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51화 (651/1,303)

651화 한밤중 (3)

종합해 봤을 때, 환자는 기저에 무언가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혈압을 재 보면 혈압도 높게 나오고 있고, 혈당도 꽤 높게 나오고 있었지만.

고혈압이니 당뇨 같은 것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잡음을 일으킬 정도로 진행한 고혈압이라면 원래 있었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혈당이 올라가는 건 감염 초기에 흔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자가면역질환이 의심된다, 이거지?”

“네.”

결론은 결국, 자가면역질환이었다.

종류까지는 여기서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아무리 추론을 잘한다 해도 단서가 너무 제한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단정을 짓는 것, 현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용이었다.

“종류는 알 수 없고.”

“네, 하지만 자가면역질환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면 면역력이 떨어져 있었을 거란 가정도 가능합니다.”

“그래, 그럼…… 아무래도 같은 병원체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큰 이 부족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이 환자만 이렇게 된 게 설명이 돼.”

신현태는 확실히 자가면역질환이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 현상이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의학은 늘 만에 하나 있을 일에 대비해야 했다.

“그래도 접촉자로 분류된 사람들은 일단 게르에 있도록 하자고. 그 안에서 혹 유증상자 생기면 따로 격리하고.”

“네, 그래야죠. 지금은 어디까지나 다 추론일 뿐이니까요.”

“그래. 그러면 다시 환자 얘기로.”

신현태는 감염내과 의사면서 동시에 원내 감염 관리를 책임지던 사람답게 시스템을 조율하고는 재차 환자를 돌아보았다.

완전히 잠들어 있었다.

아니, 잠이 들었다기보다는 혼절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원래 고혈압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사람이 아까 신현태가 처음 볼 때까지만 해도 수축기 혈압이 80 가까이 떨어졌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약도 쓰고 수액도 놓고 해서 간신히 120에 붙여 놓았다지만 하여간 기력이 많이 소모되었을 터였다.

‘밤도 깊었고.’

수혁은 게르 밖을 내다보았다.

아까까지 소란스럽던 기도 소리도 잦아든 지 오래였다.

도시 사람들이야 밤늦게 안 자는 것에 익숙하다 못해 매일 하는 짓인 데다가,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밤을 새워도 새우나 보다 하겠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해서였다.

‘모기가 많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수혁을 성가시게 하는 건 모기였다.

생각보다 게르의 폐쇄성은 완벽하지가 못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것도 아닌 게 모기장도 뚫고 들어오는 게 모기 아닌가.

게르 정도는 막무가내로 뚫고 들어올 수 있을 터였다.

심지어 지금은 불까지 켜 둔 상황이라 그런가, 모기가 미친 듯이 날아들고 있었다.

팍.

거의 초당 한 마리씩 모기를 잡아 내고 있는 백강혁이 아니었다면 이 근처 모기들의 파티장이 될 뻔했을 지경이었다.

“하여간 면역이 떨어진 상황에서…… 이런 감염을 선택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을 생각해 봐야 해요. 그래야 약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겁니다.”

“일단 페니실린은 안 듣는 게 확실해. 보니까 용법은 정확히 지켰더라고. 교육을 제대로 했어.”

“흐음. 그렇군요.”

페니실린에는 저항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기침과 가래, 고열을 동반하는 질환이라.

이건 솔직히 너무 많았다.

하지만 온몸에 임파선 비대를 일으키는 것까지 더하면 개수가 좀 줄었다.

잘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바루다가 끼어들었다.

[역시 긍정왕이야.]

‘왜.’

[그래도 수백 가지가 넘는데, 뭐가 잘됐어요.]

‘하긴 역시…….’

[이건 피검사 해야 합니다. 들고 온 검사로는 턱도 없어요.]

수혁은 바루다의 구시렁거림을 들으면서 심전도 기기를 향해 눈을 돌렸다.

약이야 많이 들고 왔지만, 추가된 기기는 저거랑 초음파뿐이었다.

제아무리 백강혁이 사람 살리는 데 미친 인간이라고 해도 다른 기기까지 싣고 거친 초원길을 달리는 건 무리라서 그랬다.

“일단 밤새 버텨 볼까요? 삼촌은 이제 좀 자요. 제가 볼게요.”

“응? 아니, 난 괜찮아.”

“괜찮긴. 이제 50도 훌쩍 넘은 양반이.”

“사실 좀 힘들더라. 형은 어디 갔지?”

“아빠요? 자겠죠. 컨디션 관리 끔찍이 하는 사람인데.”

“하긴 당연하겠지.”

나이 70 먹은 사람 옆에 두고 기껏해야 50 넘고 60 넘은 사람들이 나이 얘기하는 게 민망하긴 했지만.

액면가만 보면 강혁이 훨씬 젊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수혁과도 비등해 보일 정도로 피부도 뺀뺀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 나이도 젊어 보이지 않나.

해서 걱정하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볼까?”

강혁도 그랬다.

워낙 먼저 행동하는 리더 타입이라 그런가, 오히려 먼저 나섰다.

성질이 더러운 것과는 별개로 환자 보는 데는 또 진심이지 않나.

괜히 수십 년이 지나도록 백강혁 사단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적어도 최측근이라 할 만한 사람들은 죄 백강혁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아, 저도 그럼 좀 졸려서.”

물론 이런 답을 기대하고 말한 건 아닐 터였다.

아무리 사람이 젊어 보여도 그렇지.

70 먹은 노인이 밤을 새우겠다고 하는데 안 말려?

‘와……. 이 새끼.’

강혁의 눈에 저도 모르게 불똥이 튀었다.

말이라도 제가 보겠습니다 하면 좀 좋은가.

설마하니 손님 불러다 놓고 밤새우게 만들 거 같아서 이러나.

‘물론 밤을 새울 날도 오긴 올 거야, 올 건데.’

오늘은 어떤 답을 하든 간에 자기가 볼 생각이었다.

다음 날 비번이기도 하고 또 병원에 가서 제대로 된 진단 과정을 밟으려면 아무래도 내과가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근데 이렇게 나와?

‘너 진짜 귀신만 아니었으면…….’

성질 같아서는 벌컥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눈깔이 이리저리 튀던 것을 본 참이 아닌가.

심지어 남들은 모르게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던 것도 확인했다.

“그래…… 잘 자요.”

해서 강혁은 별말 없이 수혁과 신현태를 밖으로 내보냈다.

신현태는 잠시 그런 강혁을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바라보다가, 게르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수, 수혁아.”

“네? 왜요?”

“저 양반은 또 언제 구워삶은 거야?”

“구워삶아요? 별로 대화도 안 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처음 게르로 갈 때만 해도 얘기를 종종 하더니, 돌아올 때는 내내 자지 않았나.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나이가 있으니까.

엄청 힘들겠거니 했다.

그러던 양반이 알아서 밤을 새우겠다 나서는 건 또 좀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하여간 백강혁에 대한 수혁의 감상은 그냥 잘생기고 똑똑한 의사 정도였다.

“근데 왜 저러지. 잘 자요? 존대를 해?”

“아, 반말하다가 갑자기 존대를 하긴 하네요.”

“허……. 뭐지. 역시 수혁이 네 매력에 반해 버렸나.”

“어필할 시간도 없었는데.”

이 말은 곧 내가 매력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재수 없게 들릴 수 있는 아니, 재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건 신현태와 안대훈뿐이었다.

“그냥 존재 자체로도 빛나십니다. 후광이 비쳐요.”

“후광이 아니라 네 머리에 비쳤어.”

“영광입니다.”

“하하.”

칭송만이 가득했다.

환자들 때문에 게르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밤을 지새우게 된 부족민들은 그런 세 사람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청 딸랑대네.”

“젊은 친구가 높은 사람인가 보지.”

“어휴.”

한국말을 몰라도 알아먹을 정도로 노골적인 칭송이어서 그랬다.

“역시 주무시네. 수혁아, 네 아빠 이기적인 거 봐라. 제일 편한 자리에 떡하니 누워 가지고.”

“그래서 속 편하게 사시잖아요.”

“부럽다. 나는 이런 게 부러워. 원장 되고도 나는 마음이 불편하던데.”

차 안에 들어가 보니 이현종은 아예 환자 이송용으로 좌석을 세팅한 채, 누워서 자고 있었다.

덕분에 나머지는 누울 자리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기장이라도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돗자리만 깔아도 푹신할 정도로 몽골 초원의 풀 밀도는 대단했다.

해서 셋은 그냥 밖으로 나와서 누웠다.

“나름 운치는 있다.”

“그러니까요. 별도 보이고.”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갑자기?”

“왜 그래 인마, 무섭게.”

“교주님 우편에 앉는 것도 아니고 눕다니요. 허허.”

“이 녀석 진짜 글썽이네.”

“아…….”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잠들지는 못했다.

신현태와 수혁은 그저 몽골 초원의 밤하늘이 보기 좋아서였고, 안대훈은 가슴이 벅차올라서였다.

신현태나 수혁은 안대훈이 그저 글썽이는 데 그친 줄 알았지만, 사실 안대훈은 주먹을 먹고 있었다.

‘심장아 나대지 마. 이러다 더 들썩이면 들킨다…….’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였다.

그래서일까.

아침에 본 안대훈의 얼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왜 이렇게 부었어. 너도 자가면역질환 있니?”

그나마 태화에서 제일 인성 좋은 신현태가 이런 말까지 했을 지경이었다.

이현종은 아예 깔깔 웃고 있었다.

“진짜, 진짜 못생겼다!”

약간 서글픈 장면이었다.

그렇게 외치는 이현종 옆에 백강혁이 서 있어서 그랬다.

‘아빠…….’

[실드 칠 수가 없네.]

‘같은 사람 맞냐.’

[어지간하면 옆으로 가지 마세요. 비교되니까.]

‘오케이.’

강혁은 그렇게 오징어 짓을 하고 있던 이현종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입을 열었다.

분명 밤을 새운 직후였는데도 불구하고 멀쩡해 보였다.

“환자 이송 준비됐는데, 화장실 가야 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럼 바로 가죠. 가서 진단 내려야지.”

“네.”

일행 전체가 다 이동하지는 않았다.

비록 아직까지도 접촉자들이 증상을 일으키고 있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주의를 기울여서 관찰할 필요성은 있어서였다.

만약 지금 이 환자가 보이는 증상이 자가면역질환이 아니라 어떤 괴질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자칫하면 여럿 죽어 나가는 수가 있었다.

“그럼 갑시다.”

해서 이동에 나선 건 절반 정도뿐이었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무래도 밤보다는 훨씬 나았다.

뒤에 환자를 태우고 있다 보니 속도를 내기도 어려웠고, 시야도 좋아서 그랬다.

끼이익.

새벽에 출발한 차량은 아침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중간중간 환자의 바이털이 조금 흔들렸던 순간이 있긴 했지만, 별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차 안에 타고 있던 의료진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심지어 신현태는 아예 감염내과 교수 아닌가.

이현종, 수혁에게 밀려서 그렇지 학회에서 주목받는 명의 중 하나였다.

“아, 그럼 자고 오겠습니다. 그사이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네.”

“네, 주무세요.”

강혁을 바로 숙소로 보낸 일행은 일단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밥은 대강 라면으로 때우고 나서였다.

누가 시켜서는 아니었다.

신현태는 환자가 걱정이 돼서 그랬고.

수혁과 이현종은 이게 뭔 병인지가 너무 궁금해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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