리는 아니, 보통의 대머리들은 저렇게까지 광을 내지는 않던데.

대체 무슨 생각에서인지 왁스 칠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순간 눈이 멀 거 같은 기분에 슥 하고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아, 왜 하필 뒤에 가서 섰어. 후광 같아서 더 찜찜하잖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대훈은 수혁의 뒤에 서 있었다.

옥체를 보중하기 위해서였는데 남들이 볼 때는 그저 전구 하나 달아 둔 기분이었다.

‘글리코겐 분해와 연관되었을까?’

[그렇다면 글리코센 포스포라아제 중 근육에 작용하는 마이오포포라아제와 연관이 있을 겁…….]

‘그거 질환이 있지 않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데이터 분석할까요? 다른 가능성은 배제합니까?]

‘물론 글리코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야 더 있지. 하지만…… 이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은 근육통뿐이야.’

[타당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럼 분석합니다.]

수혁은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하던 것을 지속하고 있었다.

사실 바깥 상황은 알지도 못했다.

수혁으로서도 생리학적인 레벨에서의 추론은 퍽 오랜만이어서 그랬다.

물론 이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느라 신경을 못 쓰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너무 재밌어서 그랬다.

이제 수혁은 변태라는 별명이 붙여져도 싼 사람이 된 지 오래였다.

‘있네.’

[그렇네요.]

‘맞아. 내가 이런 것도 공부했지. 진짜 힘들었다.]

[하지만 보람이 있죠.

‘그렇네. 보람이 있네.

변태라는 별명에 실로 걸맞게, 무려 추론만으로 유전 대사 질환을 떠올리는 성과를 내는 데 이르렀다.

“후후.”

뿌듯한 나머지 수혁은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그냥 남들 보라고 짓는 종류의 웃음이 아니었다.

정말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웃음이었다.

보통 사람이 살면서 보기는 어려운 장면이라고 보면 되었다.

기껏해야 펜트하우스 같은 드라마에서나 나올까?

“어우.”

“뭐야.”

별생각 없이 보던 환자나 친구조차 뒤로 물러나게 되었을 만큼이나 기괴했다.

‘지금 이수혁 교수 맞나.’

가뜩이나 접신을 의심하고 있던 강혁으로서는 두려움이 엄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이상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말을 이었다.

여전히 비슷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환자분.”

“네, 네.”

그 모습이 어쩐지 주술사 비슷했다.

유목민 중에서는 샤머니즘을 믿는 사람이 여전히 많았고, 대놓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 해도 영향을 받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환자와 친구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했다.

“환자분의 병은 당원병 V형이라 합니다.”

“네?”

게다가 바로 처음 듣는 이상한 병 이름이 나오자, 이제는 절이라도 해야 하나 싶어졌다.

실제로 친구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굽히다 강혁이 붙잡아 준 덕에 버티고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서기도 뭐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당사자인 환자야 말할 것도 없었다.

‘당원병……? 뭔데 그게?’

심지어 강혁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40년이라는 길고 긴 진료 인생 동안에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따지고 보면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강혁은 외상을 주로 봤지, 내과 환자를 본 건 아니었으니까.

아마 평상시라면 어떤 진단명을 들었다 해도 평정심을 유지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진단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기괴했던 마당이었다.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었다.

“역시 교주님!”

안대훈을 제외한 셋은 경직된 자세로 수혁을 주시하고 있었다.

“근육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요. 원료가 되는 건 당연히 우리가 먹는 음식입니다.”

“네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여러 형태로 저장이 되는데 그중 하나를 글리코겐이라고 합니다. 당장 써야 하는 에너지가 필요할 때 꺼내 쓰게 되죠. 근데 그 형태 그대로 쓸 수는 없어요. 덩어리가 크거든요. 이해됩니까?”

“어……. 네.”

수혁은 환자뿐 아니라 뒤에 서 있는 강혁 그리고 옆에서 보조하던 간호사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풀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고 해도 환자가 이런 걸 다 이해하길 바라는 건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 환자를 꾸준히 봐야 할 의료진은 이해하는 게 좋았다.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도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대가의 입을 통해 한번 들어 두면 큰 도움이 되지 않겠나.

‘당연히 대가는 나고.’

[네, 어련하시겠습니까.]

수혁은 점점 더 뿌듯한 마음이 들어 껄껄 웃었다.

얼굴에 드러나 있던 기묘한 미소가 더 짙어졌다는 뜻이었다.

그럴수록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의 자세는 위축되었다.

벌건 대낮에 심령 현상을 겪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ATP라는 형태로 잘라서 써야 해요. 그걸 잘라 주는 걸 효소라고 하는데, 그중 근육에 쓰일 수 있는 형태로 잘라 주는 효소를 마이오포포라아제라고 합니다.”

“마이오……?”

“이름까지는 알 필요 없어요. 다만 뭔가 부족한 게 있다는 것 정도만 아시면 됩니다.”

“아, 네.”

“이게 부족하면 결국, 근육에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밥을 못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힘이 없죠.”

“네, 환자분의 근육도 그래요. 힘을 영 못 쓰게 됩니다.”

“아…….”

“부족한 힘으로 무리를 하다 보니 다음 날 많이 아프게 되고요. 아마…… 갈색 소변도 많이 보셨을 거 같은데, 맞습니까?”

마지막 질문이 들어맞지 않았더라도 듣던 이들은 죄다 놀랐을 터였다.

그냥 얘기만 나눈 것만으로 여기까지 생각했다는 것만 해도 놀랍지 않은가.

미친 수준이라고 봐도 좋았다.

그런데 이거까지 맞으면 어떻게 될까.

‘틀려라. 맞으면 나 무서울 듯.’

강혁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환자의 입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바람은 대개 빗나가는 편이지 않나.

이번에도 그랬다.

환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뒤로 물러섰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이 병이 그렇거든요.”

“아……. 와……. 이게…… 와……. 저는 그냥 제가 특이한 건 줄.”

“아뇨, 그게 반복되면 신장이 망가져요.”

“신장?”

“소변 보게 만들어 주는 기관이 있습니다. 하여간.…… 환자분은 격렬한 운동은 피하는 것이 좋아요. 엄살이 아니라 아픈 거거든요.”

“아.”

환자는 이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헷갈린단 생각이 들었다.

엄살이 아니란 것을 확인받았으니 좋은 일인가 싶으면서도, 아픈 몸이라니 역시 좋은 일은 아니지 않나 싶어서 그랬다.

수혁은 그런 환자 마음을 다 안다는 듯 툭툭 어깨를 두드렸다.

미소를 지으면서였다.

수혁이 다른 사람 위로할 때는 자랑할 때만큼 진심이진 않아서 다분히 만들어진 미소가 튀어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오히려 이게 더 나았다.

“그리고 의료진분들.”

“아, 네.”

그런 수혁이 자신을 부른다면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매사에 확실한 편인 강혁조차 아직 판단이 서질 못했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존대야 당연히 하면서였다.

평소 강혁의 모습을 아는 간호사는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티를 내진 못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도 굽신거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랬다.

“추론을 통해 당원병 V를 진단했지만…… 아쉽게도 확진은 아닙니다. 확진은 근육에 대한 조직 검사 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 그건 병원에서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치료겠죠?”

“그렇죠.”

병 이름이 솔직히 뭐 그렇게까지 중요하겠나.

세상에 진단되지 않은 병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병인 줄 알고 치료했는데 방법이 얻어걸려서 호전을 보이기도 하고 그러는 법이었다.

결국, 환자의 예후에 중요한 것은 치료였다.

환자에게만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그랬다.

“현재까지 나온 치료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회피입니다.”

“회피? 아……. 운동을 피하라 이거죠?”

“네. 나머지는…… 이렇습니다.”

수혁은 언제 읽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지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어서, 태반은 바루다가 띄워 준 데이터를 읽는 데 그쳤다.

그 모습이 강혁에게는 어디라고 딱 짚기 어려운 지점을 보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다.

‘시벌. 존나 무서워.’

혹시 해서 그쪽을 봤는데 역시나 보이는 건 없었다.

허공뿐이었다.

그렇게 수혁은 본의 아니게 세계적인 의사를 공포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가벼운 유산소 운동은 좋다고 알려져 있어요. 크레아틴, 라미프릴, 수크로제 등의 복용이나 탄수화물의 섭취를 늘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회피처럼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진 않았습니다. 임상 상황을 잘 봐 가면서 쓰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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