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8화 힘을 쓰면 아프다고? (3)
수혁의 설명이야 늘 그렇듯 일목요연했다.
원래 무언가 정보를 종합해서 말하는 것에 능통하기도 했거니와 애초에 바루다가 문장을 정리해서 보여 주기에 그러했다.
의료인이 아닌 이들조차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주변에 있던 의료인들이야 당연히 더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완전히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 일단 확진을 해야 한다는 거죠?”
울란바토르 병원 소속의 간호사가 이렇게 물어 왔다.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수혁이 우수한 의사라고 해도, 유전성 대사 질환의 진단을 어찌 머리통만으로 할 수 있겠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 독사의 자식이?’
하지만 그런 당연한 말에도 화가 나는 사람이 있었다.
안대훈이었다.
그는 말없이 번쩍이는 머리를 앞세운 채, 간호사를 노려보았다.
영문을 알 리 없는 간호사는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고 있었다.
안대훈의 외모가 수상쩍게 보려고 한다면야 얼마든지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귀여운 느낌도 있다 보니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저 미친놈이. 왜 시비야. 노하면 어쩌려고.’
하지만 이 상황이 너무 무서운 사람이 나서자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다름 아닌 백강혁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70 먹은 노인네인 주제에 백발로 염색을 해도 30, 40대로밖에 안 보이는, 그야말로 타고난 무골 아닌가.
게다가 그의 의사로서의 명성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적어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의료진 중에서는 강혁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확진하기 전에 지침을 그렇게 가자는 건데 뭘 그렇게 말을 하나. 그렇지, 이수혁 교수님?”
“어……. 백 교수님?”
“어허. 손님 모셔다 놓고 그러는 건 예의가 아냐. 자자, 이제 다 봤으니까 돌아갑시다. 돌아가. 나는 급해서 오토바이 타고 갈게.”
그런 백강혁이 이렇게 허둥대는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해서 간호사가 붙잡으려고 했는데, 정작 강혁을 잡은 건 이수혁이었다.
“어, 왜요.”
강혁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왜 하필이면 얘가 잡을까.
왜 나는 이 인간이 눈이 있을 거라 확신했을까.
눈이 아니라 신이 있는 건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확진을 위해서는 피 검사도 필요하지만, 근육 생검이 필요해요.”
“아.”
‘혹시 너 눈 있니? 그 눈 갖고 싶다’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게 제일 커다란 걱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정말이지 정상적인, 그야말로 이 순간 의료진이라면 해야 할 말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해야죠. 제가 할까요?”
“네. 저는 이런 거 해 본 적이 없어서.”
“그…… 해 본 적이 없어요?”
“네.”
“신도 신 나름인가.”
“네?”
“아니, 아닙니다.”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수혁은 안 해 봤다고 해도 신은 해 봤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방금도 누가 읊어 주는 걸 또는 누가 보여 주는 걸 그대로 읽은 느낌 아니었나.
그럼 수술도 바로 앞에서 알려 주는 대로 할 수 있을 터였다.
‘아닌가? 하긴 수술은 손이 좀 좋아야 하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술까지 하는 건 좀 무리가 있겠다 싶었다.
진짜 강혁처럼 눈이 있어서 남들보다 예민하게, 또 실시간으로 환자 정보를 습득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연습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려울 게 뻔했다.
“여기서 바로 하지 뭐. 차에 준비되려나?”
“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하자. 오래 걸릴 것도 아니고…… 뭐 깊숙이 들어갈 것도 아니니까 처치실 수준으로 가자고.”
“네, 교수님.”
어차피 수술은 강혁이 전문이기도 했다.
이까짓 생검을 수술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 의문이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칼 대는 일이라면 강혁이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하는 것과 꽤 차이가 있었다.
언젠가 제자들이 자기를 뛰어넘기는 힘들어도 비슷하게는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으나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건 무리한 생각이었다.
강혁은 아직도 실력이 늘고 있었다.
‘와…….’
[생검 하는 거 처음 보긴 하는데…… 이렇게 깔끔할 일인가요.]
‘그러니까. 어떻게 피가 안 나?’
[귀신같이…… 피가 날 만한 부위를 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너도 분석이 안 돼?’
[애초에 망막에 맺히는 정보의 양이 다른 거 같습니다. 이건 수련으로 될 게 아니에요.]
어느 정도냐면 외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수혁조차 실력을 대강 알아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바루다가 있어 오히려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정말 놀랐다.
그리고 그 놀란 얼굴은 강혁에게 두려움을 심어다 주었다.
‘원래 같으면 이 나이대 내과 교수가 내 술기를 보면서 놀라면 안 되지.’
잘하네 할 수는 있었다.
좀 더 나가면 진짜 잘하네 정도도 가능했다.
뭐가 되었건 강혁은 이쪽으로 쌓은 명성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CIA와 본격적으로 일하면서 인터넷상에 깔려 있던 정보를 모조리 소각하게 되었다 해도 그랬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퍼진 소문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근데 이건…… 눈이 역시 이상하다니까.’
자세히 보니까 한 박자 느렸다.
강혁의 절개나 술기를 죄다 따라오긴 하는데, 반 호흡가량 느리다는 얘기였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본인 눈에 직접 보이는 대로 따라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알려 주는 대로 눈알을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되었다.
바루다의 존재를 알 리 없는 강혁은 이런 결론밖에는 내릴 수가 없었다.
“오케이, 끝.”
다행인 것은 강혁이 이제 와 이 정도 일에 흔들릴 만한 실력은 아니란 점이었다.
강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무리 없이 술기를 끝내고, 환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환자는 고맙다고 하더니 그대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특별할 거 하나 없는 일이지만, 사실 대단한 것이었다.
‘아프지도 않나 보네.’
[운동 능력 상실도 전혀 관찰되지 않습니다. 분명 손상을 입힌 건데.]
‘미쳤다……. 이 사람 진짜 대단하구나. 왜 정보가 없을까?’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가끔 수혁이 보는 책에 나오는 은거 기인 같은 걸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던데.’
[으음.]
수혁이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사이, 차 안은 정리되었다.
그러곤 너무 늦기 전에 병원에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곧장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몽골 초원엔 가로등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아니, 그저 인위적인 빛 자체가 없었다.
덕분에 일행은 오로지 차량 등에 의지한 채 달려야만 했다.
‘진짜 빨리 어두워지는구나.’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7시 남짓할 무렵이었다.
하나 밖은 칠흑 같은 밤이었다.
“교주님, 저기 별 보이십니까?”
한 가지 좋은 게 있다면 별이 참 잘 보인다는 점이었다.
운전을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수혁은 내내 창밖을, 정확히 말하면 밤하늘을 내다 보고 있었다.
원래 같으면 이런저런 말을 걸면서 갈구기라도 했을 강혁이 멀찍이 앉아서 자는 척을 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보면 안대훈은 진짜 대단한 놈이었다.
남들은 그렇게 무서워서 안달인데 이렇게 찰싹 붙어서 교주님, 교주님 하고 있었으니까.
“너 입에서 야쿠르트 냄새난다.”
“아, 이거 때문입니다. 드릴까요?”
“아니. 난 그거 너무 시큼하던데.”
“나름 올라옵니다.”
“트림?”
“아뇨, 술기운이요. 너무하시네.”
심지어 장난 조금 쳤더니 뾰로통한 얼굴이 된 채, 심지어 팔짱까지 끼고는 반대편을 보고 있었다.
아예 깜깜했으면 그 꼴을 안 봐도 되었을 텐데.
하필 설사를 좀 심하게 하는 아이가 있어 데리고 가야 하는 바람에 불을 켜 둔 것이 화근이었다.
‘와, 개열받아.’
[저도 인정입니다.]
‘그래도 이놈이 제일 충신이긴 하지. 여기까지 따라온 거 봐라.’
[그것도 그렇습니다. 사실 레지던트들에게 여긴…….]
그냥 봉사만 한다고 하면 아마 올 사람 많을 터였다.
문제는 ‘교수들과 같이’ 봉사를 온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곧 봉사보다는 교수들 모시는 것이 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제아무리 태화가 기업 병원이 된 지 오래고 그에 따라 분위기가 전통적인 대학 병원에 비해 낫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교수와 레지던트 사이가 수평적일 수는 없었다.
심지어 교수들 중에서 제일 탈권위적이고 털털한 수혁조차 껄끄럽게 여기는 애들도 적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안대훈은 봉사보다 교수님 모시는 것이 우선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왔으니 수혁 입장에서는 기특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야, 삐졌냐. 이거 먹고 풀어라.”
해서 수혁은 아까 진료 봐준 보답으로 받은 육포를 내밀었다.
아까 먹어 봤는데 별로라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실제로 입맛에 맞지는 않았는데, 진짜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이것뿐이었다.
“허억.”
“아니, 울지는 말고. 이게 뭐 그렇게 귀한…….”
“교주님…….”
“교주라고 하지도 말고…… 여기 차 안이고 한국 사람 많아.”
“네, 교주님…… 교수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은혜…… 성은이 망극합니다.”
“아.”
그래서 이렇게까지 반응이 격할 줄은 몰랐다.
수혁은 겸연쩍은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특히 신경 쓰이는 사람은 백강혁이었다.
딱 봐도 아빠랑도 알고, 삼촌이랑도 알고, 심지어 김승규랑도 알지 않나.
“으흠, 음.”
강혁은 필사적으로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분명 교주라고 했지……?’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뿐만은 아닐 거라고 확신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힘을 공개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도 확신했다.
왜냐면 위험하니까.
한데 안대훈의 태도를 보니 수혁은 오픈을 한 모양이었다.
‘신을 보여 주었나? 아니면 세뇌? 딱 보니까 세뇌당한 거 같기는 한데.’
그 기묘한 눈동자 하면 광까지 낸 머리에 이런 말투까지.
‘어유, 어유.’
괜히 관심 보이다 자기까지 세뇌당하면 큰일이었다.
비록 나이는 꽤 많지만, 아직 신체 나이는 젊다 못해 팔팔하지 않나.
몽골 끝나면 또 갈 만한 곳을 물색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여기서 발목 잡히면 안 되었다.
미군도 아니고 신이라니?
그것도 접신?
안 될 일이었다.
‘다행히 자네.’
수혁은 잠꼬대까지 하는 강혁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이것을 기회 삼아 더 달라붙은 대훈을 툭 하고 떼어 내고는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몽골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별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지만.
초원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 저 광경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더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시벌.”
물론 그건 수혁처럼 편안히 차 타고 가는 사람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조 잘못 짜서 지금까지 뺑이 치다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이들 눈에는 별이고 나발이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 안 돼?”
“안 돼.”
“아, 미치겠네.”
“형도 안 돼?”
“내가 너보다 키가 작은데 되겠냐?”
“근데 이렇게 폰 올리면 되기는 한데?”
“나도 몰라.”
“몰라? 이런 시…….”
“너 욕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