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50화 (650/1,303)

650화 한밤중 (2)

“어, 아빠.”

“다친 데는 없고? 야밤에 뭘 그렇게 달렸냐.”

이현종은 늘 그렇듯 아들 걱정이 우선이었다.

아마 이현종의 학회에서의 모습만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현종을 보고 기절이라도 할 게 뻔했다.

그 싸가지 없고, 독한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인간이 아들 앞에서는 이렇게 자상하다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들?’

강혁도 퍽 놀란 상황이었다.

이현종이나 김승규는 전혀 모르고 있었겠지만, 백강혁은 나름 둘의 성장을 먼발치에서나마 응원하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 봤을 땐 그저 씨앗에 불과했던 아이디어가 마침내 개화해 심혈관 중재 시술의 신기원을 열었을 때는 박수까지 쳤더랬다.

김승규가 간 이식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을 때도 그랬고.

그 말은 곧 둘의 인생을 어느 정도 엿보고 있었단 얘기가 되었다.

‘니네는 얼굴 생김새를 떠나서 그냥 삶 자체가 결혼이니 육아니 하는 거랑 별 관계가 없었을 텐데?’

근데 아들이 있다고?

차라리 김승규는 조금 더 가능성이 있었다.

여전히 무섭게 생기긴 했는데, 틈새시장을 노려봄 직한 얼굴이기도 해서 그랬다.

듬직한 것을 넘어 끔찍한 수준이라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저런 스타일의 남성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지 않던가.

‘물론 내 얼굴이 짱이지.’

강혁은 갑자기 후후 하고 웃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이현종과 수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가공할 눈과 인지 능력을 사용하면서였다.

결론은 닮은 구석이라고는 같은 한민족이라 닮은 것 정도뿐이란 것이었다.

‘아들 아닌 거 같은데?’

강혁은 저도 모르게 이현종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저렇게 각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친아들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들까.

‘무덤까지 들고 가자.’

예전의 강혁이었다면, 그러니까 남의 감정 따위 별로 신경 안 쓰던 시기의 강혁이었다면 그냥 말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게 정의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70이 다 된 강혁은 성숙한 인간이었다.

게다가 수혁이 접신한다는 사실이 못내 무서웠다.

“환자는 어디 있어요?”

“어? 어어. 이쪽. 근데 들어가기 전에 이거 다 하고 가야지.”

해서 그냥 멀찍이 서서 있었다.

보호 장구만 챙기면서였다.

그사이 수혁도 이현종에게 마스크와 모자 그리고 덧가운을 넘겨받았다.

“고글도 껴요?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면서요.”

“네가 다른 사람이니.”

“네?”

“넌 이수혁이야. 전 세계의 보물이지. 아껴야 해.”

“아빠는요.”

“아빠? 아빠는 안 들어갈 건데, 이제.”

“아.”

이현종의 성화 때문에 고글까지 껴야 했다.

친아빠는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양아버지가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다니.

눈물이 핑 돌 뻔했다.

마지막에 안 들어간다는 말만 안 했어도 진짜 그랬을 터였다.

‘역시 이래야 우리 아빠지.’

[네, 이현종은 이래야 이현종답습니다.]

보호 장구 챙겨서 사지에 밀어 넣는 아빠라 해서 섭섭한 마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현종이 이날 이때껏 워낙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아와서 그랬다.

오히려 예외적인 모습을 보여 줄 때는 오직 수혁과 이기자가 낑겨 있을 때뿐 아니던가.

그 덕에 학회에서는 이현종이 말년에 갑자기 세력을 키우네 어쩌네 하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어, 수혁아. 백 교수님도 오셨군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오셨네요.”

하여간 이현종을 뒤로하고 게르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신현태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신현태도 보호 장구를 다 끼고 있었다.

옆에 따라온 간호사도 그랬고.

“환자는 어때요? 접촉자들은?”

“아직 증상이 없어서 다른 게르에 있어. 최대한 각각의 게르에 넣어 두었는데…… 장소가 부족해서…… 불가피하게 모아 두긴 했지.”

“아, 그렇군요.”

신현태의 답을 들으며, 수혁은 역시 감염내과는 감염내과구나 싶었다.

환자를 격리하되 혹 접촉자들은 다른 곳으로 또 몰았다.

그 덕에 가뜩이나 몰려 살던 이들이 있을 곳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야밤에 밖에 나와 있는 부족민들이 꽤 있었지만.

그들에게도 잘된 일일 터였다.

초원에서 알 수 없는 질환에의 감염은 곧 죽음을 의미했으니.

“밖이 좀 소란스럽던데.”

수혁은 환자를 슬며시 살피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지금도 게르 밖이 꽤 시끄러웠다.

그냥 사람들이 거기 몰려서인 것 같지는 않았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시끄러웠다.

“아, 저거…… 기도하는 겁니다. 대개 불교도이긴 한데. 약간 섞여서. 특히 도시 사람이 아니면…… 약간의 토속 신앙 같은 믿음이 있더라고요.”

답을 해 온 건 강혁이었다.

이곳에 온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고 하더니, 말도 그렇고 풍습도 그렇고 되게 능숙해 보였다.

의학 외적으로도 뛰어난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수혁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었다.

[수혁은 의학 말고는 딱히 뭐가 없는데요.]

‘왜 갑자기 시비야?’

[그냥 그렇다고요. 그래도 저는 수혁이 좋습니다.]

‘표정은 너무 아쉬워하는데?’

[일단 환자 보죠.]

토속 신앙이라.

무리는 아니었다.

원래 통제 불가한 자연과 연한 일에 종사할수록 믿음을 갖게 되는 법이니까.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란 얘기였다.

게다가 딱히 의학적으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 않나.

소요 상태가 아니라면 그걸로 족했다.

“일단 환자를 좀 볼까요. 상태는 어때요?”

“어. 일단 기침, 가래가 대략 1주일 전부터 있었다고 하더라고. 고열도 그때쯤부터 있었고.”

“허……. 그럼……?”

“다행히 전에 울란바토르 병원에서 상비약 개념으로 약을 좀 주신 모양이야.”

신현태는 대화를 이어 나가다 말고 강혁을 돌아보았다.

몽골의 상황을 고려할 때 상비약의 종류가 꽤나 적절했기에 그랬다.

워낙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의사긴 하지만, 약 쓰는 데 있어서도 세심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항생제는 페녹시메틸페니실린을 썼고, 해열제는 이부를 썼어.”

“그런데 하나도 안 나아졌구나.”

“응. 오히려 더 심해진 거지. 어제부터는 목에 뭐가 만져지기 시작했대. 내가 보기나 경부에만 림프절 종대가 있는 게 아냐. 겨드랑이에도 있고 사타구니 주변에도 있어.”

“아……. 전신에 림프절 종대가 있군요.”

수혁은 신현태의 시선을 따라 강혁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환자를 돌아보았다.

아직 젊은 여자 환자였다.

햇빛에 그은 얼굴 탓에 정확한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글쎄, 많아 봐야 30대?

전반적으로 얼굴이 부어 있었다.

고열에 시달리면서 동시에 누워만 있었을 테니 무리도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 바루다가 몇 가지 이상한 점을 알려 왔다.

그중 수혁은 제일 특이한 것을 골라 말했다.

“손가락이 체구에 비해 두꺼운데요?”

“아……. 너 진짜 눈썰미 좋구나. 부었어. 특히 관절이.”

“관절이라. 이번에 그런 거래요?”

“아니, 종종 그랬대.”

“그럼…….”

“젊은 여자의 관절이 붓는 건 이상한 일이지. 근데 알아보니까…… 여기는 육체노동이 너무 많아서 꽤 있더라고. 퇴행성 관절염도 있고.”

“아.”

대한민국이었다면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확신을 가지고 자가면역질환을 떠올렸을 터였다.

하지만 환경이 다르다 보니 고려해야 할 것들도 달라졌다.

[재밌는데요?]

‘사람 아픈데 재밌다니.’

[솔직히 수혁도 흥분했잖아요?]

‘음…….’

[음?]

‘인정.’

같은 증상이라고 해도 환자가 속한 환경에 따라 고려해야 할 것이 달라진다.

이러한 것이 의학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인 동시에 또 흥미 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 아닐까?

물론 수혁은 바루다와 달리 인간이기에 순수하게 기뻐하고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의사는 사람을 고쳐야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럼 그건 일단 문제 목록에만 정리를 해 놔야겠네요.”

“어? 어, 그렇지. 하여간…… 그 외에는 간, 비장 종대가 있어. 그리고 심장…… 이건 현종이 형이 아까 확인해 준 건데. 수축기에 잡음이 있어.”

“수축기 잡음이라. 어떤 종류의 잡음이었죠? 아빠라면 반드시 뭔가 알아냈을 텐데.”

심장에 있어서 이현종의 진단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보면 좋았다.

아직 수혁과 바루다 콤비조차 완전히 따라잡지 못했을 지경이었다.

물론 수혁이 다른 분야에 워낙 관심을 보여서이기도 했지만, 태반은 이현종의 우수성 때문이라고 봐야 했다.

“응. 판막 문제는 아니래.”

“그럼……?”

“혈류 속도가 빨라. 좌심실 비대도 있대.”

“그럼 고혈압이군요.”

“그래, 고혈압이 있어.”

“환자 몇 살이죠? 30?”

“아니, 21살.”

“아. 21살.”

수혁은 환자의 액면가를 보다가 다시금 21살이라는 나이를 떠올렸다.

‘자외선 차단제…… 열심히 발라야겠다.’

[햇빛 노출이 이렇게 무섭군요.]

잠시 혼란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21살이라는 실제 나이였다.

얼마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가는 사실 그리 중요치 않았다.

관리를 잘하냐 못하냐에 따라 신체 나이도 차이를 보이긴 하겠지만.

21살은 그런 모든 요소를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젊은 나이었으니까.

“21살에 고혈압이라?”

“이상하지. 뭔가 기저질환이 있고, 거기에 감염이 동반된 것이라 봐야 해.”

“바이털이 흔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네요. 그런 것치고는 지금 꽤 안정적이긴 한데.”

“응? 아, 약을 썼지. 근데 밤새 버티기엔 무리야. 그래서 요청한 거고.”

“네, 충분히 가져왔어요. 검사 장비도 들고 왔고.”

“잘했다, 수혁아.”

수혁은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도 나이를 생각했다.

21살에 고혈압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아무리 손가락을 혹사시켰다고 해도 21살에 관절염이 와?’

[이상한 일이죠.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그렇지. 그럼 그것도 다시 문제 목록 수정해. 자가 면역 질환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그럼 그걸 염두에 두고 환자를 살피시죠.]

‘오케이.’

수혁은 이제 바루다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 목록을 재정비한 참이었다.

자연히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관찰이 필요했다.

무섭도록 날 선 눈빛이 환자를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네.’

수혁이 이러는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신현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으로 비켜섰다.

어차피 가져온 약이 뭐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움직이기는 해야 했다.

‘눈깔 또 돌아간다.’

강혁도 눈을 돌렸다.

조금 다른 이유에서이긴 했지만, 하여간 신현태를 도와 약품 정리에 돌입했다.

“교주님…….”

오직 안대훈만이 수혁의 눈을 따라 환자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저도 배우겠습니다!’

열의가 대단했다.

하여간 수혁은 환자의 얼굴과 목 그리고 가슴 등 모든 부위를 훑었다.

‘얼굴에 홍조가 있어.’

[근데 이게…… 다른 사람들도 홍조가 많더군요.]

‘그건 그렇더라. 그래도 저장.’

[네.]

‘손가락 부어 있고. 발목도…… 이거 부은 거지?’

[네, 만져 보면 알죠. 확실히 하얗게 탈색되었다가 들이차지 않습니까? 부기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심합니다.]

‘그렇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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