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9화 한밤중 (1)
“아직 안 왔다고?”
돌아가면 저녁 먹고 발 닦고 잘 줄 알았다.
실제로 저녁은 먹고 있긴 했다.
뭔 일이 벌어졌든 간에 밥은 먹고 살아야지 않겠냐는 것이 이곳의 총책임자 백강혁의 지론이어서 그랬다.
맛도 있었다.
하지만 어제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연출되지는 못했다.
“네. 연락이 안 됩니다.”
“왜?”
“정확히 말하면…… 되기는 하는데 자꾸 끊겨요. 여기 통신 원래 좀.”
“아……. 어디로 갔지?”
“1, 2조는 같은 곳입니다.”
“하필 제일 먼 데야, 또.”
원장과 전임 원장이 동시에 실종되어서 그랬다.
정확히 말하면 둘만 사라진 건 아니고, 현지 직원들 포함해서 거의 열 명도 넘는 인원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은 사실 없었다.
울란바토르 뒷골목을 찾아 들어간다면야 얼마든지 험한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만, 초원은 위험한 곳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게르에 있는 거 같기는 합니다.”
“게르? 그럼 위험하지는 않네.”
게다가 길바닥에 엎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쓰이긴 했다.
유목민들의 숙소라는 게 뻔해서 그랬다.
한국에서도 무려 태화 의료원에서 일하던 사람들이고 또 거기서도 원장까지 해 먹을 정도의 위인들 아닌가.
아무리 강혁이 더 나이가 많고 앞에서는 확 휘어잡기도 했지만 하여간 손님으로 온 귀한 사람들이었다.
“연락은 잘 안 돼?”
“긴 대화가 안 됩니다.”
“에이, 이놈의 핸드폰. 차라리 위성 전화가 낫다니까.”
“위성 전화는…….”
위성 전화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보는 사람도 있기는 할 터였다.
하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게 등장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심지어 핸드폰보다 오래된 물건이었다.
아무리 오지에 있다 해도 터지는 물건이다 보니 어찌 보면 핸드폰보다도 더 요긴해 보였다.
이런 신박한 물건이 대중화되지 못한 건 당연히 위성 때문이었다.
이 전화는 위성과의 통신을 필요로 했다.
“그건 교수님만…… 사용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하여간. 별일은 없다는 거지?”
“네. 그런 거 같은데 이상하게…….”
“이상하게?”
“자꾸 통신 시도가 있어요. 위치는 게르입니다.”
“으음.”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낸 지 오래였다.
적어도 처음 걸려 온 전화에서는 일이 밀려서 못 가게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웃었으니까.
그러다 날씨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몰라도 갑자기 전화가 끊겼는데, 이후로도 계속 통신 시도가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환자가 있나.’
설마하니 원장씩이나 되어 가지고 밤이 외로워 전화를 걸어오는 건 아니지 않겠나.
거기 부족민들이 시비를 걸 리도 만무한 일이었다.
일단 여기서 베푼 은혜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같이 간 현지 직원들은 간단한 무장도 갖추고 있었다.
초원에서 있을 수 있는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서이지만, 목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법이었다.
‘그래, 환자가 있나 본데.’
뭔가 저쪽이 가진 인원이나 설비로는 대응이 안 되는 환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계속 전화가 올 리가 없었다.
‘아, 어두운데. 이 길은…….’
갈까도 싶었다.
하지만 밖은 너무 어두웠다.
한국에서도 칠흑 같은 밤이라는 단어를 관용어처럼 쓰지만, 이곳의 밤은 차원이 달랐다.
그야말로 의지할 만한 불은 차량이 내뿜는 불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고가 날 확률이 너무 높았다.
따르릉.
그때 전화가 울렸다.
“네, 여보세요?”
병원 전화가 아니라 핸드폰 전화였다.
그것도 현지 직원이 아니라 수혁의 폰이었다.
“어, 어! 걸렸다! 야, 거기 고대로 있어!”
“뭐지.”
영상 통화인 듯했는데, 저쪽 화면이 너무 어둡다 보니 보이는 건 없었다.
그리고 무척 소란스러웠다.
욕설도 들렸다.
화가 나서라기보다는 흥분한 듯했다.
참 부러운 일이었다.
나이 60 넘어서 저렇게 쉽게 날뛸 수 있고.
“전화예요? 저쪽?”
“네, 아……. 아니, 센터장님이요. 원장님하고 같이 계시는 거 같아요.”
하여간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가지 못하는 사이,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던 강혁이 다가왔다.
수혁은 강혁에게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누군지 알려 주었다.
“어우, 깜짝이야.”
그러다 갑자기 얼굴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이현종이었다.
많이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역시 너무 가까이 서 보니 그리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었다.
게다가 오지에 왔다고 바로 현지화가 됐나, 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많이 거칠어져 있기도 했다.
“어, 아들. 오……. 이제 되네. 아니 여기 통신이 왜 이렇게 개판이니.”
이현종은 기껏 연결된 핸드폰을 앞에 두고 연신 구시렁거렸다.
일단 씻지 못한 게 제일 불만인 모양이었다.
의외로 아침저녁으로 씻는 양반이니 그럴 만도 했다.
반갑기는 수혁도 마찬가지긴 했다.
괜찮을 거라고 해도, 암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을 들었다 해도 직접 보고 나니 확 마음이 풀렸다.
하지만 언제 또 통신이 끊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대화만 나누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뭔 일 있는 건 아니죠?”
“어? 어어. 우리는 괜찮아. 우리는 괜찮은데…….”
“그럼요?”
“현태가 보고 있는데, 감염병이 있어. 근데 증상이 너무 안 좋아.”
“아…….”
감염병이라.
항상 제일 주의해야 하는 건 역시나 전염력이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는 의료진도 가리지 않고 전염시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빠랑 삼촌은 괜찮고요?”
“신현태랑 왔잖아. 그 새끼…… 지 몸은 끔찍이 여기는 놈이라. 보호 장구 다 차고 봤지. 괜찮을 거야.”
“근데 왜 지금은 벗었어요?”
“일단 통신이 급해서. 그리고 이전에 환자랑 접촉한 환자들 있는데…… 증상이 아주 심하진 않아. 그냥 미열에 감기? 환자 하나가 심해서, 그게 문제야.”
“얼마나 심해요?”
“바이털이 흔들려.”
“아.”
감염에서 바이털이 흔들린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쯤 소름이 돋았을 터였다.
수혁도 그랬고, 안대훈도 그랬고, 강혁도 그랬다.
“패혈증…….”
“그래. 근데…… 환자가 너무 어려서. 지금 통신 연결된 거 보고 현태는 또 뛰어들어 갔어. 약도 없이 뭘 할 수 있다고.”
“어, 이거 왜 이래.”
“수, ㅎ. 오.”
“아…….”
통신에 또 말썽이 생긴 모양이었다.
멀쩡히 잘만 되던 영상 통화가 툭 하고 끊겨 버렸다.
[마지막 말을 분석해 보면 오라는 거 같은데요?]
‘내 얼굴이나 보자고 하시는 말씀은 아니고…….’
[약이겠죠. 당장 환자를 움직일 수 있는 상태는 아닌 모양입니다.]
‘어쩐다?’
수혁만 이현종의 마지막 말을 제대로 해석해 낸 것은 아니었다.
강혁도 그랬다.
아니, 강혁이 더 빨랐다.
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쩐다…….’
강혁은 각 조에 편성된 차량에 부착된 설비를 떠올렸다.
‘아, 이거 빨리 좀 해 달라니까.’
설비랄 게 없었다.
그저 기구들이 좀 있을 뿐이었다.
후원해 준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초원을 달리기 위해 차량 성능에 더 집중했을 뿐이지 않나.
일단 앰뷸런스처럼 큰 차는 무리였다.
때문에 들어가는 약물은 제한되었다.
종류는 충분했지만, 글쎄.
밤새 패혈증에 걸린 환자를 이승에 붙들어 놓을 수 있을까?
‘무리지, 절대 무리.’
결론을 내린 강혁은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이제 하도 오래 같이 지냈다 보니 척하면 척인 동료들이 그를 막아섰다.
그중에서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퍽 완강했다.
“백 교수. 나 말년에 호강시켜 주겠다고 했잖아. 이 밤길에 잘못되면 내 노후는 누가 책임져.”
누가 봐도 노후 운운할 나이는 한참 지난 듯했다.
듣자 하니 90살도 넘었다지 않던가.
그럼에도 저리 정정한 것을 보면 백강혁이 나름 신경을 써 준 듯했다.
“안 죽어요. 오토바이 말고 차 타고 갈 거야.”
“그래? 음.”
노인은 뭔가 이상한 논리에 저 혼자 설득이 되더니 옆으로 비켜섰다.
저런 어둠 속을 달린다면 물론 오토바이가 더 위험하기야 하겠지만 차라고 덜할 것 같지는 않은데 꽤 순순히 납득하고 있었다.
“이수혁 교수.”
그렇게 만류를 뿌리친 강혁은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수혁을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같이 갈 생각이었던 수혁은 강혁에게 다가가면서 답했다.
“네, 갈게요.”
“아.”
정황상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대답이었다.
일단 전화도 수혁에게 오지 않았나.
마지막 말도 수혁보고 오라는 말이었고.
하지만 사람의 인지 체계란 묘한 구석이 있어서, 한번 뒤틀어지면 좀처럼 교정이 되질 못했다.
‘귀신 같네. 아니지, 귀신이지.’
강혁은 수혁이 자신의 속마음을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나이 70에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사명감이 나이 듦에 따라 풍화되었더라면 안 갔을 터였다.
위험하기도 하고, 위험한 사람이랑 같이 가야 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강혁은 누가 위험하다는데 가지 않을 사람은 또 못 되었다.
“짐 챙겨서 가자. 인력은 거기 충분히…… 대머리 씨는 왜 끼어요?”
“교주…… 아니, 교수님 가시는 데에는 제가 가야 합니다.”
“하.”
그렇게 강혁은 수혁과 대훈까지 끌고서 병원을 빠져나왔다.
부우웅.
운전이 되게 거칠었다.
아니, 거칠다 못해 사납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만큼 빨랐다.
“와……. 이래도 되는…….”
“여기 뭐 차도 없는데. 쳐 봐야 야생 동물이지.”
“사람은 없어요?”
“유목민이라도 불 없이 이런 야밤에 돌아다니진 않아요.”
“아, 하긴 그렇겠다.”
“그럼 더 빠르게 갑니다.”
진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깜깜해서 망정이지 밝은 대낮이면 더 무서웠을 터였다.
초원이기는 해도 이런저런 장애물이 있기는 한 법이었다.
가령 돌이라든지, 바퀴가 낄 만큼 억세게 자란 풀이라든지.
하지만 강혁은 오직 차량 불빛에만 의지한 채 이 모든 것을 피해 가고 있었다.
그것도 가공할 만한 속도를 내면서였다.
‘역시, 이런 건 관심이 없지. 눈이 있었으면 지금쯤 뭐라고 했을 텐데.’
강혁은 방금도 위험한 순간을 가까스로 넘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태연해 보이는 수혁을 보며 생각했다.
‘빨리 가기나 하자.’
세상에 귀신이 있고 또 접신하는 사람도 있을 줄이야.
참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끼이익.
그렇게 복잡한 심경을 안고 달린 차량은 1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무려 120km 거리에 있던 게르 앞에 멈춰 섰다.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사람들이 다가왔다.
“왔다고?”
“헬기냐? 설마.”
“왔는데?”
“어…….”
다들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낮에도 여기 오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으니까.
한데 이 야밤을 한 시간에 뚫었어?
그야말로 목숨 걸고 달렸다고 봐야 했다.
“아, 아들!”
물론 그런 선후 관계보다 그저 수혁이 반가운 사람도 있었다.
이현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